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2009.09.15 20:03:17

 

⊙ 제목 : 존경하는 안초선생님..
등록자 : 古木, dofodoo@hanmail.net  조회 : 178   등록일 : 2001-03-06 오전 11:17:22


⊙ 저는 산골짜기에서 철학원을 하시는 당숙 어른을 통해 일찍부터 易을 접하고 깊게 연구한바는 없으나 한때는 이계통 밥을 먹은적이 잇는 村老 올시다.


⊙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당시는 그어른 에게 주로 당사주 신살론이지만 증말 귀중하게 얻어배우며 그게 천하의 다인줄 알았었는디.. 세월이 흐르며 그시절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구료...


⊙ 몇 달전에 애퓨를 알고 젊은 대표 와 서신을 몇번 교환한적이 잇는데 그때 이수라는 여기 대표가 선생님을 극구칭찬하며 지나칠정도로 소중히 말하기에 당시는 안직 젊으니 사람을 많이 안만나봐 그런가 했었지요.. 그런데 요즈음 선생님의 글을 보며 왜그리 칭찬하며 여기애퓨에서 중히여기는지 알게 되았습니다. 그간 혼자 깨닫고 좌절하기를 여러번이나 하며 혼란스러웠던 내용들이 , 막연하든 내용들이 선생님 글을 보며 그실체가 좀 잡힙니다.


⊙ 지가 가방끈이 길지는 못해 다는 못알아먹어도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易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맨먼저 알아야할 중요한 것이라는것은 미련한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같은신 분이 여기 젊은 신지식의 易인과 같이한다는것은 참말 바람직한것 같습니다. 또한 이들은 능히 선생님의 위대한 업적을 사장 시키지않고 세상에 드러낼 능력이 있고 마음가짐도 있다 보이고말임니다.


⊙ 중화를 드립니다.
선생의 머리글 참 보기좋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였지만 우리 易을 하는사람들이 좀 외골수가 많아요.. 즉 인격부터 갖추어야 하거늘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좁아터진 속이나 아니면 아집으로 뭉쳐진 사람들이..혹은 한치앞도 몬보고 눈앞의작은 이익에 연연한다든가 이런경우를 숱하게 보아 왔기에 이계통에 환멸또한 느껴 온중 여기 젊은사람들과 선생님처럼 인격이 되시고 오직 일심으로 학문 연구만 하신는분들을 보니 존경스럽기 까지합니다.


⊙ 오늘 이리 글을 올린것은 선생께서 이번에 해커닝지 그쓰잘데 읎는놈들땜에 아픔이 적지않아 하시는 것같기에 힘내시라 몇자적는다는것이 좀 너절하게 길어졌습니다. 속이야 말할수읎이 상하시겄지만 고의가아닌들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인명피해 없으니 그나마당행이라 생각해야죠 살다보면 속아픈 일이야 湯火殺 을 논하지않더라도 부지기수지요.. 그냥 허허 웃으십시요..


⊙ 그러지않아도 어쩔줄몰라하는 젊은 친구들 다른분도 아닌 선생님께서 불편함을 표하시니 딱해 보입디다. 선생님의 -중화를 드립니다ㅡ 참 좋은 말입니다. 선생님의 글에 이村老 다시금 감사 드리며 담엔 글에 관한 질문으로 뵐터이니 부디 외면 마시길 바랍니다. 부디 힘드신 길이라 하여도 젊은 易人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에 일심이기를 바라뿐입니다.


辛巳,辛卯,戊辰 에
古木

 

⊙ 이 글은 에스크퓨처닷컴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제목: 판별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6. 14:47:05

말씀 감사합니다.

우선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큰 맥락에서 이해가 갑니다.

세세한 부분은 잠시 미루고 다시 원리적인 부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핵심은 감응/중화 이 두가지가 잇는줄 압니다.

그런데 중화의 원리에 잇어서

그 핵심에 대해 망설여짐이 잇어 다시 여쭙겟습니다.

결국 4주로서의 중화는

희약신이 많고 강하며 기병신이 적고 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요?

3방회로 모두 희약신 局을 이루는 것은

중화의 세력이 더욱 힘을 합하고 강해서 좋은 것인줄 압니다.

중화를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가늠 하는데 잇어서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희약기병한이 잇을 것이고

각각 그 모습 또한 천태만상일테지만

결국 중화를 따짐에 잇어서

중화가 되엇다 안 되엇다

중화가 높다 낮다를 구분하는 것이

희약신의 세력에 대한 1D/2D/3D 각각의 차원적 관점인지요?




제목: re: 판별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7. 08:11:53

중화와 균형은 다릅니다.

용어를 확실히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고전과 앞뒤가 맞게 됩니다.

중화는 에너지이고, 균형은 그 기준입니다.

중화는 대우주에 逆하던지(정격), 從하면서(종격)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소우주의 일간을 기준으로 대우주의 용신과 상대적 권형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 판단하는 방법을 3D차원으로 나누어 판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희약신, 기병신으로 구분하는 겁니다.




제목: 네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7. 08:50:59

네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희약신이 많을수록

중화가 잘되어 잇다고 판단할 수 잇는 것인지요?

특히 1, 2차원 보다 3차원적인 중화로 희약신이 많고 강할때

그 중화가 잘되어 잇고 높다고 판단할 수 잇는 것인지요?

중화와 관련되서 몇가지 더 여쭙겟습니다.

격의 고저 라는 것과 중화는 어떤 관계가 잇는지요?

또 청탁의 개념과 중화는 어떤 관계가 잇는지요?

격의 고저 청탁 모두 중화에 포함되는 개념인지요?




제목: re: 네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8. 09:01:23

방법보다는 원리에서 전혀 감을 못 잡는 것 같습니다.

원리가 없으니 전혀 응용이 안 됩니다. 원리라는 것은 일단 중화, 권형, 격, 청탁 이런 개념들이겠지요. 원리를 알면 방법은 자연히 나오고 또 진가도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희약신이 많으면 당연히 중화가 잘 되는 것입니다.

3가지 함께 있을수록 강합니다. 단 1D없이 3D만 있는 경우 작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1D는 기준이고, 2D는 제어이고, 3D는 기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 위 용어는 아래 귀천을 근거로 안초가 설정한 용어입니다.

貴賤(귀천)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6미지대론'에서,"帝曰 其貴賤何如 岐伯曰 天符爲執法 歲位爲行令 太一天符爲貴人 帝曰 邪之中也 奈何 岐伯曰 中執法者 其病速而危 中行令者 其病徐而持 中貴人者 其病暴而死"(황제가 말한다. 그 귀천은 어떠한가. 기백이 말한다. 천부는 집법이고, 세립은 행령이고, 태일천부는 귀인입니다. 황제가 말한다. 中에서 邪는 어떠한가. 기백이 말한다. 중에서 집법은 그 병이 빠르고 위태합니다. 중에서 행령은 그 병이 늦고 지속됩니다. 중에서 귀인은 그 병이 폭발적이고 죽습니다)라고 귀천을 3가지로 판단합니다.

격은 6신 관계일 뿐 고저라는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하기야 어디서 격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청탁은 중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는 가 없는 가로 판단합니다. 청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제목: 격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8. 20:23:36

>희약신이 많으면 당연히 중화가 잘 되는 것입니다. 3가지 함께 있을수록 강합니다. 단 1D없이 3D만 있는 경우 작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1D는 기준이고, 2D는 제어이고, 3D는 기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아직 중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결국 귀천은 중화의 상태로서

중화가 잘 되어 잇으면 貴고 그렇지 못하면 賤인 줄로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감응의 문제와 노력 등의 논점이 잇지만

우선은 중화에 대해서만 논하도록 하겟습니다.

그럼 결국 중화가 잘 되어 잇는가는 무엇으로서 판단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가 좀 막연합니다.

그래서 위 논점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중화가 잘 되어 잇는지는

희약신이 얼마나 많고 또 강한지를 1D/2D/3D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여 총체적으로 판별하는 것인지요?

중화가 잘되어 잇다는 것은

결국 기병신이 얼마나 적고 약하며

희약신이 얼마나 많고 강한지를 따지는 것인지요?

그럼 결론적으로

희약신이 많고 강하면 귀한 것이고

기병신이 많고 강하면 천한 것이라 할 수 잇는지요?

>격은 6신 관계일 뿐 고저라는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하기야 어디서 격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겠는가.청탁은 중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는 가 없는 가로 판단합니다. 청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말씀 중에 격은 고저의 개념과 상관이 없다고 하셧는데

이부분에 대해서 제가 일전에 듣기로는

비격의 경우 剋을 통해 정격이 되면

그렇지 않은 종격보다 더 상격이라고 말씀하신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화 즉 희약신의 상태에 대한 판단 외에

격 자체가 택하는 중화의 방식(從/正)에 대한

고저판단이 따로 잇는줄 알앗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말씀 여쭙습니다.




제목: 중화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9. 12:15:58

참으로 답답합니다.

제일 처음 시작할 때 正名을 얘기하면서 시작했고, 또 중화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원전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간 중간에도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래서 학문이 와전되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상상에 의해 만든다는 겁니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자기 소설입니다. 자기 소설을 쓰려면 뭐 하러 나한테 질문을 하고 배우려 합니까. 혼자 자기 소설을 쓰면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중화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복합할 수 없습니다. 단지 자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피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어렵게만 보이는 겁니다.

중화가 무엇인가 개념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찾지 않고 그 판단하는 방법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런 방법은 개념과는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중화가 뭡니까?

스스로 상상하는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동양학에서 정통으로 설정된 개념을 묻고 있는 겁니다. 당연지 원전에 반하면 안 되겠지요. 중화, 감응, 용신, 만세력 이런 개념부터 잘못되었다면, 다음은 얘기할 필요조차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설정부터 엉망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학문이 엉망이 된 겁니다.

2007.12.29. 안초

 

 

제목: 권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9. 18:31:56

말씀 감사합니다.

중화의 진의를 파악하도록 더 노력하겟습니다.

>中和(중화) 중용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중화에 대해서 제가 안초님께 배운 바로는

우선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라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위 중용에서의 개념이 중화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제가 짐작하는 중화의 개념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기울기가 0인 저울처럼 平한 상태에서의

에너지/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도로만 짐작하고 잇습니다.

또한 위 중화는 대우주(本)의 용신과

소우주(主)의 일간이 기준이 되어 그 권형으로서 판별하며

이는 4주의 이치적 貴賤 판별의 관건이 되는 핵심개념이 되는줄 압니다.

결국 本主의 권형으로 기울기0의 平이 곧 중화이므로

어디까지나 本主의 상대적 강약, 경중을 비교함이 마땅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난해하다 생각되는 점이

만약 양일간이 통근하여 정격이라면 무조건 本오행을 기피하는데

만약 양일간이 통근하여 本과의 권형으로서 오히려 더 무겁고 강하다면

당연히 本오행의 힘을 실어줌이 중화의 방향이며 이에 합당한 오행이

희약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치 않게 본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아마 이것은 중화의 방식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해서인줄 압니다.

결국 위 중화의 방식은 本에 대한 逆從으로서 구분되며

이는 正從이라는 서로 다른 잣대로 양분되는 줄 압니다.

正格이라면 逆으로서 희약을 삼고 從格이라면 從으로서 희약을 삼는데

희약신이 물론 중화를 돕긴 하나

중화의 개념 그 자체가 아닌 이상

희약 = 중화? 라는 혼동은 확실히 없애도록 하겟습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중화는 本主의 세력/강약/경중이

얼마만큼 平에 이르럿느냐는 점에 그 초점이 맞춰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위 平에 대한 초점은 통근/사령간/십이운성의 원리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수치화 되어

本對主 로서 비교 측정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아무리 희약신이 많더라도

本主가 平으로 중화를 이루지 않으면

위 근본적인 귀천의 핵심에 어긋나지 않나 싶습니다.

희약신이지만 本主의 中和에 도움이 안되는 운이 온다면

특히나 개념에 더 혼돈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결국 中和는 體로서 이미 결정된 고정적 개념이며

운의 희기는 그 用으로 파악되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중화는 이미 體인 8字 원국 자체에서 결정되고

즉 근본적인 貴踐은 體인 4주 원국의 중화로서 결정되며

이것의 用으로서

이미 결정된 귀천에 대한 크고 작은 길흉의 현상적 흐름이

運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깊은 오의를 깨닫는데 부족하여 소설이 되엇다면 죄송합니다.

참된 이치의 한말씀 여쭙겟습니다.




제목: re: 권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0. 05:46:47

"중화에 대해서 제가 안초님께 배운 바로는

우선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라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위 중용에서의 개념이 중화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제가 짐작하는 중화의 개념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기울기가 0인 저울처럼 平한 상태에서의

에너지/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도로만 짐작하고 잇습니다"

이 정도가 중화개념입니다. 또한부터 시작하는 다음 글은 중화개념이 아니라 그 방법입니다. 굳이 찾자면 주본, 역종, 권형, 귀천, 체용 등의 개념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이것을 다 중화라고 한다면 한의학, 성리학 등 다른 곳에서 부르는 중화와 달라질 뿐 아니라 고전과도 달라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동양학의 결론은 중화를 찾는 것이고, 감응을 쫒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중화자체는 아닌데, 아무것이나 얼버무려 중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주의 방향을 못 찾아가게 되는 겁니다.




제목: 그렇다면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0. 08:56:37

그렇다면 4주에서 중화가 잘 되엇는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는 것인지요?

일전에 제가 이해한 방식은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는지요?




제목: 正名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0. 11:54:00

균형을 판단하는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균형과 권형 그리고 중화는 다른 말입니다. 균형은 목표이며, 권형은 방법이, 중화는 결과입니다. 즉 균형이 안 맞아도 중화는 존재하며, 또한 중화를 보니까 아니라 권형(저울질)을 해보니 그 결과 중화가 어떻다 입니다.

이런 세세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미흡하기에 원리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며, 고전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주석을 달아 놓으니 자기 마음대로 소설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유명해 지면, 후학은 그것을 읽어서 또 다시 가르치니 고전 본래의 뜻과는 점점 무관해지는 겁니다.

오늘날에는 위 무관한 학문에 임상까지 곁들여 만들어진 자기 주장을 무슨 문파니 하면서 세를 불리는 겁니다. 물론 중국사람 행태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에서도 모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 진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양사와 양서의 만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진가아니라 유명 즉 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유명이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명은 절대 가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짜는 산속에 있고 가짜가 판치게 마련입니다. 제가 만나 본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첫 관문이 정명입니다.

아래 글들은 대체적으로 그 행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알고 쓴 것인지 흉내만 낸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화를 모르고 썼다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제목: 균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0. 15:40:55

말씀 감사합니다.

>균형을 판단하는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균형과 권형 그리고 중화는 다른 말입니다. 균형은 목표이며, 권형은 방법이, 중화는 결과입니다. 즉 균형이 안 맞아도 중화는 존재하며, 또한 중화를 보니까 아니라 권형(저울질)을 해보니 그 결과 중화가 어떻다 입니다.

말씀하신 핵심은 主本의 권형이라는 방법으로서

중화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뜻인 줄 압니다.

저 역시 위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위 균형의 개념은 우선 낯설고 좀 어렵습니다.

특히 중화랑 균형은 같은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짐작하기로는 主本의 균형 즉 平(완전)이 목표이며

위 平의 상태 즉 균형도를 권형이라는 저울질을 통해

판별한 결과가 중화라는 말씀이 아니신가 합니다.

즉 균형은 平으로서 이치적 원리적 관점이며

중화는 위 이치적 관점이 실제로 얻어낸

현상적 결과치/에너지/힘/생명력을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목표가 되는 균형은 즉 平/中의 개념이고

中和는 그 中/平/균형의 결과로서

생명력/힘/에너지 라는 말씀인줄 압니다.

제가 느끼기에 中/中和의 차이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소설을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오늘날에는 위 무관한 학문에 임상까지 곁들여 만들어진 자기 주장을 무슨 문파니 하면서 세를 불리는 겁니다. 물론 중국사람 행태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에서도 모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 진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양사와 양서의 만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진가아니라 유명 즉 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유명이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명은 절대 가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짜는 산속에 있고 가짜가 판치게 마련입니다. 제가 만나 본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첫 관문이 정명입니다. 아래 글들은 대체적으로 그 행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알고 쓴 것인지 흉내만 낸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화를 모르고 썼다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말씀하신 정명의 기본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등한 입장에서 자평학적 논의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안초님께 배우는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무엇을 알고 썻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안다고 착각되는 부분 속에서

겨우 말씀을 여쭐수는 잇겟지만

그렇다고 위 진리의 오의를 안다고 감히 생각되진 않습니다.

主本의 中/平/균형을 찾고 위 목표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정확히 권형하여 그 中和를 관찰함에 잇어서

本이 되는 대우주의 소식이 용신에 잇지 아니하고(가용신)

월령으로서만 存한다면

위 균형이라는 목표점을 우선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여쭙습니다.

월령이 本이 되어 主와 함께 中이라는 목표점이 생길 것 같고

위 목표점의 설정에 잇어서 象數적인 접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용신과 主의 中 역시 象數적으로

먼저 목표점을 잡는 것이 마땅한듯 생각이 되며

이 목표점에 일치하진 않아도 근접한 해당오행을

목표점으로 잡고 관찰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떤지 여쭙습니다.

실질적으로 중화라는 결과를 도출/관찰함에 잇어서

위 中의 목표가 어떤 에너지 상태를 갖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위 부족한 질문/생각에 한말씀 가르침을 청합니다.




제목: 치수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1. 08:49:20

상수적인 접근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나 숫자를 말한다고 보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갑자, 괘효, 1水,2火,3木.. 등이 바로 상수입니다. 상과 수가 함께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소숫점으로 나가는 것은 상수가 아닙니다. 상수란 자연수입니다.

균형은 상대적 비교입니다. 절대적 비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서로의 강약만 알면 되는 것이지 온도계처럼 절대적 치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절대적 치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음양의 상대적 속성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혼돈을 한다고 보입니다. 물론 쉬운 것이 아닙니다. 원리는 쉽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럽니다. 마치 공기가 인간에게 정말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이런 개념이 잡히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목: ...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1. 14:40:48

>균형은 상대적 비교입니다. 절대적 비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서로의 강약만 알면 되는 것이지 온도계처럼 절대적 치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네. 균형/중화... 참 어렵네요.

균형이 절대적 비교가 아닌 상대적 비교라는 말씀은 잘 알겟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생각되는 바는 이렇습니다.

중화의 기본 개념 즉 중용적 의미와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생명력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이해하되

그것에 대한 실체적/구체적 파악이 막연한 실정입니다.

위에 대하여 主本 양측에 대한 권형을 통하여 파악된 결과가 중화이며

결국 主本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야 위 결과가 나올수 잇음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主本 양측이 서로 강약/경중에 잇어서 서로 대등하여

그 힘이 平을 이루어 결과적으로 그 결과가 가장 平에 가까울때

그러한 중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간단히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主本을 저울의 양끝에 매달아 놓고서

그 기울어짐이 전혀 없이 서로 대등한 상태를 이룰때가

중화가 높은 것/잘된 것이고 이 높고 낮은/잘되고 덜되고의 차이가

貴賤의 개념에 판단근거/전제적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主本의 통근/십이운성 등의 원리로서

主本의 상대적 강약을 따지는 것이 중화를 판단하는 핵심인지요?

그렇다면 희약기병한의 상태가

이미 主本의 통근/십이운성 등의 원리에 참여하기에

희약기병한이 主本의 권형과 무관하지 않게될듯 싶습니다.

결국 主가 本보다 약하다/강하다 정도의 결과가 나올텐데

이런 정도의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잇는 것인지 잘 모르겟습니다.

결국 중화는 그 방식에 따라

얼마나 더 많이 逆하고 잇느냐(다다익선)

얼마나 더 철저히 從하고 잇느냐(다다익선)를 보는게 정확하지 않는지요?

逆방식으로 3회합하는게 3방회 중화라 하셧으니(정격경우)

多逆/大逆/强逆 으로 多强익선으로 逆하면 그것이 中和 아닌지요?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제목: 안테나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8. 14:11:14

>4주는 이치입니다. 이것이 반듯이 현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감응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쌍생아, 동일4주가 동일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지닷컴에서는 문진을 통해 위 부분을 확인하는 겁니다. 따라서 감응을 잘하는 사람이 4주에 부합(우주부합)하여 귀인이 되며, 감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살아 천인이 됩니다.

진용신이든 가용신이든 감응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4주 이치대로 살아갑니다. 진용신이든 가용신이든 감응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운이 와도 발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가용신은 감응이 약하다는 전제하에 한신정도로 판단하면 됩니다. 비격은 하늘과 땅에 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剋(재관)이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剋이 오지 못하는 4주는 그만큼 떨어집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자평학의 아주 초기본적인 정도의 감이 오는 듯 합니다.

말씀하신 것을 정리하자면

결국 감응의 여부로서 命의 관찰을 신뢰 할 수 잇고

위 감응이 잘 안 이루어지면 4주의 이치적 길희흉기한은 잇으나

그것이 실제 현상에서 얼마나 분명할지는

장담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 감응의 정도는 용신의 진가구분이 가장 기본적이지만

꼭 그것으로 확정할 수 잇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실제적인 문진 확인으로 음식이나 형상 질병등을 통해

그 신뢰성을 타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동일4주이지만 命의 현상적 차이가 잇는 것은

바로 위 감응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1. 감응이 잘되는 즉 우주의 令에 민감한 4주를 타고 낫다 할지라도

기흉신의 운에는 오히려 그것이(현상적인 체감의 기준에서만 볼 때)

주체 입장에서 더욱 해로운 것은 아닌지요?

비록 좋은 운일 때는 감응이 잘되어 크게 발복하니 좋다 하지만

반대로 안 좋은 운일 때 역시 감응이 잘되니 가히 대흉이라고 할 것 같은데요.

안초님께서 귀인의 기준으로 감응의 정도라는 조건을 말씀하셧습니다.

이는 제가 안초님의 저서나 지지닷컴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말씀이십니다.

일전에 제가 용신의 진가여부가 귀천의 포인트가 된다고 보고

질문을 드렷엇는데 이에 용신의 진가여부는 귀천과 상관이 없고

本主의 중화를 귀천과 밀접히 연관하여 말씀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용신의 진가는 감응의 정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잇는 줄로 압니다.

일견 생각하기로 本主의 중화 = 감응의 정도 이렇게 연결이 되는데요.

2. 本主의 중화가 곧 감응의 민감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귀천의 핵심이라 보시는지요?

결국 결론적으로 귀한 4주란

本主가 중화를 이루고 특히 3방회로서 중화를 이루고

용신은 건왕하여 감응이 잘되는데

길희신의 운까지 만나 발복하는 그런 사주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가용신의 여부가 위 감응의 정도와 얼마나 관련이 잇는지는 모르겟으나

말씀하시는 것으로는 진용신이라도 감응이 잘 안되고

가용신이라도 감응이 잘되는 그런 애매하고 불규칙한 면이 잇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진가용신으로도 감응정도가 정확히 체크가 안되고

문진으로 확인하는 것만이 감응의 정도를 그나마

신뢰할수 잇는 유일한 방법인데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본주의 중화/3D합일을 가장 귀하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은

용신의 감응의 정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유가 잇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本主가 중화를 이루엇더라도 감응이 없다면

결국 貴를 논할수가 없을 것인데

감응여부를 논하지 않고 바로 貴를 논하시는 것을 보면

本主의 중화란 감응과는 별개의 차원으로

형기상감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1D/2D/3D를 논함에 잇어서

만성/급성/폭발과 같은 분류들은

그 민감도 즉 감응 정도를 나타낸다고 보지 않을수가 없는데요.

이는 용신이라고 하는 안테나의 감응도 즉 질과는 상관없이

주로 지장간과 지지의 합충과 같은 지지 중심의 관찰인 줄로 압니다.

3. 本主의 중화와 감응도는 서로 어떤 관계가 잇는 개념인지요?




제목: re: 안테나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19. 09:23:47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이것이 동양학의 전제이며, 모든 종교의 전제이기도 합니다.

감응, 노력, 주본, 중화의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감응은 대우주와의 필입니다. 이 설정을 용신으로 초기설정하여 판단합니다. 이것은 4주뿐 아니라 동양학의 모든 응용학이 용신으로 초기설정하고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위 감응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에 결과가 차이 나기 마련입니다.

노력은 여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 노력이 대우주의 방향에 반한다면 헛수고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 대우주의 命을 알기위해 이 공부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본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구준을 설정하는 개념입니다. 소우주의 기준을 主라고 하고, 대우주의 기준을 本이라고 설정합니다. 위 두 가지의 균형으로 길흉을 판단하게 됩니다. 즉 균형이 잘되어 있으면 吉이고, 안 되어 있으면 凶입니다.

중화는 에너지입니다. 균형을 판단하는 방법이 아니라 균형의 결과를 말합니다. 따라서 균형이 잘 되어 있으면, 그만큼 에너지가 강하고 반대면 약합니다.

2007.12.19. 안초




제목: 감응/중화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9. 17:54:06

말씀 감사합니다.

전반적으로 말씀하시는 큰 틀과 맥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한대로 정리해보겟습니다.

우선 감응感應과 중화中和가 가장 핵심이 되는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응은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긴밀한 작용으로서

이를 소우주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느끼고 응하니 곧 감응이 됩니다.

소우주(主) - 감응 - 대우주(本)

결국 위 대우주의 令에 얼마나 감응하고

또 그에 부합되는 노력을 햇느냐에 따라

소우주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말씀으로 압니다.

用神은 대우주의 令 , 즉 月令(體)이

구체적으로 작용을 하는 神(用)으로 화현된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어디까지나 月令을 體로서 用하는 神을 用神이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월령은 대우주(本)의 體요, 용신은 대우주(本)의 用이라고 생각합니다.

中和는 위 소우주(主)와 대우주(本)의 강약/태과불급을 저울질/권형하여

그 기울기가 Zero가 될 때

결과적으로 소우주가 강한 에너지/생명력을 생성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이것이 귀천의 핵심 원리가 되는줄로 압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이 중화를 돕고 안 돕고의 여부로 길희흉기한이 결정되며

길희는 중화를 이루고 돕는 것으로 길은 직접, 희는 간접

흉기는 중화를 망치고 방해하는 것으로 흉은 직접, 기는 간접

한신은 중화를 돕기도 망치기도 혹은 돕지도 망치지도 않는 것으로서

중화는 한신에 잇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인 主本權衡의 중심 즉 기울기 '0'에 잇는줄 압니다.

종합하자면 감응/노력/중화

그 중에서도 감응/중화가 결국 자평학의 핵심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의문이 생겨 여쭙도록 하겟습니다.

1. 감응의 문제에 잇어서

가용신이라도 감응이 강하고 진용신이라도 감응이 약한 것처럼

진가용신의 차이는 감응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하신줄 아는데

그렇게 판단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것은 임상의 결과인지요?

2. 진가용신의 여부가 감응과 관련이 없고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며 차이가 잇어

문진확인을 해야 할 정도로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면

애초에 용신의 진가여부는

감응의 척도가 전혀 될 수 없다고 말해야 옳은 것 아닌지요?

3. 主本의 권형으로 그 중화를 살피고 길희흉기한을 관찰함에 잇어서

권형의 대상이 되는 主本 중 本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불분명하게 생각됩니다.

本의 體가 월령이라면 本의 用은 용신인줄로 압니다.

월령용신으로 진용신이라면 體用이 일치하여 문제가 없는데

가용신의 경우 體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主와 함께 권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월령인지요 가용신인지요?

4. 主本의 권형에 잇어서

그 방식이 從이라면 권형의 대상은 主와 무엇이 되는지요?

5. 삼회합으로 이미 局을 이룬 상태에서

대운에 의해 충이 나면 그 合이 풀어져

각각의 본래 오행으로 돌아 간다고 보시는지요?

 

 

제목: re: 감응/중화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0. 08:24:29

미안하지만 꼭 알고 싶은 핵심 하나에 집중해 주십시오.

그래야 심도 있게 들어갈 수 있고, 도 중첩해서 다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학문은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이치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위 이치를 통해 변하는 현상을 미루어 알게 합니다. 이것을 통변이라고 합니다.

通變(통변)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2장'에서,"是故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化而裁之謂之變 推而行之謂之通 擧而措之天下之民 謂之事業"(그러므로 형이상을 道라하고, 형이하를 器라한다. 化해서 마름질함을 變이라 하고, 推해서 행함을 通이라하고 하니, 들어서 천하의 백성에게 조치하는 것을 事業이라 한다)라고 通變을 설명한다.

그런데 위 통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만약 다 똑같이 감응한다면 우리 인간은 모두 일률적으로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일률적으로 살지 않지 않습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진가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진짜는 진짜에서 감응이 다른 것이고, 가짜는 가짜에서 감응이 다른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섞으려면 처음부터 진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2007.12.20. 안초




제목: 감응/감응도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0. 14:26:47

핵심에 집중하여 가르침을 구합니다.

용신이 대우주의 體, 즉 월령을 用하는 神인 만큼

위 대우주의 명령에 유일하게 감응한 神이 바로 용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우주의 감응은 용신에 잇고

용신이 잇어야만 이를 기준하여 소우주와의 권형으로서

길희흉기한이 결정되는줄 압니다.

월령으로부터 감응되는 위 용신은 대우주로부터의 감응 그 자체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소우주에게 잇어서

그 감응의 강약 즉 정도의 문제가 생겨나는줄 압니다.

그 강약의 감응도/감응정도는 용신의 진가에 잇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며

이 감응도의 차이로 인하여 동일4주라도 차이가 발생하는줄 압니다.

1. 용신이 없어 가신을 用으로 취해야 하는 경우

가신을 무조건 한신으로 잡고 이에 따라 길희흉기한을 결정하는지요?

아니면 가신과 일간의 권형으로 결정하는지요?

2. 용신이 없어 가신을 用으로 취해야 하는 경우

가신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떤 가신을 용신 혹은 한신으로 취해야 하는지요?

3. 종격의 경우 용신과 일간 사이의 권형은 어디가 平인지요?

4. 감응도를 진단하는 문진 외의 방법이 잇는지요?




제목: 희기신 판단방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1. 02:07:26

명조는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정격과 종격입니다. 이것은 일간의 통근여부가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희기신을 판단하고 체질을 판단하는 기준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정격은 일간을 도와주는 것이 平을 이루는 것이고, 종격은 용신을 따라가는 것이 平을 이루는 겁니다.

그런데 위 정격과 종격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명조가 있는데, 바로 일간과 월령이 동일5행인 比格입니다. 위 경우는 위 동일5행을 기준으로 다시 정격과 종격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비격에서 정격은 동일5행을 剋(재관)해주는 것이 官이 희신이고, 財가 약신입니다. 비격에서 剋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從하는 비격에서 종격은 위 剋하는 格보다 한 단계 아래입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희기신을 매우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진이외는 감응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일단 없습니다.

2007.12.21. 안초




제목: re: 희기신 판단방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1. 13:15:26

말씀 감사합니다.

결국 일간의 통근여부로 정격/종격으로 나뉘고

정격은 일간을 도와줌으로서 종격은 용신을 따라감으로서 권형을 판별하여

희기신이 결정된다는 말씀인줄 압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운기자평책 155p에 비교적 자세한 설명이 잇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나

아직 그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워 좀 더 여쭙습니다.

정격의 경우 일간을 도와줌으로 길흉을 판별한다면

정격이라면 무조건 일간을 돕는 인수와 일간오행이 길신이 될텐데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치 않을줄 압니다.

용신과 일간 사이의 상대적 강약에 따른

억부의 희기를 판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 아닌지요?

즉 일간이 통근하엿는데 용신보다 강하다면

일간오행을 돕는 오행은 오히려 안 좋은줄로 압니다.

1. 일간이 통근하면 무조건 일간과 일간을 돕는 인수오행이 길신이 되는지요?

아니면 용신과 일간 사이의 상대적 강약으로 그 억부의 마땅함을 따져 이를 돕는 오행이 길신이 되는지요?

우선 정격의 경우 용신이 일간을 돕는 경우가 잇습니다.

즉 용신이 일간을 돕는 인수오행이 될 때

결국 인수오행과 일간오행의 권형으로 중화를 따져 봐야 할텐데요.

이 경우 역시 말씀하신 방법만으론 길흉이 명확히 판별 되지가 않습니다.

2. 계속 여쭙는 말씀이지만

가용신의 경우 무조건 한신으로 그냥 잡는 것인지

아니면 가용신과 일간 사이에서 결국 권형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아직 말씀이 없으신데 이 부분에 대해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제목: re: re: 희기신 판단방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3. 08:03:15

무조건 위 조건으로 판단합니다. 가용신은 염두해 둘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제목: 길희흉기한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5. 19:27:11

길신 희신은 좋은거 흉신 기신은 안 좋은거.

한신은 좋기도 안좋기도 한거. 좋지도 안 좋지도 않은 보통.

이 표현이 매우 부족한줄 알지만 우선 대충 이렇게 표현 하겟습니다.

안초님의 말씀으로 생각해 볼 적에

용신이 정해짐은 곧 길흉화복의 시작점이 된다고 하셧고

안테나의 감응 이런 말씀을 하셧습니다.

잘은 모르겟지만 초보적으로 생각할 적에

용신이 정해진다는 의미는 곧 길흉화복을 저울질 할 수 잇는 어떤 근거가

정해진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즉 용신 개념은 좋고 나쁘고의 길흉의 의미가 아니라

용신을 통해서 길흉

즉 좋고 나쁘고를 판별할 수 잇다는

다시 말해서 용신은 일간과 함께 길흉 그 자체가 아닌

길흉의 잣대가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잇습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용신을 길흉의 잣대가 아닌

길흉 그 자체의 의미로 착각하고 곡해하는 것에 대해서 통탄하신 줄로 압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은

용신은 월령과의 관계에 따라 眞假로 양분되고

일간과 용신이 같은 특수한 상황일 때

과연 그 길희흉기한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을 생각할 적에

가용신이던 진용신이던 그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핵심은 결국 本主의 중화라는 관점인 줄로 압니다.

안초님의 저서 운기자평 155p에는

다행히 길희흉기한을 판별하는 방법이 나와 잇는데요.

그것은 일간의 통근여부가 기준이 되고 잇습니다.

즉 일간인 主의 통근 혹은 불통의 여부가

길희흉기한을 결정하는 관건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용신이 眞이던 假이던 통근햇던 못햇던

여하간 용신이 무엇이던 어디잇던 상관없이

일간인 主만 가지고 그 主의 통. 불통으로써

길희흉기한이 결정되는 모습입니다.

결국 155p의 내용만 놓고 봣을 때는

용신과 월령은 길희흉기한의 결정에 아무런 작용도 못하고

오직 主의 통.불통의 여부만이 길희흉기한을 결정하는데

어떻게 해서 용신을 통하여 길희흉기한을 판별하고

길흉화복을 나눌수 잇다고 하시는지

책의 내용과 직접 말씀하시는 내용 사이에서 혼란감이 생깁니다.

1. 용신과 월령 本은 길희흉기한의 결정에 아무런 참여를 못하고

오직 主인 일간의 통.불통만이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

부족하지만 제가 이해한 책의 내용인데

어떻게 용신이 길흉화복의 잣대가 된다고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겟습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요?

제가 이해한 부족함으로 생각해 볼 적에는

길희신은 어차피 主인 일간의 입장에서 좋다는 의미로 압니다.

또한 흉기신도 主인 일간의 입장에서 안 좋다는 의미로 압니다.

그럼 길희는 무엇이건데 왜 좋은 것이며

흉기는 무엇이건데 왜 나쁜 것이냐고 생각해 봣을 적에

결국 길희는 중화를 만족시키고 이루려는 것이기에 좋고

결국 흉기는 중화를 망가뜨리고 깨뜨리려는 것이기에 나쁘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한신은 중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망치는 것도 아니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중화가 무엇이냐고 거꾸로 생각해볼 적에

나에게 길희도 흉기도 아닌 한신이 중화가 아닌가 합니다.

길희가 중화를 이루어주니 좋은 것이고

흉기는 중화를 망가뜨리니 나쁜 것이라면

2. 중화는 길희흉기 사이에 잇는 한신이 아닌지요?

3. 本主가 중화를 이루엇다는 것은 3방회의 閑神合

충으로 인한 한신화(충으로 길흉신이 서로 충돌하여 길도 흉도 아니게 됨)

가 되는 이런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지요?




제목: 主本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16. 09:50:17

중화는 권형으로 판단하는데 하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體用精神(체용정신)

경도는 ‘적천수’에서,"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 得其宜 人有精神 不可以一偏求也 要在損之益之 得其中"(道에는 체용이 있어 1端으로 論해서는 안 된다. 扶와 抑을 필요로 해서 그 마땅함을 얻는다. 人에는 정신이 있어 1偏으로 求해서는 안 된다. 損과 益을 필요로 해서 그 中을 얻는다)라고 체용과 정신을 설명한다.

主(일간)를 기본으로 本(용신)과 길흉을 판단합니다.

主本(주본)

서자평은 ‘연해자평’에서,"欲知貴賤 先觀月令乃提綱 次斷吉凶 專用日干爲主本 三元要成格局 四柱喜見財官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귀천을 알려면 먼저 월령 및 제강을 관찰하여, 다음 오로지 用神과 일간이 主와 本이 되어 길흉을 판단한다. 3원은 격국을 이룸을 요하며, 사주는 재관을 보는 것을 기뻐한다.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며, 일주는 건왕한 것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먼저 월령을 오로지 용(用)하여 본(本)이 되고, 일주는 주(主)가 된다.

일간이 통한다는 것은 인신이 성립하고, 통하지 못하면 인신이 성립하지 못하여 從합니다. 즉 졍격과 종격이 구분되어 중화하는 방법이 구분됩니다.

抑擧逆從(억거역종)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지진요대론'에서,"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折之 不足補之 佐以所利 和以所宜 必安其主客 適其寒溫 同者逆之 異者從之"(높은 것은 抑하고, 낮은 것은 擧하고, 有餘는 折하고, 부족은 補합니다. 佐함으로 이롭고, 和하므로 마땅하니, 반드시 그 주객을 편안하게 해서 적합하고 같은 것은 逆하고 다른 것은 從하게 합니다)라고 治를 설명한다.

2007.12.16. 안초




제목: 시소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6. 14:44:57

말씀 감사히 잘 들엇습니다.

>중화는 권형으로 판단하는데 하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主(일간)를 기본으로 本(용신)과 길흉을 판단합니다.

일간이 통한다는 것은 인신이 성립하고, 통하지 못하면 인신이 성립하지 못하여 從합니다. 즉 졍격과 종격이 구분되어 중화하는 방법이 구분됩니다.

우선 말씀대로 알고 이해 해보겟습니다.

主의 통. 불통은 중화의 방법. 방식을 결정하고

용신은 일간과 함께 중화의 위치 및 길흉화복을 판별하는

기준점이 된다는 말씀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저의 생각으로 비유컨대

통근하여 從하지 않는 정격의 중화 방식을

시소로 생각해 본다면

한쪽에는 일간이 반대쪽에는 용신이 각각 위치하여

그 경중이나 태과불급 혹은 작용의 차이에 따라

시소의 기울기가 결정이 될 줄 압니다.

일간이 용신보다 무겁다면 시소는 일간 쪽으로 기울고

또 그 정도에 따라 기울은 각도가 잇을 것이며

용신이 일간보다 무겁다면 용신 쪽으로 시소가 기울고

또 그 정도에 따라 그 기울은 각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 시소가 바다의 수평선처럼 평평하여

그 기울기가 0도가 될 때 즉 그 기울음이 전혀 없을 때

그것을 가리켜 중화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비유적인 것이긴 하지만

일전에 중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 것으로서 바다를 말씀하시고

연해자평의 어원적 의미를 상기시켜주신 것과도 무관 하지만은 않치 싶습니다.

용신과 일간의 저울질로서 그 기울기를 0으로 맞추는 것이

平 그리고 중화라면

무거운 것을 덜어내고 가벼운 것을 도와

낮은 것을 올리고 높은 것은 내리어

平을 맞추는 귀빈客이 바로 길희신의 정체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반대로 그 平을 무너 뜨리는 불청客이 흉기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초님께서 운기자평 154~155p에

세가지 차원의 중화 판별 단계를 말씀해 주셧는 줄로 압니다.

1D/2D/3D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3D를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원자보다는 분자가 중요한 까닭이고

석탄과 다이아몬드의 차이는

탄소에 잇는 것이 아니라 그 배열방식에 잇기 때문인 줄로 압니다.

우선 1D에서 다소 헤깔리는 부분이 일전에 여쭷봣던 부분인데

월령과 용신이 다른 경우입니다.

1. 가용신일 경우도 일간과 가용신 사이에서 권형하는지요?

1D판별법에서 월령오행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으로 봐서는

가용신이면 권형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전제가 잇는 것 같습니다.

시소에서 일간 반대편 자리에 누가 올 수 잇는 것인지 아직 헤깔립니다.

2. 1D 판별법에 잇어서

예를들어 일간이 통근하고 월령오행이 인수인 경우는

그 권형이 일간오행은 吉이고 월령오행은 忌인데 藥 또한 일간을 생해주는

인수오행 즉 월령오행이 됩니다. 즉 忌와 藥이 동시에 겹치는데요.

이런 경우는 경중. 태과불급으로 더 세세하게 구분할 것 같습니다.

통근하면서 월령이 일간을 생해주는 인수오행일 때는

일간이 오히려 월령에 비해 너무 강하니(월령도 강하긴 하지만)

食傷과 官殺오행이 중화의 관점상 길희가 된다고 보여지는데 맞는지요?

3D태일천부위귀인/3방회/폭발

3D판별법인데 이 부분이 사실 제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제 4주에 3會가 없으면 모르겟는데 잇으니까 궁금합니다.

생각해봣는데 계속 같은 결론입니다.

결국 길희흉기를 떠나 잇는 平으로의 3D合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3. 맞고 틀림에 대해서 한말씀의 중화를 부탁드립니다.

틀렷으면 다시 생각해보겟습니다.

 

 

제목: 권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17. 08:15:45

먼저 시소가 아니라 權衡(저울질)입니다. 이것은 천문에서 온 중화를 판단하는 이치로 동양학 전반의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運政(운정)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夫五運之政 猶權衡也 高者抑之 下者擧之 化者應之 變者復之 此長生化成收藏之理 氣之常也 失常 則天地四塞矣"(무릇 5운을 다스림은 저울과 같은 것입니다. 높으면 抑하고 낮으면 擧합니다. 化는 응하고 變은 회복되는데, 이것이 장생화성수장의 理이고 氣의 常입니다. 常을 잃으면 천지사색이 막힙니다)라고 5運의 政은 권형(權衡)으로 저울처럼 억거(抑擧)한다.

權衡(권형)

서대승은 ‘연해 인감론’에서,"洪□肇判 甲子攸生 二十二字之用無窮 百千萬人之命可考 日生爲主 年長爲君 先論根本虛失 次論歲運强弱 森列三才 妙在權衡輕重 包羅八卦 自存規矩方圓 天道尙有盈虧 人事豈無反覆"(홍몽이 시작하여 갈라지니, 갑자가 생하여 22자의 用이 무궁하여 백 천만인의 命이 고찰 가능하다. 日이 生하여 主가되고, 年이 長하여 君이 되니, 먼저 근본의 허실을 논하고, 다음 세운의 강약을 논한다. 森을 3재에 배열하고 妙가 權衡으로 輕重하고, 8괘를 싸고 벌려서 스스로 方圓으로 규약하여 법이 존재하며, 하늘의 道는 차고 일그러짐이 있으니, 人事가 어찌 反覆함이 없겠는가)하며 갑자를 용(用)하여 권형으로 명(命)을 고찰한다.

權衡(권형)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凡看命者 先觀用神之何屬 然後或順或逆 以年月日時遂干遂支 參配而權衡之 則富貴貧賤自有一定之理也"(무릇 간명자는 먼저 用神이 어디 속하는지 살핀 후에 順하는지 逆하는지 살핀다. 연월일시의 간지를 배합하여 權衡하면 부귀빈천의 일정한 이치가 스스로 드러난다)라고 저울질(權衡)하면 이치가 스스로 드러난다.

따라서 길흉은 위 권형(저울질)로 판단하므로 머리카락만한 길흉의 차이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잃어버리고 없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각자 멋대로 하는 겁니다.

分毫(분호)

안동주겸은 ‘옥정옥결’에서,"年干統攝 次看月時 時如權衡 分毫加減"(년간은 통섭한다. 다음 月時를 본다. 예를 들어 時는 權衡하여 가는 털도 나누어 가감한다)라고 권형(權衡)하여 털(毫)만큼도 구분한다.

分毫(분호)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年如衡鉤 □起其物 月如綱紐 提起其物 日如衡身 星兩不差 錘分輕重 分毫加減"(年은 창으로 균형을 잡는 것과 같이 그 物을 세우고, 月은 그물을 얽어매는 것과 같이 그 物을 끌어 일으키고, 日은 몸을 균형 잡는 것 같이 두 개의 星은 차이가 없다. 저울추는 경중으로 나누어 털만큼도 나누어 가감한다)라고 연월일을 설명한다.

1D는 지장간, 2D는 합충, 3D는 방회를 말합니다.

가용신 경우 이것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감응의 여부로 실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통천이 안 되었다고 해도 그냥 단순하게 진용신과 똑같이 판단합니다. 단지 진용신이 아닌 경우보다 신뢰를 두지 않습니다.

2007.12.17. 안초




제목: re: 권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7. 10:39:36

>1D는 지장간, 2D는 합충, 3D는 방회를 말합니다.

가용신 경우 이것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감응의 여부로 실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통천이 안 되었다고 해도 그냥 단순하게 진용신과 똑같이 판단합니다. 단지 진용신이 아닌 경우보다 신뢰를 두지 않습니다.

네. 말씀 잘 들엇습니다.

가용신이던 진용신이던 똑같이 길희흉기한의 결정에 참여하나

가용신의 경우 그리고 진용신이라도 그 감응의 정도에 따라

위 길희흉기한의 구분에 신뢰성이 달라진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즉 확실하게 진용신이 잇고 감응의 정도가 강하다면

길희흉기한이 구분되어 그 운의 희기가 분명하나

가용신이거나 혹은 진용신이라도 감응의 정도가 약하면

위 길희흉기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또 운의 희기도 상대적으로

애매해진다는 약해진다는 말씀 같습니다.

1. 위 말씀하신 신뢰성에 대한 부분

즉 길희흉기한을 구분해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모른다는 뜻인데

가용신의 경우 명의 추론을 거의 할 수 없다는 말씀 아니신지요?

2. 신뢰를 못 한다는 것은 길희흉기한이 분명히 잇으나 가용신의 경우 그 감응의 차이로 자평의 법으로 길희흉기한을 확실히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 자체가 길희흉기한이 모호하여 자평으로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인지요?

3. 比格. 월령오행과 일간오행이 같아

용신을 삼을수 없는 경우는 모두 그 용신이 가용신인지요?

3D에 대해서는 지적이 없으시니 제가 여쭤본 대로 알고 잇겟습니다.




제목: 감응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18. 08:11:20

4주는 이치입니다. 이것이 반듯이 현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감응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쌍생아, 동일4주가 동일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지닷컴에서는 문진을 통해 위 부분을 확인하는 겁니다. 따라서 감응을 잘하는 사람이 4주에 부합(우주부합)하여 귀인이 되며, 감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살아 천인이 됩니다.

진용신이든 가용신이든 감응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4주 이치대로 살아갑니다. 진용신이든 가용신이든 감응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운이 와도 발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가용신은 감응이 약하다는 전제하에 한신정도로 판단하면 됩니다.

비격은 하늘과 땅에 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剋(재관)이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剋이 오지 못하는 4주는 그만큼 떨어집니다.

2007.12.18. 안초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제목: 지지닷컴을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1.25. 20:50:29

지지닷컴을 둘러보는게 이제 일과가 되엇습니다.

이제 거의 다 읽은거 같긴 합니다.

생각할수록 대단하다는 감탄이 생기네요.

감탄 중에 의문이 생겨 이렇게 여쭙게 되엇습니다.

>그렇군요. D는 차원입니다. 식빵을 얘로 들어 설명합니다.

시간은 식빵의 순서입니다.공간은 식빵 모양입니다.

시공은 하나하나의 식빵입니다.(엘린브라이언의 우주구조 참조)

즉 시간(道): 흐름의 1차원 선 공간(易): 껍질의 2차원 표면 시공(神): 잘라 논 3차원 입방체 동서양 공통된 정의로 매우 중요합니다.

1. 시공개념을 시간과 공간의 中으로 이해해도 되는 것인가요?

2. 그럼 神을 시간과 공간의 中으로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요?

3. 神이 입방체로서 부피를 갖는다고 보시는지요?

4. 4차원이란 3차원(시공)과 1차원(시간)의 中 인지요?

5. 神을 회전의 축이라 할때 그 축도 움직인다면 축(神)과 그 축의 움직임(시간) 사이에도 中이 잇습니까?

>12운성은 강약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통근을 판단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98쪽에 보면, "장생, 녹, 왕은 뿌리가 튼튼한 것이고, 묘고, 여기는 뿌리가 약한 것이다." 위 장생, 녹, 왕, 묘, 여기 중에서 천간에 동일한 5행이 올 때 비로소 통근이 됩니다. 통근이 되기 전에는 殺이므로 아무 작용도 없습니다. 통근이 될 때 神이 되어 잠재된 殺이 그때 나타납니다. 그리고 위 통근된 것 중에서 월령과 일간을 중심으로 권형(비교)하면 강약이 드러나므로 희기신을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6. 자평학에서 권형으로서 중화를 비교한다 함은 일간 vs 월령의 중화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7. 子의 청탁과 平의 렌즈작용으로 상화를 잘 모앗다 함은 세속적인 부귀의 기준이 되는지요?

>따라서 실제로는 未土보다는 午土가 土중의 土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것은 위에서 서술하신 금화교역의 중간 과정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土없이 양에서 음으로 전환될 수는 없기 때문에 未土 아니면 午土 중 누군가는 이것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한동석님의 우주변화원리에 잘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세요.

8. 그럼 午火가 10土작용을 하고 미토는 2火로 작용하는지요?

>결론부터 맺으면, 소우주의 독자적인 주기는 있습니다.그렇다고 독자적인 주기라고는 하지만 결코 대우주와 무관한 주기는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기 힘들겠지만 예를 들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임신한 아기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9. 소우주의 독자적인 주기를 4주의 10년 대운이라고 이해해도 되는지요?

>여기에 12지지를 장부 5행으로 배당합니다. 子는 水인 만큼 신장, 午는 火인 만큼 심장, 그리고 丑未는 軸인 만큼 간과 폐가 배당됩니다. 이런 식으로 한번 그려 보시면서 생각하시면 유주방향까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0. 중의 원리에서는 亥가 肝으로 나오고 丑은 다른 걸로 쓰여져 잇던걸로 기억하는데 丑은 어떤 것인지요?

11. 소우주가 干大를 주장할 때 운에서 膽大 하려 하면 이는 혹 충돌하고 병이 생기는 이유가 되는지요?

>황극 최대 분열 상태입니다. 돌멩이에 고무줄을 묶어서 던지면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최대의 분열 상태 즉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극한 곳 이곳이 황극입니다. 그리고 無 즉 中에서 나오는 최초의 극이 태극이고, 無 로 들어가는 최고의 극이 무극입니다.

12. 무극. 태극. 황극을 60갑자 관점에서 본다면

辛未. 壬戌. 甲午. 라고 말할 수 잇는지요?

>2. 精은 1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氣가 부서져서 1D에 모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주역 계사전에서 精으로서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요. 1D인 精을 알면 이것이 자라 2D, 3D가 될 것이니 당근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3. 精이 精氣 精液 등 성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결부되는 개념인지요?

14. 精을 최대한 안 쏟는게 좋은 건지요?

15. 호랑이나 사자 같은 동물들도 소우주인지요?

16. 소우주라면 예를들어 호랑이. 사자. 말. 원숭이.

이런 동물은 각각 오운육기상 어떤 장부의 기가 강한 것인지요?

17. 우주변화원리에 말이나 원숭이가 양기가 가장 많고 운이 강하다 하엿는데 그럼 말이나 원숭이가 동물 중에서 가장 중화가 높다는 말인지요?




제목: re: 지지닷컴을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26. 08:36:26

일단 동양학을 접근함에 있어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도 좋지만, 동양학의 큰 틀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살피면서 따라가면 좀 더 쉽게 따라갈 수 있다고 봅니다.

“ 1. 시공개념을 시간과 공간의 中으로 이해해도 되는 것인가요?

2. 그럼 神을 시간과 공간의 中으로 생각해도 되는 것인지요?

3. 神이 입방체로서 부피를 갖는다고 보시는지요?

4. 4차원이란 3차원(시공)과 1차원(시간)의 中 인지요?

5. 神을 회전의 축이라 할때 그 축도 움직인다면 축(神)과 그 축의 움직임(시간) 사이에도 中이 잇습니까?“

中은 만물을 포용하는 음양의 中입니다. 따라서 中에는 반듯이 음양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1. 시간과 공간은 음양인 만큼 시공을 中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2. 神에는 精氣라는 음양이 있으므로 정기의 발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3. 神은 음양에서 비롯되므로 음양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피도 없습니다. 그러나 神은 3D의 산물이므로 모여서 부피를 갖습니다. 4. 1-3D는 동일 우주이고 4D는 위 우주 밖에 있는 우주입니다. 5. 회적축은 常이라는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 축과 축 사이를 음양의 상대적 관점으로 본다면 당근 中이 있습니다.

“6. 자평학에서 권형으로서 중화를 비교한다 함은 일간 vs 월령의 중화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7. 子의 청탁과 平의 렌즈작용으로 상화를 잘 모앗다 함은 세속적인 부귀의 기준이 되는지요?”

중화란 중에서 발하는 에너지를 말하고, 권형이란 비교하여 저울질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권형으로 중화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위 판단하는 기준이 平입니다. 당연히 저울질은 平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 판단하는 물체가 바로 水에 있는 상화입니다. 이것은 이치의 기준이므로 꼭 세속적인 기준이 된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8. 그럼 午火가 10土작용을 하고 미토는 2火로 작용하는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9. 소우주의 독자적인 주기를 4주의 10년 대운이라고 이해해도 되는지요?”

네, 그렇습니다.

“10. 중의 원리에서는 亥가 肝으로 나오고 丑은 다른 걸로 쓰여져 잇던걸로 기억하는데 丑은 어떤 것인지요?

11. 소우주가 干大를 주장할 때 운에서 膽大 하려 하면 이는 혹 충돌하고 병이 생기는 이유가 되는지요?“

이것은 경락의 배당을 설명한 것입니다. 중의원리 3음3양에 보시면 배당되어 있습니다. 충돌도 정해진 것끼지 하는 것이지 아무것이나 충돌하지 않습니다. 간담은 충돌대상이 아닙니다.

“12. 무극. 태극. 황극을 60갑자 관점에서 본다면 辛未. 壬戌. 甲午. 라고 말할 수 잇는지요?”

이것은 제가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 13. 精이 精氣 精液 등 성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결부되는 개념인지요?

14. 精을 최대한 안 쏟는게 좋은 건지요? “

精으니 氣가 존립하는 상태입니다. 꼭 성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精이 많이 축적되 있을수록 좋겠지요.

“15. 호랑이나 사자 같은 동물들도 소우주인지요?

16. 소우주라면 예를들어 호랑이. 사자. 말. 원숭이.

이런 동물은 각각 오운육기상 어떤 장부의 기가 강한 것인지요?

17. 우주변화원리에 말이나 원숭이가 양기가 가장 많고 운이 강하다 하엿는데 그럼 말이나 원숭이가 동물 중에서 가장 중화가 높다는 말인지요“

당근 소우주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土를 근본으로 태어났는데 반해 동물은 木火金水를 근본으로 태어났습니다. 위 土를 근본으로 태어난 생명을 神機라고 하고, 다른 것을 氣立이라고 합니다. 다른 동물은 각자 木火金水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기가 중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말 원숭이가 중화가 높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 잡탕질문이라 답도 그렇게 썼습니다.

서로 간에 연결고리가 없어 얼마나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007.11.26. 안초




제목: 답변 감사합니다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1.26. 16:37:10

>일단 동양학을 접근함에 있어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도 좋지만, 동양학의 큰 틀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살피면서 따라가면 좀 더 쉽게 따라갈 수 있다고 봅니다.

네. 지당하신 말씀인데 저는 말씀하신 부분이 잘 감이 안 옵니다.

아직 시공이나 시간. 공간. 음양개념도 원하는 만큼 이해가 안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잡탕 질문드려서 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중화란 중에서 발하는 에너지를 말하고, 권형이란 비교하여 저울질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권형으로 중화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위 판단하는 기준이 平입니다. 당연히 저울질은 平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 판단하는 물체가 바로 水에 있는 상화입니다. 이것은 이치의 기준이므로 꼭 세속적인 기준이 된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1. 그렇다면 렌즈의 청탁과 평을 살펴 청하고 평하여 소위 중화를 이루엇다면

(관념적) 그것을 현실적으로 볼 적에 뭐가 좋은 것인지요?

관념적으로 말하는 렌즈작용의 중화가

어떤 이득이나 가치가 잇는지 현실적으로 따져 볼 수 잇는 범위나 틀이 잇다면 어떤 것들이 될 수 잇을지요?

예를들면 삶의 질? 도통? 총명? 지혜? 지성? 명예? 부? 귀? 마음의 안정?

이런 가치개념들과 관련성을 따져본다면 전혀 그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관련하여 말할 수가 없는 것인지요?

>그럼 午火가 10土작용을 하고 미토는 2火로 작용하는지요?”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왜 미토는 방위가 10土이고 작용은 2火에 배속을 하지 않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왜 午火를 방위 7에 작용 10으로 배속하지 않는 것인지요?

제가 알기로는 오화가 방위 7에 작용 7로 알고 잇는데 왜 방위 7에 작용 10로 말하지 않는 것인지요?

3. 또한 제 짧은 의문으로는 미토가 그렇게 화기의 과항을 겪는 만큼 술토 또한 지장이 잇다고 한동석 선생이 말씀하신걸 읽은 기억이 잇는데 그렇다면 술토 또한 그 작용이 방위 5에 작용 1水가 아닌 것인지요?

>이것은 경락의 배당을 설명한 것입니다. 중의원리 3음3양에 보시면 배당되어 있습니다. 충돌도 정해진 것끼지 하는 것이지 아무것이나 충돌하지 않습니다. 간담은 충돌대상이 아닙니다.

4. 12지지의 장부 배합과 경락 배합이 다르다는 말씀이신지요?

>양기가 중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5. 제 부족한 이해로는 양기가 많다는 것은 운이 강해진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잇고 또한 운이 강해지는 것은 중화된 렌즈(적절한 렌즈작용)에 의해 열(소양상화)를 많이 함축햇다는 개념으로 연결되어 잇엇는데 그게 아닌가 보군요.

(양기가 강하다, 운이 강하다는 한동석 선생의 말씀과

님이 말하는 중화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6. 현실적으로 중화란 무엇입니까?

子水가 平한 상태.

두 상반된 기운이 조화 하는 상태 와 같은 개념적 정의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중화의 모습을 찾아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7. 호랑이, 사자, 말, 원숭이는 각각 장부나 체질적으로 어떠한 장부적 특성에 잇는지 알수 잇을지요?

이를테면 호랑이는(개체적 차이가 잇겟지만) 타 동물들에 비해 폐대간소한 동물이고 말은 비대신소 하다던지 하는 이런식의 관점과 해석이 가능하시다면 여쭙고 싶습니다.




제목: re: 답변 감사합니다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26. 18:41:42

“1. 그렇다면 렌즈의 청탁과 평을 살펴 청하고 평하여 소위 중화를 이루엇다면

(관념적) 그것을 현실적으로 볼 적에 뭐가 좋은 것인지요?

관념적으로 말하는 렌즈작용의 중화가

어떤 이득이나 가치가 잇는지 현실적으로 따져 볼 수 잇는 범위나 틀이 잇다면 어떤 것들이 될 수 잇을지요?

예를들면 삶의 질? 도통? 총명? 지혜? 지성? 명예? 부? 귀? 마음의 안정?

이런 가치개념들과 관련성을 따져본다면 전혀 그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관련하여 말할 수가 없는 것인지요?

6. 현실적으로 중화란 무엇입니까?

子水가 平한 상태.

두 상반된 기운이 조화 하는 상태 와 같은 개념적 정의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중화의 모습을 찾아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중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은 에너지가 잘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좋겠지요. 이것을 판단하는 방법이 권형이고, 子水가 淸해서 平한 상태입니다.

“2. 그렇다면 왜 미토는 방위가 10土이고 작용은 2火에 배속을 하지 않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왜 午火를 방위 7에 작용 10으로 배속하지 않는 것인지요?

제가 알기로는 오화가 방위 7에 작용 7로 알고 잇는데 왜 방위 7에 작용 10로 말하지 않는 것인지요?“

이 부분은 저도 생각을 해 봐야 하겠습니다.

3. 또한 제 짧은 의문으로는 미토가 그렇게 화기의 과항을 겪는 만큼 술토 또한 지장이 잇다고 한동석 선생이 말씀하신걸 읽은 기억이 잇는데 그렇다면 술토 또한 그 작용이 방위 5에 작용 1水가 아닌 것인지요?

이렇게 설명되어 있지 않나요.

4. 12지지의 장부 배합과 경락 배합이 다르다는 말씀이신지요?

배당도 여러가지입니다. 일단 장부배합은 활용도가 별로입니다. 일단은 경락에 배당된 장부만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5. 제 부족한 이해로는 양기가 많다는 것은 운이 강해진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잇고 또한 운이 강해지는 것은 중화된 렌즈(적절한 렌즈작용)에 의해 열(소양상화)를 많이 함축햇다는 개념으로 연결되어 잇엇는데 그게 아닌가 보군요.

(양기가 강하다, 운이 강하다는 한동석 선생의 말씀과 님이 말하는 중화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생명은 水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양기가 들어가 생명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양기가 많다는 것은 운이 강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중화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화의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지.

“7. 호랑이, 사자, 말, 원숭이는 각각 장부나 체질적으로 어떠한 장부적 특성에 잇는지 알수 잇을지요?

이를테면 호랑이는(개체적 차이가 잇겟지만) 타 동물들에 비해 폐대간소한 동물이고 말은 비대신소 하다던지 하는 이런식의 관점과 해석이 가능하시다면 여쭙고 싶습니다.“

글쎄요. 이런 장부체질 뿐 아니라 4주도 전혀 없다고 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물은 氣立으로 각자의 특성만 고려하면 되지 그 이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제목: 네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1.26. 23:12:18

>중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은 에너지가 잘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좋겠지요. 이것을 판단하는 방법이 권형이고, 子水가 淸해서 平한 상태입니다.

네. 모든 것이군요.

우선 모든 것을 좋게 하니 중화가 좋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은 水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양기가 들어가 생명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양기가 많다는 것은 운이 강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중화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화의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지.

말씀하신 것은 부족한 저의 이해력으로는

생명체가 水로 이루어져 잇는데 렌즈작용을 통하여 양기를 채워 그것이 생명력이 되고 그 생명력의 강함을 다시 표현하자면 운이 강하다고 할 수 잇는 것으로서 이해가 됩니다.

1. 그리고 이것을 안초님께서 중화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중화의 결과를 의미한다고 하셧는데 이는 중화가 잘된 결과로서 양기를 많이 모앗고 이는 平이 이루어지고 청탁이 잘된 렌즈가 빛을 잘 모으는 비유와 연관하여 이해해도 되는지요?

즉 중화란 비유하자면 렌즈의 청탁과 평으로서

그리고 중화의 결과는 이 렌즈가 열을 잘 모은 것.

이 중화의 결과는 운이 강하고 생명력이 강하다는 한동석 선생의 표현과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이런 장부체질 뿐 아니라 4주도 전혀 없다고 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물은 氣立으로 각자의 특성만 고려하면 되지 그 이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네.

1. 그런데 제가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은

그럼 소위 결과적으로 열을 잘 모으는 혹은 모은 것이

중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결과 아니겟습니까?

즉 중화 자체가 열을 잘 모으는데 잇다면

열이 잘 모여져 잇는 그 결과가 중화의 증거가 아니겟느냐는 질문입니다.

생명체가 水로 이루어져 잇고 인신소양상화로서 열을 모으는데

이 水의 子平과 청탁으로서 중화를 이루엇다면 결과적으로

열을 양기를 많이 모은 것으로 이해가 되서 그렇습니다.

양기가 많은게 결국에 중화의 증거가 아니겟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입니다.

중화가 잘되잇다면 양기가 많은 것 아니겟습니까?

그리고 운, 생명력도 강하고 말입니다.

2. 이것은 사실확인 질문인데

동물을 소우주이며 신기지물로 알고 잇고 기립지물은 식물로 알고 잇습니다.

호랑이 사자 이런 동물도 기립지물인지요? 아니면 신기지물인지요?

답변 감사합니다.




제목: re: 네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27. 08:08:56

위 의문은 다 맞습니다.

사람만 신기이고 나머지는 모두 기립입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제목: 월률에 대해서 질문 글쓴이: 누미노제 날짜: 2005.10.14. 11:55:07

안초님 쓰신 운기자평 책에 보면 월령의 당령과 사령을 구분하면서 둘을 구분하여 공히 적용하는 곳은 이곳 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요문은 월령의 당령, 아부태산은 월령의 사령만 다룬다고 하고, 임철초와 서락오는 월지의 사령만을 다루면서 격처럼 취급하는데 원전이나 원리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주 충격적인 말이라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언어만 구분해서 제시해 놓았지그것들이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월률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구입해 읽는 독자로서 좀 당혹스럽고 해서 질문을 합니다.




제목: re: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누미노제 날짜: 2005.10.14. 15:47:44

안초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예를 들어 병화가 인월에 생겨나면 월령은 오행으로 따져 목이고 그래서 목이 당령하는 것이고 이는 대우주(나를 나타내는 병화의 바깥 상태)에 관한 일이다. 반드시 소우주(나, 병화)가 그 규칙적 움직임의 영향을 받겠지만(감응한다) 반드시 병화의 내면 상태가 월령이 당령한 목이 되란 법은 없다. 병화(소우주)의 내면상태는 월령이 사령한 것이 지배한다. 월령이 사령한 것은 월률에 따라 그 기간에 나타나는 인목 속의 무, 병, 갑 중의 하나로 정해진다. 만일 월률의 기간이 무토에 해당하면 무토가 사령한 것으로 본다. 당령은 形의 盛衰를 말하니까 병화는 인월 당령 목 오행에 盛한다 할 것이고 사령은 氣의 多少를 말하니까 병화는 인월 사령 戊土에 기가 빠져 氣가 적다고 할 것이다. 병화는 대우주-소우주의 감응의 결과, 외면적(또는 시기적)으로는 왕성한데 내면적(또는 공간적)으로는 氣가 부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힘은 좋은데 체격은 왜소하다 아니면 체격은 좋은데 힘은 별로다. 뭐 이런 식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지요?




제목: re: re: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4. 17:01:52

그렇습니다.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첨언하면 월령에 의해 결정되는 대우주 당령(토왕용사)은 盛하는 시기가 각각 72일로(5행/장요문 참조) 용신이 성립 됩니다. 그리고 소우주 사령(사천재천)은 율려의 원리인 월률분야로 소우주의 지장간(10간)을 결정(4지지/아부태산 참조)하여 일간에 통하는 인신이 성립됩니다. 위와같이 神의 개념이 도입되는 이유는 우리 학문은 神이 明(밝히)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위 두 神의 권형(저울질/균형/태과불급/한의학에서는 기구와 인영)으로 대우주와 소우주의 감응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것을 중화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즉 대우주는 形의 성쇠, 소우주는 氣의 다소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중화를 판단하는 이유는 일종의 자신을 육성하는 에너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에너지가 강하면 吉이고 에너지가 약하면 凶 또는 疾病鬱입니다.

中和(중화)

중용에서,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참고로 위 두 神에 함께 영향을 미치는 神을 자평진전에서는 相神이라고 해서 6신으로 특별히 다루고 있습니다. 위 권형의 원리는 제가 강의할 때 원전 뿐 아니라 천문의 북두7성과 과학의 홀로그램으로 입증하고 있으며, 한의학 또한 운기학을 원리로 하는 만큼 위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즉 한의학과 자평학은 동일한 원리를 사용하며 또 동일한 우주 아래의 동양학인 만큼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위 이치가 존재하는지 스스로 고민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운기자평에 보면 임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연히 응용학 입문시기에는 위와같은 이치로서 고민해햐 하며 임상은 그 다음 문제일 뿐입니다. 그리고 고전 역시 그 어디에도 임상은 없습니다. 다만 임상은 근대에 들어와 임철조가 주석을 붙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치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형이상학의 이치일 뿐입니다. 다음은 이것이 정말 임상에 적용했을 때 실제로 그런가 아닌가의 형이하학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운명(형이상)에 적용하는 것 보다는 질병(형이하)에 적용하는 것이 훨씬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명보다 질병을 먼저 강의하고 있으며 또 훨씬 쉽게 떨어집니다.

위 원리를 끌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원리 자체는 쉽고 단순합니다.

만약 우주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이론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대물림된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해봐야 그런데 이것을 다시 또 대물림하는 것이 우리 동양학의 일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임상을 빌미로 스스로 이론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이런 이론은 우주와 전혀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동양학이 그렇게 형성될 수도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10.14.

안초




제목: re: re: re: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누미노제 날짜: 2005.10.14. 18:10:15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자구 의문이 더 생겨 몇 가지 더 물어보고자 합니다.

안초님 책을 보면 용신과 인신을 구분하십니다. '적천수'의 “月令提綱之府 譬之宅也 人元用事之神 宅之定向也" 구절이 용신을 다루는 부분에 적혀 있고 해서 人元用事之神이 용신을 말하는 것처럼 이해됩니다.

아래의 안초님 글을 보면 용신이 대우주 당령으로 정해지는 것이고 인신은 소우주 사령으로 월지 지장간에서 월률에따라 정해지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윗 글의 인원용사지신에서 인원을 언급하는 것은 월지 지장간에서의 인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인신을 말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안초님 글대로 만약 월령 당령으로 용신을 정한다면 용신은 오행(사계절+토: 환절기)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월지 지장간의 인원과는 무관한 것이 될 것같은데 그러면 용신은 오행으로는 목화토금수 중 하나에만 해당할 것이라서 '용신다자 성정불상'과는 사뭇 배치되는 것 아닌지요?

자평진전에서 상신은 용신에 대한 성패를 결정하는 신으로 용신에 대한 일종의 희신 또는 보조신으로 역할을 하는 것같은데 안초님 말씀은 상신을 인신에 대해서도 그 관계를 살펴야 한다고 하여 당혹스럽고 그런 구절이 자평진전에 있는지 의아합니다.




제목: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4. 18:58:19

당연히 의문의 의문이 꼬리를 물겠지요.

대우주 소우주 개념의 神은 반드시 존재하며 이것은 연해자평과 삼명통회에서 그 흔적을 찾으 수 있습니다. 특히 연해자평에는 같은 문단에 함께 위 당령(5행), 사령(10간)이 함께 적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를 논한 사람은 송나라 이후 그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제기 하는 겁니다.

대우주의 당령, 소우주의 사령 이것을 통합한 개념이 월령입니다. 그렇다면 위 월령의 神은 당근 천지에 감응하는 神이어야 하므로 천원, 지원, 인원인 통합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적천수에서 월령은 宅과 같고 신은 向과 같다고 통합적으로 설명했다고 봅니다.

위에서 적천수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위와같이 통합적인 개념인 월령을 사용했기 때문이며, 결국 저 역시 용어를 당령 사령으로 구분하고 통합적인 용어를 월령으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용신다자 성정불상은 뭔가 착각하시고 계십니다.

대우주와의 감응을 판단하기 위해서 용신을 구하는 만큼 용신은 오로지 월령의 당령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神이 통해 있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오로지 월령(당령,사령의 통합개념)에서 용신을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시적으로 가용을 잡을 수 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의 성정은 당연히 고정될 수 없습니다. 즉 '용신다자 성정불상'이 되는 것입니다. 용신을 희신개념으로 본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희신 기신은 일단으로 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용신 인신에 의한 본주의 균형에 의해 구해야 합니다.

本主(본주)

서자평은 ‘연해자평’에서, "欲知貴賤 先觀月令乃提綱 次斷吉凶 專用日干爲主本 三元要成格局 四柱喜見財官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귀천을 알려면 먼저 월령 및 제강을 관찰하여, 다음 오로지 用神과 일간이 主와 本이 되어 길흉을 판단한다. 3원은 격국을 이룸을 요하며, 사주는 재관을 보는 것을 기뻐한다.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며, 일주는 건왕한 것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먼저 월령을 오로지 용(用)하여 본(本)이 되고, 일주는 주(主)가 된다.

體用精神(체용정신)

경도는 ‘적천수’에서, “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 得其宜 人有精神 不可以一偏求也 要在損之益之 得其中”(道에는 체용이 있어 1端으로 論해서는 안 된다. 扶와 抑을 필요로 해서 그 마땅함을 얻는다. 人에는 정신이 있어 1偏으로 求해서는 안 된다. 損과 益을 필요로 해서 그 中을 얻는다)라고 체용과 정신을 설명한다.

자평진전에서는 위 두가지로 희기신을 구한다는 말은 없고, 단지 위 두가지를 함축한 상신이라는 개념만 존재합니다. 만약 저평진전이 위 두 고전에 반한다면 그것은 이미 고전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며, 또 명백하지 않은한 위 고전에 반하게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2005.10.14.

안초




제목: 사령과 인신(용신이 아님)의 관계 글쓴이: 누미노제 날짜: 2005.10.15. 00:53:55

답변을 읽고나서 제 생각이 좀 더 명료해진 것같습니다. 답변에 감사합니다.

책 내용과 여기에 쓴 안초님 글들을 읽고 안초님 생각이 무엇인지 제 나름대로 파악한 것이 안초님의 원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저는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개념을 포함하여....

그중 하나는 혹여 싶어서 확인차 더 묻고자 하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묻고자 합니다. 비인부전을 주장하시는데 귀찮게 하는 것같아 죄송합니다. 다만, 안초님 책을 구입해서 보다보니 독자가 저자의 생각을 그냥 읽어서 터득할 수없게 책의 내용을 적어나간 것같아 천상 독자가 신경써서 저자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추리를 하여야 하고 암호해독하듯이 애를 써서 읽어야 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이해하지 못할 소지가 크기에 천상 의문점을 저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어 그러는 것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안초님 글은 '용신다자'를 진신이 아닌 가신에 해당하는 자로서 그 가신이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변한다는 뜻으로 多者(많음)을 말하는 것같습니다.

多者(많음)을 가신(하나)가 상황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그냥 하나가(진신이든 가신이든) 아니라 여러개가 어느 한 상황이나 한 싯점에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많음(多者)에 대한 보통의 상식적인 해석일 것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안초님 해석대로라면 用神多者가 아니라 用神變者 라고 표현했어야 오해의 소지도 없고 더 맞는 것 아닐까 싶어서 입니다.

둘째, 월령을 당령과 사령의 통합개념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통합개념에서 월령이 용신을 정한다고 할 때 월령 사령에 의한 용신 개념과 안초님이 쓴 글에서 보듯 소우주 사령에 의한 월률에 따른 지장간 인원의 인신 개념이 혼동스럽게 다가옵니다. 운기자평 책에서 인신은 적천수의 생시귀숙지지(時地)에 연결시켜 인원용사지신으로 말하는 것같은데 앞에서의 안초님 글은 월지 지장간에서의 인원과 연계해서 인신을 말하는 것같아 보여 안초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용신 개념이 월령의 당령과 사령을 포괄하는 통합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인신 개념까지 포함한다고 보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연장에서 자평진전의 상신 개념이 용신과 인신을 둘 다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용신에만 국한된 것인지 좀 논의해 봐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자평진전의 상신개념을 용신에 대한 희신개념(격의 성패 결정)으로 이해하기에 좀 의아해서 묻는 것입니다.




제목: 아는 것이 병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5. 08:45:59

네, 그렇습니다.

제가 보아도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진리의 습득을 의미하자는 아닐 것입니다. 이 학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의원리라는 우주변화원리 개념을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동양학 전반에 흐르는 큰 흐름을 접하지 못하신 분은 결국 지엽적인 자기 나름대로의 인지만 하게 될 뿐입니다.

운기자평은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당연히 생각하고 꿈틀거리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며 동양학이 또한 그렇습니다. 일반 학문처럼 아무 생각없이 따라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은 아닙니다. 동양학은 이렇게 꿈틀거려서 얻어야 자기 것이 되며 이렇게 얻은 우주변화원리에 부합된 이치는 나아가 만사만물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운기자평의 이치 또한 인체 인사 모두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의 불찰로 운기자평은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이해하지 못할 소지는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전체의 큰 틀을 벋어날 수는 없습니다. 운기자평 이후에 임상 한 두 분만 해 보면 위 일관된 큰 들은 바로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도록 했는가 하면 위와같이 방황과 번뇌 속에서 얻어야만 비로서 우주에 부합된 진정한 이치를 판단할 수 있고, 나아가 통변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용신다자

고전은 지금의 우리 사고방식 내지 습관으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고전은 당연히 원저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석이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이 와전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變을 써야 오해의 소지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학을 아는 자라면 變을 쓰지는 못합니다. 變이란 氣입장에서 바라 볼 때 極에서 흩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化는 모여서 生함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동양학 용어로 여기에 함부로 사용될 수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化變神聖(화변신성)

구유구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物生謂之化 物極謂之變 陰陽不測謂之神 神用無方謂之聖"(物이 生함을 化라 하고, 物이 極함을 變이라 한다.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神이라 하고, 神을 용함에 方이 없음을 聖이라 합니다)라고 化變神聖을 정명한다.

2. 사령

율려는 월과 시(생시귀숙지지)가 화합하는 움직임이며, 사령은 그 명령을 말합니다. 즉 기본 바탕은 월시의 움직임이지만 그 명령은 월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설명드리면 무병갑은 월시에 의한 율려의 움직에서 나온 것이지만 병인지 갑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령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3. 용신, 희신

흔히들 용신을 돕는 것은 희신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리학 고전 어느 곳에서도 없는 와전된 말이고, 스스로도 뭔가 모순된 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대물림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용신과 희신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개념입니다. 용신은 감응에 의한 체용개념이고, 희신은 권형에 의한 억부개념입니다. 다시말해서 용신은 천지상하의 개념이고, 희신은 일월좌우의 개념입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명리학을 평생을 공부했어도 입문조차 못한 것입니다. 저 역시 이것만 인식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명리학 아니 동양학 전반의 가장 큰 문제는 동양학 전반에 흐르는 도도한 이치의 흐름이 분명히 있건만, 이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동양학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임상을 놓고 여기저기서 자기 느낀대로 각자 만든 이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위 우주가 변화하는 이치와는 더욱더 유리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동양학의 오의를 배운다고 하지, 실제로는 여기저기서 말하는 각자의 생각을 듣을 뿐 입니다. 인터넷 다녀 보시면 아시겠지만, 임상 하나 써 놓고 각자 생각을 듣다가 안되면 다스결로 진리를 정합니다. 제가 처음 이 학문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다스결로 진리가 정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오의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지, 자기 각자의 느낌을 듣고자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이것으로 인해 아는 것이 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2005.10.15.

안초




제목: 안초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려합니다. 글쓴이: 누미노제 날짜: 2005.10.15. 14:08:25

많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다 좋고요, 그것들 하나하나는 나중에 깊이 있게 논해봐야 할 것같으니 여기서는 그냥 제가 질문한 것에 한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바로 해야 할 것같아서 재차 구체적 설명을 곁들여 질문하고자 합니다.

1. 안초님믜 말에서 의미하는 것은 용신다자에서 많음의 의미가 고정된 사주 명식에서 용신이 여러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식에 하나의 가신(제대로 된 용신으로서 진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게 상황이나 운의 변함에 따라 다른 것으로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로 저는 이해를 하고있는데 제가 옳게 이해하는지를 묻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이런 식의 의미라면 통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많음의 글자 뜻 보다는 바뀐는 의미의 글자를 쓰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뀐다는 뜻의 글자를 저는 생각이 부족해서 그냥 變을 택했는데 만일 變이 되다면 용신에 해당하는 오행이 극에 달해 다른 것으로 바뀌는 의미가 될 것이니 부적합할 듯 합니다. 제가 말하는 바뀐다는 의미는 어느 한 오행(예, 화)을 가신으로서 용신을 취하다가 상황이나 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오행(예, 금)인 가신을 용신으로 택하다는 교체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용신다자에서 많음(many)이 교체(choose in turn) 를 의미할 수 있는지 묻는 것니다. 물론 變(change)은 부적합한 글자라는 것 인정합니다.

2. 안초님 글을 보면 용신개념과 인신개념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같지 않은데 또 어느 측면이나 책의 내용 편제를 보면 명료하게 구분하는 것같아 정확하게 어떤 것이 안초님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신개념(소우주 사령)과 비교되는 용신 개념은 월령 당령이 아닌 월령 사령에 의한 용신을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안초님 답변 내용은 이에 대한 것이 아닌 것같아 재차 질문을 해봅니다. 제가 질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 것같습니다. 아니면 제가 이와 관련해서 뒤틀린 고정관념이나 개념몰이해가 앞서 있기에 질문도 그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 용신과 희신 개념의 구분은 이해합니다. 소위 희신이 용신에 대한 보조 역할를 하는 신이 아니고 일간에 대한 억부균형을 잡는데 필요한 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계시다는 것 말입니다. 저는 질문을 상신에 대해 하는 것이고 과연 상신은 용신에 대한 보조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때 용신이 월령 당령과 월령 사령 둘 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평진전에서 언급하고 있는지(반드시 명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문맥속에서 암묵적으로라도)를 묻는 것입니다.




제목: 일관된 규칙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7. 01:52:36

부산 출장강의 때문에 늦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만 전제하고 시작겠습니다.

대우주와 소우주는 감응하는데, 대우주에는 일관된 규칙이 있고 소우주 또한 위 규칙에 준하므로 우리는 미래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대우주와 소우주가 감응하는 일관된 규칙을 서술한 것이 고전이어야 합니다. 만약 위 일관된 규칙에 반하는 고전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위 고전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학자 대부분은 위 고전이 각각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하는데, 이것은 위 일관된 규칙이 없음을 스스로 자인하여 이 학문 존립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이 시작하는 학자는 반드시 고전에서 위 일관된 규칙을 찾아야 할 것이며, 위 일관된 규칙에 반한 주장은 제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용신다자

제 생각과 동일하게 이해하시고 계시다고 보입니다. 단지 저는 위 적천수의 용신다자 용어가 지금의 학자가 주장하는 희신 하나 고르는 용신개념과는 정면으로 반함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2. 용신과 인신

당령에 근거한 5행의 神이 용신이고, 사령에 근거한 지장(10)간의 神이 인신인데 왜 명료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연해자평에 명백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해자평 이후 학자들이 명료하게 서술하지 못하였기에 제가 다시 거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3. 상신

그렇다면 자평진전에 상신이 월령 단독으로 결정된다는 말은 있습니까. 그냥 남들이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고정관념이 되어 아는 것이 병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자평진전에는 위 상신을 6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6신 개념 자체가 월령이나 일간 단독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전제한 일관된 규칙에도 반할 수 없으므로 연해자평과 적천수에 명시된 문구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글자에도 이미 서로상(相)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때 상신은 월령과 일간 둘 다 포함한 개념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2005.10.17.

안초




제목: 답변 감사합니다. 글쓴이: 누미노제 날짜: 2005.10.17. 18:27:38

안초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혹시 잘못 오해할까봐 확인차 두가지만 적겠습니다.

1. 월령은 당령과 사령을 포함하는 개념이니 월령은 용신과 인신을 다 결정하는데

월령의 당령과 사령의 기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용신과 인신은 다르게 결정될 것이나 당령 오행의 신이 보이지 않고 사령 오행의 신이 보일 경우 인신을 용신으로 삼을 것인데 이 때 이것은 진신이 아닌 가신이라 해야 하는가?

2. 월령의 당령과 사령의 기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당령 오행의 신도 보이고 사령 오행의 신도 보일 경우 용신과 다르게 인신도 고려대상이 될 것인데 이때 인신은 상하개념속에서 다루어야 하나 아니면 좌우개념속에서 다루어야 하나?




제목: 오의와 인위적인 설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7. 19:25:56

지금 뭔가 착각이 있는 듯합니다.(제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당령과 사령의 기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월령이란 내가 태어난 날짜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당령과 사령이 적용되는데 그 기준이 어떻게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당령은 5행의 토왕용사가 적용되고, 사령은 10간의 지장간이 적용됩니다. 다만 그것이 천간과 통하거나 통하지 않은 경우만 구분될 수 있습니다. 통한다는 것은 월령에서는 동일한 5행이 왕상휴수사의 왕에 해당되고, 사령에서는 12운성에 건록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통할 때 비로서 神이 성립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위 월령의 神인 용신이 성립되지 못할 때가 가용신인데, 이것은 학문적으로 깊히 다룬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용신이 성립되지 못했다는 그 자체로만 충분하지, 사실 그 이상은 따질 것도 못됩니다. 하늘에 통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전제로하는 우주가 변화하는 원리에 부합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정리하면 용신은 월령이 하늘과 통하는 신을 말하는데, 이것이 통하면 하늘의 명에 부합하게 사는데 반해, 이것이 통하지 못하면 하늘의 명에 부합하게 살지 못합니다. 즉 명에 부합하면 시대를 이끌어가는 큰 인물이 될 수 있어 정확한 추명도 가능하지만, 명에 부합하지 못하면 시대에 끌려가는 민초들로 그 추명 또한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운명이 모두에게 골고루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잘 부합되는 사람과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위 용신의 진가로 구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그리고 제 견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제 견해를 파악하려고 애쓰실 것도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고전에 어떻게 쓰여있는가 그 오의를 파악하는 것이며 저는 그 안내자 일 뿐입니다. 물론 잘못 안내할 수 도 있겠지요.

왜 위 오의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가하면 보통의 학자는 위 오의를 파악하지 않고 자기들이 적당히 만들어서 가르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대부분의 학문이 위 오의와 무관한 정체불명의 설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자하는 것이 우주가 변화하는 일관된 원리이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설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설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둔한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위 만들어진 설에 얽메이고 있으며 위 오의에는 관심도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2005.10.17.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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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것 무엇인지요... 글쓴이: 윤흥자 날짜: 2005.08.21. 15:30:35

음양에서 사상이 나오고 가운데 응결된 것이 토라는 것을 자평진전평주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문점은 음양의 운동작용에 해당하는 즉 오행의 생극제화 작용의 그 힘에 해당하는 언어는 무엇인지요.

제가 궁금한 점은 왜 음은 음대로 양은 양대로

또 금은 금대로 수는 수대로 있지 않고

금은 수를 생하며 수는 목을 생하는데

자평진전에서는 동정이 있어 노소의 구분이 있어...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동정의 근원이자 에너지의 원천인 이것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냥 氣 라는 표현이 맞는지요...



제목: 4상,5행과 중화,기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8.21. 17:26:21

질문의 논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제 나름대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5行과 4象은 관점이 다릅니다.

4象은 공간관점으로 음양의 분화된 모습니다.

5行은 시간관점으로 회전체이므로 가운데 중심인 土가 더 있습니다.

우주는 음과 양이 조합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공간관점에서 보면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시간관점에서 보면 한번은 음하고 한번은 양하면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치적으로 나누어 보면 음의 움직임이 있고, 양의 움직임이 있으므로 이것을 5행적으로 생극제화라고 합니다.

에너지의 원천은 음과 양의 화합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일월(남녀)이라는 음양이 만나 화합하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위 음양이 만나는 곳을 中이라고 하고, 그 中에서 화합을 和(쌀+중)라고 합니다. 따라서 위 중화의 균형(음양)이 깨지면 당연히 에너지가 약해집니다. 이것을 관점에 따라 病 혹은 凶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氣는 위 에너지를 말하지, 원천은 아닙니다.

어려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학문은 아니니, 조금만 더 고민하셔야겠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2005.8.21.

안초



제목: re: 답변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윤흥자 날짜: 2005.08.29. 07:26:33

음...제가 질문한 것은 음양이 조합하는 .....그 힘이랄까 근원이랄까...그것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조금 질문이 미흡하였나 보군요.

아...

비유하자면 음과 양이라는 세포가 있는데 그것이 교접을 한다면 그 교접의 근원은 어디서 나오는가 머...그런거였는데

표현도 서투르고 또 개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네요.

답글 감사드립니다....




제목: 태극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8.29. 08:18:29

답변을 쓰면 자동으로 메일도 함께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음양은 태극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하나의 태극으로 조합하는 겁니다.

즉 음양의 근원은 태극입니다.

2005.8.29.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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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의원리 글쓴이: 광토 날짜: 2005.07.30. 16:37:00

안녕하세요 안초님

중의원리중 연구중인 부분(진손간태,6율6려)에 대해서 궁금해서

질문드려요.

그것을 오랫동안 연구하는 쟁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부탁드리고요,

아울러 교재와 인터넷에 공개하신 내용과 차이점에 대해 알고파요.

그럼 지지부진한 저를 용서하시길 빌며 이만.




제목: 6획6획과 6율6여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7.30. 22:19:07

질문하신 핵심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율려와 괘와의 관계를 문의하신 듯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주는 하나입니다.

단지 관점이 다를 수 있기에 그 설명이 다를 뿐입니다.

과학과 동양학도 그렇고, 율려와 괘 역시 그렇습니다.

율려란 중화의 작용입니다. 즉 음양이 中에서 和하는데, 이것을 用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율려입니다. 그러니까 율려란 中에서 和하는 음양이 각각6으로 律하고 呂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논리인 만큼 數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으니, 다시 象의 관점에서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卦입니다. 그러니까 6획6획은 표현방법만 다를 뿐 6율6여라는 동일한 중화의 작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십시오.

원리란 복잡할 수 없고, 쉽고 단순한 겁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5.7.30.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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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도수에 대한 자료는 글쓴이: 학도리 날짜: 2004.04.08. 11:00:48

안초님
우주 원리에 36도수 자료는 연구중이신가요?
많은 공부를 하셨는 데
여기에 대한 남다른 식견이 있으리라 봅니다.
올려주셨으면 해서요.



제목: re: 36도수에 대한 자료는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4.08. 17:29:48

안녕하십니까.학도리님!

사실 위 36에 대한 특별한 자료는 없습니다.
이것이 업그레이드를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아시다시피 상수학은 선진 이전에 존재했을 뿐, 그렇게 활발히 연구되어 오지 못한 계륵과 같은 분야입니다. 즉 동양학의 큰 흐름에서도 재야에서나 조금씩 해온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조선말 일부에 의해서 재정비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자료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단지 제가 36이라는 체계를 잡았을 때는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인데, 욕심만 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36은 中和가 이루어지는 數입니다.
따라서 그 중요함을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음양) 6x6=36

(4상) 4x9=36

(5행) 5x7=35

(3극) 3x12=36

어떻게 보아도 36으로 귀일하는 數입니다.

위 지지닷컴의 자료는 현재 다시 체계를 잡아 강의 교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비하기 때문에 세상에 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 권유에 의해 출판을 목표로 계속 보완해 가고 있습니다. 추천의 글도 부탁을 맞친 상태입니다. 그러나 상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목표는 일단 우주원리에 대한 큰 줄기를 잡는 것인데 여기에는 어느 정도 부합해 가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만족한 답변을 못 드렸군요.
감사합니다.

2004.4.8.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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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전풀이 적천수 글쓴이: 안초 날짜: 2003.05.11. 13:37:52

아래 글은 정말 예전에 하이텔 역학동호회에서 장요문의 적천수 저자에 대하여, 이선종님, 박영창님, 이승수(안초), 이지승(이수)님이 주고받았던 의견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아마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위 분들이 누구인지 새삼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글은 다른 사이트에서도 이미 실렸고 또 오래된 글이므로, 굳이 새삼스럽게 양해를 구한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양해 없이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아래 글을 옮기면서 느낀 것인데...

학문에 대한 좋은 의견들입니다만, 지금 와서 느끼는 것 역시 어떻게 사용하느냐 보다는, 이것이 무엇이고 왜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용법이야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니, 역시 원리에 대한 正名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안초포함) 의견이 부분한 것입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얘기하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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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개두설에 관한 생각 보낸이: 박영창(박영창) 2000-08-16 02:17

명리정종의 개두설에, 부귀빈천이 천간의 투출로 인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이 있고, 상당 부분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가 천간 위주로 통변을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고 한번 해본 소리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개두설의 핵심은, 운의 천간이 원국의 지지를 공극할 수 없고, 운의 지지가 원국의 천간을 공극할 수 없다는 구절 같습니다. 운을 보는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추신: 쓰고 보니 너무 간단한 글이 되었네요. 하지만 저도 천간 위주로 사주를 볼 때가 많습니다. 천간만 보고도 그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대충 알 수 있거든요. 투파처럼 근의 유무를 보지 않아도 그냥 육신의 배합만으로 봐도 잘 맞더군요.

이수님께 질문: 제가 이수님 글을 모두 읽지 못한 관계로 성급한 질문입니다. 투파는 지지 육합이 되면 지지의 충과 마찬가지로 작용을 못하는 걸로 보는데, 이수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어떤 글을 보면 육합은 무시하는 것도 같아서요.

아, 그리고 하역회에서 이승수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완전풀이 적천수가 포여명의 저작이 아닌 것 같다고 했네요, 완전풀이 적천수의 내용을 앞서가는 중국 명운학이 비판했다는 거죠. 두 책 중에서 포여명의 저술일 가능성은 자미두수를 논한 앞서가는 명운학이 많아 보이네요.

포여명이 원래 자미두수를 하거든요. 20년 전에 학범선생님이 적천수를 번역했는데, 그 분이 투파 이론서를 번역해서 낸 적이 있거든요. 포여명이 20년전에 적천수 해설서를 썼을 리가 없겠고... 포여명은 원래 명리가가 아니고 자미두수를 합니다. 이수님이 그를 만나보았을때 포여명이 사주를 보지 않고 상과 자미를 보아서 실망했다고요? 아무래도 포여명이 완전풀이 적천수의 저자가 아닐 것 같은데요... 완전풀이 적천수의 원저자가 누군지 찾고 있는 중입니다. 십간론은 사주추명십간비해인데, 중국인이 쓴 고서인데, 저자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투파 이론이나 포여명의 적천수에 이상한 부분은 앞으로도 비판을 할 생각인데, 양해를 바랍니다.



[5194] 정보/포여명 적천수가 아니고 장요문 적천수 등록자: 박영창(박영창) 조회수: 189 등록일: 2000-08-31 17:07:10

완전풀이 적천수와 완전풀이 십간론은 포여명의 저술이 아니고, 장요문의 저술이더군요. 제가 책장을 뒤져서 원본을 찾아냈거든요. 이제부터는 포여명의 적천수라고 부르지 말고, 장요문의 적천수 혹은 투파의 적천수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5195] [감사/5193]박영창님 말씀 많은 도움 돼 등록자: 이선종(lsj5049) 등록일: 2000-08-31 17:27:46

번역자로서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분명 학자다우시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박영창님께서 "저는 심효첨식의 순용 역용을 채택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용신개념을 채택하지 않고 임철초식의 방법을 채택하기 때문에, 자평진전이라는 책이 적천수보다 중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자평진전평주를 읽으면 사주학의 기본 개념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편입니다."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후학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론 부분에서는 도움되는 구절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지적한 부분은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서락오가 잘못 생각한 곳은 먼저 올린 글 340~341, 358 쪽 외에도 발견된 곳은 또 있다.

--- 중략 ----

임철초의 `적천수`가 사주명리학의 최고봉이라면 서락오의 `자평진전 평주`와 여춘태의 `궁통보감` 은 그 전 단계라고 보여집니다. 제가 이 명리마당에 글을 올리는 것은 흩어진 사주의 이론을 한 곳으로 통일시키자는 뜻에서 좋은 책만 골라 보았습니다.(주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낭월스님의 `적천수강의`와 박영창님의 `자평진전평주`, 심종철님의 `적천수천미`는 사주가 학문으로 대우받기 위해 우리 역학인들이 가까이 두고 공부해 야 할 寶典이라고 봅니다.

박영창님 계속 좋은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선 종 드림



[5201] [아래/책] 장요문... 등록자: 이승수(안초) 등록일: 2000-09-02 01:00:38

중화를 드립니다.
포여명은 서낙오 학풍입니다.
완전풀이 적천수는 투파 학풍입니다.

그러니 완전풀이 적천수를 포여명이 쓸 수는 없습니다.

낙천님이 원문까지 확인하셨다니... 저 역시 이제 장요문의 저작으로 믿겠습니다. 그래서 포여명은 이 책을 대만에서 내지는 못하고, 한국에서 자기 이름으로 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역인을 우롱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만, 완전풀이 적천수는 한번쯤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낙오는 자평진전을 평주했지만, 그 시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차리리 평주를 하지 말든지... 그러나 심효첨과 위 완전풀이 적천수의 시각은 유사하니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즉 적천수를 심효첨의 시각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수님의 시각과 유사합니다.

택지향 묘지혈...
잘 연구해 보세요. 여기에 모든 열쇠가 있습니다.

왜 일간위주이어야 하는지...
왜 월령에서 용신을 취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중화는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책의 소개야 역서관에서 해야겠지만...
그 토론이야 당연히 학술마당에서 해야지...역서관에서 해야 합니까.
죄송합니다.

2000년 9월 1일 안초올림~



[5204] [5201] 이승수님  등록자: 이지승(wartime) 등록일: 2000-09-02 12:03:51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심효첨`은 제가 좀 더 시간을 두고 글을 올릴 재료로 삼고 있었는 데 김을 빼셨군요. 정작 저는 자평진전을 꼭 써머리로 올리고 싶었습니다. 타이밍을 놓친 것 같군요.^^ 제가 굳이 포여명의 완전풀이 적천수를 각색하면서 서낙오를 연계 고리로 끌어들인 연유까지 다 꿰뚫고 계시니 이제 당분간 입을 다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평진전평주를 한 단계 아래로 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透派, 장요문의 저작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효첨의 논리는 임상에서 일치했습니다. 아주 확연하고 명쾌한 것이었죠. 저는 막연히 이것이 鮑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실상 그러리라 봅니다.

宅之向, 墓之穴論 - 저는 이것을 그냥 宅向/墓向으로 간략히 개념을 정립하였습니다 - 이것이 현대 명학 지식체계의 가장 참신한 논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관법은 고전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 생명력이 사라졌거나 번거로운 논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묘지향으로 강약을 조율하는 방법은 어느 교재에서도 구체적인 사례나 정의를 지 못했습니다 - 그러니 제 글(BACK TO THE BASIC 2)은 최소한 표절은 아닙니다^^-

다만 임철초가 이 점을 간파하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항시 설명이 번잡해요. 그로 인해 명조를 해석하는 원칙상의 불분명한 점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적천수천미를 벗삼을 당시에는 짜증이 많이 났죠. 이처럼 첫단추를 산뜻하게 채우지 못한 접근을 후대에서 텍스트로 삼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는 저작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듬어 온 지식 체계가 선학의 저작을 토대로 보다 명료하게 다듬어져왔다는 것을 의미하니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궁통보감은 다소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학술과 자연법의 경계에 놓인 寶書로 생각되는군요. 궁통의 내용을 아직 제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간론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실상 십간론이야말로 자연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구요. 저는 추명술 - 술법의 단계 - 을 보다 하이테크로 상승시키기를 염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이전에 학문적 체계가 확고히 다져져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훌륭하신 선배님들을 너무나 존경합니다. 학문이 일천한 저야 이 둘을 모두 병행할 도리가 없으니 선학들과 또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시기를 고대하는 속물에 불과하죠. 그러면 그것을 써머리해서 자신있는 추명을 전개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시기는 그러한 작업이 곧 國富에 기여할 韓國의히든 카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학문의 道에 이르는 경지에는 아직 관심도 없고 저 스스로 요원함을 잘 압니다. 학문의 근원적 목적에 도달하기 이전 분명한 체계가 필요한 거죠. 왜 어설피 책껍데기만 문지르다 자연법을 論하는지 저는 그게 정말 싫어요.. 하여튼 모두 다 제 命도 모르는 술사들 천지아닙니까. 술사라면 먼저 자기 팔자의 코드도 분명히 짚어내는 학문적 원칙부터 수립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술사가 아니라면 관계없구요..

따라서 임상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일단 치열한 근원적 치료에 몰두해야지 사주추명술의 의의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편법을 구사하면 안 됩니다. 추명술은 맞아야하는 것인데 적중률에 의의를 두지 않는다거나, 사주추명술을 마치 마음의 수양 도구로 평가한다는 것은 진짜 우끼는 일입니다. 수양의 도구로 또는 道를 추구하려면 추명술은 아예 구사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고 그 길로 가야합니다. 이런 것은 아예 하지 마셔야해요.

저같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자나 미래 예측 수단으로 한번 파보는 거죠.

추명술사는 그냥 번역가에 불과한 겁니다. 무슨 도사아니 잖습니까. 뭐 산수도사, 영어도사 같은 의미로는 쓰일 수 있죠. 그러니까 해석의 능력을 상승시키려 치열하게 글자를 다듬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능력이 딸리면 다른 길을 가야지. 추명술의 그 명료하고 세속적인 의미 규정마저 바꾸려 들면 안된다고 봅니다.

자신의 추명술이 빗나가면 자신의 원칙이 잘못 정립된 것이지 사주라는게 원래 그런거다라고 쉽게 결론내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진실로 호도하는 것은 저같은 술사에게는 `바부아냐..`하는 느낌밖에 안 줍니다. 강약을 먼저 조율하고 부억하는 것이 일단은 눈에 보이는 원리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원칙 위에 전개되는 것이 학문의 장 아닙니까. 역동의 명리마당은 이렇게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강/약이 없다면 그는 이미 학문의 끝에 도달한 경지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저도 이 계통의 밥을 1년 남짓 먹었더니 이젠 `기다/아니다`로 대립하기보다는, 또 정답이 하나다라는 생각은 이미 접었습니다. 그래도 뻔히 눈에 보이는 오류나 한계는 개선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후학을 정진시켜야지, 어리버리하게 시간 낭비하게하면 안 될 것으로 봅니다.

선배님들의 좋은 글..무지하게 기대하면서 후학 두서없는 글로 도배하였습니다.

이수 드림

* 아! 그리구 `포여명` 한번 데려와야겠습니다. 좀 진위도 밝히고 그래야지.. 일본에 거주하신다는 애기는 들었는데..당사자가 돌아가신 분도 아닌데 연내에 한번 주선해봐야겠군요. 근데 왜 표절을 했을까.. 갸우뚱..



[5205] 승수님의 글이 아주 좋네요. 등록자: 박영창(박영창) 등록일: 2000-09-03 07:58:50

이승수님께서 역학의 원리 연구에 몰두하시느라고 두문불출하시더니, 많은 성과가 있으셨군요. 저는 왜 역술이 술일 뿐 학이 아니고 원리의 근원에 대한 탐구가 없는지 유감이었는데, 학과 술의 차이에 대한 승수님의 의견을 보고 참으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역술도 역학이 되어야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승수님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이수님은 제가 보기에 신진 역술인 가운데 치열하게 검증을 하시면서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면 역술이 크게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왈가왈부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이수님 말씀처럼 적중하면 과학이고, 맞지 않으면 미신이죠. 사주학은 도를 닦는데 쓰는 것이 아니고, 맞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맞추지 못하는 역학은 이미 존재 가치가 없지요. 수양의 도로 역술을 한다면 웃기는 소리지요. 역술이 수양에 일조를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굳이 찾아본다면 자기 자신을 위안하고 체념하게 하는 것 정도겠죠. 역술은 수양의 도가 아니고, 적중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수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그리고 사주학의 이론들은 이미 대부분 고서에서 편린을 찾아볼 수 잇는 것입니다. 투간을 말하고, 월령을 말하는 것이 어디에 강조를 두었느냐의 정도 차이일 뿐, 이미 고서에서 두루 언급이 된 것들입니다. 묘지향의 이론은 적천수에 나오는 이론인데, 투파에서 의미를 확대한 것이지요. 그리고 심효첨과 투파의 이론에도 유사점도 있고 상이점도 있습니다. 모든 책이 다그런 면이 있지요. 유사점이 있다고 해서 학파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심효첨의 주장은 순역으로 희기를 가리는데 있었지, 우연의 일치로 천간에 나온 것으로 격국을 정한다고 해서 투파의 이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적중에 대해서 제가 왜 간단한 것을 싫어하느냐 하면요, 간단할수록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편법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자연법에 비하면 기존 이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용신만 잡아서 그대로 통변하면 끝이고 몇마디 할 말도 없죠. 그런데 투파의 이론은 더욱 단순합니다. 마치 공식을 보는 것과 같지요. 물론 맞는 점도 많아요. 맞지 않으면 생기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현재까지는 투파의 적중율이 기존 이론보다 못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학문적인 측면의 원리 탐구는 더욱 아래에 있다고 봅니다. 투파의 비밀은 그 공식대로 하면 용신을 틀리게 잡아도 어느 정도 맞게 되어있습니다. 투파에서 잡은 용신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적중이 될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비밀이 있고 편법(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이 있는 것입니다.

자세한 분석은 다음 기회에 하겠고요, 그러므로 투파이론에서는 100% 적중이 나오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근사치가 나오는 것이죠. 투파 이론이 명쾌해 보이지만 사실 더 들어가 보면 헷갈리는 사주가 나오게 되어 있고, 일반론에서 헷갈리는 사주가 나오는 확률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장요문과 좌등육룡이 공저한 책들에 보면 초보, 중급, 고급으로 사주를 나누어서 풀이하는데, 그 정도로 헷갈리는 점이 많다는 반증이지요. 나중에 제 생각이 변할지는 모르지만 현재까지의 제 생각은 그렇고요, 책을 더 주문했으니까 더 연구를 해보고, 제 의견을 정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어쩌면 투파가 맞다고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존이론이 완벽하지 못함은 이수님도 인정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투파이론을 하셨겠지요.

저는 사실 투파 이론 역시 한계가 있고, 완벽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0% 적중이 목표라면, 기존이론이든 투파이론이든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100% 적중은 사주학의 여러가지 학파의 이론은 물론이고 기타 여러 역술까지 모조리 합해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할 것입니다. 이론이 완전하지 않은데, 완전한 해석이 나올 수 없는 것이죠. 완전한 이론이있었다면 이미 역술이 그곳으로 귀일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할 뿐이죠. 철판신수는 육친의 띠를 알 수 있다고 하고, 월영도는 성씨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100% 적중이라면 철판신수와 월영도까지 통달하여야 겨우 근처까지 갔다고 할것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범위 안에서 적중할 뿐입니다. 다만 그 범위 안의 해석이 맞는 것으로 만족할 뿐일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기존이론이 불완전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혹시하는 마음에 투파를 연구할 생각도 있는데, 기대는 별로 하지 않고 있고요,

그래도 현재까지 나온 학설 가운데는 자연법이 제일 논리 정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수님께서 기존이론의 불완전함을 느끼시고, 투파라는 색다른 대안을 모색하셨는데, 그것을 탓할 수는 없고 오히려 치열한 학구열에 대해서 경하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기존이론의 불완전함을 느끼고 혹시나 해서 자연법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여 주십시오.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것에 100년 동안 머물러 있다고 해서 발전이 있겠습니까? 기존이론도 잘 맞지만 부족함은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보충하고자 다른 것을 찾을 뿐이지 기존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바가 아님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명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명리학의 효용을 부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계가 있다고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미두수, 기문둔갑, 육임, 육효 등등 기타 학술이 존재할 이유가 없겠지요.

한계를 지적했다고 해서 적중률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포기한 것이라고 속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계가 있음을 느낄 때 발전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적중율을 높이기 위해서 이것저것 궁리해 보는 사람이죠. 현재까지 나온 이론은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인한다면 어찌 학문을 하는 사람이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강약을 저 역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편이지만 조후 역시 중요하게 봅니다. 투파는 조후를 보지 않고 오로지 강약만 보거든요. 제 생각일 뿐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이수님의 학문을 하시는 태도와 열성과 방법론에 경의를 표하고 있고,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술토론이라서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맡게 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큰 성공을 거두시고 역학을 크게 발전시키실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비판적 토론이 너무나 유감스럽지만 더욱 나은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측면을 떠나서 기존이론을 말하는 한 사람이고 언제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추신: 포여명은 그 책에 자기 이름을 낸 것에 아마 책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이름이야 출판할 때 3권을 각각의 저자로 하기가 뭣하니까 편의상 통일시킨 것일 뿐이겠죠. 완전풀이 십간론에 보면 포여명 저라고 표지에는 되어 있지만, 속표지에 보면 포여명이 지니고 있는 중국 원서를 번역한 것이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출판사에서 분명하게 밝힌 것인데, 다만 속표지까지 잘 살피지 못한 것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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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부(抑扶)원리(原理)-권형(權衡)의 중화(中和)


3. 권형(權衡)의 중화(中和)


권형(權衡/저울질)은 상하의 輕重과 좌우의 兩神(端)에 의해 子水의 平을 기준으로 중화(中和)를 판단합니다.


가. 중화(中和)

위 中에서 和하는 氣를 힘(시간)으로 볼 때 平이며, 量(공간)으로 볼 때 均이며, 和(시공)로 볼 때 衡이 각각 됩니다.

星中과 子平이 5행의 生死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권형(權衡)하는데 星中은 하늘의 관점이며, 子平은 땅의 관점입니다.(星平海會 참조)

星平
서자평은 '연원 만금부'에서, "欲識五行生死訣 容易豈易凡人設 星中但以限爲憑 子平但以運爲訣 運行先布十二宮 看來何格墮時節 財官印綬與食神 當知輕重審分明"(5행의 생사가 訣함을 알고자 한다면, 용이하게 凡人에게 설명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星中은 限으로써 단지 빙자하게 되고, 子平은 運으로써 단지 訣하게 된다. 운행은 먼저 12궁으로 덮으니 재관인수와 식신의 어떤 格의 시절로 떨어져 오는지 살피고, 마땅히 輕重을 알아 명백히 나누어 심의한다)라고 星과 平으로 살핀다.

吉凶은 平으로 定해집니다.

平定
서자평은 '명통부'에서, "向官旺以成功 入格局而致貴 官印財食爲吉 平定遂良 煞傷梟敗爲凶 轉用爲福"(官이 旺을 향함으로서 성공하고 격국에 들어서 貴에 이른다. 관인재식은 吉이 되고 平이 定해져 良에 이른다. 살상효패는 吉이 되고 전환하여 用하므로 복이 된다)라고 平으로 定한다.

저울질(稱)은 平의 뜻을 用한 것입니다.

平意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변설'에서, "又如人世用秤稱物 以平爲準 稍有重輕 則不平焉 人生八字 爲先天之氣 譬則秤也 此用平之意也(또 예컨대 이 세상 사람들은 물건을 설명할 때 저울질을 사용한다. 이것은 平에 기준을 두어 초점으로 重輕의 平하지 않음을 잰다. 인생8자의 선천의 氣에 있어서도 비유하여 저울질을 한다. 이것이 平의 뜻을 用한 것이다)라고 平의 의미를 설명한다.

平은 均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相이라고 합니다.(아래 兩神, 相神 참조)

相均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月令旣得用神 則別位亦必有相 若君之有相 輔我用神者是也 如官逢財生 則官爲用 財爲相 財旺生官 則財爲用 官爲相 煞逢食制 則煞爲用 食爲相 然此乃一定之法 非通變之妙 要而言之 凡全局之格賴此一字而成者均 謂之相也"(월령에 이미 用神이 있으면 다른 곳에는 반드시 相神이 있다. 군화에 상화가 있어 용신이 나를 보필하는 것과 같다.

예컨데 관을 만나 재를 生하면 정관은 용신이고 재는 상신이다. 재왕생관이면 재성은 용신이 되고 정관은 상신이다. 살봉식제이면 칠살은 용신이고 식신은 상신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정한 것은 아니고 통변의 묘를 살려야 한다. 요약해서 말하면 전체의 격국은 이러한 하나의 글자에 의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均이다. 이것을 相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한다.


나. 경중(輕重)

상하의 輕重은 司令에 의해, 重은 장생,녹,왕이며, 輕은 묘고,여기입니다.(月令과 司令 참조) 12운성에 의해, 상하의 多少(量)를 비교하는 것이 경중(輕重)입니다.

較量
서자평은 '명통부'에서, "輕重較量"(경중은 量을 비교한다)라고 多少의 量을 비교한다.

理에 꿰어 있으니 體(지지)이고, 深에 通해 變하므로 비교하여 궁구하니 用(천간)입니다. 위 상하 체용으로 輕重을 논해 吉凶을 판단합니다.

理貫
서대승은 `연해자평 원리부`에서, "理貫人融者 妙其幽 察其顯也 其爲體也深能通變 較究玄微 其爲用也 論其輕重 原有原無 天理賦來 吉凶動靜 人生分定 否泰盈虧"(理가 꿰어져 사람으로 화합하는 것은 그 幽가 妙해져 그 顯을 察하니 그것이 體다. 深을 통변하여 玄微를 비교 궁구하니 그것이 用이다. 그 輕重을 논해 原이 있고 없으며, 하늘의 이치에서 부역이 와서 길흉동정하니 인생이 나누어 정해지니 비태영휴한다)라고 理貫으로 사람이 만들어지니 妙함에 體用이 있다.

12운성으로 量을 정하는데, 輕은 묘고,여기이며, 重은 장생,녹,왕입니다.

輕重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是故十干不論月令休囚 只要四柱有根 便能受官食神而當傷官七煞 長生祿旺 根之重者也 墓庫餘氣 根之輕者也 得一比肩 不如得支中一墓庫"(그러므로 10천간은 월령의 휴수만 논해서도 안된다. 사주에 뿌리가 있다면 지,관,식신을 받아들일 수 있고, 상관과 칠살을 감당해 낼 수 있다. 장생,녹,왕은 뿌리가 重한 것이고, 묘고,여기는 뿌리가 輕한 것이다. 한 개의 비견을 얻는 것이 지지 중에서 한 개의 묘고를 얻은 것보다 못하다)라고 輕(묘고,여기), 重(장생,녹,왕)을 설명한다.

吉凶은 輕重의 量으로 판단하는데, 월령에서 用한 神이 기준이 됩니다.

本末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八字用神 專憑月令 月無用神 始尋格局 月令本也 外格末也 今人不知輕重 拘泥格局 執假失眞"(팔자의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 의존한다. 월령에 용신이 없을 때 비로소 격국을 찾는다. 월령은 本이고, 외격은 末이다. 요즘 사람들은 輕重을 모르고 격국에만 얽매어 가짜를 집착하고 진짜를 멀리한다)라고 본말로 설명한다.


다. 兩神

좌우 兩神의 端은 공간으로 볼 때 태과와 불급이고, 시간으로 볼 때 强과 弱이며, 시공으로 볼 때 喜와 忌로 각각 구분합니다. 위 兩神을 설정하는 이유는 지구의 軸이 지축(主)과 경축(命)의 2가지로 구분되는 이유와 전혀 동일한 원리입니다.(神의 宇宙軸 참조)

日은 主가 되며, 月은 命의 使가 됩니다.

命主
귀곡자는 '귀곡자찬'에서, "大抵年爲本則日爲主 月爲使則時爲輔 年爲日之本日爲命主 如君之有臣 父之有子 夫之有歸 國之有王 是胎月生時爲主本之扶援 欲得以序相承順也"(대저 년은 本이 되고 일은 主가 되며, 월은 使가 되며 시는 輔가 된다. 년은 일의 본이고 日은 命의 主이다. 예를 들어 군은 신이 있고, 아비는 아들이 있고, 남편은 아내가 있고, 나라는 왕이 있는 것처럼, 태월생시는 주본을 돕고 원조하니, 이로써 순서를 얻어 서로 이어 순하고자 한다)라고 日은 命의 主가 된다.

자평지법은 일간의 主와 제강 월령의 本을 비교합니다.

子平格
서대승은 '연해 보법'에서, "子平一法 專以日干爲主 而取提綱 所藏之物爲令 次及年月時支以表其端 凡格用月令提綱 勿於傍求年日時爲格 今人多不知基法 於此百法百失"(자평법의 하나는 오로지 일간이 主가 되고, 제강을 취해 소장의 物이 令으로 하며, 다음으로 년월시의 支는 그 端의 表가 된다. 무릇 격용 월령 제강은 년일시를 구하는 格이 되어 곁이 되지 않는다.

지금 많은 사람이 기초적인 법을 알지 못하니 백가지 법으로 백가지를 잃는다)라고 자평법의 端을 설명한다.

兩神을 공간적으로 볼 때, 태과하면 극제하고, 불급하면 생부합니다.

過不及
서자평은 '연원 벽연부'에서, "太過無剋制者貧賤 不及無生扶者夭折 宜向之而運背 決之貧賤 宜背之而運向 斷之困窮"(태과한데 극제가 없으면 빈천하고, 불급한데 생부가 없으면 요절하니, 마땅히 運背의 向으로 빈천을 결정하고, 運向의 背로 곤궁을 판단한다)라고 태과하면 극제해야하고, 불급하면 생부해야 한다.

兩神을 시간적으로 볼 때, 生月에서 取用하여 强弱의 소상함을 압니다.

深淺强弱
서자평은 '연원 계선편'에서, "取用憑於生月 當推究於淺深 發覺在於日時 要消詳於强弱"(取用은 生月에 기대고, 마땅히 淺深을 추구한다. 깨달음은 일시에 있고, 强弱으로 소상함을 요한다)라고 생월은 淺深하고, 일시는 强弱이다.

月上과 日時로 강약의 소상함을 알게 합니다.

月日
서대승은 '연해자평'에서, "看子平之法 專論財官 以月上財官爲緊要 發覺在於日時 要消詳於强弱"(자평의 법을 보는 것은 오로지 재관으로 논한다. 월상에는 재관이 긴요하고, 일시에는 깨우침으로 발하니, 강약의 소상함을 요하다)라고 월상과 일시의 강약으로 소상히 안다.

兩神은 輕重의 근원에서, 근본이 서로 통하여 相得(中和)함을 환영합니다.

兩神
경도는 `적천수에서`, "何處起根源 流向何方往 機括此中求 知來亦知去"(어느 곳에서 근원이 일어나고,흘러가는 向이 어느 方으로 가는지, 機가 묶여 있는 中에서 구한다. 그래서 오는 것을 알고 가는 것을 안다)라고 輕重을 운기적으로 설명하고...(운기학 참조)

또한, "兩神本相通 中間有關隔 此關若能通 到處歡相得"(兩神은 本에서 서로 통한다. 중간에는 사이가 닫혀있는데 이 닫친 것이 만약에 서로 통할수 있다면 그 곳에서 相得하는 것을 환영한다)라고 相得 즉 중화를 위한 兩神을 설명합니다.

먼저 월령에서 神을 用하여 命을 定한 후, 일간을 主로 하는 神과 권형(權衡)하면 일정한 이치가 드러납니다.

先觀用神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凡看命者 先觀用神之何屬 然後或順或逆 以年月日時遂干遂支 參配而權衡之 則富貴貧賤自有一定之理也 不向月令求用神 而妄取用神者 執假失眞也"(무릇 명학자는 먼저 용신이 어디 속하는지 살핀 후에 순용인지 역용인지 살핀다. 그런 후에 연월일시의 간지를 배합하여 권형(權衡)하면 부귀빈천의 일정한 이치가 스스로 드러난다. 용신에서 월령을 구하지 않고 망령되니 용신을 취하면 거짓에 빠져 진실을 잃게 된다)라고 용신을 세우고 나서 권형(權衡)한다.

200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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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식과 억부원리

요즈음은 우리 아들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굴 닮아 가지고 워낙 수학을 잘하니(?), 누군가 옆에서 함께 수학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한 데, 과외비를 감당할 능력이 그렇고... 그래서 방학을 이용하여 아빠와 아들이 함께 중1 수학을 합니다. 그런데 울 아들 왈. 학교 선생님보다 아빠가 더 쉽게 가르치는 것 같데요. ㅋㅋㅋ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수학도 내 눈에는 역의 우주원리로 보입디다.^^

간단히 느낀 점을 정리하면...
상수학은 象(공간)과 數(시간)로 합일된 학문입니다. 즉 수학 역시 象과 數로 크게 구분됩니다. 象의 학문이 기하학으로 2학기에 배우고, 數의 학문이 수리학으로 1학기에 배웁니다. 數라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논리를 표현하는 부호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에 존재하는 1, 2, 3, 4... 등은 실제로 존재하므로 자연수라고 부르며, 양이 존재하면 음이 존재하듯이 그 내면에 반대로 흐르는 흐름이 있는데 이것이 음수로 정수라고 부릅니다. 또 위 자연數 사이(間)에도 수의 이치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有理數라고 하며, 또 그 내면에 존재하는 數를 無理數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數이므로 實數라고 하며 또 그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 虛數가 있습니다. 數의 체계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數를 푸는 가장 큰 원리가 = 等式입니다.
즉 균형을 살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x=5 즉 3+x와 5는 서로 균형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위와 같은 균형의 등식은 저울질(權衡)로서 x의 미지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즉 모자라면 扶(+)하고 남으면 抑(-)하는 균형의 저울질로서 x=2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등식 원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주 중심인 북두7성이 권형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명리마당 억부원리 참조 2000.6.)

그런데 위 등식의 저울질이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상대적인 平의 균형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생명은 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易에서 생명은 위 水의 平에서 비롯되고 합니다. 즉 子水의 平은 생명력이며, 우리는 위 平의 정도를 판단함으로서 運의 생명력인 길흉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 水의 平이 가장 완전하게 이루어진 곳은 지구에서 어디일까요? 바로 바다(海)입니다. 즉 바다(海)의 平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아프리카 적도(火)의 바다에서 생명이 기원되었다는 서양학문과 일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모여있는 바다(淵海)에서 子水의 平을 다루는 학문이 연해자평, 하늘(天)의 물방울(滴) 중심(髓)을 다루는 학문이 적천수라는 원저자의 의도를 살필 수 있습니다.

사실 위 子水의 平이 적용되는 곳은 실로 엄청납니다.
平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하게 왕복운동을 하는 시계추는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 줍니다. 건물을 건축할 때 水로서 平을 잡아 그 높이를 맞추어 건물의 균형을 잡습니다. 위 平을 못 잡으면 균형이 깨져 폭싹 합니다. 군대에서 대포를 사격할 때도 수포의 균형을 이용합니다. 정확한 사격을 하면 위 수포가 양 갈래로 쫙 갈라집니다.(안초 군대 주특기) 서양의술에서 생명이 살아있는지 판단하는 심전도 역시 위 平의 움직임으로 판단합니다. 주역의 爻에서 未光의 이유를 공자는 아직 平이 이루어지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정역에서도 생명은 水土의 平에서 비롯되었다고 적시합니다. 한의학 역시 불급하면 扶하고, 태과하면 抑하는 平의 원리로서 한방 합니다. 6임 역시 高하면 扶하고 低하면 擧함으로써 점단하게 됩니다. 사랑도 결국은 平입니다. 平을 이루지 못한 부부사랑은 깨집니다. 차라리 나처럼 從이 되던지...

그런데 지금의 명리학은 이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균형을 맞추는 平의 抑扶가 아니라, 5개중 1개를 선택하는 助의 抑扶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위 선택의 기준도 자기 멋대로 입니다.(실제없음) 또한 자기 멋대로 억부하는 것이 명리학의 묘미(다양성)라는 사람도 있으니, 이것은 반대로 명리학은 이헌령 비헌령의 학문이라는 얘기입니다. 쩝!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위 둘 중 하나는 짜가입니다. 두가지 모두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짜가는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위 助의 抑扶는 청말, 대만의 근대에 이르러 적천수를 주해한 사람들에 의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전을 위 平의 각도에서 읽지 못하고, 助의 각도에서 해석함으로서(원리 미흡) 이런 학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멋대로 흩어지면서 오늘날 전해오게 된 것입니다. 한번 平의 각도에서 원전을 읽어보세요. 핵심부분일수록 얼마나 지들 멋대로 논리 비약을 하고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반대로 연해자평, 적천수, 연해자평 등이 얼마나 일관성 있는지도 보일 것입니다. 학문이란 몇 사람에 의해 진리를 향해 가기도 하지만, 또 몇 사람에 의해 짜가를 향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진리를 향해 갈 것입니다.(사필귀정)

위 근거 없는 助의 抑扶는 현재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일간에서 하나는 격국에서 助의 抑扶를 하는 것입니다.(명리마당 용신취용법 참조 1999.6.) 이렇게 2가지가 공존할 수 있은 이유가 바로 원래 근본은 平의 抑扶였기 때문입니다. 즉 平의 抑扶는 兩神 즉 일간과 격국에 대한 神의 균형입니다. 참고로 이것은 2개의 지축 원리와 전혀 동일합니다.(역학원리마당 神의 우주축 참조) 그런데 위 助의 抑扶는 균형이 아니므로 하나의 神으로만 억부를 합니다. 참고로 적천수에서 抑扶는 一端으로 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큰 눈으로 보면, 결국 平의 억부는 위 2가지 助의 抑扶를 포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平의 抑扶는 易의 우주원리인 만큼 쉽고 단순합니다. 그래서 명료합니다. 兩神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만큼, 일간기분으로 상대에 비해 弱하면 신약, 상대보다 强하면 신강입니다.(강약은 상대개념임) 또 그 平의 균형을 잴 수 없을 정도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從格, 平을 이루고 있는 상태가 正格입니다.(두개의 물망울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 표면장력으로 더욱 움츠리지만 그 균형이 깨지면 하나로 從하는 이치임) 모든 용어는 위 平을 기본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약,신강과 종격,정격 등 상대적 개념은 흑백논리를 말하므로 아주 단순 명료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견의 판단이 있을 수 없을 수 없습니다. 또한 털끝 만한 차이도 강약을 판별할(저울질) 수 있게 되므로 미세한 길흉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명식에서 강약의 판단이 다를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 희신, 기신이 다르게 판단될 수 없으며, 이것은 결국 동일한 길흉판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가 뚫리면 나머지는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그 핵심이 비뚤어지면 나머지는 짜 맞추게 됩니다. 참고로 위 平의 抑扶에는 결국 數의 等式原理가 존재하는 만큼 數의 이치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抑扶를 단순하게 알고리즘화하여 프로그램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것도 아주 쉽고 단순하게...

그런데 이런 걸 꼭 이렇게 얘기해 주어야 하나... 화두를 던져주면 스스로 이런 결론을 이끌어 내실 분들도 계실 텐데... 참으로 아쉽군요. 하기야 갈켜 줘도 듣지 않으려 하고, 또 짜가를 쫒을 망정 유명해지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이니(명리학자의 개그맨化)...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학문은 均衡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허기야 체용이 뭔지도 무르면서 체용 체용하는데...

중요한 얘기인 만큼 잘 쓰려고 했는데, 요즘 집중력이 약해져 두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는 내가 97년 가입하면서 써야 했던 것인데... 그때는 감히 화두를 꺼내지 못하다가, 요즈음 이런 얘기를 알 듯 모를 듯 조금씩 씁니다. 한마디로 받아드릴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갈켜 주고 욕먹을 수는 없기에... 글씨~ 다음 글은 또 몇 년이 흘러야 할까...

2002년 8월 4일 안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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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와 상득


[중화]

中和(중화)란 음양의 힘이 平하여 和하는 힘을 말합니다.
중(中)이란 중(中)의 본(本)을 말하고, 화(和)란 절(節)이 평(平)하는 것입니다.

中和(중화)
중용에서,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平和
기백은 `황제내경 지진요대론`에서, "至而和則平 至而甚則病 至而反者病 至而不至者病 未至而至者病 陰陽易者危"(이르러 和하는 것이 平이고, 이르러 甚하면 病이 되고, 이르러 反하면 病이 되고, 이르러도 이르지 않은 것은 病이 되고, 이르러지 않았는데 이른 것은 病이 된다. 음양이 바뀌면 危합니다)라고 和한 것이 즉 平이라고 한다.


[상득]

平하는 것을 相得이라고 하여 和라고 하며, 不平한 것을 不相得이라고 하여 病이라고 합니다. 相得이라는 中和의 표현을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相得和病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5운행대론`에서, "上下相遇 寒暑相臨 相得則和 不相得則病"(上下가 서로 만나고 寒暑가 서로 임해서, 相得하면 和이고 不相得하면 病이다)라고 遇(상하),臨(한서)의 相得失이 和와 病이라고 한다.

자평진전에서는 위 相得의 和를 純이라고 표현하며, 위 不相得의 病을 雜이라고 표현합니다.

中純雜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用神旣有變化 則變化之中 遂分純雜 純者吉 雜者凶"(용신은 변화하는데, 변화하는 中은 純雜으로 구분된다. 純하면 길하고, 雜하면 흉하다)라고 中의 순잡을 설명한다.

相得純
또한 "何謂純 互用而兩相得者是也 如辛生寅月 甲丙竝秀 財與官相生 兩相得也 戊生申月 庚壬竝秀 財與食相生 兩相得也 癸生未月 乙己竝秀 煞與食相剋 相剋而得其當 亦兩相得也 如此之類 皆用神之純者"(무엇을 純이라 하는가. 互用하여 두가지가 相得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데 辛生寅月에 甲과 丙이 함께 투간하면 정재와 정관이 서로 상생하여 상득이 된다. 戊生申月에 庚과 壬이 함께 투출하면 편재와 식신이 상생하여 상득이 된다. 癸生未月에 乙과 己가 함께 투간하면 칠살과 식신이 상극하는데 상극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역시 상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류를 용신이 純하다고 한다)라고 純을 설명한다.

2000-10-23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월률 분야1-문답


강호문답 660번

월률에 대해서 질문 글쓴이: **** 날짜: 2005.10.14. 11:55:07

안초님 쓰신 운기자평 책에 보면 월령의 당령과 사령을 구분하면서 둘을 구분하여 공히 적용하는 곳은 이곳 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요문은 월령의 당령, 아부태산은 월령의 사령만 다룬다고 하고, 임철초와 서락오는 월지의 사령만을 다루면서 격처럼 취급하는데 원전이나 원리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주 충격적인 말이라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언어만 구분해서 제시해 놓았지그것들이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월률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구입해 읽는 독자로서 좀 당혹스럽고 해서 질문을 합니다.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4. 13:53:15

핵심을 언급하셨습니다.

"월령의 당령과 사령을 구분하면서 둘을 구분하여 공히 적용하는 곳은 지지닷컴 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 글을 쓰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밝힌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안 써주면 일반 독자는 이것이 여기에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퍼왔는지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그 의의를 밝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동양학은 뭘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물림해 오는 겁니다. 그런데 위 대물림이 본래 오의 그대로 전해 질리가 없고 당연히 끊어지고 누락되고 와전되며 전해 지게 마련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도 여기저기서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포장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非人은 와전시킨다고 하였습니다.

非人不傳(비인부전)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其人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非人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天寶(진리)를 泄(와전)한다.

그렇다면 누가 와전시키겠습니까. 당연히 후학에 영향을 끼치는 명성을 얻은 사람이지 결코 필부가 와전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도 뭘 얼마나 알고 했는지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헛된 거짓을 쫒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실제로 각자의 주장이 다른데 모두 진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우주는 크게 대우주와 소우주로 구분됩니다. 나를 기점으로 밖은 대우주고 안은 소우주라고 보면됩니다. 그런데 위 대우주 소우주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응하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우주의 규칙적 움직임에 따라 소우주 역시 감응하므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학, 유전공학으로 반론하지 못하도록 입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인정도 안하겠지만...

따라서 운명을 판단하려면 당연히 태어나는 시점인 命을 기준으로 위 대우주와 소우주의 감응을 살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數의 이치로는 대우주의 數가 5이고, 소우주의 數가 3이며, 크게 이치로는 5행3극의 음양이 존재하는 겁니다.

운기자평 형기에 보면...

3多少5盛衰(3다소5성쇠)
구유구는 '황제내경 소문 천원기대론'에서, "陰陽之氣 各有多少 故曰三陽三陰也. 形有盛衰 謂五行之治 各有太過不及也"(음양의 氣는 각기 多少가 있기 때문에 3양3음이라고 말합니다. 形에 盛衰가 있다는 것은 5행의 다스림을 일러 각기 태과불급이 있습니다)라고 기(氣)의 다소(多少)와 형(形)의 성쇠(盛衰)를 설명한다.

참고로 위 문구는 운기학의 핵심일 뿐 아니라 한의학의 최고 핵심이며 당연히 자평학에서도 최고의 핵심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자평학 역시 월령이라는 命을 기점으로 5당령와 3사령으로 구분되지 않으면 안되고, 흐미하게나마 연해자평과 삼명통회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운기자평에서 위 문구 아래를 보면 그 흔적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언급하신 유명하신 분들이 위 원리에 입각하여 학문을 펼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살펴보면 지엽적인 자신의 유권해석에 불과하며 아시다시피 이것은 각 파를 이루며 지금까지 대물림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같이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는 혼탁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은 생각해도 안되는 불문율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부터 고민하고 연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월률은 소우주 즉 위에서 3사령의 운동에 해당됩니다. 좀 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중화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셔도 되겠습니다. 즉 중화를 본체로 본다면 율려는 그 작용을 말합니다.

제 글이 상당히 불친절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5행이 무엇인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설명해서 설득시킬 수 있습니까. 이 학문은 스스로 알려고 '절실'해서 구하는 자가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宗學입니다.(窮卽通) 또 알아들을 수 없는 자가 알아듣는 척하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와전시킵니다. 저 역시 알아들 수 없는 자에게 침 튀겨 얘기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간혹 알아듣는 자 있다고 해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저를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일부선생도 정역에서 전할 자 있으면 가르치고 전할 자 없으면 홀로 지킨다고 한 모양입니다.

2005.10.14. 안초


re: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 날짜: 2005.10.14. 15:47:44

안초님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예를 들어 병화가 인월에 생겨나면 월령은 오행으로 따져 목이고 그래서 목이 당령하는 것이고 이는 대우주(나를 나타내는 병화의 바깥 상태)에 관한 일이다. 반드시 소우주(나, 병화)가 그 규칙적 움직임의 영향을 받겠지만(감응한다) 반드시 병화의 내면 상태가 월령이 당령한 목이 되란 법은 없다. 병화(소우주)의 내면상태는 월령이 사령한 것이 지배한다. 월령이 사령한 것은 월률에 따라 그 기간에 나타나는 인목 속의 무, 병, 갑 중의 하나로 정해진다. 만일 월률의 기간이 무토에 해당하면 무토가 사령한 것으로 본다. 당령은 形의 盛衰를 말하니까 병화는 인월 당령 목 오행에 盛한다 할 것이고 사령은 氣의 多少를 말하니까 병화는 인월 사령 戊土에 기가 빠져 氣가 적다고 할 것이다. 병화는 대우주-소우주의 감응의 결과, 외면적(또는 시기적)으로는 왕성한데 내면적(또는 공간적)으로는 氣가 부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힘은 좋은데 체격은 왜소하다 아니면 체격은 좋은데 힘은 별로다. 뭐 이런 식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인지요?


re: re: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4. 17:01:52

그렇습니다.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첨언하면 월령에 의해 결정되는 대우주 당령(토왕용사)은 盛하는 시기가 각각 72일로(5행/장요문 참조) 용신이 성립 됩니다. 그리고 소우주 사령(사천재천)은 율려의 원리인 월률분야로 소우주의 지장간(10간)을 결정(4지지/아부태산 참조)하여 일간에 통하는 인신이 성립됩니다. 위와같이 神의 개념이 도입되는 이유는 우리 학문은 神이 明(밝히)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위 두 神의 권형(저울질/균형/태과불급/한의학에서는 기구와 인영)으로 대우주와 소우주의 감응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것을 중화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즉 대우주는 形의 성쇠, 소우주는 氣의 다소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중화를 판단하는 이유는 일종의 자신을 육성하는 에너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에너지가 강하면 吉이고 에너지가 약하면 凶 또는 疾病鬱입니다.

中和(중화)
중용에서,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참고로 위 두 神에 함께 영향을 미치는 神을 자평진전에서는 相神이라고 해서 6신으로 특별히 다루고 있습니다. 위 권형의 원리는 제가 강의할 때 원전 뿐 아니라 천문의 북두7성과 과학의 홀로그램으로 입증하고 있으며, 한의학 또한 운기학을 원리로 하는 만큼 위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즉 한의학과 자평학은 동일한 원리를 사용하며 또 동일한 우주 아래의 동양학인 만큼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위 이치가 존재하는지 스스로 고민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운기자평에 보면 임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연히 응용학 입문시기에는 위와같은 이치로서 고민해햐 하며 임상은 그 다음 문제일 뿐입니다. 그리고 고전 역시 그 어디에도 임상은 없습니다. 다만 임상은 근대에 들어와 임철조가 주석을 붙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치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형이상학의 이치일 뿐입니다. 다음은 이것이 정말 임상에 적용했을 때 실제로 그런가 아닌가의 형이하학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운명(형이상)에 적용하는 것 보다는 질병(형이하)에 적용하는 것이 훨씬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명보다 질병을 먼저 강의하고 있으며 또 훨씬 쉽게 떨어집니다.

위 원리를 끌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원리 자체는 쉽고 단순합니다.
만약 우주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이론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대물림된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해봐야 그런데 이것을 다시 또 대물림하는 것이 우리 동양학의 일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임상을 빌미로 스스로 이론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이런 이론은 우주와 전혀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동양학이 그렇게 형성될 수도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10.14. 안초


re: re: re: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 날짜: 2005.10.14. 18:10:15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자구 의문이 더 생겨 몇 가지 더 물어보고자 합니다. 안초님 책을 보면 용신과 인신을 구분하십니다. '적천수'의 “月令提綱之府 譬之宅也 人元用事之神 宅之定向也" 구절이 용신을 다루는 부분에 적혀 있고 해서 人元用事之神이 용신을 말하는 것처럼 이해됩니다.

아래의 안초님 글을 보면 용신이 대우주 당령으로 정해지는 것이고 인신은 소우주 사령으로 월지 지장간에서 월률에따라 정해지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윗 글의 인원용사지신에서 인원을 언급하는 것은 월지 지장간에서의 인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인신을 말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안초님 글대로 만약 월령 당령으로 용신을 정한다면 용신은 오행(사계절+토: 환절기)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월지 지장간의 인원과는 무관한 것이 될 것같은데 그러면 용신은 오행으로는 목화토금수 중 하나에만 해당할 것이라서 '용신다자 성정불상'과는 사뭇 배치되는 것 아닌지요?

자평진전에서 상신은 용신에 대한 성패를 결정하는 신으로 용신에 대한 일종의 희신 또는 보조신으로 역할을 하는 것같은데 안초님 말씀은 상신을 인신에 대해서도 그 관계를 살펴야 한다고 하여 당혹스럽고 그런 구절이 자평진전에 있는지 의아합니다.


非人不傳(월령/당령,사령)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4. 18:58:19

당연히 의문의 의문이 꼬리를 물겠지요.
대우주 소우주 개념의 神은 반드시 존재하며 이것은 연해자평과 삼명통회에서 그 흔적을 찾으 수 있습니다. 특히 연해자평에는 같은 문단에 함께 위 당령(5행), 사령(10간)이 함께 적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를 논한 사람은 송나라 이후 그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제기 하는 겁니다.

대우주의 당령, 소우주의 사령 이것을 통합한 개념이 월령입니다. 그렇다면 위 월령의 神은 당근 천지에 감응하는 神이어야 하므로 천원, 지원, 인원인 통합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적천수에서 월령은 宅과 같고 신은 向과 같다고 통합적으로 설명했다고 봅니다.

위에서 적천수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위와같이 통합적인 개념인 월령을 사용했기 때문이며, 결국 저 역시 용어를 당령 사령으로 구분하고 통합적인 용어를 월령으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용신다자 성정불상은 뭔가 착각하시고 계십니다.
대우주와의 감응을 판단하기 위해서 용신을 구하는 만큼 용신은 오로지 월령의 당령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神이 통해 있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오로지 월령(당령,사령의 통합개념)에서 용신을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시적으로 가용을 잡을 수 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의 성정은 당연히 고정될 수 없습니다. 즉 '용신다자 성정불상'이 되는 것입니다. 용신을 희신개념으로 본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희신 기신은 일단으로 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용신 인신에 의한 본주의 균형에 의해 구해야 합니다.

主本(주본)
서자평은 ‘연해자평’에서, "欲知貴賤 先觀月令乃提綱 次斷吉凶 專用日干爲主本 三元要成格局 四柱喜見財官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귀천을 알려면 먼저 월령 및 제강을 관찰하여, 다음 오로지 用神과 일간이 主와 本이 되어 길흉을 판단한다. 3원은 격국을 이룸을 요하며, 사주는 재관을 보는 것을 기뻐한다.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며, 일주는 건왕한 것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먼저 월령을 오로지 용(用)하여 본(本)이 되고, 일주는 주(主)가 된다.

體用精神(체용정신)
경도는 ‘적천수’에서, “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 得其宜 人有精神 不可以一偏求也 要在損之益之 得其中”(道에는 체용이 있어 1端으로 論해서는 안 된다. 扶와 抑을 필요로 해서 그 마땅함을 얻는다. 人에는 정신이 있어 1偏으로 求해서는 안 된다. 損과 益을 필요로 해서 그 中을 얻는다)라고 체용과 정신을 설명한다.

자평진전에서는 위 두가지로 희기신을 구한다는 말은 없고, 단지 위 두가지를 함축한 상신이라는 개념만 존재합니다. 만약 저평진전이 위 두 고전에 반한다면 그것은 이미 고전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며, 또 명백하지 않은한 위 고전에 반하게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2005.10.14. 안초


사령과 인신(용신이 아님)의 관계 글쓴이: **** 날짜: 2005.10.15. 00:53:55

답변을 읽고나서 제 생각이 좀 더 명료해진 것같습니다. 답변에 감사합니다. 책 내용과 여기에 쓴 안초님 글들을 읽고 안초님 생각이 무엇인지 제 나름대로 파악한 것이 안초님의 원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저는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개념을 포함하여.... 그중 하나는 혹여 싶어서 확인차 더 묻고자 하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묻고자 합니다. 비인부전을 주장하시는데 귀찮게 하는 것같아 죄송합니다. 다만, 안초님 책을 구입해서 보다보니 독자가 저자의 생각을 그냥 읽어서 터득할 수없게 책의 내용을 적어나간 것같아 천상 독자가 신경써서 저자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추리를 하여야 하고 암호해독하듯이 애를 써서 읽어야 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이해하지 못할 소지가 크기에 천상 의문점을 저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어 그러는 것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안초님 글은 '용신다자'를 진신이 아닌 가신에 해당하는 자로서 그 가신이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변한다는 뜻으로 多者(많음)을 말하는 것같습니다. 多者(많음)을 가신(하나)가 상황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그냥 하나가(진신이든 가신이든) 아니라 여러개가 어느 한 상황이나 한 싯점에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많음(多者)에 대한 보통의 상식적인 해석일 것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안초님 해석대로라면 用神多者가 아니라 用神變者 라고 표현했어야 오해의 소지도 없고 더 맞는 것 아닐까 싶어서 입니다.

둘째, 월령을 당령과 사령의 통합개념으로 보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통합개념에서 월령이 용신을 정한다고 할 때 월령 사령에 의한 용신 개념과 안초님이 쓴 글에서 보듯 소우주 사령에 의한 월률에 따른 지장간 인원의 인신 개념이 혼동스럽게 다가옵니다. 운기자평 책에서 인신은 적천수의 생시귀숙지지(時地)에 연결시켜 인원용사지신으로 말하는 것같은데 앞에서의 안초님 글은 월지 지장간에서의 인원과 연계해서 인신을 말하는 것같아 보여 안초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용신 개념이 월령의 당령과 사령을 포괄하는 통합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인신 개념까지 포함한다고 보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연장에서 자평진전의 상신 개념이 용신과 인신을 둘 다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용신에만 국한된 것인지 좀 논의해 봐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자평진전의 상신개념을 용신에 대한 희신개념(격의 성패 결정)으로 이해하기에 좀 의아해서 묻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병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5. 08:45:59

네, 그렇습니다.
제가 보아도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진리의 습득을 의미하자는 아닐 것입니다. 이 학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의원리라는 우주변화원리 개념을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동양학 전반에 흐르는 큰 흐름을 접하지 못하신 분은 결국 지엽적인 자기 나름대로의 인지만 하게 될 뿐입니다.

운기자평은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당연히 생각하고 꿈틀거리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며 동양학이 또한 그렇습니다. 일반 학문처럼 아무 생각없이 따라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은 아닙니다. 동양학은 이렇게 꿈틀거려서 얻어야 자기 것이 되며 이렇게 얻은 우주변화원리에 부합된 이치는 나아가 만사만물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운기자평의 이치 또한 인체 인사 모두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의 불찰로 운기자평은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이해하지 못할 소지는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전체의 큰 틀을 벋어날 수는 없습니다. 운기자평 이후에 임상 한 두 분만 해 보면 위 일관된 큰 틀은 바로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도록 했는가 하면 위와같이 방황과 번뇌 속에서 얻어야만 비로서 우주에 부합된 진정한 이치를 판단할 수 있고, 나아가 통변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용신다자

고전은 지금의 우리 사고방식 내지 습관으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고전은 당연히 원저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석이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이 와전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變을 써야 오해의 소지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학을 아는 자라면 變을 쓰지는 못합니다. 變이란 氣입장에서 바라 볼 때 極에서 흩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化는 모여서 生함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동양학 용어로 여기에 함부로 사용될 수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化變神聖(화변신성)
구유구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物生謂之化 物極謂之變 陰陽不測謂之神 神用無方謂之聖"(物이 生함을 化라 하고, 物이 極함을 變이라 한다.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神이라 하고, 神을 용함에 方이 없음을 聖이라 합니다)라고 化變神聖을 정명한다.

2. 사령

율려는 월과 시(생시귀숙지지)가 화합하는 움직임이며, 사령은 그 명령을 말합니다. 즉 기본 바탕은 월시의 움직임이지만 그 명령은 월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설명드리면 무병갑은 월시에 의한 율려의 움직에서 나온 것이지만 병인지 갑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령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3. 용신, 희신

흔히들 용신을 돕는 것은 희신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리학 고전 어느 곳에서도 없는 와전된 말이고, 스스로도 뭔가 모순된 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대물림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용신과 희신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개념입니다. 용신은 감응에 의한 체용개념이고, 희신은 권형에 의한 억부개념입니다. 다시말해서 용신은 천지상하의 개념이고, 희신은 일월좌우의 개념입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명리학을 평생을 공부했어도 입문조차 못한 것입니다. 저 역시 이것만 인식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명리학 아니 동양학 전반의 가장 큰 문제는 동양학 전반에 흐르는 도도한 이치의 흐름이 분명히 있건만, 이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동양학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임상을 놓고 여기저기서 자기 느낀대로 각자 만든 이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위 우주가 변화하는 이치와는 더욱더 유리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동양학의 오의를 배운다고 하지, 실제로는 여기저기서 말하는 각자의 생각을 듣을 뿐 입니다. 인터넷 다녀 보시면 아시겠지만, 임상 하나 써 놓고 각자 생각을 듣다가 안 되면 다수결로 진리를 정합니다. 제가 처음 이 학문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다수결로 진리가 정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오의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지, 자기 각자의 느낌을 듣고자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이것으로 인해 아는 것이 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2005.10.15. 안초


안초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려합니다. 글쓴이: **** 날짜: 2005.10.15. 14:08:25

많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다 좋고요, 그것들 하나하나는 나중에 깊이 있게 논해봐야 할 것같으니 여기서는 그냥 제가 질문한 것에 한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바로 해야 할 것같아서 재차 구체적 설명을 곁들여 질문하고자 합니다.

1. 안초님믜 말에서 의미하는 것은 용신다자에서 많음의 의미가 고정된 사주 명식에서 용신이 여러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식에 하나의 가신(제대로 된 용신으로서 진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게 상황이나 운의 변함에 따라 다른 것으로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로 저는 이해를 하고있는데 제가 옳게 이해하는지를 묻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이런 식의 의미라면 통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많음의 글자 뜻 보다는 바뀐는 의미의 글자를 쓰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뀐다는 뜻의 글자를 저는 생각이 부족해서 그냥 變을 택했는데 만일 變이 되다면 용신에 해당하는 오행이 극에 달해 다른 것으로 바뀌는 의미가 될 것이니 부적합할 듯 합니다. 제가 말하는 바뀐다는 의미는 어느 한 오행(예, 화)을 가신으로서 용신을 취하다가 상황이나 운의 변화에 따라 다른 오행(예, 금)인 가신을 용신으로 택하다는 교체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용신다자에서 많음(many)이 교체(choose in turn) 를 의미할 수 있는지 묻는 것니다. 물론 變(change)은 부적합한 글자라는 것 인정합니다.

2. 안초님 글을 보면 용신개념과 인신개념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것같지 않은데 또 어느 측면이나 책의 내용 편제를 보면 명료하게 구분하는 것같아 정확하게 어떤 것이 안초님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신개념(소우주 사령)과 비교되는 용신 개념은 월령 당령이 아닌 월령 사령에 의한 용신을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안초님 답변 내용은 이에 대한 것이 아닌 것같아 재차 질문을 해봅니다. 제가 질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 것같습니다. 아니면 제가 이와 관련해서 뒤틀린 고정관념이나 개념몰이해가 앞서 있기에 질문도 그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 용신과 희신 개념의 구분은 이해합니다. 소위 희신이 용신에 대한 보조 역할를 하는 신이 아니고 일간에 대한 억부균형을 잡는데 필요한 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계시다는 것 말입니다. 저는 질문을 상신에 대해 하는 것이고 과연 상신은 용신에 대한 보조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때 용신이 월령 당령과 월령 사령 둘 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평진전에서 언급하고 있는지(반드시 명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문맥속에서 암묵적으로라도)를 묻는 것입니다.


일관된 규칙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7. 01:52:36

부산 출장강의 때문에 늦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전제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대우주와 소우주는 감응하는데, 대우주에는 일관된 규칙이 있고 소우주 또한 위 규칙에 준하므로 우리는 미래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대우주와 소우주가 감응하는 일관된 규칙을 서술한 것이 고전이어야 합니다. 만약 위 일관된 규칙에 반하는 고전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위 고전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학자 대부분은 위 고전이 각각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하는데, 이것은 위 일관된 규칙이 없음을 스스로 자인하여 이 학문 존립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새로이 시작하는 학자는 반드시 고전에서 위 일관된 규칙을 찾아야 할 것이며, 위 일관된 규칙에 반한 주장은 제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용신다자

제 생각과 동일하게 이해하시고 계시다고 보입니다. 단지 저는 위 적천수의 용신다자 용어가 지금의 학자가 주장하는 희신 하나 고르는 용신개념과는 정면으로 반함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2. 용신과 인신

당령에 근거한 5행의 神이 용신이고, 사령에 근거한 지장(10)간의 神이 인신인데 왜 명료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연해자평에 명백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해자평 이후 학자들이 명료하게 서술하지 못하였기에 제가 다시 거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3. 상신

그렇다면 자평진전에 상신이 월령 단독으로 결정된다는 말은 있습니까. 그냥 남들이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고정관념이 되어 아는 것이 병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자평진전에는 위 상신을 6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6신 개념 자체가 월령이나 일간 단독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전제한 일관된 규칙에도 반할 수 없으므로 연해자평과 적천수에 명시된 문구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글자에도 이미 서로상(相)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때 상신은 월령과 일간 둘 다 포함한 개념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2005.10.17. 안초


답변 감사합니다. 글쓴이: **** 날짜: 2005.10.17. 18:27:38

안초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혹시 잘못 오해할까봐 확인차 두가지만 적겠습니다.

1. 월령은 당령과 사령을 포함하는 개념이니 월령은 용신과 인신을 다 결정하는데

월령의 당령과 사령의 기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용신과 인신은 다르게 결정될 것이나 당령 오행의 신이 보이지 않고 사령 오행의 신이 보일 경우 인신을 용신으로 삼을 것인데 이 때 이것은 진신이 아닌 가신이라 해야 하는가?

2. 월령의 당령과 사령의 기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당령 오행의 신도 보이고 사령 오행의 신도 보일 경우 용신과 다르게 인신도 고려대상이 될 것인데 이때 인신은 상하개념속에서 다루어야 하나 아니면 좌우개념속에서 다루어야 하나?


오의와 인위적인 설 글쓴이: 안초 날짜: 2005.10.17. 19:25:56

지금 뭔가 착각이 있는 듯합니다.(제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당령과 사령의 기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월령이란 내가 태어난 날짜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당령과 사령이 적용되는데 그 기준이 어떻게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당령은 5행의 토왕용사가 적용되고, 사령은 10간의 지장간이 적용됩니다. 다만 그것이 천간과 통하거나 통하지 않은 경우만 구분될 수 있습니다. 통한다는 것은 월령에서는 동일한 5행이 왕상휴수사의 왕에 해당되고, 사령에서는 12운성에 건록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통할 때 비로서 神이 성립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위 월령의 神인 용신이 성립되지 못할 때가 가용신인데, 이것은 학문적으로 깊히 다룬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용신이 성립되지 못했다는 그 자체로만 충분하지, 사실 그 이상은 따질 것도 못됩니다. 하늘에 통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전제로하는 우주가 변화하는 원리에 부합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정리하면 용신은 월령이 하늘과 통하는 신을 말하는데, 이것이 통하면 하늘의 명에 부합하게 사는데 반해, 이것이 통하지 못하면 하늘의 명에 부합하게 살지 못합니다. 즉 명에 부합하면 시대를 이끌어가는 큰 인물이 될 수 있어 정확한 추명도 가능하지만, 명에 부합하지 못하면 시대에 끌려가는 민초들로 그 추명 또한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운명이 모두에게 골고루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잘 부합되는 사람과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위 용신의 진가로 구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그리고 제 견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제 견해를 파악하려고 애쓰실 것도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고전에 어떻게 쓰여있는가 그 오의를 파악하는 것이며 저는 그 안내자 일 뿐입니다. 물론 잘못 안내할 수 도 있겠지요.

왜 위 오의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가하면 보통의 학자는 위 오의를 파악하지 않고 자기들이 적당히 만들어서 가르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대부분의 학문이 위 오의와 무관한 정체불명의 설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자하는 것이 우주가 변화하는 일관된 원리이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설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설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둔한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위 만들어진 설에 얽메이고 있으며 위 오의에는 관심도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2005.10.17. 안초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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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려운동

박찬호가 커브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야구공을 회전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커브공은 직선의 힘과 회전력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직선의 힘만 나타나다가, 그 힘이 약화되면서 숨어있던 회전력이 비로소 나타나 커브의  회전을 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헛스윙을 유도할 예리한 커브각도는 직선의 힘과 회전력의 中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易은 木으로 출발하는데, 木의 성정은 曲直(곡선과 직선)입니다.
木의 발전은 寅월에 상화와 함께 줄발하여 未월에 直의 힘을 잃으면서 상화의 熱이 極에 달하게  됩니다.(상화의 極, 열대야  참조) 그리고 태양이 回歸하면서 木은 申월에 曲의  힘이 나타나 回歸하게 되며, 이것은 결국 戌월의 空을 향해 수렴하게 됩니다.

위와같이 회전하는 운동에는 반듯이 中心이 있게  마련인데, 위 중심회전운동을 律呂라고 하며, 위 회전운동에서 나온 기운 즉 에너지를 中和라고 합니다. 따라서 중화와 율려는 동일본체의 中이지만, 위  작용이 각기 다릅니다. 즉  율려는 운동의 관점이며, 중화는 화합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로는 체용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위 율려는 空의 비어있는 중심으로 會하는 중화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위 空의 중심을 宇宙心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  우주심에서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律呂聲입니다. 위  율려성의 실체는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소라껍질 속, 내나무 속, 태풍의 눈 등등...

태풍을 율려로 설명하면...
태양은 直의 힘으로 상화를 압축시켜 폭염의  열대야를 만들고, 북회귀선의 반환점을 回歸하면서, 지구에는 비로서 曲의 회전력이 나타납니다.  위 현상에 따라 나타나는 기상현상을  태풍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태풍 역시 空의 비어있는 율려 중심운동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심이며,  태풍의  눈입니다. 따라서 위 태풍의 눈에도 역시  율려성의 아름다운 음약소리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위 율려운동은 모든 우주에 존재합니다.
크게는 성단(은하계,태양계)에 존재하고, 작게는 원자에 존재하며, 가까이는 생명체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나름의  율려성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이것을 과학에서는 우주파라고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과학에서는 우주파가 발생하는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역학은 율려성으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위  율려성의 우주파는 서로 共鳴을 하게 됩니다.(逆從의 共鳴 참조/예정)

휴가 잘 보네세요.
200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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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中和)-道名(도명), 노자 도덕경

예전에 TV 요리시간에 요리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알카리에 산성을 섞으면 서로 중화(中和)가 되어 더욱 맛이 좋아집니다."
네! 이것이 중화(中和)입니다. 이것 이해 안 되시는 분 있나요?

그런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것으로 노자 도덕경 반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道)와 명(名)도 설명합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역도(易道)는 쉽고 단순(易簡)합니다. 단지 그것을 깨닫기 어려울 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 알카리와 산성을 서로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알카리나 산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중화(中和)가 덜 된 것입니다. 즉 중화가 되기 위해서는 알칼리와 산성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맛이 나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반된 알칼리와 산성은 서로 마주치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이 바로 중(中)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화(和)입니다. 따라서 중화(中和)는 상반된 氣가 서로 和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해 안 되시는 분 있나요?^^

中和(중화)
자사는 ‘예기 중용편’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이것을 일월, 남녀 등 상반된 우주, 자연에 비유하여 도(道)로 설명하면...
위 중(中)이 바로 도(道)이고, 위 화(和)가 바로 명(名)입니다.

도(道)는 상반된 기운이 마주쳐 자신을 잃어버린 중(中)의 상태이므로 당연히 맛이 없고(無味), 보이지도  않으며(無視), 들리지도 않으며(無聽), 사용도 할 수 없습니다.(無用)

 無感
노자는 '도덕경 제35장'에서,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道를 입으로 표현하면, 담담하여 맛이  없고,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써도 다하지 못한다)라고 道는 無感하다고 한다.

그런데 위 中에서 자신을  잃는 이유는 상반된  기운이 서로 부딪쳐(沖), 서로 미세하게(精)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잃은 위 미세한 정(精)은 이제 더 이상 상반되지 않으므로 合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화(和)입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이 창조되는데 이것이 바로 상(象)입니다.

象先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粉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道는 沖해서 用하니 혹 不盈한 듯해서 淵함이 만물의 宗이다. 날타로움은 꺽이고, 엄킴은 풀고, 빛은 和하고,  티끌이 함께 하여 가득함이  存하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지만 象의 帝보다는 먼저 있다)라고 道는 沖해서 象보다 먼저 存한다.

中精
노자는 '노자 제103장'에서,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그윽하고 깊숙함이여, 그 中에 精이 들어 있다. 그 精은 매우 참되며 그 가운데 信이 있으니, 옛부터 지금까지 그 名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로써 만물의 시작을 연다. 내가 어떻게 만물의 시작을 알겠는가. 이것으로써 안다)라고 中精을 설명한다.

그런데 도(道)는 자신을 잃어버린 정(精)이므로, 모두 똑같아 서로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중(中)은 일월에 따라 움직(周行)이게 되므로, 각자 명(名)을 稱할 수 없지만, 글자로는 모두 도(道)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周行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이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말하면 道라고 한다)라고 道를 정의한다.

그러니까 위 중(中)의 周行은 우주만물에 움직이는 냇물의 길(道)과 같습니다.

川谷
노자는 '도덕경 제32장'에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비유컨데 道가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골짜기 냇물이 강이나 바다에 흐르는 것과 같다)라고 골짜기 냇물이 강이나 바다에 흐르는 것과 같다.  

결국 위 도(道)의 중(中)은 항상(常) 서로 마주치는(沖)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이 화(和)입니다. 즉 위 중(中)에 常이 없다면, 그것은 마주치는 지점이 없기 때문에 화(和)가 아니며, 그것은 중(中)이 될 수도 없기 때문에 도(道)도 아닙니다. 따라서 위 중(中)의 常을 안다면, 우주만물의 도(道)를 밝힐(明) 수 있게 됩니다.

和常明
노자는 '도덕경 제55장'에서, "知和曰常 知常曰明"(和를 아는 것이 常이며, 常을 아는 것이 明이다)라고 和, 常, 明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쯤되면, 노자 도덕경에서 첫화두를 본원과 본체에 두지 않고, 도(道)와 명(名)에서 시작한 이유를 명백히 알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즉 우주만물의 중(中)에는 자신을 잃어버린 정(精)이 주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道)입니다. 그리고 위 중(中)에서 항상(常) 沖하여 和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전혀 새로운 象을 창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  象은 자신을 잃어버린 도(道)와 달리 각각 구분 지어야 하므로 명(名)을 稱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道)에서 生한 명(名)이 반드시 있어야 우주를 구분 설명할 수 있게 되므로, 서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후에 비로소 본원과 본체는 명(名)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됩니다.

노자 도덕경은 상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이 도(道)이며, 하편이 덕(德)입니다. 우주원리로 말씀드리면 상편은 天의 도(道)를 설명하고, 하편은 地의 德을 설명합니다. 天의 도(道)는 스스로(自)하는 것이며, 地의 德는 그렇게(然)  따라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道)만 정확히 깨닫는다면, 德은 그렇게 따라서 깨달을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노자는 위 중화(中和) 개념만 알면,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반대로 중(中)과 화(和)를 모르고 노자의 도덕경을 논 할 수 없습니다.

200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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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역종(感應의 逆從)

깜박깜박...
제각기 움직이던 반딧불은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은 서로 일치하여 깜박입니다.

똑딱똑딱...
시계 추는 아무리 흩트려놔도 처음에만 제각기 움직이지 결국은 서로 일치하여 똑딱입니다.

상승하락...
전세계 주식은 각자 움직이는 것 같지만 나스닥이 폭락폭등하면 함께 폭락폭등합니다. 이것은 주식 뿐 아니라 채권, 금리, 환률, 금가격 또한 이렇게 함께 움직입니다.

우주만물은 獨自的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만물은 함께 共鳴하며 感應하고 同助합니다. 이것을 과학, 수학, 역학에서 공통적으로 설명합니다. 각각은 아래와 같으며, 그 내용은 생략합니다.

일반물리학은 진동에너지...
카오스이론은 同期化(synchronization)...
생물은 리듬현상(rhythmentrainment)...
수학은 공명수....
철학은 사회적 동물...
불교는 空...
역학은 感而遂通, 形氣相感....
....

1. 共鳴의 恍惚

에너지는 곧 질량이며,(에너지 등가의 법칙) 聚散할 뿐이지 사라지지 않습니다.(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렇게 생명은 中의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가 들어가고, 나오면서 반복합니다. 이것을 노자는 恍惚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恍惚(황홀)
노자는 `노자 제21장`에서,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道에서 物은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고, 홀과 황의 그 中에 象이 있고, 황과 홀의 그 中에 物이 있다)라고 홀황과 황홀의 中에 물과 상이 있다.

에너지의 흡수발산은 연속적인 움직임 같지만, 우리의 눈에는 불연속으로 나타납니다. 과학에서는 위 불연속으로 발생하는 에너지 다발을 양자라고 부르며, 위 양자를 설명하는 학문이 양자론입니다. 그래서 양자론은 위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다루므로 띄엄띄엄의 학문이라고도 부릅니다. 위와같이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우주는 時空合一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간이 보였다가, 공간이 보였다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易에서는 바뀔易을 써서 표현하며, 道에서는 一陰一陽爲之道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의 에너지는 깜박깜박 불연속적으로 움직입니다. 주식도 상승하락으로 깜박깜박하며, 사람의 심장도 깜박깜박합니다. 심장은 밖에서도 독립적으로 깜박깜박합니다. 크게는 태양도 흑점이 폭발하며 까~암빡 까~암빡합니다. 아마 태양계도 까~아~암빡 까~아~암빡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위와같이 깜박깜박이며 서로 감응하면서 공명하여 동조합니다.( 황홀 참조)

2. 感應의 逆從

감응하는 방법은 다양한 것 같아도 결국은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서로 맞서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逆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하나가 되는 從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내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勝復逆從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지진요대론`에서, "客主之氣 勝而無復也...主勝逆客勝從 天地道也"(주객의 기는 이겨서 되살아나지 않습니다...주기는 逆으로 이기고 객기는 從으로 이기는 것이 천지의 道입니다)라고 승부와 역종을 설명한다.

勝負는 聚散을 말하는데, 主는 逆하고, 客은 從합니다. 즉 主는 逆하므로 서로 밀쳐서 나누어져(分) 있고, 客은 서로 從해서 하나(原)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과학에서, 主逆하는 分의 세계를 分子라고 하고, 客從하는 原의 세계를 原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과학에서 우주만물은 분자와 원자로 존재한다고 표현하며, 역학에서 우주만물은 逆과 從으로 존재한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천지의 道입니다. 참고로 간합(운기)은 분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며, 갑자는 원자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원자분자 참조)

3. 同助의 朋從

위 감응, 공명, 동조하는 무리중에는 반듯이 중심 리더가 있게 마련입니다. 즉 위 황홀한 깜박깜박을 이끄는 분명한 리더가 있다는 것입니다.

朋從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 "易曰 憧憧往來 朋從爾思"(역에서 말하기를 자주자주 오고 가면, 친구가 너의 생각을 따른다)라고 憧憧(동동/자주자주/깜박깜박) 往來하면 벗이 너를 쫒는다.

결론적으로 에너지는 가장 강하고(공간), 가장 빠른 속도(시간) 즉 자주자주(憧憧) 오고가는(往來) 에너지에 從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루살이나 나방이 불빛에 모여드는 것도 이런 이유이며, 철새 정치인들이 리더를 따라 離合集散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또 그래야 생존합니다.

4. 日月의 豫知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강하고(공간), 가장 빠른(시간)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日月입니다. 日月은 이렇게 感應을 通해 우주를 지배합니다.

相感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 "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署來 署往則寒來 寒暑 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信也 屈信 相感而利生焉"(해가 가고 달이 오고 달이 가고 해가 오며, 일월이 서로 밀쳐서 明을 낳으며, 寒이 가고 署이 오며 署가 가고 寒이 오며, 寒暑가 서로 밀쳐서 歲를 이루니, 가는 것은 屈하고 오는 것은 信하여서, 屈信이 相感함으로 利가 생한다)라고 日月寒暑가 屈信하고 感應하여 利(에너지)가 생긴다.

결국 인간은 日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월의 움직임에는 규칙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즉 위 규직에는 法則이 있는데, 위 법칙에서 시간의 논리가 數이며, 위 공간의 표현이 象입니다.(法象數則) 따라서 위 感應은 日月(정신)과 寒暑(신체)의 법칙에 의해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위 예측을 인간입장에서는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5. 中和의 子平

따라서 위 운명의 예지는 결국 위 逆從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바로 平입니다. 즉 平을 이룬 상태가 逆이며, 平을 이루지 못한 상태가 從입니다. 이것을 음양에서는 中和라고 하며, 道(내경)에서는 相火라고 하며, 易(주역)에서는 利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길흉은 위 逆從을 平으로써 權衡(저울질)하여 抑扶로서 판단하게 됩니다.( 子水의 平 참조)

中에서 平으로 함께(with) 和하는 관계, 즉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아가페 사랑(從), 남녀의 주고 받는 사랑(逆)...
하느님의 사랑(從), 이웃을 내몸같이 하는 사랑(逆)...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사랑(順命)하라!
역학에서는 천지일월에 감응(順命)하라!
안초는 逆從(하늘과 이웃)의 中和(사랑)를 드립니다!^^

2001년 8월 25일 편안한돌, 안초올림~

위 글은 지금까지 듬성듬성 썼던 글을 한줄로 묶었기(一而貫之) 때문에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반대로 하나로 바라보는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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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연법칙(自然法則)

天文地理人事(천문지리인사)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願夫子 保於無窮 流於無極 余司其事 則而行之 柰何"(선생이 무궁하게 보호하고 무극하게 흐르도록 원해서, 내가 그 일을 사령하여 행하려는데 어떻게 하는가요)

기백은,"岐伯曰 請遂言之也 上經曰 夫道者 上知天文 下知地理 中知人事 可以常久 此之謂也"(청하시니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상경에서 말하기를, 무릇 道는 上으로 천문을 알고, 下로 지리를 알고, 中으로 인사를 알면, 항상 영구히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라고 천지인을 알아야 한다.

- 화(和) -

中和(중화)

자사는 ‘예기 중용편’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中和(중화)

최한기는 ‘추측록 추측제강’에서,"求其中於過不及之間 得其和於物與我之宜"(지나침과 미치지 못함 사이에서 그 中을 찾고, 사물과 나의 마땅한 데에서 和를 얻는다)라고 설명한다.

未發中(미발중)

최한기는 ‘추측록 추동측정’에서,"已發之和 聖凡旣異 則未發之中 聖凡亦異 凡人之中 如塵垢之鏡 聖賢之中 如洗磨之鏡"(이미 發한 和에서 성인과 범인이 다르다면, 발하지 않았을 때의 中에도 성인과 범인은 다를 것이다. 범인의 중은 먼지 낀 거울 같고, 성현의 중은 씻어서 연마한 거울과 같다)라고 설명한다.

中和(중화)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 사단론’에서,"喜怒哀樂之末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喜怒哀樂未發而 恒戒者此非漸近於中者乎 喜怒哀樂已發而自反者 此非漸近於節者乎"(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아서 항상 경계함이 이것을 中의 근처에 점진적이지 못하다. 희로애락이 이미 발하여서 스스로 반함이 이것을 절의 근처에 점진적이지 못하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土의 중화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水火 一體論과 탈레스의 思想'에서, "嗚呼라! 탈레스와 같은 대천재가 만일 太極이 兩儀로 발전하고 兩儀가 四象(水火金木;坎離震兌)으로 전개될 때에 土의 中和를 얻음으로써 五運의 변화작용이 일어났다고 하는 정도의 원칙만 알았다고 할지라도 아니 설명했더라면 희랍의 자연철학은 물론이고, 오늘의 哲學界는 그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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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의 관찰(觀察)


무릇 명(命)을 관찰함에는 명리와 추명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명리는 빈부(우), 귀천(좌)의 공간을 理(록명,6신)로서 찰(察)합니다.
추명은 길흉(상), 화복(하)의 시간을 數(억부,신살)로서 관(觀)합니다.

命幾
서자평은 `명통부`에서, "太極判爲天地 一氣分爲陰陽 流出五行 化生萬物 爲人稟命 貧富貴賤由之 術士知幾 吉凶禍福定矣"(태극이 흩어져서 천지가 되고, 1氣가 나누어져 음양이 된다. 流하고 出하여 5행이 되고, 化하고 生하여 만물이 된다. 사람이 되어 命을 품으니 빈부귀천이 따르고, 술사가 幾를 알게 되니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라고 命으로 빈부귀천이 되고, 幾로 길흉화복을 알게 된다.

理片
서자평은 `연원 벽연부`에서, "究一理而察萬端 明片言以通萬物 後學術士毋怠於士"(一理를 연구해서 萬端을 찰하고, 片을 밝혀 말함으로써 萬物에 통하니, 후학의 술사는 선비로서 태만해서는 안된다)라고 理와 片의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감이 잡히는지 모르겠지만, 사주 자평명리학은 분명히 위와 같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위 구분을 잘 이해한다면, 사주분석 및 통변이 아주 쉬워집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우주를 분리 설정했습니다.(이후 입증)

다시 부연하면...
빈부귀천의 일월좌우와 길흉화복의 천지상하가 각각 다릅니다. 日은 우행으로 빈부를... 月은 좌행으로 귀천을 察하는데... 상하의 록명(통근)과 좌우의 6신으로 命의 理를 논합니다.(이기학) 天은 청으로 길흉을... 地는 탁으로 화복을 觀하는데... 좌우의 억부와 상하의 신살로 命의 數를 추합니다.(신명학)

관찰(觀察) 그 자체로 命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찰(觀察)은 運의 變化를 알고자 하는 것이며, 명(命)은 사주(四柱)의 중(中)中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200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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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관찰, , 중화


子水의 平-자평(子平)


자평(子平)은 잃어버린 도(道)입니다.

중화, 체용(용신), 권형, 억부(희신)는 전혀 별개의 개념입니다. 청나라 이후 위 자평(子平)의 도(道)를 잃었기 때문에, 작금의 명리학은 자기 멋대로 희기신을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엉터리 학문인지는 모르고, 명리학은 주관적인 학문이라고 합리화합니다.


[중화]

中和란 대립된 음양의 기운이 中에 이르러 和하는 것이며, 和하지 못하는 것이 病입니다.

平和
기백은 '황제내경 지진요대론'에서, "至而和則平 至而甚則病 至而反者病 至而不至者病 未至而至者病 陰陽易者危"(이르러 和하면 平하고, 이르러 甚하면 病이 되고, 이르러 反하면 病이 되고, 이르러도 이르지 않은 것은 病이 되고, 이르지 않았는데 이른 것은 病이 된다. 음양이 바뀌면 危합니다)라고 和한 것이 즉 平이라고 한다.


[子水의 平]

생명은 子水의 平에서 출발합니다.

子平義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변설'에서, "今之談命者 動以子平爲名 子平何所取義"(작금에 명을 논하는 사람은 動으로써 자평이라는 이름이 있다. 자평에는 어떤 의의가 있는가)

子意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변설'에서, "以天開於子 子乃水之專位 爲地支之首 五行之元 生於天一 合於北方 遇平則止 遇坎則流 此用子之意也"(하늘을 여는 것은 子이다. 子는 水로서 오로지 位가 있다. 지지의 머리이며 5행의 으뜸으로 하늘의 一을 생하며 합쳐서 북방이 된다. 平을 만남으로 머므르게 되고 坎을 만남으로 흐르게 된다. 이것이 子의 뜻을 用한 것이다)라고 子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권형]

위 和의 정도는 두 기운의 均衡 즉 平을 기준으로 權衡(저울질)하여 결정합니다.

權衡平
기백은 '황제내경 경맥별론'에서, "氣歸於權衡 權衡以平 氣口成寸 以決死生"(기가 돌아와 권형하고, 平으로써 권형은 氣의 촌구를 이루어, 이로써 생사를 결정합니다)라고 平으로 權衡하는데 生死를 결정한다.

平意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변설'에서, "又如人世用秤稱物 以平爲準 稍有重輕 則不平焉 人生八字 爲先天之氣 譬則秤也 此用平之意也(또 예컨데 이세상 사람들은 물건을 설명할 때 저울질을 사용한다. 이것은 平에 기준을 두어 초점으로 重輕의 平하지 않음을 잰다. 인생8자의 선천의 氣에 있어서도 비유하여 저울질을 한다. 이것이 平의 뜻을 用한 것이다)라고 平의 의미를 설명한다.


[태과불급]

위 中의 病에서 권형으로 남는 것이 太過이며, 부족한 것이 不及입니다.

過不及
서자평은 '연원 벽연부'에서, "太過無剋制者貧賤 不及無生扶者夭折 宜向之而運背 決之貧賤 宜背之而運向 斷之困窮"(태과한데 극제가 없으면 빈천하고, 불급한데 생부가 없으면 요절하니 마땅히 運背의 向으로 빈천을 결정하고, 運向의 背로 곤궁을 판단한다)라고 向(월령)으로 태과불급을 결정한다.

無過及
육오산인은 '삼명통회 자평설변'에서, "先天太過 後天減之 先天不及 後天補之 先天後天 無太過不及 然後爲能平焉 運限者後天也 且如先天八字 日干旺相太過者 宜行休衰之運 發泄其氣 如日干休囚不及者 宜行旺相之運 生扶其氣 二者則能發福發財 遷轉享通 譬醫家補瀉之法耳 若日干甚 仍行旺運 日干太衰 又行衰運 則皆太過不及 生禍生災 蹇帶不通矣"(선천태과 후천감지 선천불급 후천보지 선천후천 태과불급이 없은 연후에 平할 수 있게 된다. 운한 것은 후천이다. 또 예를들어 선천8자 일간이 왕상태과한 것은 마땅히 行이 휴쇠한 운으로 그 氣가 발설한다. 예를들어 일간이 휴수불급한 것은 마땅히 行이 왕상의 운으로 그 氣를 생부한다. 두가지는 발복발재할 수 있게 되어 형통으로 옮기고 전환된다. 비유하여 의가 보사의 법이라고 들었다. 만약 일간이 심해져 거듭 行이 왕한 운이라면 일간은 태쇠한다. 또 行은 쇠운이 된다. 즉 모든 태과불급은 禍를 생하고 災를 생하여 절름발이가 따라 불통한다)라고 불급과 태과의 平을 설명한다.


 

 

[取用후 權衡]

먼저 월령에서 용신을 취하고(월령용사지신), 그 다음 권형으로 억부합니다. 體는 본체이고, 用은 작용으로, 體象用事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권형의 억부를 위해서 취용합니다.

先觀用神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凡看命者 先觀用神之何屬 然後或順或逆 以年月日時遂干遂支 參配而權衡之 則富貴貧賤自有一定之理也 不向月令求用神 而妄取用神者 執假失眞也"(무릇 명학자는 먼저 용신이 어디 속하는지 살핀 후에 순용인지 역용인지 살핀다. 그런 후에 연월일시의 간지를 배합하여 평형을 저울질하면 부귀빈천의 일정한 이치가 스스로 드러난다. 월령에서 용신을 구하지 않고 망령되니 용신을 취하면 거짓에 빠져 진실을 잃게 된다)라고 용신을 세우고 나서 권형으로 추명하니, 망녕되이 용신을 취하지 말라(妄取用神)고 한다.


[억부]

위 權衡의 平에 의해 높은 것은 抑하고, 낮은 것은 擧(扶)합니다.

運政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夫五運之政 猶權衡也. 高者抑之 下者擧之 化者應之 變者復之 此長生化成收藏之理 氣之常也. 失常 則天地四塞矣"(무릇 5운의 다스림은 저울과 같은 것이다. 높으면 抑고 낮으면 擧합니다. 化는 응하고 變은 회복되는데 이것이 장생화성수장의 理이고 氣의 常입니다. 常을 잃으면 천지사시가 막힙니다)라고 5運의 政은 저울처럼 權衡으로 抑擧한다.

抑擧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夫萬物負陰而抱陽  氣以爲和 過與不及 皆爲乖道 故高者抑之使平 下者擧之使崇 或益其不及 或損其太過 所以貴在折裏 歸於中道"(무릇 만물은 負陰而抱陽하고, 충기가 和하는데 태과와 불급하여 모두 이그러진 道이다. 그러므로 높은 것은 平을 사용하여 抑하고 낮은 것은 崇을 사용하여 擧한다. 혹은 그 불급한 것은 益하고 혹은 그 태과한 것은 損함으로서 잘라진 속을 귀하게 여겨 中道로 돌아온다)라고 억부를 설명한다.

위 자평(子平)의 도(道)는 자평학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원리학, 성리학, 의학, 6임, 자미(?)등 동양학 전반에 걸쳐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도(道)입니다. 그리고 자평(子平)의 도(道)는 엔드로피, 빅뱅의 탄생등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우주변화의 원리입니다.

2001-07-03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