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론(甲乙論)2 다산시문집 제11권

我顯宗十二年辛亥秋七月。觀象監啓曰王世子誕日。實爲辛丑八月十五日。而因丁未年改用大統曆法。以閏七月誤作閏十月。故誕辰八月。誤稱九月。自昨年庚戌。還用時憲曆。始正其謬。請自今世子誕辰。以八月改之。上命禮官就議大臣如其言。出國朝寶鑑。余惟軒嚳以來。曆法屢變。自漢以上勿論。

漢武帝作太初曆。洛下閎等作。魏文帝作黃初曆。晉虞喜立歲差法。宋何承天作元嘉曆。唐一行作大衍曆。玄宗時宋吳昭素作乾元曆。太宗時元郭守敬作授時曆。世祖時此其大者也。又所謂四分曆蔡邕作太和曆曹魏初景初曆魏明帝泰始曆晉武帝天和曆周武帝時甄鸞作。皇極曆隋文帝時劉焯作。至德曆唐肅宗五紀曆唐代宗時郭獻之等作。欽天曆五代時王朴作。應天曆宋太祖時王處訥作。知微曆金時趙知 微作。之類。又不可勝數。由是觀之。凡前史之稱正月者。或是二月。其稱九月者。或是八月。若其置閏之差。或在歲末。則其稱二年者。或是三年。其稱八年者。或是七年。又或日食不在朔者。其稱一日者或是二日。其稱十日者或是九日。乃推數算命之家。集古帝王聖賢卿相之等四柱。甲乙以驗其吉凶。而峻秩多文之人。方且欣然。以爲其理有然。豈不疎哉。甲乙紀年之法。始於西京。古人不以是紀年。不以是紀月。不以是紀時。則今所行孔子項羽之四柱。皆後人以長曆推定者也。然所謂春秋長曆。杜預謂尙書及史官。以乾度曆參校泰始曆而爲之者。所謂乾度曆者。術客李修卜所爲也。今以大統時憲之曆。溯至春秋之時。則其年月甲乙之差。又不可勝數。與今杜預之所推定。悉不相合。其所謂甲子。吾惡知其非乙丑耶。其所謂丁丑。吾惡知其非丙子耶。郭璞者。諸術之祖也。郭璞用晉曆。以定其吉凶。以此法而冒之於今曆。其有合耶。袁天綱,李淳風用唐曆。以定其吉凶。以此法而冒之於今曆。其有合耶。其言之罔誕虛妄。於是乎著明矣。世之君子。盍亦三思。丁丑五月初二日作。

우리 현종(顯宗) 12년(1671) 신해년(辛亥年)이다. 가을 7월에 관상감(觀象監)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왕세자(王世子)의 탄신일은 실지로 신축년(현종 2, 1661) 8월 15일인데 정미년(현종 8, 1667)에 다시 대통력법(大統曆法)을 씀에 따라 윤7월을 잘못 윤10월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탄신이 8월인 것을 잘못 9월로 일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작년 경술년(현종 11, 1670)부터 도로 시헌력(時憲曆)을 쓰게 되었으므로 비로소 그릇된 것을 시정하였사오니, 이제부터 세자의 탄신일을 8월로 고치소서"

상이 예관(禮官)에게 명하여 대신들에게 가서 의논하도록 한 결과 관상감에서 아뢴 대로 하기로 하였다. 이상은 《국조보감(國朝寶鑑)》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헌원씨(軒轅氏)와 제곡씨(帝嚳氏) 이래로 역법(曆法)이 여러 번 변경되었으니, 한(漢) 나라 이전은 논할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한 무제(漢武帝)는 태초력(太初曆) 낙하굉(洛下閎) 등이 지었다. 을 지었고, 위 문제(魏文帝)는 황초력(黃初曆)을 지었고, 진(晉) 나라 우희(虞喜)는 세차법(歲差法)을 만들었고, 송(宋) 나라 하승천(何承天)은 원가력(元嘉曆)을 만들었고, 당(唐) 나라 일행(一行)은 대연력(大衍曆)을 만들었고, 현종(顯宗) 때이다. 송(宋) 나라 오소소(吳昭素)는 건원력(乾元曆)을 만들었고, 태종(太宗) 때이다. 원(元) 나라 곽수경(郭守敬)은 수시력(授時曆)을 만들었다. 세조(世祖) 때이다. 이것이 역법 가운데 큰 것이다.

또 이른바 사분력(四分曆) 채옹(蔡邕)이 지었다. ㆍ태화력(太和曆) 조위(曹魏)의 초기에 지었다. ㆍ경초력(景初曆) 위 명제(魏明帝) 때 지었다. ㆍ태시력(泰始曆) 진 무제(晉武帝) 때 지었다. ㆍ천화력(天和曆) 주 무제(周武帝) 때 견난(甄鸞)이 지었다. ㆍ황극력(皇極曆) 수 문제(隋文帝) 때 유작(劉焯)이 지었다. ㆍ지덕력(至德曆) 당 숙종(唐肅宗) 때 지었다. ㆍ오기력(五紀曆) 당 대종(唐代宗) 때 곽헌지(郭獻之)가 지었다. ㆍ흠천력(欽天曆) 오대(五代) 때 왕박(王朴)이 지었다. ㆍ응천력(應天曆) 송 태조(宋太祖) 때 왕처눌(王處訥)이 지었다. ㆍ지미력(知微曆) 금(金) 나라 때 조지미(趙知微)가 지었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를 통하여 살펴보건대, 전대(前代) 사서(史書)에서 정월이라 일컬은 것이 2월이 될 수도 있고, 9월이라 일컬은 것이 8월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시차(時差)에 의한 윤달[閏月]이 혹 12월에 든 경우에는 2년이라 일컬은 것이 3년이 될 수도 있고 8년이라 일컬은 것이 7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혹 일식(日蝕)이 초하루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1일이라 일컬은 것이 2일이 될 수도 있고 10일이라 일컬은 것이 9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운명(運命)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옛날 제왕(帝王)ㆍ성현(聖賢)ㆍ경상(卿相) 등의 사주(四柱)의 갑자ㆍ을축을 모아서 길흉(吉凶)을 증명하고 있고, 품계가 높고 학식이 많은 사람들도 흔연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이치가 있다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엉성한 수작인가.

갑자ㆍ을축으로 연대를 기록하는 법은 전한(前漢) 때 처음 생긴 것으로, 옛사람들은 해를 기록하고 달을 기록하고 날짜를 기록하는 데 있어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유행(流行)하고 있는 공자(孔子)와 항우(項羽)의 사주(四柱)는 모두 후세 사람들이 만세력(萬歲曆)으로 미루어 헤아려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춘추장력(春秋長曆)은 두예(杜預)의 말에 의하면 상서(尙書)와 사관(史官)이 건도력(乾度曆)을 가지고 태시력(太始曆)과 참고 비교하여 만든 것이라 하였다. 이른바 건도력이란 것은 술객(術客) 이수복(李修卜)이 만든 것이다. 이제 대통력과 시헌력에 의해 춘추 시대의 연월을 소급하여 계산해 본다면 어긋나는 갑자ㆍ을축의 차이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두예가 추정(推定)한 것과도 모두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니 갑자라고 일컬은 것이 실은 을축일 수도 있는 것이고 정축(丁丑)이라고 일컬은 것이 병자(丙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은 각종 술법의 비조(鼻祖)이다. 곽박은 진력(晉曆)을 가지고 길흉을 추정하였는데, 이 법을 지금의 역법(曆法)에 맞추어 쓴다면 그것이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원천강(袁天綱)과 이순풍(李淳風)은 당력(唐曆)을 가지고 길흉을 추정하였는데, 이 법을 지금의 역법에 맞추어 쓴다면 그것이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그 말의 허망과 괴탄이 여기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세상의 군자(君子)들이여, 세 번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으려는가.

정축년(1817) 5월 2일 짓다.

[주D-001]대통력법(大統曆法) : 명 태조(明太祖) 홍무(洪武) 17년에 누각박사(漏刻博士) 원통(元統)이 만든 역법(曆法)이다.

[주D-002]시헌력(時憲曆) : 명 의종(明毅宗) 때 독일 선교사 탕약망(湯若望 : 아담 샤알)이 만든 역법(曆法). 태음력(太陰曆)의 구법(舊法)에 태양력(太陽曆)의 원리를 부합시켜 24절기(節期)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히 계산하여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인조(仁祖) 22년 김육(金堉)이 가져와 10년 간 연구한 끝에 효종(孝宗) 4년부터 시행하였다.

[주D-003]만세력(萬歲曆) : 앞으로 다가올 1 백 년 동안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과 절후를 추산하여 엮은 책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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