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를 드립니다.

미래는 新知識을 요구하는 사회입니다. 즉 미래는 지식경쟁력에 의해 富(에너지)를 창출하는 사회입니다. 지금~ 컴퓨터, 인터넷 등은 미래의 身體을 만들고 있고, 위 신지식은 신체의 精神을 이 만들고 있습니다. 易道는 우주정신인 만큼, 컴퓨터의 우주정신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1. 眞理의 不傳
학문에 진정한 이치(眞理)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易道는 하늘의 계시에 의해 聖人이 가르쳐(敎) 준 眞理입니다. 眞理는 쉽고 단순(易簡)합니다. 과학은 큰 대상을 단순화하는 정도에 따라 훌륭한 학문으로 평가합니다. 위 관점에서 볼 때, 음양과 3극5행이라는 진리만큼 큰 대상을 단순화 한 이론은 없습니다. 그런데 위 진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쉽게 傳해지지 않습니다.

가. 非人不傳
道를 깨달은 其人은 가르치지(敎) 않으면 道를 잃어(失道) 버립니다.
道는 깨달음을 받을 준비가 된 其人에게만 傳해집니다.

非人不傳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其人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非人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天寶(진리)를 泄(와전)한다.

道는 준비되지 않은 傲慢한 非人에게는 결코 傳해지지 않습니다.
眞理는 非人에 의하여 누설(泄)되어 道가 와전됩니다.
따라서 非人이면 당연히 不傳됩니다.

나. 虛行
易의 道는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 왔지만, 대부분은 위 非人으로 헛된 공부(虛行)를 하게 됩니다. 그만큼 진리의 접근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虛行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初率其辭 而揆其方 旣有典常 苛非人道不行"(처음에 그 辭를 따라서 그 方을 헤아려 보면, 이미 전요와 상도가 있다. 진실로 非人의 道는 虛行한다)라고 非人의 道는 헛되이 행해진다.

지금 헛된공부(虛行)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부분에 이르러 참 많은 좌절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易道原理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虛行에 빠져 헤메기 때문입니다. 眞理! 난~ 지금도 떨고 있니?

다. 不傳의 실례
易道의 歷史는 不傳의 歷史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가고, 와전된 것을 다시 회복하고, 미흡한 것을 보충하며 傳해 왔습니다.

내경에서, 化는 뭉치(生)는 것이고, 變은 분산(極)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化變神聖
구유구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物生謂之化 物極謂之變 陰陽不測謂之神 神用無方謂之聖"(物이 生함을 化라 하고, 物이 極함을 變이라 한다.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神이라 하고, 신을 사용함에 방위가 없음을 聖이라 합니다)라고 化變神聖을 정명한다.

작금의 내경, 주역의 번역본을 살펴볼 때, 變과 化를 구분하여 번역된 책은 없습니다. 變도 변화이고, 化도 변화로 똑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마치 원저자가 변화라는 한단어를 이랬다 저랬다고 쓴 것처럼 읽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은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길은 5행대의에서, 斯道가 떨어짐을 한탄하고, 근본을 세우기 위해,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棄之
소길은 `5행대의`에서, "昔中原喪亂晉氏南遷 根本之書不足 枝葉之學斯盛 虛談巧筆競功於一時 碩學經邦 棄之於萬古...庶幾使斯道不墜知其始焉"(옛날에 중원에 난리가 나서 진나라가 남쪽으로 옮겨가니, 근본서적이 부족하고 지엽적인 학문만 성하게 되었다. 헛된 말과 교묘한 글씨만 한 때의 功을 다투었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석학은 萬古에 버려지게 되었다...아마도 斯道가 끊어지지 않고 다시 시작됨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斯道를 다시 이었다고 한다.

주자는 역학계몽에서 주역이 卜筮라고 정의하면서 不傳된 근세의 작괘법을 다시 주역 계사전의 舊法으로 환원시킵니다.

不傳
주자는 `朱文公文集 60卷 答劉君房第二書`에서, "此書本爲卜筮而作 其言皆依象數以斷吉凶 今其法已不傳... 故其書爲難讀 此本義啓蒙所以作也"(주역은 본래 복서를 위해서 지어졌다. 그 말은 모두 상수에 의해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법이 이미 不傳되었다... 그러므로 주역은 읽기 어려운 책이 되었다. 이것이 본의와 계몽을 짓게 된 까닭이다)라고 작괘가 不傳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주역4전에서 漢나라 이래로 끊어져 왔던 劃과 爻의 義를 비로소 되살립니다.

爻變今絶
다산은 `주역4전 효변표직설`에서, "自漢以來 爻變之說絶 無師承 此易之所以晦□也  衍之推移也 說卦之物象也 互體之博取也 此三者九家諸易皆能言之至 於爻變之義 自漢至今絶無影響 此易之所以不可讀也"(漢이래로 효변의 설이 끊어져 스승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易이 어두어진 이유이다. 벽연의 추이, 설괘의 물상, 호체의 박취 위 셋은 9가제가의 역에서 모두 말했던 바이다. 효변의 義는 漢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러 끈어져 모습과 소리가 없다. 이것이 易을 읽기가 불가능한 이유이다)라고 漢나라 이래로 효변의 義가 끊어졌다.

위 사례는 역학의 不傳만을 아는데로 정리한 것이며, 역술의 不傳은 숙제로 남겨 두었습니다. 당대 중심학문이 위와같이 不傳되는데, 하물며 陰으로 傳해온 응용학이 얼마나 진리에 부합하여 傳해져 올 수 있겠는가? 또 작금에는 雜術의 妄作이 盛해 학문이 갈기갈기 흩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얼마나 진리가 殘存해 있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자평학의 不傳을 소개합니다.
不知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自大升之時 上距子平已三百餘年 其法不知經幾變矣 或謂大升得子平之眞傳 觀繼善等篇 不外明通賦 但更易其詞 而元理消息一賦 則大升之獨得也 今人推命之術 又元人復推子平大升二家之法 而演繹爲之者 顧今之談命者 動靜子平 而莫知其原"(대승의 시대부터 위로 자평은 이미 삼백여년의 거리가 있으므로, 그 법은 經의 幾가 변해 알지 못한다. 혹은 明通賦 외부가 아니라 繼善篇등을 보는 것은 대승이 자평이 진짜 전함을 얻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단 다시 그 말씀을 바꾸어 元理와 消息一賦는 대승이 홀로 얻으니 지금 사람을 추명하는 術이다. 또 사람을 元으로 推하는 자평과 대승 二家의 法으로 연역이 된 것과 지금 命을 담론하는 動靜 子平으로 그 原을 알지 못한다)라고 자평과 대승은 3백년의 거리가 있다.


2. 易道의 回歸
文明도 우주인 만큼 일정한 週期로 盛衰합니다.
문명이 盛하면 학문이 모이고(化), 문명이 衰하면 학문이 흩어(變)집니다.

가. 道의 盛衰
周이전에 문명이 衰하였다가 先秦(분서갱유 이전)시대에 盛하였고, 이것은 다시 漢나라 이후 衰하다가 宋에 이르러 잠시 회복하더니, 지금은 極衰한 時期에 이르고 있습니다.

復興
주자는 `주역본의 계사하전 제7장`에서, "夏商之末 易道中微 文王拘於유里 而繫彖辭 易道復興"(하,상나라 말기에 역도의 중이 쇠미해 지더니 문왕이 유리옥에 구속되어 계사,단사를 붙이니, 역도가 다시 興해졌다)라고 역도의 부흥을 설명한다.

주나라와 춘추전국 한나라까지 문명이 盛하여 道가 平하고 傾하였으므로, 典要가 모여졌습니다.

易興道大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11장`에서,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周之盛德邪 當文王與紂之事邪 是故其辭危 危者使平 易者使傾 其道甚大 百物不廢 懼以終始 其要无咎 此之謂易之道也"(역의 興함은 은나라의 말세와 주나라의 덕이 盛할 때에 해당한다. 그 辭가 危하여지므로, 危을 平하게 하고 易을 傾하게 하니, 그 道가 심히 커서, 백가지 物이 없어지지 않고, 懼로서 終始하니, 그 중요함이 허물이 없다. 이것을 易의 道라 한다)라고 平傾으로 道가 커진다.

지금은 마치 하, 상나라와 말기와 같이 道가 遷해서, 전요와 법칙이 흩어져 있습니다.

道遷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易之爲書也不可遠 爲道也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 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易의 글됨이 멀어질 수 없고, 道됨이 여러번 遷하여서, 변동하여 거처하지 않고, 6虛가 두루 흘러서 상하에 항상 됨이 없고 강유가 서로 바뀌므로, 典要가 없이 오직 變하였다)라고 道가 遷해 典要가 없다.

위 盛衰週期는 3,000년으로 衰한 易道가 다시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3천년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오호라! 문왕 이후 3천년의 공업이 艮方 一隅에서 이루어 질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복희도 3천년에 문왕도가 나왔고 문왕도 3천년에 정역도가 나옴으로 인하여 天垂象 物受形하는 우주의 원리는 변화의 모습을 노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황제 이후 5千載의 수수께끼였던 내경은 드디어 비밀의 장막을 거두게 되고 5운과 6기의 법칙은 드디어 상과 수를 개발하는 역군으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3천년의 성쇠를 설명합니다.

나. 復元의 端兆
문명도 우주인 만큼 極에 이르면 반드시 反합니다.(極則必反)
極衰한 근대의 易道는 19세기 조선에 이르러 極則必反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실학에서는 先秦시대의 진리를 復元하는 과정에서, 원리에 의해 神機의 易道가 우후죽순 계발되어었습니다. 이것은 神의 섭리로서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端兆(조짐의 단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역학뿐 아니라 易術도 先秦의 진리를 복원해야 할 차례입니다.

단조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19세기 후반기는 한울이 동무와 일부 같은 대철을 동방일우에 파견한 端兆의 세기라고 할 것이다."라고 조선의 단조를 설명합니다.

화담 서경덕(1489-1546)은 분리되어 전해오던 易과 道를 이전대로 다시 통합하고, 잃었던 數를 易에 접목하는 동시에, 知止(艮)사상을 펼침으로 위 端兆의 기틀을 제공 합니다.

東方學
화담은 `귀신사생론`에서, "此론雖辭拙 然見到千聖不盡傳之地頭 爾勿令中失 可傳之後學 遍諸華夷遠邇 知東方有學者出焉"(이 이론이 비록 말은 무디지만 성현들이 완전하게 傳하지 못한 경지를 보기에 이르렀으니 허엽은 중도에 이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학자들에게 傳해서 두루 모든 중국인과 변방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동방에도 학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하여라)라고 동방(艮)에 학문이 나왔다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한나라 이래로 잃어버린 爻變의 義를 되살려, 주역을 4차원의 우주로 설명하면서, 改過遷善의 사상을 설파합니다.

四法
다산 정약용은 `주역4전 1권`에서, "易有四法 一曰推移 二曰物象 三曰互體 四曰爻變"(易에는 4가지 법이 있는데 첫째가 추이, 둘째가 물상, 셋째가 호체, 넷째가 효변이라고 말한다)라고 4차원의 주역을 설파한다.

혜강 최한기(1803-1877)는 내경의 변화적 관점을 운화적 관점으로 전환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氣를 형이상학에서 형이하학 관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배척하던 서양과학을 포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從運
혜강은 `氣學`에서, "凡言改易曰變化 革物曰化 能生非類曰化 化之義 從其運轉 而隨時有化 非一時化之 而止之也"(무릇 고쳐서 바뀌는 것을 變化라고 한다. 物을 革하는 것을 化라고 하며, 다른 類를 생할 수 있는 것을 化라고 한다. 化의 뜻은 그 運하여 轉하는 것을 從하는 것이지, 일시에 化하여 멈추는 것이 아니다)라고 化는 運에 從하는 것이다.

일부 김항(1826-1898)은 易道의 근원인 갑자의 내경(道/시간), 괘효의 주역(易/공간)을 통합관점에서 상수의 정역(易道/시공)을 作易함으로서, 마지막 성인에 등극합니다.

1聖人
일부는 `정역`에서, "嗚呼 今日今日 六十三 七十二 八十一 一乎一夫"(아아 오늘인가 오늘인가 63, 72, 81은 일부에서 하나되네)라고 今日 一夫에서 하나된다.

위 實學은 하나하나가 수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큰 학문들입니다.
위 큰 학문들이 19세기말 조선에서 불과 1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배출되었다는 것은 21세기 새로운 문명을 향한 神의 端兆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무 이제마(1833-1900)는 내경의 內에서 外로 관점을 전환하고, 또 장중경의 병증에서 인물관점으로 전환하는 4상의학을 계발합니다.

四象人
동무는 `동의수세보원`에서, "余 生於醫藥經驗五六千載後 因前人之述 偶得四象人臟腑性理 著得一書 名曰 壽世保元 原書中 張仲景所論 太陽病 少陽病 陽明病 太陰病 少陰病 厥陰病 以病證名目而 論之 余所論 太陽人 少陽人 太陰人 少陰人 以人物名目而論之也"(나는 의약경험이 5,6천년 쌓인후에 태어나, 앞 사람들의 저술 덕분에 우연히 4상인 장부의 성리를 알게 되어 한 권의 책을 쓰고 수세보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책 속에서 태양병, 소양병, 양명병, 태음병, 소음병, 궐음병으로 장중경이 논한 것은 병증으로 이름을 달아 논한 것이고, 태양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내가 논한 것은 인
물로 이름을 달아 논한 것이다)라고 4상의학을 소개한다.


3. 新知識을 向하여
컴퓨터는 사이버라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컴퓨터의 정신이 될 재료가 바로 신지식입니다. 우리는 위 新知識을 창출하기 위해서, 우주원리로 무장하고, 先秦의 진리를 복원하고, 단조의 실학을 활용하여, 디지털의 道(알고리즘)를 생산해야 합니다.

가. 妄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易道는 우리같은 범부가 만들어 내는 학문이 아닙니다. 神의 계시에 의해 聖人이 敎해주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傳해 받아서 활용할 뿐입니다. 그런데 傳해 받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솔직히 우리에게는 벅찹니다. 그러나 위 미흡한 사람 중에는 妄作(가짜)임데도 불구하고 得勢하여 功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에 의해 道가 끈어지고 不傳되는 것입니다.

妄作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徵四失論`에서, "受師不卒 妄作雜術 謬言爲道 更名自功"(스승의 지도를 받음에 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망녕되이 잡술을 作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말을 道로 삼아 다시 스스로 功이라 이름하지 말라)라고 때가 되면 깨닫게 되니, 잡술을 作하지 말고, 가짜를 홍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書는 본래 진리를 傳하는 수단이지, 자신을 홍보하는 수단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서적은 진리전달 보다는 홍보책자가 많습니다. 거짓된 홍보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거짓 자체가 毒으로 변하여 必히 생명을 단축시킬 것입니다.(大過)

述而不作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대성 공부자도 述而不作이라고 하였거늘 필자가 어찌 이와 같은 과감한 모험을 할 수 있으리오."라고 공자도 易을 서술(述)하였지, 만들지(作) 않았는데, 어찌 필부가 역을 作하는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 正名(이정표)
易道의 復元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도 正名!`... `둘도 正名!`... `셋도 正名!`...입니다. 正名이 바로 우주원리를 찾아가는 `이정표`이기 때문입니다.

易道에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名입니다. 名은 하나 하나에 분명한 우주설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위 名을 바르게(正)만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주원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첫머리`에서,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道라고 할 수 있는 道는 항상 道가 아니며, 名이라고 할 수 있는 名은 항상 名이 아니다)라고 道와 名은 불가분 관계가 있음을 설정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 이정표가 혼란스러워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정표부터 정돈을 시작해야 합니다. 교통정리 없이 우주원리는 근처에도 갈 수 없습니다.

必也正名(반드시 정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공자는 춘추말의 부패와 타락이 전혀 정명되지 못한데 있다고 보았던 고로 제자가 선생이 만일 위국의 재상이 된다고 하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必也正名이라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때와 같은 난세에 정명부터 하겠다는 말을 들은 제자는 아연질색 하였지만 공자의 뜻을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라고 공자의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名衰世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6장`에서, "其稱名也 雜而不越於稽其類 其衰世之意邪"(이름을 칭함은 그 류를 살펴서 넘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쇠한 세상을 뜻한다)라고 명칭은 쇠한 세상을 의미한다.

다. 디지털의 道
術은 學없이 발전할 수 없으며, 術이 없다면 學은 의미가 없습니다. 과학도 기술을 발전시켰기에 지금의 과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초과학이 발전한 나라가 곧 과학기술도 발전한 선진국입니다. 易道 역시 원리의 발전없이 응용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시 시대에 맞춰 디지털화야 할 것입니다.

先秦시대는 대나무에 易道가 쓰여졌으므로 竹簡의 道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미래는 컴퓨터정신으로 알고리즘의 프로그램을 생산해야 할 것이므로 디지털의 道라고 부릅니다.(안초칭함) 참고로 易道는 象數를 근본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므로, 알고리즘화 할 수 없다면 근본이 잘못된 것이며, 1의 오차는 결국 誤答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통변은 그 다음입니다.

과거는 우주를 연구하고 그것을 易道로 가르치며 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궁극적인 원리(窮理)로서 진정한 이치(眞理)를 밝(明)히고, 이것을 다시 디지털의 道로 化함으로서 修身齊家(정신)의 신지식을 창출할 것입니다.

后人誰
일부는 `정역`에서, "讀書學易先天事 窮理修身后人誰"(책을 읽고, 역을 배우는 것은 선천의 事이요, 窮理하고 修身하는 것은 후천 人이다. 그 누구인가)라고 후천 사람을 기다린다.

宇宙原理의 발전없이는...

한국 易道의 미래는 없으며...
학문이 先秦처럼 모여 盛할 수도 없으며...
21세기 端兆의 勞苦를 이어갈 수도 없으며...
컴퓨터와 접목이 불가능하여 신지식도 없으며...
중국, 대만,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易道는 지키고 있고, 또 傳할 其人을 기다립니다.
守傳
일부는 `정역`에서, "无人則守有人傳"(사람 없으면 홀로 지키고, 사람 있으면 전하리라)라고 진리를 전하고 지킨다.

非人이 아닌 其人을 기다리며...
2001년 10월 9일
편안한 돌, 안초올림~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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