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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16 중의 원리를 공부하며-무늬환-
  2. 2008.04.08 1.3. 도(道)


초학입니다.

너무나 많은 동양학과 한문에 대한 것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우연히 우주변화의 원리를 알았고 중의 원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첨인지라 그랬는데 들을수록 재밋고 빠져들었습니다.

어설프게 알았던 것들이 정리되었고 살아가면서 허/공/제로의 자리에 내가 늘 있어야 되는구나를

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인연을 늘 같이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깨달으셨던 기운들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5.14. 21:50

무늬환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1.3. 도(道)

道路(도로)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하’에서,"一陰一陽之謂道 道無聲無形不可得而見者也 故假道路之道而爲名 人之有行必由乎道 一陰一陽天地之道也 物由是而生由是而成者也"(한번은 음하고 한번은 양하는 것을 道라고 한다. 도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서 얻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道路의 道로 가정하여 이름이 되었는데 사람이 반드시 길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음과 한번은 양하는 것이 천지의 道이다. 物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라고 설명한다.

- 도(道) -

未見聞(미견문)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氣穴論편에서,"帝捧手逡巡而却曰 夫子之開余道也 目未見其處 耳未聞其數 而目以明 耳以聰矣"(황제가 두 손을 받들어 물러나 말한다. 선생이 나에게 道를 열어 주었다. 눈은 그 곳을 보지 못하고 귀는 그 數를 듣지 못하지만, 눈으로서 밝히고 귀로서 총명해 진다)라고 道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다.

浮雲道(부운도)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6미지대론'에서,"嗚呼遠哉 天之道也 如迎浮雲 若視深淵 尙可測 迎浮雲 莫知其極"(오호 멀구나 하늘의 道란 것은 마치 뜬 구름을 맞이하듯 하구나. 만약 깊은 연못을 살핀다면 깊은 연못은 오히려 측정할 수 있어 살필 수 있으나, 뜬 구름은 그 極을 알 지 못한다)라고 道는 뜬 구름과 같다.

道奧(도오)

노자는 '노자 제62장'에서,"道者萬物之奧"(道란 만물의 奧이다)라고 깊숙한 속 즉 奧를 설명한다.

天下母(천하모)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道라고 말한다)라고 천하의 어미가 道라고 정의한다.

道無形(도무형)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내편’에서,"夫道也者道也 道無形行之則見于事矣 如道路之道坦 然使千億萬年行之 人知其歸者也"(무릇 道라는 것은 길이다. 道는 무형으로 행하지만 사건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도로의 도는 평탄해서 천 억 만년을 행하여도 사람들이 그 돌아갈 곳을 알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道學(도학)

최한기는 ‘추측록 추측제강’에서,"兩漢以降 學術多端 究其行道者 謂之道學 明心者 謂之心學 窮理者 謂之理學 遂成門戶 各守其傳 殆非所以一道德而公天下也 "(前漢ㆍ後漢 이래로 학술이 여러 가지 단초여서, 道를 행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을 道學이라 하고, 마음을 밝히는 것을 心學이라 하고, 理를 궁구하는 것을 理學이라 하여, 드디어는 문호가 이루어서 각각 그 전하는 것만을 지키니, 이는 하나의 도덕으로서 천하에 공변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道學(도학)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宗敎精神과 道' 에서, "道라는 것은 우주운행의 법칙적 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 법칙이란 것은 天地 日月의 운행법칙이며 木火金水와 율려의 법칙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칙이 운행하는 길에서 일어나는 오묘불칙한 변화는 만물의 생장성숙의 과정과 인사의 길흉화복의 과정에서 출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道學이라고 하며, 그 변화자체를 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道는 지고지명한 정신이 아니면 감히 접근 할 수 없는 경지이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宗敎 즉 최고정점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도학을 설명합니다.

- 선악(善惡) -

善惡(선악)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氣交變大論'에서,"帝曰 其善惡何謂也 岐伯曰 有喜 有怒 有憂 有喪 有澤 有燥 此象之常也 必謹察之"(황제는 묻는다. 그 선악은 무엇을 말하나요. 기백은 답한다. 기쁨이 있고, 노여움이 있고, 근심이 있고, 죽음이 잇고, 윤택함이 있고, 마른 것이 있으니 이것이 상으로 항상됨이 있습니다. 필히 삼가 살펴야 합니다)라고 선악을 설명한다.

性善(성선)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계승하는 것은 善이며, 이루는 것은 性이다)라고 性善을 구분한다.

善性(선성)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人間의 生活과 變化'에서, "주역 계사에서는 繼之者善이요 成之者性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을 해석하면 계지자선이란 말은 人性이 발한 바탕, 즉 사람의 본질은 선하다는 뜻이다. 繼라는 것은 무형에서 유형으로 계승해 준다는 뜻이니 무형에서 유형으로 계승해 준다는 것은 精神과 生命이다. 그런즉 이것은 바로 本質(정신과 생명)이 善하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성지자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함으로써 物로 形成되면 거기서 비로소 性이 생긴다는 말이다. 成이란 뜻은 사물의 완성을 말하는 것인바 精神인 陽은 자체 소멸을 방지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形의 포위를 받을 때에 비로소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天地生物之心이 成物之心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成物之心 즉 無形之心이 有形之心으로 전환된 때가 바로 性인 것이다" 라고 善과 性을 설명합니다.

善惡(선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社會的 變化와 性의 善惡'에서, "人性은 그 본질은 본래 善하였지만 그것이 性으로 전환될 때에 벌써 <善 +惡>이라는 공식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人性 自體는 이러한 것이므로 그것이 만일 약간만 善한 쪽에 치우치게 되면 善行을 좋아하게 되고 반대로 약간만 惡 쪽에 치우치게 되면 惡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淨化와 교육의 필요성은 인류문화의 발전과 사회생활의 복잡화와 더불어 일대요구로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 성인(聖人) -

聖人(성인)

일부는 '정역 대역서'에서,"嗚呼聖哉 夫子之聖乎 知天之聖 聖也 樂天之聖 聖也 親天之聖 其惟夫子之聖乎"(오호 성스럽다. 공자의 성스러움이여! 하늘을 아는 성인도 성인이지만, 하늘을 즐기는 성인은 공자의 성스러움이다.)라고 성인을 설명한다.

褐玉(갈옥)

노자는 '노자 제70장에서,"是以聖人被褐壞玉"(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보옥을 품고 있다)라고 성인을 설명한다.

無名(무명)

소길은 '5행대의'에서,"聖人無名 能理萬物 還以萬物名 陽氣至神 故有隱顯"(성인은 이름이 없다가 만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만물로서 도리어 이름을 얻게 된다. 陽氣는 그윽이 신묘하므로 사라지고 나타남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聖人(성인)

율곡은 '역수책'에서,"蓋天地 乃以是數 示之人 聖人 必待文端然後 乃以是理 著於世 天下得不生聖人 亦不得不生文端也 此則自然之應 而天人交與之妙也"(대개 천지는 이로서 數로 사람에게 보여주며 성인은 반드시 문단을 기다린 이후에 이 理로서 세상에 드러난다. 하늘은 성인을 낳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文端을 낳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곧 자연의 응함이요, 하늘과 땅이 妙로 함께한다)라고 성인의 탄생을 설명한다.

聖賢(성현)

최한기는 ‘氣學’에서,"古聖賢經傳之語 豈敢只將我習染意思而取捨也 考準於耳目所驗之天人運化 合則感服修行 不合則存而俟後"(옛날 성현이 경으로 전하신 말씀을 어찌 감히 나의 습염된 의사로서 취하거나 버리겠는가? 나의 감각기관이 경험한 바의 天人運化를 상고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것과 부합되면 감복하여 수행하고, 부합되지 않으면 일단 보존한 채 뒷날을 기다릴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敎人知不知(교인지불지)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敎人而不知 則非但敎之者 知其不知 聽敎者 亦自知其不知矣 不知二字 誠易知矣 聽敎者 所謂知之 不無昏明淺深之分 敎之者 逐條諮問 則所知之大小長短 皮膚肢體 盡自其口吐實 又能言遮蔽難透之端 是可以設敎之機微也 磨以歲月 運化之敎 常有所證驗 師友之敎 從傍而提惺 前日不知 至於知之 今日知之 至於明日 又生不知之端 知不可以盡矣"(사람들을 가르쳐줄 때에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단지 가르치는 사람만 알아듣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사람 역시 알아듣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 不知는 두 글자는 진실로 알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이른바 알았다고 하는 것에도 昏明과 淺深의 구분이 없지 않으니, 가르쳐주는 사람이 조목조목 힐문(詰問)하면, 그가 알아들은 것의 대소장단과 겉핥기로 안 것인지 골자로 안 것인지의 여부를 모조리 자기의 입으로 實吐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막혀서 통괄하기 어려운 대목까지 말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 가르침의 機微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연마하여 運化의 가르침에는 항상 證驗하는 바가 있고 師友들의 교도(敎導)가 곁에서 경각(警覺)해 주면 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오늘 안 것이 내일에 가서 또한 모르는 단서가 생기게 되니, 앎이란 다할 날이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經典中心(경전중심)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正易의 皇極論'에서, "인간은 지구에서 살고, 지구는 태양계에 매였으니, 만물은 그 中心을 離脫하여 존재할 수 없는지라, 인간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고, 지구의 중심은 태양의 중심과, 태양의 중심은 은하계의 중심, 즉 北極星의 中心과 一致한다는 이론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에 直立하면 자연히 지구와 태양과 天樞(北辰)를 一貫하는 一大 垂直線上에 서게 된다. 이 수직선을 우주의 經線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은 오직 직립하였으므로 이 경선을 타고 내려오는 우주의 소식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보겠다. 經線이란 上下를 貫通하는 宇宙의 消息線이기 때문이다. 모든 聖人의 글을 經書·經典·經文이라 함은 이 까닭이다. 이 소식 선은 또한 生命線이기도 하다. 地上에 사는 人間의 生命은 본래 이 生命線을 타고 宇宙의 中心으로부터 내려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작역의손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一乎一夫論'에서, "世上에서 흔히 8卦는 伏羲氏가 긋고, 周易은 文王 周公이 짓고, 10翼은 孔子가 하고, 正易은 一夫가 지었다고 믿지만, 事實은 그 분들은 다만 그때그때 作易의 손을 빌렸을 뿐이요 그 內容의 由來는 멀리 天地無窮化无翁에 淵源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良師(양사)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水火 一體論과 탈레스의 思想'에서, "여기에서 나도 말하리라. 땅 위에 있는 철학의 눈(眼)을 東으로 모으라. 그 다음에는 씹고, 또다시 씹으라. 그래도 안 되면 良師를 求하라. 時間과 良師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라고 양사를 구하라고 합니다.

 

 

- 공부(工夫) -

施敎(시교)

일부는 '정역 15일언 九九吟'에서,"我摩道正理玄玄眞經 只在此宮中 誠意正心 終始无怠 丁寧我化化翁 必親施敎 是非是好吾好"(아마도 정리현현진경이 오직 이 궁속에 있을 것이니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 바르게 하여 끝이나 처음이나 게으름 없이 하면 정녕코 우리 화화옹께서 반드시 친히 가르쳐 주실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정성을 다 하면 친히 가르쳐 줄 것이다.

誦彰(송창)

뇌공은 '황제내경 소문 著至敎論'에서,"誦而頗能解 解而未能別 別而未能明 明而未能彰"(암송해서 자못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로는 분별할 수 없고, 분별로는 밝힐 수 없고, 밝힘으로는 나타낼 수 없습니다)라고 득도의 시작과 끝을 얘기한다.

問之少(문지소)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제76편 示從容論'에서,"公何年之長而問之少 余眞問以自謬也"(그대 나이에 비해 질문의 수준이 적으니, 나의 참된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는 듯 하군요)라고 사고력의 적음을 질책한다.

至誠(지성)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하’에서,"先天學主乎誠 至誠可以通神明 不誠則不可以得道"(先天의 학문은 誠을 위주로 한다. 지극한 정성이면 가이 神明에 통하고 정성이 아니면 道를 깨칠 수 없다)라고 설명한다.

一時(일시)

율곡은 '성학집요'에서,"窮格踐履 雖是兩項工夫 要須一時進 故已上主論窮格 而亦兼踐履之意"(궁리 격물하고 실천 이행하는 것이 비록 두 가지의 공부이나 요컨대 반드시 一時에 같이 나아가야 하므로 이미 앞에서 궁리 격물을 주로 논하고 또한 실천 이행하는 뜻을 겸하였다)라고 궁리와 실천을 함께해야 한다.

三聽三見(삼청삼견)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上學以氣 中學以心聽 下學以耳聽 耳聽者學在皮膚 心聽者學在胸臆 氣聽者學在天下 見亦如是 氣見者學在咸觀萬象 心見者學在心理究索 目見者學在當前現色 學之等數雖如是 其實闕一不可 自初至終 常所兼濟也 至於半途廢者 未有成者 自有上中下所及之限"(상학은 氣로써 듣고, 중학은 心으로써 듣고, 하학은 귀로써 듣는다. 귀로 듣는 자는 피부에서 배우고, 마음으로 듣는 자는 흉중에서 배우고, 기로 듣는 자는 천하에서 배운다. 보는 것도 이와 같아서, 기로 보는 자는 萬象을 관찰하도록 열려서 배우고, 마음으로 보는 자는 心理를 탐구하여 배우고, 눈으로 보는 자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당해서 배운다. 배움의 等數가 비록 이렇기는 하나, 실은 이 세 가지에서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始終 이 셋을 겸해야 완전하다. 중간에서 포기하는 자는 성취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자연 상·중·하의 미치는 바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라고 설명한다.

初學(초학)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究解文義 只要書上字義句讀之通 却自生意見 乃初學事也 若平日神氣存養 在事物運化之明白 臨文究解 依此考驗作之者 所得淺深優劣 可得而見 是乃擧事物運化而取捨之 非將無據我心而論評也"(글의 뜻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다만 책에 있는 字義와 句讀만 통하면서 즉각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이 바로 初學의 일이다. 만약 평소에 신기를 존양하고 사물의 운화를 명백히 하려 한다면, 글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임하여서 이것에 의하여 작자의 고험(考驗)으로 深淺 優劣을 얻게 된다. 이것은 바로 사물의 운화를 들어 取捨한 것이지, 근거 없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논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山中(산중)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꿈(夢)을 타고 20年'에서, "嗚呼라, 松下問童子하니 言師採藥去라 내 스승은 진실로 藥 캐러갔는가? 只在 此山中이련마는 雲深不知處라. 이 산중에 있기는 있는데 구름이 깊어서 알 수 없는가? 이것이 내가 20年의 꿈속에서 부르고 불렀던 古人의 노래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에서 神秘의 고리를 잡을 수가 있었고 道通의 淵源을 찾을 수가 있었다" 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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