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또 다른 질문 글쓴이: 박모 날짜: 2006.07.05. 12:54:07

답변 감사합니다. ^^

중의원리 인터넷판을 보는데 運動象數 부분에 궁금한게 있습니다.

생각나는데로 몇가지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모든 만물은 각각의 고유한 운동을 하는것으로 보이는데 .. (아닐수도 ..)

혹시 그 기본은 무조건 어떤 정해진 운동을 한다 .. 라는 것이 있습니까 ?

즉, 56, 11, 98 운동등이 있는데 ...

드러나는 현상의 운동은 56 이지만 그 기본은 13 이다 라던지 ..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는 0/1 이라는

두가지에 의해서 동작을 합니다. (물론 하드웨어도 그 원리는 같겠지만)

이것은 어떤 운동일까요 ?

소프트웨어는 보이는 것일까요 ? 아니면 안보이는건지 ...

흔히 말하는 도통(道通)하면 모든것의 원리를 알게 되는지요 ?

道의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히 우주원리를 알고 그것을 적용/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지는데 ... 어쩌면 목적이 없다라고 하실지도 ^^

大衍之數 五十, 其用 四十九 라고 했습니다.

49는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혹시 49의 현상을 찾아서 체험 해보는것이 道의 출발점인지 ...

혹시 예를 들어주실 수 있는지요 ?

질문이 난잡하고 무식이 드러나도 이해해 주십시오 ^^




제목: 죽음과 출생 글쓴이: 안초 날짜: 2006.07.05. 19:50:16

질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지일월의 규칙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위 규칙과 우리가 무관할 수 있을까요. 무관이 아니라 지배를 받습니다. 위 지배를 감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 감응이 무의식에서 잘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잘되는 사람이 지도자고 안 되는 사람이 낙오자입니다. 천지만물이 모두 위 규칙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 규칙 중에서 한 가지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말씀하신 0/1은 有無의 움직입니다. 여기서 0의 움직임이 재미있습니다. 안보이지요. 그리고 +면 그대로이고, x면 어떻게 하던 0입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위 0인 無를 기본으로 우주를 설명합니다. 서양학과의 가장 큰 차이이며 동양학의 우수한 점이지만 이것 때문에 이해하기 힘듭니다. 안보이는 부분이지만 우주를 통솔하는 흐름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道라고 합니다. 따라서 위 道에 通하게 되면 우주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위 道의 흐름은 0의 흐름이며 인간 역시 여기서 출생했고 여기서 돌아갑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목적이 있을 수 없지만 영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불균형에서 태어났는데 그 시작을 1이라고 합니다. 불균형이 아니라면 0이므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균형이라는 모순에서 태어났으므로 반드시 위 모순에 의해서 죽게 마련이고 또 위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욕심 즉 태어난 목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命이라고 하고 천부적인 소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우주와 소우주의 흐름은 조금 다르지만 대우주의 흐름을 닮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무슨 종교 얘기 같지만, 동양학 역시 종국에는 宗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주의 끝을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말입니다. 종교라는 믿음과는 구분을 하셔야 할 듯합니다.

49는 소우주의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위 49로 점을 쳤습니다. 그렇다고 위 數가 인간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우주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찮은 동물들도 쓰나미 산불이 나면 감지하고 도망가는데, 우리 인간만 제 잘난 맛에 감지하지 못합니다.

질문의 답을 제대로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2006.7.5. 안초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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