선생님!

(질문) 중의 길이 있다라고 하셨는데 인간은 그 중의 길을 언제든 의식으로든 마음으로든 머물수 있는곳 맞나요?

(산에 물길과 바위닿는 곳이라고 예로 들어주셨는데 사람의 도의 길에 대해 의문이 들어서요)

 

답]

중의 길이 무엇을 말하겟습니까 바로 도 아닐런지요 성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선현들이 애기 한곳 입니다 다만 관점이 달라 종교든 학문이든 다르게 전해온 것이지요 그렇다고 중의길 도가 다른 것은 아닐겁니다 여기에서 대우주가 움직이는 큰 도가잇는반면 소우주가 움직이는 작은 도가 잇겟지요 그래서 사람 각자 다른 길을 가지만 그렇다고 도가 다른 것은 아니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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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글쓴이: 김병주 날짜: 2004.06.15. 13:17:54

안녕히세요?동영상 강의를 듣는데, 처음 보고 듣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
운동상수 개념정리에서 모르는 내용이 있어서요...

1. 소우주에 갑자(운기), 괘효(변동), 상수(운동)을 설명을 하시는데, 운기, 변동, 운동을 다시한번 비교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운기에서의 운과 운동에서의 운의 차이점, 또는 변동에서의 동과 운동에서의 동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요...

2. 자연수와 무리수,유리수에 대해서...
자연수는 중수로써 道易의 그림(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중을 설명하실 때 항상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 것입니다)으로 표현하면 자연수가 道가 되고, 유리수, 무리수는 자연수를 따라가는 易이라고 표현 하신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道는 보이지 않는 형이상의 세계(이상)이고, 易은 보이는 형이하의 세계(현실)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수가 보이지 않고, 유리수나 무리수가 보이는 수이어야 맞는데. 선생님께서는 유리수나 무리수는 보이지 않고 이이치만 있는 수라고 설명하신 것 같은데... 뭔가 제가 잘 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3. 정역이 천지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주역이 일월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고 하는데....

4. 15일언과 11일언에 대해서...

번번히 부탁만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운동상수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6.16. 12:32:35

안녕하십니까.

1. 소우주에 갑자(운기), 괘효(변동), 상수(운동)을 설명을 하시는데, 운기, 변동, 운동을 다시한번 비교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운기에서의 운과 운동에서의 운의 차이점, 또는 변동에서의 동과 운동에서의 동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요...

-일단 위 용어들은 우주설정입니다.

運이란 특정화 된 道입니다. 그러니까 특정화된 움직이는 길입니다.

動이란 말 그대로 움직임입니다. 그러니까 운기란 기의 움직임을 말하고, 운동이란 길의 움직임으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말합니다.

變이란 기가 흩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변동이란 흩어지고 모이는 것입니다.
어쨌든 위 우주설정은 전체를 아우르는 만큼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2. 자연수와 무리수,유리수에 대해서...

자연수는 중수로써 道易의 그림(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중을 설명하실 때 항상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 것입니다)으로 표현하면 자연수가 道가 되고, 유리수, 무리수는 자연수를 따라가는 易이라고 표현 하신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道는 보이지 않는 형이상의 세계(이상)이고, 易은 보이는 형이하의 세계(현실)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수가 보이지 않고, 유리수나 무리수가 보이는 수이어야 맞는데. 선생님께서는 유리수나 무리수는 보이지 않고 이이치만 있는 수라고 설명하신 것 같은데... 뭔가 제가 잘 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道는 무의식의 세계(이상)이고, 易은 의식의 세계(현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數의 세계를 설명했는데, 數 자체는 모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논리이므로 보인다 안 보인다는 설정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數자체가 易道일 수는 없고 그런 이치로만 보셨으면 합니다.

數는 中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분화하는 단계를 기준으로 자연수 유리수 무리수로 설명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분했다면 제 설명에 좀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모두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數의 논리이므로 좀 더 심화되어 분화해 간다는 정도로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3. 정역이 천지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주역이 일월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고 하는데....

-주역 정역 모두 中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관점이 中에서도 주역은 易=日+月 관점이고, 정역은 无=天+地 관점입니다. 한자의 합성으로만 보셔도 쉽게 입증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실제로 검토해 보시면 분명 맞습니다. 즉 주역은 일월의 象을 설명하고 있으며, 정역은 천지의 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4. 15일언과 11일언에 대해서...

-정역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數입니다. 그래서 15, 11의 數를 사용하였습니다.

15는 10+5입니다. 10무극 5황극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1은 10+1입니다. 10무극 1태극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워낙 쉽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런 것이 있구나. 정도만 기억하시고 계속 반복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4.6.15.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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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의원리 강의 신청자를 만나고 글쓴이: 안초 날짜: 2003.09.03. 07:58:23

우연히 역의원리 강의를 신청하시겠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이런 분들이 또 계시리라는 생각에서 그 분과의 대화를 생각나는 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이 분은 3개월 공부했다는 분으로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3개월이 아니라 30년을 공부했다고 해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학문은 3개월 공부하신 분이 가진 의문이나 30년을 공부하신 분의 의문이나, 평생 동안 가지고 살아가는 의문이라는 점입니다.

단지 두려운 것은 30년을 공부하다보면 타성에 젖기 때문에 위 의문을 해결하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적당히 타협을 하거나 아니면 포기해 잊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렇게 30년을 타성에 젖어버린 사람보다는 3개월을 공부했을망정 왕성한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 기대를 거는 것입니다.

위 분의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60갑자는 언제 만들어 졌는가.

야자시 조자시는 존재하는가.

과학과 역학의 관계는 어떠한가.

교제는 어떤 것으로 하는가.

과연 자신 같은 초보가 할 수 있는가.

오랜 시간 대화했지만, 제가 약간의 건망증(?)이 있어서 나머지 질문은 생각나지 않는군요.^^
사실 제가 가고자하는 ‘역의원리’ 강의 목표는 이 세상의 우주움직임을 동양학에서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이 학문을 대할 수 있는 向을 제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부하는 자세입니다.

위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동양학에서는 易, 道, 神이 설정되어 있으며,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이 학문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 설정이 시작이며 또 끝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것은 이것에 준해 모든 것이 술술 풀립니다. 반대로 이것을 모르면 평생 공부해도 똑 같이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 듣을 수 있는 수준이 그렇게 고도의 학문적 수준을 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초등학생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제가 설명할 내용도 역시 그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문으로 쓰여 있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실제 생활이 아니기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문제는 이렇게 쉽고 단순한 것을 찾아내고 또 깨닫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 그 자체는 쉽고 단순하지만,(易簡) 그것을 찾고 깨닫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위 말은 카오스나 프랙탈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쨋거나 위 ‘역의원리’ 강의는...
제 인생이 담겨있는 우주(중)원리에서, 그 엑기스를 단 시간에 傳 함으로서, 이 학문을 지탱해 나갈 인재에게 공부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학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추석 이전까지 강의 계획표를 올리겠습니다. 실제로 우주(중)원리에 있지만...

2003. 9.2.
편안한 돌! 안초올림~



제목: 4주는 안 가르치시는지요. 글쓴이: 난향 날짜: 2003.09.11. 09:01:23

제가 볼 때 역의원리보다 4주를 가르치시면, 더 많은 사람이 올텐데 4주는 안 가르치시는지요.
안초님이 4주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지만..
제가 듣기로는 4주에 대하여서 대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부디 한마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제목: re: 4주는 안 가르치시는지요. 글쓴이: 안초 날짜: 2003.09.12. 00:26:41

안녕하십니까.난향님!
4주는 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 역시 4주를 가르치면 더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이유는 가르쳐야 봐야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전혀 기초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학문의 진짜가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학문에는 스스로 만들어(述而不作) 놓은 짜가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마치 코끼리를 보고 자기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단지 이 중에서 사람을 많이 모으는 사람, 못 모으는 사람이 구분될 뿐입니다.

저 역시 이런 사람들에게 아무리 가르쳐야, 기초가 없으니 결국 수박 겉핥기가 될 것이고, 또 결국 이것은 또 하나의 와전된 쓰레기만 양산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고, ‘易의原理’ 강의를 통해 이런 분들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입니다.

非人不傳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其人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非人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天寶(진리)를 泄(와전)한다.

지금 4주의 진리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진리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기를 얻어 사람만 많이 모으면 그것이 주류가 되므로 진리보다는 인기가 치중합니다. 그러니까 작금은 진리를 밝히는 노력보다는 인기를 얻으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이는 현실입니다. 즉 역학의 개그맨만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파, 저 문파 그러는데, 좀 웃기는 얘기입니다. 우주에는 단 하나의 진리만 존재할 뿐입니다. 어찌 이 학문 저 학문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하나의 학문만 존재할 뿐, 나머지는 가짜입니다. 즉 진리 이외의 나머지는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입장에서 보면 냉철한 얘기이지만, 진리가 생명인 학문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입니다.(事必歸正) 그리고 위 과정을 학문의 통합이라고 합니다. 타협을 통합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충은 없다’는 해괴망측 한 주장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학문은 다수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이 정도의 주장이 나올 수 있고, 여기에 동조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이것은 ‘기초부족’입니다.

합충은 4주학에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고, 분명히 우주에 존재하는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는 이론입니다. 참고로 천문에도 합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별의 움직임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위 우주 움직임을 응용해서 4주학이 형성된 것입니다. 즉 합충을 응용해서 4주학이 형성되었지, 4주학으로 합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주보다는 합충이 더 큰 원리이론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 합충으로 추명이 맞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론이 잘 못된 것이지, 합충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제 멋대로 역의 근본을 무너트리며, 초학자의 인생을 우롱하는 것은 이 학문의 근본이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역학에는 4주 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기야 4주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으니, 4주가 곧 역학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스스로 자신을 무너트리고 있군요.

글쎄요...
4주를 가르치라는 난향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생각하게 고려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지금은 일단 역의원리에 입각하여 4주 기초이론을 한번쯤 정리해 볼 생각은 있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의보다는 일단은 기초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언제 실천에 옮길지는 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003.9.10. 추석
편안한 돌! 안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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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보]우주원리 글쓴이: 추윤식 날짜: 2003.07.24. 22:50:30

http://www.anseo.dankook.ac.kr/%7Etheophy/down.htm

계절
지구와 화성의 자전축은 공전면에 대해 수직으로 서있지 않고 기울어져 계절을 갖는다. 한편 목성(Jupiter)은 자전축이 겨우 3°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계절이 거의 없다. 그러나 토성(Saturn)은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의 수직에 대해 27°기울어져 있고 해왕성은 약 29°기울어져 있어서 모두 계절을 가졌다. 천왕성의 경우 북쪽 방향에 대해 95°기울어져 옆으로 굴러 가듯이 공전한다. 천왕성의 위성과 고리도 천왕성의 적도면 주위를 공전하므로 천왕성의 자전을 따라간다.

목성과 토성의 내부구조가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내부에서 이들 기체가 어마어마하게 압축되어 있으므로 지구상에서의 이 기체들과는 다를 것이다. 목성과 토성의 가시 구름 층으로부터 수천 km 깊이에는 압력이 매우 높아, 수소는 기체상태에서 액체상태로 변한다. 더 깊은 곳에서는 이 액체 수소가 더욱 압축되어 금속상태로 변하게 된다. 금속상태에서는 전자가 핵에 단단히 붙어있지 않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전기가 잘 통한다. 목성 내부의 상당 부분이 액체금속 수소로 되어있다. 토성의 경우는 질량이 다소 작아 금속수소는 작은 부분이고 액체 수소가 대부분이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아마도 너무 작아 액체 수소를 만들 수 있는 압력을 가지지는 못한다.

거대행성은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자체의 핵으로 주위 물질을 잡아당겨 형성되는 과정에서 매우 뜨겁게 가열되었다. 목성이 가장 크므로 가장 뜨거웠다. 초기 열이 남아있고 기체 행성이 천천히 수축하면서 열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대기가 태양 빛의 가열 효과보다 항상 온도가 높다. 목성 내부 에너지원은 41017 watt이다. 목성의 내부 에너지 대부분은 45억 년 전 행성이 만들어질 때 가지고 있던 초기의 열이다.

--이상--

(이글은 위에 싸이트에서 일부 발췌한것입니다)
우주원리를 과학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실겁니다.
모든 자료들이 구분지어져서 문서화 되어있기 때문에 보시기에도 편하실거에요.

운영자님께서는 이글이 불합당하시다고 생각하시면 삭제시켜주세요
그럼 지지닷컴의무궁한발전과 초보학자님들의 많은 깨달음이 함께하길...



제목: 원리(通)와 현상(變) 글쓴이: 안초 날짜: 2003.07.25. 00:03:43

추윤식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마디 사족을 부쳐 보겠습니다. 단 반드시 추윤식님에게만 해당되는 글은 아닙니다.

원리와 현상은 다릅니다. 지금 올리신 글은 원리가 아니라 현상입니다. 현상이 모습이라면 원리는 엑키스입니다. 현상은 변한다면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냐구요. 있습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같은 것 들...

우주는 현상으로 원리를 찾아 낼 수도 있고, 원리로 현상을 미루어 알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학문은 위 원리을 通해 變하는 현상을 미루어(推) 알고자 하는 연역법의 학문입니다. 통계학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원리가 없다면 무엇으로 명(推命)을 미루어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통계를 내서 안다구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데 우리는 위 원리를 잃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누가 골치 아프게 원리를 따지면서 공부하겠습니까. 돈도 안 되는데... 그렇지만 원리 없이 흘러온 학문이야 또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원리를 알지 못하면 미루어(推) 안다는 말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위 원리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습니다. 아니 가르쳐 준다고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더더욱 무서운 것은 위 원리가 정말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2가지의 흐름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복잡한 공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단순한 시간...
옛날 같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과학이 발달한 만큼, 이것을 최첨단 학문인 프랙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서양학과 동양학이 가가워진 것입니다.

참고
simple & complex fractal-간단 복잡한 프랙탈/ 아래 64X64의 숫자를 보십시오. 정말 우리 우주에는 64괘의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학문이 어렵습니다. 물론 말로만 장난치려면 누구는 못하겠습니까. 말로만 배우는 학문은 3년만 배우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습니다. 아는 것도 없는데, 배울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인지 아닌지 함 해보세요. 이렇게 10-20년 책을 끼고 있어도 항상 그게 그것입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고집만 세 집니다. 이런 분들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씩 쌓여 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똑똑 떨어져 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배움에는 속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연과 때입니다. 아무리 인연이 있어도 때가 안되면 공부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나 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선택(불쌍한 사람)받은 몇 명이 이어받고 또 이어가는 학문입니다.

쓰다가 보니 길어 졌습니다.
혹 원리 공부하고자 하는 분을 위해...

2003.7.25.
편안한 돌! 안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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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易)과 도(道)란?

동양학을 하는 사람들은 역(易)이나, 도(道)라는 용어를 흔히 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易)과 도(道)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易)과 도(道)를 공자의 말씀으로 구분하오니 참조바랍니다.

生存門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生生之謂易"(낳고 낳는 것이 易)이라고 하고, 또한 `제7장`에서, "天地設位 而易行乎 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천지에 位가 있어 易이 그 中에서 行하니 成性이 존재하고 존재하는 것이 道義의 문이다)라고 生하여 行하는 것이 易이고, 性이 이루어져 存하는 것이 道다.

그러니까 역도(易道)는 모두 天地日月 즉, 宇宙의 中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中에서 生하여 行하는 것이 역(易)이고, 存하여 性한 것이 도(道)입니다. 즉 우주의 中에서 生하여 움직이는 현상이 역(易)이고, 存하여 고정된 법칙이 도(道)입니다.

200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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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의 역도(易道)?

역(易)과 도(道)...
역(易)은 좌우의 일월(日月)입니다.
도(道)는 중(中)의 길(道)입니다.

일월이 서로 호환하면서 생(生)하는 우주, 그것이 바로 역(易/바꿀역)입니다. 그런데 그 中에 하나의 원리가 존(存)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道/길도)입니다. 그러니까 역(易)은 우주의 변화를 말하고, 도(道)는 그 변화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易)과 도(道)는 분리될 수 없는 개념으로, 역(易)의 원리가 바로 도(道)며, 도(道)의 변화가 바로 역(易)입니다.

生存門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生生之謂易"(낳고 낳는 것이 역)이고, 또한 '제7장'에서, "天地設位 而易行乎 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천지에 위가 있어 역이 그 중에서 행하니 성성이 존재하여 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라고 生하여 行하는 것이 易이고,  性이 이루어져 存하는 것이 道다.

도(道) 자체가 수양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道)를 수양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도(道)가 노자, 장자에 의해 학문으로 정착되었는데, 장자의 사상이 주로 자연주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수양은 도(道)를 알기 위한 한 방법에 불과하지 결코 도(道)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역(易)에서 가장 큰 도(道)는 무엇인가.
가장 큰 도(道)는 일월의 움직임 즉 음양(시공)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일월이 그리는 3극(공간)과 5행(시간)입니다. 이것이 도(道)의 최상위 버전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하위 버전이 象數(시공)로서 8卦6爻(공간)와 10干12支(시간)가 됩니다. 이렇게 변화하면서 생(生)하여 행(行)하는 것이 역(易)입니다.

2001-03-18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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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中和)-道名(도명), 노자 도덕경

예전에 TV 요리시간에 요리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알카리에 산성을 섞으면 서로 중화(中和)가 되어 더욱 맛이 좋아집니다."
네! 이것이 중화(中和)입니다. 이것 이해 안 되시는 분 있나요?

그런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것으로 노자 도덕경 반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道)와 명(名)도 설명합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역도(易道)는 쉽고 단순(易簡)합니다. 단지 그것을 깨닫기 어려울 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 알카리와 산성을 서로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알카리나 산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중화(中和)가 덜 된 것입니다. 즉 중화가 되기 위해서는 알칼리와 산성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맛이 나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반된 알칼리와 산성은 서로 마주치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이 바로 중(中)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화(和)입니다. 따라서 중화(中和)는 상반된 氣가 서로 和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해 안 되시는 분 있나요?^^

中和(중화)
자사는 ‘예기 중용편’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이것을 일월, 남녀 등 상반된 우주, 자연에 비유하여 도(道)로 설명하면...
위 중(中)이 바로 도(道)이고, 위 화(和)가 바로 명(名)입니다.

도(道)는 상반된 기운이 마주쳐 자신을 잃어버린 중(中)의 상태이므로 당연히 맛이 없고(無味), 보이지도  않으며(無視), 들리지도 않으며(無聽), 사용도 할 수 없습니다.(無用)

 無感
노자는 '도덕경 제35장'에서,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道를 입으로 표현하면, 담담하여 맛이  없고,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써도 다하지 못한다)라고 道는 無感하다고 한다.

그런데 위 中에서 자신을  잃는 이유는 상반된  기운이 서로 부딪쳐(沖), 서로 미세하게(精)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잃은 위 미세한 정(精)은 이제 더 이상 상반되지 않으므로 合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화(和)입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이 창조되는데 이것이 바로 상(象)입니다.

象先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粉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道는 沖해서 用하니 혹 不盈한 듯해서 淵함이 만물의 宗이다. 날타로움은 꺽이고, 엄킴은 풀고, 빛은 和하고,  티끌이 함께 하여 가득함이  存하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지만 象의 帝보다는 먼저 있다)라고 道는 沖해서 象보다 먼저 存한다.

中精
노자는 '노자 제103장'에서,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그윽하고 깊숙함이여, 그 中에 精이 들어 있다. 그 精은 매우 참되며 그 가운데 信이 있으니, 옛부터 지금까지 그 名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로써 만물의 시작을 연다. 내가 어떻게 만물의 시작을 알겠는가. 이것으로써 안다)라고 中精을 설명한다.

그런데 도(道)는 자신을 잃어버린 정(精)이므로, 모두 똑같아 서로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중(中)은 일월에 따라 움직(周行)이게 되므로, 각자 명(名)을 稱할 수 없지만, 글자로는 모두 도(道)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周行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이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말하면 道라고 한다)라고 道를 정의한다.

그러니까 위 중(中)의 周行은 우주만물에 움직이는 냇물의 길(道)과 같습니다.

川谷
노자는 '도덕경 제32장'에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비유컨데 道가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골짜기 냇물이 강이나 바다에 흐르는 것과 같다)라고 골짜기 냇물이 강이나 바다에 흐르는 것과 같다.  

결국 위 도(道)의 중(中)은 항상(常) 서로 마주치는(沖)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이 화(和)입니다. 즉 위 중(中)에 常이 없다면, 그것은 마주치는 지점이 없기 때문에 화(和)가 아니며, 그것은 중(中)이 될 수도 없기 때문에 도(道)도 아닙니다. 따라서 위 중(中)의 常을 안다면, 우주만물의 도(道)를 밝힐(明) 수 있게 됩니다.

和常明
노자는 '도덕경 제55장'에서, "知和曰常 知常曰明"(和를 아는 것이 常이며, 常을 아는 것이 明이다)라고 和, 常, 明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쯤되면, 노자 도덕경에서 첫화두를 본원과 본체에 두지 않고, 도(道)와 명(名)에서 시작한 이유를 명백히 알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즉 우주만물의 중(中)에는 자신을 잃어버린 정(精)이 주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道)입니다. 그리고 위 중(中)에서 항상(常) 沖하여 和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전혀 새로운 象을 창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  象은 자신을 잃어버린 도(道)와 달리 각각 구분 지어야 하므로 명(名)을 稱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道)에서 生한 명(名)이 반드시 있어야 우주를 구분 설명할 수 있게 되므로, 서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후에 비로소 본원과 본체는 명(名)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됩니다.

노자 도덕경은 상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이 도(道)이며, 하편이 덕(德)입니다. 우주원리로 말씀드리면 상편은 天의 도(道)를 설명하고, 하편은 地의 德을 설명합니다. 天의 도(道)는 스스로(自)하는 것이며, 地의 德는 그렇게(然)  따라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道)만 정확히 깨닫는다면, 德은 그렇게 따라서 깨달을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노자는 위 중화(中和) 개념만 알면,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반대로 중(中)과 화(和)를 모르고 노자의 도덕경을 논 할 수 없습니다.

200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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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o-도(道)

Tao...
이것은 과학자나 심리학자 등 세계적 식자층에 부는 새로운 학문입니다. 소위 서양 학자들 사이에는 Tao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 일어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위 Tao가 무엇인가.

Tao는 바로 도(道)라는 중국 발음의 영어 표기입니다.
이쯤 되면, 피~ 하겠지요. Tao하면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도(道)하면 김이 픽~ 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중앙 테레비에서 황금 시간에 노자의 강의를 하는 것도 이러한 세계적 조류와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거니까 이것이 꼭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유행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에 우리가 편승하고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도(道)라는 것은 제가 항상 강조하듯이 `우주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즉 도(道)는 우주 안의 길이고, 역(易)은 그 우주 껍질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역도(易道)는 서로가 뗄 수 없는 음양 관계에 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이 글은 도(道)를 原理라는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자연에서 수양이나 하는 신선 노름이 되었는가.

道學는 황제내경을 근원으로 하여, 노자를 그 시조로 합니다.(황노경) 그런데 이것이 장자에 이르러 그 勢가 퍼지게 되는데, 장자가 바로 자연주의 사상가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길(道)이 자연주의 사상처럼 굳어진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는 도(道)를 자연의 수양보다는 우주변화의 원리로서 求하고자는 것입니다.(외로운 외침) 다행히 이것은 세계적 학문 조류와도 일치합니다. 아니 그래야 원리와 원리로서 과학의 접목도 가능해 집니다.

어쨋거나 Tao는 세계적인 신지식의 학문 조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주인인 易학자는 도(道)를 간과해 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역학역술은 Tao(道)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가장 근본 이유는, 위 Tao(道)가 떠나(遷)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조금 더 과감히 말씀드리면, 일반의 역학자는 위 Tao(道)가 易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릅니다.

아! 도(道/Tao)...
한동석 선생은 우주변화의 원리를 저술하면서, 도(道)의 門까지만 도달 할 수 있어도 필자의 소임은 다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도(道)의 門은 고사하고, 도(道)의 실체가 있는 것만 깨달아도, 동양학은 저만치 있으리...

200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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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질서-도(道)

1960년대 초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Edward N. Lorez)는 물을 끓이면서 발생하는 수증기에 '숨겨진 질서'가 있다는 것을 컴퓨터 계산에 의해 발견하게 되었다. 전혀 규칙이 없을 것 같은  혼돈의 수증기에도 결국 하나로 귀착되어 흘러가는 숨겨진 질서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오스이론의 시작이며, 현재 과학의 주류를  이루는 학문이다. 위 숨겨진  질서는 나비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주변화의 근원을 일으키는 초기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기조건의 의존성과 나비효과이다.

동양에서 우주변화는 모든 흐름이 歸一되는 숨겨진 질서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하는데, 위 숨겨진 질서의 흐름을 '우주의 길' 즉 '도(道)'라고  한다. 그리고 위 도(道)중에서 가장 큰 도(道)를 음양과 3극5행이라고 하였는데, 3극 중에서 태극은 만물의 시초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태극을  ∽자 모양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나비의 ∽자 모양과 공통된 개념임을 추측할 수 있다.

분명히 우주에는 위 숨겨진 질서 즉 도(道)가 존재한다. 이것은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위 카오스이론을 연구하여 발표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그러니 서양의 과학자는 tao(道의 중국발음)라는 말만 들어도 잠에서 깬다는 말이 헛된 말만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노자의 열풍 또한 세계적 추세임을 감안 할 때, 도(道)의 등장은 시대적 흐름의 요구인 듯하다. 위 道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쉽고 간단(易簡)하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기에 더욱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주는 변화무쌍하지만 결국은 위 도(道)에 준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고, 도(道)를 通해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道)를 通해 變을 관찰함으로써, 우주변화인 易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통변이라고 한다. 이것은 소우주인 인간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인간에게  흐르는 도(道)를 氣의 관점에서 運이라고 하는데, 運의 일정한 位를 命이라고 하며, 위 位에서 變하는 事를 占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며, 점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서로 체용관계에 있다.

술수는 위 도(道)를 응용한 학문이다.
우주만물은 결국 도(道)에 歸一되기 때문에, 위 도(道)에 의해 우리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道)를 알지 못하면, 變을 알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술수는 도(道)와 무관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도(道)를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通해 變을 알 수는 말인가. 그래도 말로는 通變을 한다고 한다. 도(道)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시대적 아픔이다. 그렇다고 도(道)를 부정하는 자를 어찌 역학자, 술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위 道를 부정하는 자를 어찌 동양학자라고 하겠는가.
서양의 과학자도 도(道)의 진리를 찾기 위해 혈연이 되어 있는데, 정작 도(道)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동양학자 중에는 고전은 옛 미개한 사람이 글이거나, 조작된 글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누가 조작하고 있는지 구분을 못하는 행동이지만, 위 도(道)와는 무관한 인위적인 이론으로 후학에게 폐를 끼치면서 반대로 마치 무슨 특별한 발명품인 양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물론 위 인위적인 것들이 오늘날 비롯된 것만은 아님을 감안할 때, 불쌍하기까지 하다. 동양학이 언제나 제 방향을 찾아 발전할 수 있을까...

숨겨진 질서!
이것은 분명히 21세기를 이끌어 갈 학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누가 주도할까?

200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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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역도신(易道神)

저 역시 역(易)을 공부하다보니까, 도(道)를 모르고는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도(道)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계에 부딪치더군요. 신(神)을 모르고는 더 이상 이 학문을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제 학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동양학은 결국 역도신(易道神)입니다. 관점으로 볼 때, 공간이 역(易)과 시간이 도(道)와 시공이 신(神)입니다. 즉 우주를 위 세가지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中)입니다. 이 우주에는 중(中)이라는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위 중(中)은 우주만물을 이끌어가니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학문은 과학과 달리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위 중(中)의 세계에 들어가는 門을 道義門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 중(中)의 세계를... 공간관점으로 표현한 것이 역(易)이며, 시간관점에서 표현한 것이 도(道)이고, 시공관점에서 표현한 것이 신(神)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세상은 위 중(中)의 세계를 通에 變해가는 세상입니다.(通變) 즉 중(中)의 세계는 理致의 세계이고, 현실세계는 現象의 세계입니다.

중(中)에 대한 공감 없이, 제 의견은 공염불이기에 이것으로 대신하렵니다. 어차피 동양학을 시작하였다면, 중(中)의 세계를 향해 떠나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감사합니다.

200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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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의 성쇠(盛衰)와 주기(週期)?

도(道) 역시 하나의 우주인만큼 성쇠(盛衰)하는 주기(週期)가 있습니다. 도(道)는 3,000년을 주기로 변화하고, 그 주기는 다시 60년을 주기로 변화하면서 성쇠합니다.

[도의 성쇠 변화]
復興
주자는 `주역본의 계사하전 제7장`에서, "夏商之末 易道中微 文王拘於유里而繫彖辭 易道復興"(하,상나라 말기에 역도의 중이 쇠미해 지더니 문왕이 유리옥에 구속되어 계사,단사를 붙이니, 역도가 다시 흥해졌다)라고 역도의 부흥을 설명한다.

[3,000년 주기]
三千年
일부는 `정역`에서, "三千年 積德之家 通天地第一福祿云者神告也"(3천년 적덕한 집에 천지를 통해 제일가는 복록이라 함은 神의 알림이다)라고 神告로 천지가 변화한다.

3천년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오호라! 문왕 이후 3천년의 공업이 간방 一隅에서 이루어 질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복희도 3천년에 문왕도가 나왔고 문왕도 3천년에 정역도가 나옴으로 인하여 天垂象 物受形하는 우주의 원리는 변화의 모습을 노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황제 이후 5千載의 수수께끼였던 내경은 드디어 비밀의 장막을 거두게 되고 5운과 6기의 법칙은 드디어 상과 수를 개발하는 역군으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3천년의 성인탄생을 설명합니다.

[60년 盛衰時期]
六十年
일부는 `정역`에서, "六十年 率性之工 秉義理大著春秋事者 上敎也(60년 솔성한 공에 의리를 잡아 크게 춘추에 나타날 일은 위에서 가르치심이다)라고 上敎로 의리가 변화한다.

200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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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chaos)와 도(道)

물리학은 크게 고전과 현대 물리학으로 구분된다.
고전 물리학은 뉴톤의 결정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이고, 현대 물리학은 양자론과 카오스이론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최근 학술 발표의 주종을 이루는 학문이 바로 카오스이론이다. 그러니까 카오스이론은 첨단 과학이론 중에서도 최첨단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카오스]그렇다면 카오스(chaos)이론이란 무엇인가.
카오스 이론은 전혀 규칙이 없어 보이는 움직임(비선형)에서 관통되는 하나의 원리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수증기의 움직임, 파도의 움직임과 같이 전혀 규칙이 없어 보이는 움직임에도 하나의 원리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즉 우주에는 하나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비롯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一名
왕필은 `논어 리인장`에서, "夫事有歸 理有會 故得其歸 事雖殷大 可以一名擧 總其會 理雖博 可以至約窮也"(무릇 만사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듯 이치도 모이게 되어 있다. 고로 돌아가는 바를 알기만 하면 규모가 아무리 큰 것이라도 하나의 명칭으로 집약할 수 있다. 모이는 것을 종합하면 아무리 넓은 이치라 해도 간략한 방법을 궁리할 수 있다)라고 복잡한 만유라도 하나로 집약하면 아무리 넓어도 간략해 진다.

[도]그렇다면 도(道)란 무엇인가.
우주는 아무리 복잡해도 하나로 통하는 中의 움직임이 있는데 그것이 도(道)이다. 쉽게 얘기해서 `만물이 하나로 모이는 우주의 길` 이것이 바로 도(道)이다.

觀明一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1장`에서, "天地之道 貞觀者也 日月之道 貞明者也 天下之動 貞夫一者也"(천지의 도는 항상 보여주고, 일월의 도는 항상 밝으며, 천하의 움직임은 항상 1이다)라고 천지일월의 도(道)는 항상 함께 움직이므로 결국은 1이다.

[과학의 도]그러므로 엄밀히 따지면...
카오스이론은 과학의 도(道)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의 도(道)에서 많은 힌트와 소스를 얻고 있다. 즉 카오스이론은 역(易)의 도(道)를 배경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Tao(道의 중국발음)는 서양의 과학자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어 온 근본의 학문이다. 따라서 작금에 TV에서 유행하는 노자 역시 위 시대적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道)의 주인인 동양학자들은 도(道)가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도(道)에 관심조차 없다. 도(道)는 쉽고 간단하지만, 결코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득도(得道)란 인간의 한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도 道士가 흔하지를 않았는데 지금이야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렇지만 易人이라면 위 어려운 길을 가야 진정한 易人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道士를 찾아 삼만리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도(道)를 求하려 하지 않는다. 도(道)를 求하기 보다는 도(道)를 作해서, 자신의 이름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후학의 눈과 귀를 멀게 하여, 결국 오류를 가르쳐 평생 헛 공부(虛行)를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그 후학은 뭔가 잘못된 그 학문을 다시 作할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을 후학에게 가르치게 된다. 따라서 作은 作을 낳게 되어, 도(道)는 갈기갈기 찢어져 오늘날과 같이 전요와 법칙이 없는 도(道)가 衰한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죄인]따라서 위 作하는 사람은 도(道)를 衰하게 하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위 죄인은 오늘날보다 이미 학문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옛 유명인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易人이라면 내가 위 범죄자가 되지 않을까 한번쯤 스스로 반성해 보길 바란다. 필자 역시 위 범죄자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사람이다.

逃罪
일부는 `정역`에서, "一夫敬書 庶幾逃罪乎"(일부 공경하여 쓰니 거의 죄를 면할 것인가)라고 罪를 얘기한다.

[동양학]따라서 동양학 공부를 함에 있어서, 위 오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동양학을 공부할 수 있는 최대의 관건이다. 그래서 30년 공부한 사람보다 3년 공부한 사람이 훨씬 훌륭한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옛부터 좋은 스승과 좋은 책을, 동양학 공부의 선결 조건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름에 從하지 말고 진리에 從하라!

위와 같이 역학의 도(道)는 衰해 가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도(道) 즉 카오스이론은 盛하고 있다.
이제는 바야흐로 서양에서 도(道)를 수입해야 할 때에 이른 모양이다.
에구~ 쪽... 팔려라!

200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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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의 성쇠(盛衰)와 모습?

도(道)도 하나의 우주입니다.
그런 만큼, 도(道)에도 성쇠가 있습니다. 도(道)가 쇠(衰)하면, 遷하여 典要가 없이 흩어집니다. 平傾하여 도(道)가 성(盛)하게 되면, 其要가 모여집니다.

[도(道)가 쇠(衰)하면]
道遷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易之爲書也不可遠 爲道也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 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易의 글됨이 멀어질 수 없고, 道됨이 여러번 옮겨져서, 변동하여 거처하지 않고, 6虛가 두루 흘러서 상하에 항상 됨이 없어, 강유가 서로 바뀌므로, 典要가 없이 오직 變하였다)라고 道가 遷해 典要가 없다.

[도(道)가 성(盛)하면]
道大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11장`에서, "危者使平 易者使傾 其道甚大 百物不廢 懼以終始 其要无咎 此之謂易之道也"(危가 平하게 하고 易이 傾하게 하니, 그 道가 심히 커서, 백가지 物이 없어지지 않고, 懼로서 終始하니, 그 중요함에 허물이 없다. 이것을 易의 道라 한다)라고 平傾으로 道가 커진다.

도(道)의 성쇠(盛衰)로 오늘날의 모습을 냉정히 판단해 보세요.
極則必反은 원초적(平)인 힘(傾)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200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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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도(道)

道路(도로)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하’에서,"一陰一陽之謂道 道無聲無形不可得而見者也 故假道路之道而爲名 人之有行必由乎道 一陰一陽天地之道也 物由是而生由是而成者也"(한번은 음하고 한번은 양하는 것을 道라고 한다. 도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서 얻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道路의 道로 가정하여 이름이 되었는데 사람이 반드시 길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음과 한번은 양하는 것이 천지의 道이다. 物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라고 설명한다.

- 도(道) -

未見聞(미견문)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氣穴論편에서,"帝捧手逡巡而却曰 夫子之開余道也 目未見其處 耳未聞其數 而目以明 耳以聰矣"(황제가 두 손을 받들어 물러나 말한다. 선생이 나에게 道를 열어 주었다. 눈은 그 곳을 보지 못하고 귀는 그 數를 듣지 못하지만, 눈으로서 밝히고 귀로서 총명해 진다)라고 道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다.

浮雲道(부운도)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6미지대론'에서,"嗚呼遠哉 天之道也 如迎浮雲 若視深淵 尙可測 迎浮雲 莫知其極"(오호 멀구나 하늘의 道란 것은 마치 뜬 구름을 맞이하듯 하구나. 만약 깊은 연못을 살핀다면 깊은 연못은 오히려 측정할 수 있어 살필 수 있으나, 뜬 구름은 그 極을 알 지 못한다)라고 道는 뜬 구름과 같다.

道奧(도오)

노자는 '노자 제62장'에서,"道者萬物之奧"(道란 만물의 奧이다)라고 깊숙한 속 즉 奧를 설명한다.

天下母(천하모)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道라고 말한다)라고 천하의 어미가 道라고 정의한다.

道無形(도무형)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내편’에서,"夫道也者道也 道無形行之則見于事矣 如道路之道坦 然使千億萬年行之 人知其歸者也"(무릇 道라는 것은 길이다. 道는 무형으로 행하지만 사건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도로의 도는 평탄해서 천 억 만년을 행하여도 사람들이 그 돌아갈 곳을 알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道學(도학)

최한기는 ‘추측록 추측제강’에서,"兩漢以降 學術多端 究其行道者 謂之道學 明心者 謂之心學 窮理者 謂之理學 遂成門戶 各守其傳 殆非所以一道德而公天下也 "(前漢ㆍ後漢 이래로 학술이 여러 가지 단초여서, 道를 행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을 道學이라 하고, 마음을 밝히는 것을 心學이라 하고, 理를 궁구하는 것을 理學이라 하여, 드디어는 문호가 이루어서 각각 그 전하는 것만을 지키니, 이는 하나의 도덕으로서 천하에 공변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道學(도학)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宗敎精神과 道' 에서, "道라는 것은 우주운행의 법칙적 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 법칙이란 것은 天地 日月의 운행법칙이며 木火金水와 율려의 법칙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칙이 운행하는 길에서 일어나는 오묘불칙한 변화는 만물의 생장성숙의 과정과 인사의 길흉화복의 과정에서 출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道學이라고 하며, 그 변화자체를 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道는 지고지명한 정신이 아니면 감히 접근 할 수 없는 경지이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宗敎 즉 최고정점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도학을 설명합니다.

- 선악(善惡) -

善惡(선악)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氣交變大論'에서,"帝曰 其善惡何謂也 岐伯曰 有喜 有怒 有憂 有喪 有澤 有燥 此象之常也 必謹察之"(황제는 묻는다. 그 선악은 무엇을 말하나요. 기백은 답한다. 기쁨이 있고, 노여움이 있고, 근심이 있고, 죽음이 잇고, 윤택함이 있고, 마른 것이 있으니 이것이 상으로 항상됨이 있습니다. 필히 삼가 살펴야 합니다)라고 선악을 설명한다.

性善(성선)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계승하는 것은 善이며, 이루는 것은 性이다)라고 性善을 구분한다.

善性(선성)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人間의 生活과 變化'에서, "주역 계사에서는 繼之者善이요 成之者性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을 해석하면 계지자선이란 말은 人性이 발한 바탕, 즉 사람의 본질은 선하다는 뜻이다. 繼라는 것은 무형에서 유형으로 계승해 준다는 뜻이니 무형에서 유형으로 계승해 준다는 것은 精神과 生命이다. 그런즉 이것은 바로 本質(정신과 생명)이 善하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성지자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함으로써 物로 形成되면 거기서 비로소 性이 생긴다는 말이다. 成이란 뜻은 사물의 완성을 말하는 것인바 精神인 陽은 자체 소멸을 방지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形의 포위를 받을 때에 비로소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天地生物之心이 成物之心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成物之心 즉 無形之心이 有形之心으로 전환된 때가 바로 性인 것이다" 라고 善과 性을 설명합니다.

善惡(선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社會的 變化와 性의 善惡'에서, "人性은 그 본질은 본래 善하였지만 그것이 性으로 전환될 때에 벌써 <善 +惡>이라는 공식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人性 自體는 이러한 것이므로 그것이 만일 약간만 善한 쪽에 치우치게 되면 善行을 좋아하게 되고 반대로 약간만 惡 쪽에 치우치게 되면 惡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淨化와 교육의 필요성은 인류문화의 발전과 사회생활의 복잡화와 더불어 일대요구로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 성인(聖人) -

聖人(성인)

일부는 '정역 대역서'에서,"嗚呼聖哉 夫子之聖乎 知天之聖 聖也 樂天之聖 聖也 親天之聖 其惟夫子之聖乎"(오호 성스럽다. 공자의 성스러움이여! 하늘을 아는 성인도 성인이지만, 하늘을 즐기는 성인은 공자의 성스러움이다.)라고 성인을 설명한다.

褐玉(갈옥)

노자는 '노자 제70장에서,"是以聖人被褐壞玉"(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보옥을 품고 있다)라고 성인을 설명한다.

無名(무명)

소길은 '5행대의'에서,"聖人無名 能理萬物 還以萬物名 陽氣至神 故有隱顯"(성인은 이름이 없다가 만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만물로서 도리어 이름을 얻게 된다. 陽氣는 그윽이 신묘하므로 사라지고 나타남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聖人(성인)

율곡은 '역수책'에서,"蓋天地 乃以是數 示之人 聖人 必待文端然後 乃以是理 著於世 天下得不生聖人 亦不得不生文端也 此則自然之應 而天人交與之妙也"(대개 천지는 이로서 數로 사람에게 보여주며 성인은 반드시 문단을 기다린 이후에 이 理로서 세상에 드러난다. 하늘은 성인을 낳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文端을 낳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곧 자연의 응함이요, 하늘과 땅이 妙로 함께한다)라고 성인의 탄생을 설명한다.

聖賢(성현)

최한기는 ‘氣學’에서,"古聖賢經傳之語 豈敢只將我習染意思而取捨也 考準於耳目所驗之天人運化 合則感服修行 不合則存而俟後"(옛날 성현이 경으로 전하신 말씀을 어찌 감히 나의 습염된 의사로서 취하거나 버리겠는가? 나의 감각기관이 경험한 바의 天人運化를 상고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것과 부합되면 감복하여 수행하고, 부합되지 않으면 일단 보존한 채 뒷날을 기다릴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敎人知不知(교인지불지)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敎人而不知 則非但敎之者 知其不知 聽敎者 亦自知其不知矣 不知二字 誠易知矣 聽敎者 所謂知之 不無昏明淺深之分 敎之者 逐條諮問 則所知之大小長短 皮膚肢體 盡自其口吐實 又能言遮蔽難透之端 是可以設敎之機微也 磨以歲月 運化之敎 常有所證驗 師友之敎 從傍而提惺 前日不知 至於知之 今日知之 至於明日 又生不知之端 知不可以盡矣"(사람들을 가르쳐줄 때에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단지 가르치는 사람만 알아듣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사람 역시 알아듣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 不知는 두 글자는 진실로 알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이른바 알았다고 하는 것에도 昏明과 淺深의 구분이 없지 않으니, 가르쳐주는 사람이 조목조목 힐문(詰問)하면, 그가 알아들은 것의 대소장단과 겉핥기로 안 것인지 골자로 안 것인지의 여부를 모조리 자기의 입으로 實吐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막혀서 통괄하기 어려운 대목까지 말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 가르침의 機微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연마하여 運化의 가르침에는 항상 證驗하는 바가 있고 師友들의 교도(敎導)가 곁에서 경각(警覺)해 주면 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오늘 안 것이 내일에 가서 또한 모르는 단서가 생기게 되니, 앎이란 다할 날이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經典中心(경전중심)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正易의 皇極論'에서, "인간은 지구에서 살고, 지구는 태양계에 매였으니, 만물은 그 中心을 離脫하여 존재할 수 없는지라, 인간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고, 지구의 중심은 태양의 중심과, 태양의 중심은 은하계의 중심, 즉 北極星의 中心과 一致한다는 이론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에 直立하면 자연히 지구와 태양과 天樞(北辰)를 一貫하는 一大 垂直線上에 서게 된다. 이 수직선을 우주의 經線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은 오직 직립하였으므로 이 경선을 타고 내려오는 우주의 소식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보겠다. 經線이란 上下를 貫通하는 宇宙의 消息線이기 때문이다. 모든 聖人의 글을 經書·經典·經文이라 함은 이 까닭이다. 이 소식 선은 또한 生命線이기도 하다. 地上에 사는 人間의 生命은 본래 이 生命線을 타고 宇宙의 中心으로부터 내려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작역의손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一乎一夫論'에서, "世上에서 흔히 8卦는 伏羲氏가 긋고, 周易은 文王 周公이 짓고, 10翼은 孔子가 하고, 正易은 一夫가 지었다고 믿지만, 事實은 그 분들은 다만 그때그때 作易의 손을 빌렸을 뿐이요 그 內容의 由來는 멀리 天地無窮化无翁에 淵源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良師(양사)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水火 一體論과 탈레스의 思想'에서, "여기에서 나도 말하리라. 땅 위에 있는 철학의 눈(眼)을 東으로 모으라. 그 다음에는 씹고, 또다시 씹으라. 그래도 안 되면 良師를 求하라. 時間과 良師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라고 양사를 구하라고 합니다.

 

 

- 공부(工夫) -

施敎(시교)

일부는 '정역 15일언 九九吟'에서,"我摩道正理玄玄眞經 只在此宮中 誠意正心 終始无怠 丁寧我化化翁 必親施敎 是非是好吾好"(아마도 정리현현진경이 오직 이 궁속에 있을 것이니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 바르게 하여 끝이나 처음이나 게으름 없이 하면 정녕코 우리 화화옹께서 반드시 친히 가르쳐 주실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정성을 다 하면 친히 가르쳐 줄 것이다.

誦彰(송창)

뇌공은 '황제내경 소문 著至敎論'에서,"誦而頗能解 解而未能別 別而未能明 明而未能彰"(암송해서 자못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로는 분별할 수 없고, 분별로는 밝힐 수 없고, 밝힘으로는 나타낼 수 없습니다)라고 득도의 시작과 끝을 얘기한다.

問之少(문지소)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제76편 示從容論'에서,"公何年之長而問之少 余眞問以自謬也"(그대 나이에 비해 질문의 수준이 적으니, 나의 참된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는 듯 하군요)라고 사고력의 적음을 질책한다.

至誠(지성)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하’에서,"先天學主乎誠 至誠可以通神明 不誠則不可以得道"(先天의 학문은 誠을 위주로 한다. 지극한 정성이면 가이 神明에 통하고 정성이 아니면 道를 깨칠 수 없다)라고 설명한다.

一時(일시)

율곡은 '성학집요'에서,"窮格踐履 雖是兩項工夫 要須一時進 故已上主論窮格 而亦兼踐履之意"(궁리 격물하고 실천 이행하는 것이 비록 두 가지의 공부이나 요컨대 반드시 一時에 같이 나아가야 하므로 이미 앞에서 궁리 격물을 주로 논하고 또한 실천 이행하는 뜻을 겸하였다)라고 궁리와 실천을 함께해야 한다.

三聽三見(삼청삼견)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上學以氣 中學以心聽 下學以耳聽 耳聽者學在皮膚 心聽者學在胸臆 氣聽者學在天下 見亦如是 氣見者學在咸觀萬象 心見者學在心理究索 目見者學在當前現色 學之等數雖如是 其實闕一不可 自初至終 常所兼濟也 至於半途廢者 未有成者 自有上中下所及之限"(상학은 氣로써 듣고, 중학은 心으로써 듣고, 하학은 귀로써 듣는다. 귀로 듣는 자는 피부에서 배우고, 마음으로 듣는 자는 흉중에서 배우고, 기로 듣는 자는 천하에서 배운다. 보는 것도 이와 같아서, 기로 보는 자는 萬象을 관찰하도록 열려서 배우고, 마음으로 보는 자는 心理를 탐구하여 배우고, 눈으로 보는 자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당해서 배운다. 배움의 等數가 비록 이렇기는 하나, 실은 이 세 가지에서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始終 이 셋을 겸해야 완전하다. 중간에서 포기하는 자는 성취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자연 상·중·하의 미치는 바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라고 설명한다.

初學(초학)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究解文義 只要書上字義句讀之通 却自生意見 乃初學事也 若平日神氣存養 在事物運化之明白 臨文究解 依此考驗作之者 所得淺深優劣 可得而見 是乃擧事物運化而取捨之 非將無據我心而論評也"(글의 뜻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다만 책에 있는 字義와 句讀만 통하면서 즉각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이 바로 初學의 일이다. 만약 평소에 신기를 존양하고 사물의 운화를 명백히 하려 한다면, 글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임하여서 이것에 의하여 작자의 고험(考驗)으로 深淺 優劣을 얻게 된다. 이것은 바로 사물의 운화를 들어 取捨한 것이지, 근거 없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논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山中(산중)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꿈(夢)을 타고 20年'에서, "嗚呼라, 松下問童子하니 言師採藥去라 내 스승은 진실로 藥 캐러갔는가? 只在 此山中이련마는 雲深不知處라. 이 산중에 있기는 있는데 구름이 깊어서 알 수 없는가? 이것이 내가 20年의 꿈속에서 부르고 불렀던 古人의 노래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에서 神秘의 고리를 잡을 수가 있었고 道通의 淵源을 찾을 수가 있었다" 라고 설명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