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역학술수


과학은 오늘날 최고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300년 전 만해도 과학이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과학의 탄생은 17세기 뉴톤이 `수학~이론`(제목 생략)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서양철학에서 수학의 논리와 실험으로 검증하는 학문을 따로 분리하여 과학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서양철학에 비해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術과의 접목입니다. 즉 學이 學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學을 術에 접목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분리하여 과학기술이라고 불렀는데, 아시다시피 과학기술은 그 어떤 것보다도 인류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德이 바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최고의 지위를 확보한 근본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재미있는 것은...
과학기술 이전의 기술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기술을 상당히 천시하였습니다. 즉 학자가 기름을 묻치면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찌 고귀한 학자가... 아마도 우리 조선시대 같았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세대 과학자는 기꺼이 기름을 묻히면서, 노동을 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학자+노동! 이것이 바로 서양철학과 과학을 분리시켰고, 또 오늘날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역학과 술수를 살펴봅니다.
역학은 상당히 우수한 학문입니다. 과학자들이 역학을 배경으로, 새로운 과학이론을 창출하고 있으니, 그 우수성이야 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술수는 어떻습니까.

과학자는 기꺼이 기름을 묻히며, 그 천시하던 노동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는데 반하여, 동양철학자는 술수를 발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술수를 천시하여 왔습니다. 하물며 동일한 뿌리인 의술마저 술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學이 術을 거부한 것입니다. 學이 術을 거부할 때, 그 學은 존재 의미를 잃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가 바로 오늘날 과학과 역학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실학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에 이른 것입니다.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서, `利用安身`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즉 用을 이롭게 하고, 身을 편안히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류 문명에 비교한다면, 利用은 이미 과학이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安身은 누가 담당해야 할까요. 과학보다 역학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易을 사랑하시는 분들!

17세기 과학자가 기꺼이 노동에 참여하여 기름을 묻혔듯이, 우리도 이제 기꺼이 術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術없이 學이 존재할 수 없고, 術은 學없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점쟁이로 천시될망정, 이것은 인류에 安身을 제공할 유일한 학문입니다. 술수가 부흥하여 安身으로 인류에게 공헌할 때, 21세기는 찬란한 동양문화가 꽃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만의 경쟁력인 21세기의 신지식이 아닌 지요.

2000-11-11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