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직렬 현상은 동아시아의 전통천문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취급됐다. 전통시대에는 이를 ‘오성취합’(五星聚合)이라고 불렀는데, 왕조의 흥망이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징조로 여겼다. 중국에서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설 때, 오성이 28수(하늘 적도에 있는 28개의 동양 별자리) 중 정수(井宿)에 모였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다른 기록에는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설 때 오성이 방(房)수에 모였고, 제나라 환공이 전국을 쟁패하려 할 때는 오성이 기(箕)수에 모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조선후기 실학자로 유명한 성호 이익(1629~1690)에 따르면, 오성이 모였다는 기록은 노나라의 역사책인 ‘춘추’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오성취합에 대한 기록과 의미해석이 한나라 이후부터 성립된 것으로 이해했다. 중국 점성술의 고전이라고 할 ‘사기’의 ‘천관서’가 후한 때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성취합에 부여한 점성술적 의미가 한나라 시대(기원전 202~기원후 220) 이후에 성립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오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를 알고 이들이 특정한 날짜에 같은 지점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기도 한나라 시대 이후일 것이다.

행성들의 공전주기를 알면 오성취합이 일어나는 시점을 계산할 수 있다. 현대적인 컴퓨터로 계산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지만 이는 오해다. 옛날 사람들도 오성취합이 일어날 시점을 아주 손쉽게 계산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과거 어느 때 오성취합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왕조가 흥성할 징조였다고 해 왕의 환심을 사는 일이 가능하다. 또한 미래의 어느 때 오성취합이 일어나는데, 이때에 새 세상이 열린다는 예언으로 역성혁명의 추종자를 끌어 모을 수가 있다.

중국의 최호(?~450)라는 학자는 한나라가 흥하려 할 때 오성이 정수(井宿)에 모였다는 기록을 다시 검토해 이 기록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는 기록보다 3개월 전에 오성취합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최호의 예를 보면 5세기경에 이미 행성들의 운동을 되짚어 계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오성취합을 끌어다가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언의 근거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인종 때(1132) ‘고현유훈’이라는 예언서에는 “천지가 생겨난 지 수만 년이 흐른 뒤에 일월오성이 모두 정북에 모여들 것이다. 성인의 도가 이때부터 행해질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현상의 기록에도 관측자나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천문학자가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자연현상과 옛날의 천문학자가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믿은 자연현상은 동일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서에 기록된 자연현상은 단지 자연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현상이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의미 있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의미 있는 혹은 의미 있게 해석된 현상만을 기록했다.

오성취합에 대한 전통시대 사람들의 이해수준을 감안하면 오성취합을 되짚어 계산하고 이를 책에 적어 조작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왕조의 흥망이나 역성혁명이라는 오성취합이 갖는 점성술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기록을 조작할 이유도 충분하다. 우리는 가끔씩 옛날 사람들의 지혜에 대해 터무니없이 무시한다. 그들이 지녔던 지혜와 기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능력이 없던 그들은 복잡한 계산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통과학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옛날 사람들은 아주 쉽게 해냈던 예가 많다. 행성직렬 현상의 계산도 그중의 하나이다.

<전용훈 연구원의 ‘단군세기의 행성직렬 기록은 조작됐다!’에서 발췌 및 편집>
http://www.dongascience.com/news/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80704112346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