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판별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6. 14:47:05

말씀 감사합니다.

우선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큰 맥락에서 이해가 갑니다.

세세한 부분은 잠시 미루고 다시 원리적인 부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핵심은 감응/중화 이 두가지가 잇는줄 압니다.

그런데 중화의 원리에 잇어서

그 핵심에 대해 망설여짐이 잇어 다시 여쭙겟습니다.

결국 4주로서의 중화는

희약신이 많고 강하며 기병신이 적고 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요?

3방회로 모두 희약신 局을 이루는 것은

중화의 세력이 더욱 힘을 합하고 강해서 좋은 것인줄 압니다.

중화를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가늠 하는데 잇어서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희약기병한이 잇을 것이고

각각 그 모습 또한 천태만상일테지만

결국 중화를 따짐에 잇어서

중화가 되엇다 안 되엇다

중화가 높다 낮다를 구분하는 것이

희약신의 세력에 대한 1D/2D/3D 각각의 차원적 관점인지요?




제목: re: 판별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7. 08:11:53

중화와 균형은 다릅니다.

용어를 확실히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고전과 앞뒤가 맞게 됩니다.

중화는 에너지이고, 균형은 그 기준입니다.

중화는 대우주에 逆하던지(정격), 從하면서(종격)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소우주의 일간을 기준으로 대우주의 용신과 상대적 권형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 판단하는 방법을 3D차원으로 나누어 판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희약신, 기병신으로 구분하는 겁니다.




제목: 네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7. 08:50:59

네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희약신이 많을수록

중화가 잘되어 잇다고 판단할 수 잇는 것인지요?

특히 1, 2차원 보다 3차원적인 중화로 희약신이 많고 강할때

그 중화가 잘되어 잇고 높다고 판단할 수 잇는 것인지요?

중화와 관련되서 몇가지 더 여쭙겟습니다.

격의 고저 라는 것과 중화는 어떤 관계가 잇는지요?

또 청탁의 개념과 중화는 어떤 관계가 잇는지요?

격의 고저 청탁 모두 중화에 포함되는 개념인지요?




제목: re: 네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8. 09:01:23

방법보다는 원리에서 전혀 감을 못 잡는 것 같습니다.

원리가 없으니 전혀 응용이 안 됩니다. 원리라는 것은 일단 중화, 권형, 격, 청탁 이런 개념들이겠지요. 원리를 알면 방법은 자연히 나오고 또 진가도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희약신이 많으면 당연히 중화가 잘 되는 것입니다.

3가지 함께 있을수록 강합니다. 단 1D없이 3D만 있는 경우 작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1D는 기준이고, 2D는 제어이고, 3D는 기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 위 용어는 아래 귀천을 근거로 안초가 설정한 용어입니다.

貴賤(귀천)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6미지대론'에서,"帝曰 其貴賤何如 岐伯曰 天符爲執法 歲位爲行令 太一天符爲貴人 帝曰 邪之中也 奈何 岐伯曰 中執法者 其病速而危 中行令者 其病徐而持 中貴人者 其病暴而死"(황제가 말한다. 그 귀천은 어떠한가. 기백이 말한다. 천부는 집법이고, 세립은 행령이고, 태일천부는 귀인입니다. 황제가 말한다. 中에서 邪는 어떠한가. 기백이 말한다. 중에서 집법은 그 병이 빠르고 위태합니다. 중에서 행령은 그 병이 늦고 지속됩니다. 중에서 귀인은 그 병이 폭발적이고 죽습니다)라고 귀천을 3가지로 판단합니다.

격은 6신 관계일 뿐 고저라는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하기야 어디서 격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청탁은 중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는 가 없는 가로 판단합니다. 청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제목: 격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8. 20:23:36

>희약신이 많으면 당연히 중화가 잘 되는 것입니다. 3가지 함께 있을수록 강합니다. 단 1D없이 3D만 있는 경우 작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1D는 기준이고, 2D는 제어이고, 3D는 기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아직 중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결국 귀천은 중화의 상태로서

중화가 잘 되어 잇으면 貴고 그렇지 못하면 賤인 줄로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감응의 문제와 노력 등의 논점이 잇지만

우선은 중화에 대해서만 논하도록 하겟습니다.

그럼 결국 중화가 잘 되어 잇는가는 무엇으로서 판단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가 좀 막연합니다.

그래서 위 논점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중화가 잘 되어 잇는지는

희약신이 얼마나 많고 또 강한지를 1D/2D/3D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여 총체적으로 판별하는 것인지요?

중화가 잘되어 잇다는 것은

결국 기병신이 얼마나 적고 약하며

희약신이 얼마나 많고 강한지를 따지는 것인지요?

그럼 결론적으로

희약신이 많고 강하면 귀한 것이고

기병신이 많고 강하면 천한 것이라 할 수 잇는지요?

>격은 6신 관계일 뿐 고저라는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하기야 어디서 격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겠는가.청탁은 중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는 가 없는 가로 판단합니다. 청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말씀 중에 격은 고저의 개념과 상관이 없다고 하셧는데

이부분에 대해서 제가 일전에 듣기로는

비격의 경우 剋을 통해 정격이 되면

그렇지 않은 종격보다 더 상격이라고 말씀하신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화 즉 희약신의 상태에 대한 판단 외에

격 자체가 택하는 중화의 방식(從/正)에 대한

고저판단이 따로 잇는줄 알앗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말씀 여쭙습니다.




제목: 중화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9. 12:15:58

참으로 답답합니다.

제일 처음 시작할 때 正名을 얘기하면서 시작했고, 또 중화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원전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간 중간에도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래서 학문이 와전되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상상에 의해 만든다는 겁니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자기 소설입니다. 자기 소설을 쓰려면 뭐 하러 나한테 질문을 하고 배우려 합니까. 혼자 자기 소설을 쓰면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중화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복합할 수 없습니다. 단지 자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피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어렵게만 보이는 겁니다.

중화가 무엇인가 개념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찾지 않고 그 판단하는 방법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런 방법은 개념과는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중화가 뭡니까?

스스로 상상하는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동양학에서 정통으로 설정된 개념을 묻고 있는 겁니다. 당연지 원전에 반하면 안 되겠지요. 중화, 감응, 용신, 만세력 이런 개념부터 잘못되었다면, 다음은 얘기할 필요조차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설정부터 엉망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학문이 엉망이 된 겁니다.

2007.12.29. 안초

 

 

제목: 권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9. 18:31:56

말씀 감사합니다.

중화의 진의를 파악하도록 더 노력하겟습니다.

>中和(중화) 중용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중화에 대해서 제가 안초님께 배운 바로는

우선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라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위 중용에서의 개념이 중화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제가 짐작하는 중화의 개념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기울기가 0인 저울처럼 平한 상태에서의

에너지/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도로만 짐작하고 잇습니다.

또한 위 중화는 대우주(本)의 용신과

소우주(主)의 일간이 기준이 되어 그 권형으로서 판별하며

이는 4주의 이치적 貴賤 판별의 관건이 되는 핵심개념이 되는줄 압니다.

결국 本主의 권형으로 기울기0의 平이 곧 중화이므로

어디까지나 本主의 상대적 강약, 경중을 비교함이 마땅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난해하다 생각되는 점이

만약 양일간이 통근하여 정격이라면 무조건 本오행을 기피하는데

만약 양일간이 통근하여 本과의 권형으로서 오히려 더 무겁고 강하다면

당연히 本오행의 힘을 실어줌이 중화의 방향이며 이에 합당한 오행이

희약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치 않게 본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아마 이것은 중화의 방식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해서인줄 압니다.

결국 위 중화의 방식은 本에 대한 逆從으로서 구분되며

이는 正從이라는 서로 다른 잣대로 양분되는 줄 압니다.

正格이라면 逆으로서 희약을 삼고 從格이라면 從으로서 희약을 삼는데

희약신이 물론 중화를 돕긴 하나

중화의 개념 그 자체가 아닌 이상

희약 = 중화? 라는 혼동은 확실히 없애도록 하겟습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중화는 本主의 세력/강약/경중이

얼마만큼 平에 이르럿느냐는 점에 그 초점이 맞춰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위 平에 대한 초점은 통근/사령간/십이운성의 원리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수치화 되어

本對主 로서 비교 측정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아무리 희약신이 많더라도

本主가 平으로 중화를 이루지 않으면

위 근본적인 귀천의 핵심에 어긋나지 않나 싶습니다.

희약신이지만 本主의 中和에 도움이 안되는 운이 온다면

특히나 개념에 더 혼돈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결국 中和는 體로서 이미 결정된 고정적 개념이며

운의 희기는 그 用으로 파악되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중화는 이미 體인 8字 원국 자체에서 결정되고

즉 근본적인 貴踐은 體인 4주 원국의 중화로서 결정되며

이것의 用으로서

이미 결정된 귀천에 대한 크고 작은 길흉의 현상적 흐름이

運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깊은 오의를 깨닫는데 부족하여 소설이 되엇다면 죄송합니다.

참된 이치의 한말씀 여쭙겟습니다.




제목: re: 권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0. 05:46:47

"중화에 대해서 제가 안초님께 배운 바로는

우선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라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위 중용에서의 개념이 중화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제가 짐작하는 중화의 개념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기울기가 0인 저울처럼 平한 상태에서의

에너지/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도로만 짐작하고 잇습니다"

이 정도가 중화개념입니다. 또한부터 시작하는 다음 글은 중화개념이 아니라 그 방법입니다. 굳이 찾자면 주본, 역종, 권형, 귀천, 체용 등의 개념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이것을 다 중화라고 한다면 한의학, 성리학 등 다른 곳에서 부르는 중화와 달라질 뿐 아니라 고전과도 달라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동양학의 결론은 중화를 찾는 것이고, 감응을 쫒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중화자체는 아닌데, 아무것이나 얼버무려 중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주의 방향을 못 찾아가게 되는 겁니다.




제목: 그렇다면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0. 08:56:37

그렇다면 4주에서 중화가 잘 되엇는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는 것인지요?

일전에 제가 이해한 방식은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는지요?




제목: 正名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0. 11:54:00

균형을 판단하는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균형과 권형 그리고 중화는 다른 말입니다. 균형은 목표이며, 권형은 방법이, 중화는 결과입니다. 즉 균형이 안 맞아도 중화는 존재하며, 또한 중화를 보니까 아니라 권형(저울질)을 해보니 그 결과 중화가 어떻다 입니다.

이런 세세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미흡하기에 원리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며, 고전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주석을 달아 놓으니 자기 마음대로 소설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유명해 지면, 후학은 그것을 읽어서 또 다시 가르치니 고전 본래의 뜻과는 점점 무관해지는 겁니다.

오늘날에는 위 무관한 학문에 임상까지 곁들여 만들어진 자기 주장을 무슨 문파니 하면서 세를 불리는 겁니다. 물론 중국사람 행태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에서도 모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 진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양사와 양서의 만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진가아니라 유명 즉 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유명이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명은 절대 가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짜는 산속에 있고 가짜가 판치게 마련입니다. 제가 만나 본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첫 관문이 정명입니다.

아래 글들은 대체적으로 그 행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알고 쓴 것인지 흉내만 낸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화를 모르고 썼다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제목: 균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0. 15:40:55

말씀 감사합니다.

>균형을 판단하는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균형과 권형 그리고 중화는 다른 말입니다. 균형은 목표이며, 권형은 방법이, 중화는 결과입니다. 즉 균형이 안 맞아도 중화는 존재하며, 또한 중화를 보니까 아니라 권형(저울질)을 해보니 그 결과 중화가 어떻다 입니다.

말씀하신 핵심은 主本의 권형이라는 방법으로서

중화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뜻인 줄 압니다.

저 역시 위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위 균형의 개념은 우선 낯설고 좀 어렵습니다.

특히 중화랑 균형은 같은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짐작하기로는 主本의 균형 즉 平(완전)이 목표이며

위 平의 상태 즉 균형도를 권형이라는 저울질을 통해

판별한 결과가 중화라는 말씀이 아니신가 합니다.

즉 균형은 平으로서 이치적 원리적 관점이며

중화는 위 이치적 관점이 실제로 얻어낸

현상적 결과치/에너지/힘/생명력을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목표가 되는 균형은 즉 平/中의 개념이고

中和는 그 中/平/균형의 결과로서

생명력/힘/에너지 라는 말씀인줄 압니다.

제가 느끼기에 中/中和의 차이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소설을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오늘날에는 위 무관한 학문에 임상까지 곁들여 만들어진 자기 주장을 무슨 문파니 하면서 세를 불리는 겁니다. 물론 중국사람 행태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에서도 모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 진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양사와 양서의 만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진가아니라 유명 즉 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유명이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명은 절대 가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짜는 산속에 있고 가짜가 판치게 마련입니다. 제가 만나 본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첫 관문이 정명입니다. 아래 글들은 대체적으로 그 행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알고 쓴 것인지 흉내만 낸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화를 모르고 썼다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말씀하신 정명의 기본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등한 입장에서 자평학적 논의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안초님께 배우는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무엇을 알고 썻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안다고 착각되는 부분 속에서

겨우 말씀을 여쭐수는 잇겟지만

그렇다고 위 진리의 오의를 안다고 감히 생각되진 않습니다.

主本의 中/平/균형을 찾고 위 목표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정확히 권형하여 그 中和를 관찰함에 잇어서

本이 되는 대우주의 소식이 용신에 잇지 아니하고(가용신)

월령으로서만 存한다면

위 균형이라는 목표점을 우선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여쭙습니다.

월령이 本이 되어 主와 함께 中이라는 목표점이 생길 것 같고

위 목표점의 설정에 잇어서 象數적인 접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용신과 主의 中 역시 象數적으로

먼저 목표점을 잡는 것이 마땅한듯 생각이 되며

이 목표점에 일치하진 않아도 근접한 해당오행을

목표점으로 잡고 관찰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떤지 여쭙습니다.

실질적으로 중화라는 결과를 도출/관찰함에 잇어서

위 中의 목표가 어떤 에너지 상태를 갖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위 부족한 질문/생각에 한말씀 가르침을 청합니다.




제목: 치수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1. 08:49:20

상수적인 접근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나 숫자를 말한다고 보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갑자, 괘효, 1水,2火,3木.. 등이 바로 상수입니다. 상과 수가 함께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소숫점으로 나가는 것은 상수가 아닙니다. 상수란 자연수입니다.

균형은 상대적 비교입니다. 절대적 비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서로의 강약만 알면 되는 것이지 온도계처럼 절대적 치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절대적 치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음양의 상대적 속성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혼돈을 한다고 보입니다. 물론 쉬운 것이 아닙니다. 원리는 쉽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럽니다. 마치 공기가 인간에게 정말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이런 개념이 잡히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목: ...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1. 14:40:48

>균형은 상대적 비교입니다. 절대적 비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서로의 강약만 알면 되는 것이지 온도계처럼 절대적 치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네. 균형/중화... 참 어렵네요.

균형이 절대적 비교가 아닌 상대적 비교라는 말씀은 잘 알겟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생각되는 바는 이렇습니다.

중화의 기본 개념 즉 중용적 의미와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생명력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이해하되

그것에 대한 실체적/구체적 파악이 막연한 실정입니다.

위에 대하여 主本 양측에 대한 권형을 통하여 파악된 결과가 중화이며

결국 主本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야 위 결과가 나올수 잇음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主本 양측이 서로 강약/경중에 잇어서 서로 대등하여

그 힘이 平을 이루어 결과적으로 그 결과가 가장 平에 가까울때

그러한 중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간단히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主本을 저울의 양끝에 매달아 놓고서

그 기울어짐이 전혀 없이 서로 대등한 상태를 이룰때가

중화가 높은 것/잘된 것이고 이 높고 낮은/잘되고 덜되고의 차이가

貴賤의 개념에 판단근거/전제적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主本의 통근/십이운성 등의 원리로서

主本의 상대적 강약을 따지는 것이 중화를 판단하는 핵심인지요?

그렇다면 희약기병한의 상태가

이미 主本의 통근/십이운성 등의 원리에 참여하기에

희약기병한이 主本의 권형과 무관하지 않게될듯 싶습니다.

결국 主가 本보다 약하다/강하다 정도의 결과가 나올텐데

이런 정도의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잇는 것인지 잘 모르겟습니다.

결국 중화는 그 방식에 따라

얼마나 더 많이 逆하고 잇느냐(다다익선)

얼마나 더 철저히 從하고 잇느냐(다다익선)를 보는게 정확하지 않는지요?

逆방식으로 3회합하는게 3방회 중화라 하셧으니(정격경우)

多逆/大逆/强逆 으로 多强익선으로 逆하면 그것이 中和 아닌지요?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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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테나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8. 14:11:14

>4주는 이치입니다. 이것이 반듯이 현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감응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쌍생아, 동일4주가 동일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지닷컴에서는 문진을 통해 위 부분을 확인하는 겁니다. 따라서 감응을 잘하는 사람이 4주에 부합(우주부합)하여 귀인이 되며, 감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멋대로 살아 천인이 됩니다.

진용신이든 가용신이든 감응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4주 이치대로 살아갑니다. 진용신이든 가용신이든 감응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운이 와도 발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가용신은 감응이 약하다는 전제하에 한신정도로 판단하면 됩니다. 비격은 하늘과 땅에 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剋(재관)이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剋이 오지 못하는 4주는 그만큼 떨어집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자평학의 아주 초기본적인 정도의 감이 오는 듯 합니다.

말씀하신 것을 정리하자면

결국 감응의 여부로서 命의 관찰을 신뢰 할 수 잇고

위 감응이 잘 안 이루어지면 4주의 이치적 길희흉기한은 잇으나

그것이 실제 현상에서 얼마나 분명할지는

장담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 감응의 정도는 용신의 진가구분이 가장 기본적이지만

꼭 그것으로 확정할 수 잇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실제적인 문진 확인으로 음식이나 형상 질병등을 통해

그 신뢰성을 타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동일4주이지만 命의 현상적 차이가 잇는 것은

바로 위 감응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1. 감응이 잘되는 즉 우주의 令에 민감한 4주를 타고 낫다 할지라도

기흉신의 운에는 오히려 그것이(현상적인 체감의 기준에서만 볼 때)

주체 입장에서 더욱 해로운 것은 아닌지요?

비록 좋은 운일 때는 감응이 잘되어 크게 발복하니 좋다 하지만

반대로 안 좋은 운일 때 역시 감응이 잘되니 가히 대흉이라고 할 것 같은데요.

안초님께서 귀인의 기준으로 감응의 정도라는 조건을 말씀하셧습니다.

이는 제가 안초님의 저서나 지지닷컴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말씀이십니다.

일전에 제가 용신의 진가여부가 귀천의 포인트가 된다고 보고

질문을 드렷엇는데 이에 용신의 진가여부는 귀천과 상관이 없고

本主의 중화를 귀천과 밀접히 연관하여 말씀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용신의 진가는 감응의 정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잇는 줄로 압니다.

일견 생각하기로 本主의 중화 = 감응의 정도 이렇게 연결이 되는데요.

2. 本主의 중화가 곧 감응의 민감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귀천의 핵심이라 보시는지요?

결국 결론적으로 귀한 4주란

本主가 중화를 이루고 특히 3방회로서 중화를 이루고

용신은 건왕하여 감응이 잘되는데

길희신의 운까지 만나 발복하는 그런 사주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가용신의 여부가 위 감응의 정도와 얼마나 관련이 잇는지는 모르겟으나

말씀하시는 것으로는 진용신이라도 감응이 잘 안되고

가용신이라도 감응이 잘되는 그런 애매하고 불규칙한 면이 잇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진가용신으로도 감응정도가 정확히 체크가 안되고

문진으로 확인하는 것만이 감응의 정도를 그나마

신뢰할수 잇는 유일한 방법인데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본주의 중화/3D합일을 가장 귀하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은

용신의 감응의 정도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유가 잇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本主가 중화를 이루엇더라도 감응이 없다면

결국 貴를 논할수가 없을 것인데

감응여부를 논하지 않고 바로 貴를 논하시는 것을 보면

本主의 중화란 감응과는 별개의 차원으로

형기상감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1D/2D/3D를 논함에 잇어서

만성/급성/폭발과 같은 분류들은

그 민감도 즉 감응 정도를 나타낸다고 보지 않을수가 없는데요.

이는 용신이라고 하는 안테나의 감응도 즉 질과는 상관없이

주로 지장간과 지지의 합충과 같은 지지 중심의 관찰인 줄로 압니다.

3. 本主의 중화와 감응도는 서로 어떤 관계가 잇는 개념인지요?




제목: re: 안테나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19. 09:23:47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이것이 동양학의 전제이며, 모든 종교의 전제이기도 합니다.

감응, 노력, 주본, 중화의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감응은 대우주와의 필입니다. 이 설정을 용신으로 초기설정하여 판단합니다. 이것은 4주뿐 아니라 동양학의 모든 응용학이 용신으로 초기설정하고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위 감응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에 결과가 차이 나기 마련입니다.

노력은 여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 노력이 대우주의 방향에 반한다면 헛수고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 대우주의 命을 알기위해 이 공부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본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구준을 설정하는 개념입니다. 소우주의 기준을 主라고 하고, 대우주의 기준을 本이라고 설정합니다. 위 두 가지의 균형으로 길흉을 판단하게 됩니다. 즉 균형이 잘되어 있으면 吉이고, 안 되어 있으면 凶입니다.

중화는 에너지입니다. 균형을 판단하는 방법이 아니라 균형의 결과를 말합니다. 따라서 균형이 잘 되어 있으면, 그만큼 에너지가 강하고 반대면 약합니다.

2007.12.19. 안초




제목: 감응/중화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19. 17:54:06

말씀 감사합니다.

전반적으로 말씀하시는 큰 틀과 맥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한대로 정리해보겟습니다.

우선 감응感應과 중화中和가 가장 핵심이 되는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응은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긴밀한 작용으로서

이를 소우주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느끼고 응하니 곧 감응이 됩니다.

소우주(主) - 감응 - 대우주(本)

결국 위 대우주의 令에 얼마나 감응하고

또 그에 부합되는 노력을 햇느냐에 따라

소우주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말씀으로 압니다.

用神은 대우주의 令 , 즉 月令(體)이

구체적으로 작용을 하는 神(用)으로 화현된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어디까지나 月令을 體로서 用하는 神을 用神이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월령은 대우주(本)의 體요, 용신은 대우주(本)의 用이라고 생각합니다.

中和는 위 소우주(主)와 대우주(本)의 강약/태과불급을 저울질/권형하여

그 기울기가 Zero가 될 때

결과적으로 소우주가 강한 에너지/생명력을 생성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이것이 귀천의 핵심 원리가 되는줄로 압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이 중화를 돕고 안 돕고의 여부로 길희흉기한이 결정되며

길희는 중화를 이루고 돕는 것으로 길은 직접, 희는 간접

흉기는 중화를 망치고 방해하는 것으로 흉은 직접, 기는 간접

한신은 중화를 돕기도 망치기도 혹은 돕지도 망치지도 않는 것으로서

중화는 한신에 잇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인 主本權衡의 중심 즉 기울기 '0'에 잇는줄 압니다.

종합하자면 감응/노력/중화

그 중에서도 감응/중화가 결국 자평학의 핵심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의문이 생겨 여쭙도록 하겟습니다.

1. 감응의 문제에 잇어서

가용신이라도 감응이 강하고 진용신이라도 감응이 약한 것처럼

진가용신의 차이는 감응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하신줄 아는데

그렇게 판단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것은 임상의 결과인지요?

2. 진가용신의 여부가 감응과 관련이 없고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며 차이가 잇어

문진확인을 해야 할 정도로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면

애초에 용신의 진가여부는

감응의 척도가 전혀 될 수 없다고 말해야 옳은 것 아닌지요?

3. 主本의 권형으로 그 중화를 살피고 길희흉기한을 관찰함에 잇어서

권형의 대상이 되는 主本 중 本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불분명하게 생각됩니다.

本의 體가 월령이라면 本의 用은 용신인줄로 압니다.

월령용신으로 진용신이라면 體用이 일치하여 문제가 없는데

가용신의 경우 體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主와 함께 권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월령인지요 가용신인지요?

4. 主本의 권형에 잇어서

그 방식이 從이라면 권형의 대상은 主와 무엇이 되는지요?

5. 삼회합으로 이미 局을 이룬 상태에서

대운에 의해 충이 나면 그 合이 풀어져

각각의 본래 오행으로 돌아 간다고 보시는지요?

 

 

제목: re: 감응/중화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0. 08:24:29

미안하지만 꼭 알고 싶은 핵심 하나에 집중해 주십시오.

그래야 심도 있게 들어갈 수 있고, 도 중첩해서 다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학문은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이치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위 이치를 통해 변하는 현상을 미루어 알게 합니다. 이것을 통변이라고 합니다.

通變(통변)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2장'에서,"是故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化而裁之謂之變 推而行之謂之通 擧而措之天下之民 謂之事業"(그러므로 형이상을 道라하고, 형이하를 器라한다. 化해서 마름질함을 變이라 하고, 推해서 행함을 通이라하고 하니, 들어서 천하의 백성에게 조치하는 것을 事業이라 한다)라고 通變을 설명한다.

그런데 위 통하는 것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만약 다 똑같이 감응한다면 우리 인간은 모두 일률적으로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일률적으로 살지 않지 않습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진가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진짜는 진짜에서 감응이 다른 것이고, 가짜는 가짜에서 감응이 다른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섞으려면 처음부터 진가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2007.12.20. 안초




제목: 감응/감응도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0. 14:26:47

핵심에 집중하여 가르침을 구합니다.

용신이 대우주의 體, 즉 월령을 用하는 神인 만큼

위 대우주의 명령에 유일하게 감응한 神이 바로 용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우주의 감응은 용신에 잇고

용신이 잇어야만 이를 기준하여 소우주와의 권형으로서

길희흉기한이 결정되는줄 압니다.

월령으로부터 감응되는 위 용신은 대우주로부터의 감응 그 자체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소우주에게 잇어서

그 감응의 강약 즉 정도의 문제가 생겨나는줄 압니다.

그 강약의 감응도/감응정도는 용신의 진가에 잇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며

이 감응도의 차이로 인하여 동일4주라도 차이가 발생하는줄 압니다.

1. 용신이 없어 가신을 用으로 취해야 하는 경우

가신을 무조건 한신으로 잡고 이에 따라 길희흉기한을 결정하는지요?

아니면 가신과 일간의 권형으로 결정하는지요?

2. 용신이 없어 가신을 用으로 취해야 하는 경우

가신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떤 가신을 용신 혹은 한신으로 취해야 하는지요?

3. 종격의 경우 용신과 일간 사이의 권형은 어디가 平인지요?

4. 감응도를 진단하는 문진 외의 방법이 잇는지요?




제목: 희기신 판단방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1. 02:07:26

명조는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정격과 종격입니다. 이것은 일간의 통근여부가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희기신을 판단하고 체질을 판단하는 기준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정격은 일간을 도와주는 것이 平을 이루는 것이고, 종격은 용신을 따라가는 것이 平을 이루는 겁니다.

그런데 위 정격과 종격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명조가 있는데, 바로 일간과 월령이 동일5행인 比格입니다. 위 경우는 위 동일5행을 기준으로 다시 정격과 종격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비격에서 정격은 동일5행을 剋(재관)해주는 것이 官이 희신이고, 財가 약신입니다. 비격에서 剋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從하는 비격에서 종격은 위 剋하는 格보다 한 단계 아래입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희기신을 매우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진이외는 감응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일단 없습니다.

2007.12.21. 안초




제목: re: 희기신 판단방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1. 13:15:26

말씀 감사합니다.

결국 일간의 통근여부로 정격/종격으로 나뉘고

정격은 일간을 도와줌으로서 종격은 용신을 따라감으로서 권형을 판별하여

희기신이 결정된다는 말씀인줄 압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운기자평책 155p에 비교적 자세한 설명이 잇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나

아직 그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워 좀 더 여쭙습니다.

정격의 경우 일간을 도와줌으로 길흉을 판별한다면

정격이라면 무조건 일간을 돕는 인수와 일간오행이 길신이 될텐데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치 않을줄 압니다.

용신과 일간 사이의 상대적 강약에 따른

억부의 희기를 판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 아닌지요?

즉 일간이 통근하엿는데 용신보다 강하다면

일간오행을 돕는 오행은 오히려 안 좋은줄로 압니다.

1. 일간이 통근하면 무조건 일간과 일간을 돕는 인수오행이 길신이 되는지요?

아니면 용신과 일간 사이의 상대적 강약으로 그 억부의 마땅함을 따져 이를 돕는 오행이 길신이 되는지요?

우선 정격의 경우 용신이 일간을 돕는 경우가 잇습니다.

즉 용신이 일간을 돕는 인수오행이 될 때

결국 인수오행과 일간오행의 권형으로 중화를 따져 봐야 할텐데요.

이 경우 역시 말씀하신 방법만으론 길흉이 명확히 판별 되지가 않습니다.

2. 계속 여쭙는 말씀이지만

가용신의 경우 무조건 한신으로 그냥 잡는 것인지

아니면 가용신과 일간 사이에서 결국 권형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아직 말씀이 없으신데 이 부분에 대해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제목: re: re: 희기신 판단방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3. 08:03:15

무조건 위 조건으로 판단합니다. 가용신은 염두해 둘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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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주학의 효용성이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글쓴이: 이현 날짜: 2005.04.02. 15:52:06

원리에 입각하여 동양학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안초님의 의지와 분투에 항상

감명받고 있는 초학자입니다. 제가 무식하기에 용기를 내어 질문을 드립니다.

사주학의 효용성이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한동석 님은 `우주변화의 원리` 7장 정신론에서 우주정신과 인간정신의

차이를 인정하셨습니다. 그 차이가 우주변화의 원리로 설명이 되면 그것은

이미 차이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형이상이든 형이하이든 예외 조항이 있다면 일단

학문으로 불완전하다는 것 아닐까요?

물론 저는 현시점에서 동양학의 불완전함이나,

계속적인 발전 등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초님의 그간 노력에 좀더 도움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우주정신과 인간정신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易`과 命은 같은 개념을 쓰고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지라고 그 외연과 내포의 차이로 인하여,

단지 學과 術의 관계만이 아닌,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 영역이 아닐까요?

마치 현대의 천문학과 사회학,심리학 같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주학은 한의학과 같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기에, 사주학의 길흉화복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용태, 음식, 발병, 전이 등 은 한의학적으로는 유용할지라도

사주학에서 규명하고자하는 길흉화복과는 같지만 또다른 영역이라 생각됩니다.

사주학의 준거가 되는 `만세력의 오류와 재정립`은 매우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이러한 오류가 수정된다면 용태, 음식, 발병, 전이 이외의 인간의 길흉화복(사회적 성취와 패망)등을 정확히 추명할 수 있나요?

물론 답은 제 스스로 찾아야 하겠지만, 존경하는 선학인 안초님의 고견을 청합니다.



제목: 운명치유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4.02. 18:09:20

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일에 쫒기에 많은 시간을 할 해 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만족한 답을 드릴지 모르지만, 잠깐의 시간을 내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의 우주

우주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위 우주를 끌고 가는 대표가 바로 천지일월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양학은 천지일월의 연구라고 보아도 됩니다. 운기, 주역, 정역, 한의학, 술수학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동석선생님이 지적해 주셨듯이 각자의 정신이 있습니다. 위 각자의 정신이 어떻게 하나로 움직이는 가하면 바로 감응(공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서로에게 통하여 감응하는 神이 연결되어 하나의 우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감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움직이므로 예외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노력과 선택의 부분입니다.

2. 한의학과 술수

한의학은 우월한데 사주는 잡술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사주와 역학은 다르지만 운명을 알고자하는 추명과 추단이 다를 수 없으므로 하나로 묶어 설명합니다.

4상의학의 이제마는 한의계 임에도 불구하고 역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이 그렇습니다. 역학은 양반이 하는 것이고, 한의학은 중인이 하는 것이므로 한의보다는 역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바뀌어 있습니다.

한의학은 최고의 두뇌가 하고, 역학은 경쟁(입시,삶)에 밀린 사람이 합니다. 이렇게 바뀐 이유는 한마디로 돈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대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학문까지 다를 수 없습니다. 예전에 동일한 분이 가르쳐 주신 것을 활용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전에는 우주를 설명하고, 예측하고, 인간에 적용하여 고치는 자가 지금은 철학자, 술수인, 한의사로 구분되는 것뿐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위 두 계통은 학문적 차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질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역학이 동양학을 이끌어 왔지만, 앞으로는 한의학이 동양학 전반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3. 미래예측

동양학의 고전에는 수많은 곳에 하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위 하늘에 의한 數입니다. 지구에는 위 천지일월의 규칙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위 규칙의 패턴에 따른 선택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의식과 무의식에 의해 선택되지만, 위 패턴을 무시한 선택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이므로 결국 도태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인간은 하늘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종교도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좀 더 정리하면 인간의 패턴은 천지일월에 감응하여 절대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선택은 내가 상대적으로 만들어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당근 내가 위 패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지겠지요.^^ 저는 이것을 운명치유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경제학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처럼, 최소의 운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이면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2005.4.2.

안초



제목: re: 운명치유 글쓴이: 이현 날짜: 2005.04.02. 18:58:06

정리안된 어리석은 질문에 이렇듯 친절하게 답해주시니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안초님의 글을 보며 공감합니다만, 마지막으로(더이상 때쓰지 않고 제가 답을 스스로 구하겠습니다.) 앞서 오른 안초 님께 다시금 질문 드립니다.

"좀 더 정리하면 인간의 패턴은 천지일월에 감응하여 절대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선택은 내가 상대적으로 만들어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당근 내가 위 패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지겠지요.^^ 저는 이것을 운명치유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에서 운명치유, 즉 자아완성과 인간의 궁극적 행복 실현임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동석 님의 표현대로면 천지일월과에 감응(共慾)하기 보다는 私慾에 이끌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사주학이 결정론(운명론)적으로 추명한다 하는데 이것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쉽게 말해 안초님은 소위 쪽집게 예측을 인정하십니까? 제 생각에 안초님은 소위 쪽집게는 인정하지 않으신 답변 같기에 말입니다. 즉 절대적 결정론은 인정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아니면, 결정론을 인정하되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운명치유라 하신건가요?

요즘 사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공부를 어떡 텍스트를 가지고, 어떤 순서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번거로우시겠지만 알려주십시오. 그럼, 더이상 헤매지 않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제목: re: re: 운명치유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4.02. 19:36:37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이지만, 조금만 더 공부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듯합니다.

지송하지만 한동석선생님의 "길흉화복을 사주학이 결정론(운명론)적으로 추명한다" 이런 표현 없습니다. 결정, 운명, 숙명은 매우 다른 용어이므로 좀더 숙고하셔야 표현해야 서로 의미가 전달됩니다. 따라서 아직 쪽집게니 뭐니를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권할 사주 책은 원전 이외에는 없습니다. 주석도 추천할 수 없습니다.



제목: re: re: re: 운명치유 글쓴이: 이현 날짜: 2005.04.02. 20:33:18

답변 감사합니다.

안초님의 지적대로 아직은 속단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의 한계는 누구보다도 제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문장이 길어져 주어가 혼동되게 표현한 점 죄송합니다.

"한동석 님의 표현대로면 천지일월과에 감응(共慾)하기 보다는 私慾에 이끌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사주학이 결정론(운명론)적으로 추명한다 하는데 이것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

이문장에서 한동석님의 글은 불완전한 인간들 까지 입니다. 문장 전체의 주어는 `사주학이`고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예를 갖추고 가르침을 구해야 하나, 그렇치 못한점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항상 건강하십시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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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을 쳤을 때 그 점이 맞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글쓴이: 산유화 날짜: 2003.11.07. 11:54:35

안녕하세요저는 역에 대해 잘모름니다.겨우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를 힘들게 1독 하였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주역이나 육효(육효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주역과 같이 점을 치는 것으로 알고 있슴)로 점을 쳤을 때 그 점이 맞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주역에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물어봤더니 역수이므로 맞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답변을 잘 못하더군요.

그리고 주역의 소성괘가 왜 3효로 구성되었는지 5효나 7효로 해도 되는데 굳이 3효로 했는지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고수님들의 시원한 답변을 고대합니다.안녕히 계세요.



제목: 단순한 로직, 복잡한 모습 글쓴이: 안초 날짜: 2003.11.08. 00:08:51

산유화님!추카합니다. 우주변화원리를 1독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정말 이를 악물고 1독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점의 근거?
점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運이 존재하는 지, 그리고 나아가 위 운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까지 깨달아야합니다. 이것 모르면 말짱 ‘꽝’입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이 세상은 아주 복잡한 것 같아도 그 속에는 쉽고 단순한 로직이 존재합니다.(프랙탈 구조 참조) 위 단순한 흐름이 인간에게도 흐르는 데 이것을 運이라고 합니다. (아래 141 절대시간 상대공간 참조)

따라서 위 運에 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위 통하는 방법이 감응이며 감응으로 통하게 하는 것이 神입니다. 따라서 점은 위 神을 通해 變하는 조짐(괘)을 얻어 해석(통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3획의 근거?
사물에는 始가 있다면 반드시 終이 있습니다. 또 그 本이 있다면 반드시 末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 始終(시간)과 本末(공간)이 있다면 그 가운데 반드시 中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물을 바라보는 데는 시중종, 본중말이라는 원칙이 성립됩니다. 이것이 바로 3획+3획 즉 소성괘 대성괘가 되는 원리입니다.(우주변화원리 참조)

처음에는 좀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시면 feel이 올 것입니다.

2003.11.7.
편안한 돌! 안초올림~



제목: re: 안초님, 답변 감사합니다.. 글쓴이: 산유화 날짜: 2003.11.08. 22:53:56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초님.
안초님의 무료동영상에서 본바에 의하면 神은 음양불측이며 곧 中이라고 저는 알고 있고, 그런 神은 運에 통하는 수단이 아닌 곧 運의 흐름 그자체로 알고 있고요..

한편 그 中(運)이 卦에 여하히 (象으로,혹 數?)발현되느냐 하는 것은 감응을 통해서이다라고 안초님의 답변을 이해하고 있는데,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요?..아니면 作卦(得卦?)하는 순간의 마음과 정신이 神과의 合一, 곧 中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조금 어렵네요.

어째든 감응을 위해서는 作卦하는 자의 마음이나 정신이 중요할 것 같은데..얻어진 象의 해석은 그 다음 문제로 생각되고요..전에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占을 치면 잘 맞는다고 그 사람에게 부탁해야 겠다고 남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역사적으로도 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관직도 옛 중국에 있었다고 하고..따라서 감응을 위한 별도의 조건이 따로 있나요?혹시 질문을 드려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은 아닌지요?
그럼 편안한 하루가 되시기 빌며..안녕히 계세요.



제목: 感應, 通神, 命占 글쓴이: 안초 날짜: 2003.11.09. 00:49:03

산유화님!공부 많이 하신 분입니다.
솔직히 저는 우리나라 역학 수준을 우습게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글 쓰시는 분들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상당한 실력을 갖추신 분들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도 실력 있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단지 서점의 책 수준이 없다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서점의 책 수준보다는 지지닷컴 문답게시판 수준이 훨씬 높습니다.^^

“神은 運에 통하는 수단이 아닌 곧 運의 흐름 그 자체로 알고 있고요”

“한편 그 中(運)이 卦에 여하히 (象으로)발현되느냐 하는 것은 감응을 통해서이다라고 안초님의 답변을 이해하고 있는데,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요?”

맞습니다. 산유화님의 말씀이 정답입니다. 정말 잘 이해하시고 계시네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命과 占이라는 개념으로 조금 보충해 보겠습니다.
中이라는 運이 흐름은 그 자체가 분명 神입니다. 그런데 위 神의 시초점을 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神은 감응 없이도 이치로 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占은 이치로 用하는 神이 아니고 감응으로 用하는 神입니다. 이것 때문에 산가지에서 처음 5(命)를 제하고 합니다. 다시 1(神)을 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9개로 시작하게 됩니다.

通神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0장`에서, "易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此"(易은 생각함이 없으며, 하는 것도 없다.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으로 천하의 연고에 通하니, 천하의 지극한 神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더불어 하리오)라고 至神은 감응으로 通한다.

감응이란 運 자체의 神과 나의 합일인데 위 합일(감응)하여 通하게 해주는 것이 또한 神입니다. 어쨌든 모든 만물은 運의 神이 밝히고(明), 반대로 만물을 밝히기(明)위해 神을 用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命이고, 후자가 占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運이 흐릅니다. 여기에 지팡이를 꽂았습니다. 지팡이를 꽂은 곳, 이곳이 하늘 입장에서는 命이고, 위 지팡이가 神이며, 위 움직이는 그림자가 事입니다. 즉 체용관점에서 위 命이 體象이고, 그림자가 用事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시는지요.^^ 그림을 그리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말로하려고 하니 힘듭니다.

참고로 위 예를 지팡이로 든 이유가 실제로 그렇습니다. 占(中에 지팡이를 꽂아 그림자를 살피고), 이것을 卜(지팡이의 그림자 즉 神의 用事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쨋든 역학에서는 感應을 通해 神을 用하게 되며, 이것을 무속에서는 通대신 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정도까지 여기에 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주 중요한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3.11.8.
편안한 돌! 안초올림~



제목: 거듭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산유화 날짜: 2003.11.09. 10:53:33

바쁘실텐데 답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안초님의 답변을 보고나서 저는 왕초보로서, 배우고 생각할 것이 참 많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릴게요.
휴일 잘 보내시고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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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간, 통근, 통천-문답


투간, 통근, 통천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7.09. 01:30:32

*** 님!

안녕하십니까. 용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운명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우주의 움직임(道)과 감응하며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인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천지일월과 감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대우주(제강)가 소우주에게 명령(월령/토왕용사)을 내려 통천하는데, 이것을 용신(대우주와 소우주는 체용관계에 있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꼭 명리학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니고 모든 술수학(주역,6효,6임,기문,자미 등)에 존재하는 감응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청나라 이후의 명리학에서는 감응이라는 개념을 잃었으며, 엉뚱하게도 희신을 용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신과 희신 구분이 애매한 것입니다. 주역이나 6효를 알고 계신 분은 명리학만 알고 계신 분보다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참조: 용신(用神) 이유?-감응(感應)-http://www.jeejee.com/kr_science/god_sympathy.htm

다음은 소우주 자체(율려)에서 내리는 명령(사령/월률분야)으로 지장간 3가지 중에서 하나의 간이 결정되는데, 이것을 투간(透干)이라고 말합니다.

참조: 월률(月律)과 월령(月令)-http://www.jeejee.com/kr_japyong/month_law_order.htm

그렇다고 이것이 통근은 아닙니다. 통근은 위 소우주에서 투간된 간(干)이 다시 천간과 통근하는데, 이것을 인신(人神)이라고 합니다.

참조: 인신(人神)-http://www.jeejee.com/kr_japyong/man_yong_god.htm

다시정리해 보겠습니다.

대우주와 소우주의 신(神)이 용신(用神)이고, 소우주 자체의 신(神)이 인신(人神)입니다. 그런데 소우주의 인신(人神)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천간과 지지가 통하는 것이 아니라 천간과 투간이 통하는 것입니다. 즉 투간이란 3가지 지장간 중에 하나가 결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위 우주 체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위 체계는 명리학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술수학의 체계와 동일해야 합니다. 특히 한의학의 경락 체계와 동일해야 하므로, 시간의학 강의에서 경락과 비교하여 하나의 우주임을 입증시키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됩니다. 즉 위 명리체계를 경락체계로 하나로 묶어 강의하였으며 이것은 이미 한의학회에서 하나의 우주임을 공감했으니,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보셔도 될 것입니다. 물론 현재 공인될 방법은 없습니다.

위 체계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인체의 우주설정인 만큼, 위 체계만 그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복잡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체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본주(本主)를 구체화 시킨 개념에 불과하므로, 본주 즉 형기상감만 알면 됩니다.

그리고 잔소리 좀 하겠습니다.
*** 님 같이 학생신분에 계신 분은 제가 주는 밥만 챙겨 먹으면 안 됩니다.^^ 동양학에서 암기하는 기계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마시고, 이런 고민을 했는데 맞는 고민이냐고 문의하십시오. 즉 밥 달라고 하지 말고, 스스로 밥 짖는 방법을 찾아가는데, 그것이 정말 옳게 가는지 틀리게 가는지 확인해 주는 역할이 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 학문은 스스로의 깨달음을 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 없이 암기만 하면 아는 것은 많겠지만 깨달음은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또 그래야 선학보다 훌륭한 후학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고전은 有意而無言(뜻은 있지만 말은 없음)으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만세력 문제는 스스로 고민해 보십시오. 그리고 확신이 섰을 때 다시 문의하십시오. 그래도 급하시면 전조증상 게시판에 사주를 신청하십시오.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2004.7.9. 안초


re: 투간, 통근, 통천 글쓴이: *** 날짜: 2004.07.22. 16:14:05

오랫만에 들어 왓네요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로 우주변화의 원리를 다 읽고 다시 자평원리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다시 들으니 그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깨닫게 되었고 이제 뭔가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자평원리 강의를 들으면서 이번에는 황제내경 운기편을 볼까 합니다 우리 딸이 한참 힘들때라 공부를 원하는 만큼 못하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선생님 강의 열심히 듣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만세력 올려놓으신 것 보았습니다 너무 훌륭하신 업적을 그냥 가져가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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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역종(感應의 逆從)

깜박깜박...
제각기 움직이던 반딧불은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은 서로 일치하여 깜박입니다.

똑딱똑딱...
시계 추는 아무리 흩트려놔도 처음에만 제각기 움직이지 결국은 서로 일치하여 똑딱입니다.

상승하락...
전세계 주식은 각자 움직이는 것 같지만 나스닥이 폭락폭등하면 함께 폭락폭등합니다. 이것은 주식 뿐 아니라 채권, 금리, 환률, 금가격 또한 이렇게 함께 움직입니다.

우주만물은 獨自的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만물은 함께 共鳴하며 感應하고 同助합니다. 이것을 과학, 수학, 역학에서 공통적으로 설명합니다. 각각은 아래와 같으며, 그 내용은 생략합니다.

일반물리학은 진동에너지...
카오스이론은 同期化(synchronization)...
생물은 리듬현상(rhythmentrainment)...
수학은 공명수....
철학은 사회적 동물...
불교는 空...
역학은 感而遂通, 形氣相感....
....

1. 共鳴의 恍惚

에너지는 곧 질량이며,(에너지 등가의 법칙) 聚散할 뿐이지 사라지지 않습니다.(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렇게 생명은 中의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가 들어가고, 나오면서 반복합니다. 이것을 노자는 恍惚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恍惚(황홀)
노자는 `노자 제21장`에서,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道에서 物은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하고, 홀과 황의 그 中에 象이 있고, 황과 홀의 그 中에 物이 있다)라고 홀황과 황홀의 中에 물과 상이 있다.

에너지의 흡수발산은 연속적인 움직임 같지만, 우리의 눈에는 불연속으로 나타납니다. 과학에서는 위 불연속으로 발생하는 에너지 다발을 양자라고 부르며, 위 양자를 설명하는 학문이 양자론입니다. 그래서 양자론은 위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다루므로 띄엄띄엄의 학문이라고도 부릅니다. 위와같이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우주는 時空合一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간이 보였다가, 공간이 보였다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易에서는 바뀔易을 써서 표현하며, 道에서는 一陰一陽爲之道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의 에너지는 깜박깜박 불연속적으로 움직입니다. 주식도 상승하락으로 깜박깜박하며, 사람의 심장도 깜박깜박합니다. 심장은 밖에서도 독립적으로 깜박깜박합니다. 크게는 태양도 흑점이 폭발하며 까~암빡 까~암빡합니다. 아마 태양계도 까~아~암빡 까~아~암빡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위와같이 깜박깜박이며 서로 감응하면서 공명하여 동조합니다.( 황홀 참조)

2. 感應의 逆從

감응하는 방법은 다양한 것 같아도 결국은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서로 맞서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逆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하나가 되는 從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내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勝復逆從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지진요대론`에서, "客主之氣 勝而無復也...主勝逆客勝從 天地道也"(주객의 기는 이겨서 되살아나지 않습니다...주기는 逆으로 이기고 객기는 從으로 이기는 것이 천지의 道입니다)라고 승부와 역종을 설명한다.

勝負는 聚散을 말하는데, 主는 逆하고, 客은 從합니다. 즉 主는 逆하므로 서로 밀쳐서 나누어져(分) 있고, 客은 서로 從해서 하나(原)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과학에서, 主逆하는 分의 세계를 分子라고 하고, 客從하는 原의 세계를 原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과학에서 우주만물은 분자와 원자로 존재한다고 표현하며, 역학에서 우주만물은 逆과 從으로 존재한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천지의 道입니다. 참고로 간합(운기)은 분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며, 갑자는 원자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원자분자 참조)

3. 同助의 朋從

위 감응, 공명, 동조하는 무리중에는 반듯이 중심 리더가 있게 마련입니다. 즉 위 황홀한 깜박깜박을 이끄는 분명한 리더가 있다는 것입니다.

朋從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 "易曰 憧憧往來 朋從爾思"(역에서 말하기를 자주자주 오고 가면, 친구가 너의 생각을 따른다)라고 憧憧(동동/자주자주/깜박깜박) 往來하면 벗이 너를 쫒는다.

결론적으로 에너지는 가장 강하고(공간), 가장 빠른 속도(시간) 즉 자주자주(憧憧) 오고가는(往來) 에너지에 從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루살이나 나방이 불빛에 모여드는 것도 이런 이유이며, 철새 정치인들이 리더를 따라 離合集散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또 그래야 생존합니다.

4. 日月의 豫知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강하고(공간), 가장 빠른(시간)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日月입니다. 日月은 이렇게 感應을 通해 우주를 지배합니다.

相感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 "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署來 署往則寒來 寒暑 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信也 屈信 相感而利生焉"(해가 가고 달이 오고 달이 가고 해가 오며, 일월이 서로 밀쳐서 明을 낳으며, 寒이 가고 署이 오며 署가 가고 寒이 오며, 寒暑가 서로 밀쳐서 歲를 이루니, 가는 것은 屈하고 오는 것은 信하여서, 屈信이 相感함으로 利가 생한다)라고 日月寒暑가 屈信하고 感應하여 利(에너지)가 생긴다.

결국 인간은 日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월의 움직임에는 규칙적인 논리가 있습니다. 즉 위 규직에는 法則이 있는데, 위 법칙에서 시간의 논리가 數이며, 위 공간의 표현이 象입니다.(法象數則) 따라서 위 感應은 日月(정신)과 寒暑(신체)의 법칙에 의해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위 예측을 인간입장에서는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5. 中和의 子平

따라서 위 운명의 예지는 결국 위 逆從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바로 平입니다. 즉 平을 이룬 상태가 逆이며, 平을 이루지 못한 상태가 從입니다. 이것을 음양에서는 中和라고 하며, 道(내경)에서는 相火라고 하며, 易(주역)에서는 利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길흉은 위 逆從을 平으로써 權衡(저울질)하여 抑扶로서 판단하게 됩니다.( 子水의 平 참조)

中에서 平으로 함께(with) 和하는 관계, 즉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아가페 사랑(從), 남녀의 주고 받는 사랑(逆)...
하느님의 사랑(從), 이웃을 내몸같이 하는 사랑(逆)...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사랑(順命)하라!
역학에서는 천지일월에 감응(順命)하라!
안초는 逆從(하늘과 이웃)의 中和(사랑)를 드립니다!^^

2001년 8월 25일 편안한돌, 안초올림~

위 글은 지금까지 듬성듬성 썼던 글을 한줄로 묶었기(一而貫之) 때문에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반대로 하나로 바라보는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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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응(感應) -

應一(응일)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帝曰 六者高下異乎 岐伯曰 象見高下 其應一也 故人亦應之"(황제가 묻는다. 6에서 高下의 다름이 어떤가요? 기백이 말한다. 象은 高下로 보이지만 하나에 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 또한 응합니다)라고 象은 다르지만 하나에 응한다.

災應(재응)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帝曰 無應何如"(황제가 말한다. 응함이 없음은 어떠한지 예를 들어 주십시오)

기백은,"岐伯曰 亦各從其化也 故 時至有盛衰 凌犯有逆順 留守有多少 形見有善惡 宿屬有勝負 徵應有吉凶矣"(기백은 말한다. 역시 각각은 그 化에 종합니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름에는 성쇠가 있고, 침범함에는 역순이 있고, 남고 지킴에는 다소가 있고, 형을 보는 데는 선악이 있고, 기숙에 속함에는 승부가 있고, 징험에 응함에는 길흉이 있습니다)라고 재앙에 응함을 설명한다.

形氣相感(형기상감)

구유구는 '황제내경 운기 천원기대론'에서,"故在天爲氣 在地成形 形氣相感 而化萬物矣... 氣有多少 形有盛衰 上下相召 而損益彰矣"(그러므로 하늘에서 氣가 되고 땅에서 形이 이루어져, 形氣가 相感하여 만물이 化한다...氣에는 多少가 있고, 形이 성쇠가 있으니, 上下가 서로 불러 손익이 드러납니다)라고 形氣가 상감하여, 多少(공)와 성쇠(시)에 의해 손익(길흉)이 드러난다.

歲運氣(세운기)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歲運太過則運星北越 運氣相得 則各行其道 故歲運太過 畏星失色而兼其母 不及 則色兼其所不勝"(세운이 太過하면 운성은 북으로 넘어갑니다. 운기가 相得하면 각자의 길을 갑니다. 그러므로 세운이 태과하면 외성이 그 색을 잃고 그 어미를 겸합니다. 불급하면 색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겸합니다)라고 세운을 설명한다.

相感(상감)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署來 署往則寒來 寒暑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信也 屈信相感而利生焉"(해가 가고 달이 오고 달이 가고 해가 오며, 일월이 서로 밀쳐서 明을 낳으며, 寒이 가고 署가 오며 署가 가고 寒이 오며, 寒暑가 서로 밀쳐서 歲를 이루니, 가는 것은 屈하고 오는 것은 信하여서, 屈信이 相感함으로 利가 생한다)라고 일월한서가 굴신하고 감응하여 利가 생긴다.

感而遂通(감이수통)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0장'에서,"易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易은 생각함이 없으며, 하는 것도 없다. 고요함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으로 천하의 연고에 通해 이루니, 천하의 지극한 神이 아니면, 누가 이것과 더불어 할 수 있는가)라고 神으로 감이수통한다.

氣感(기감)

곽박은 ‘錦囊經’에서, "經曰 氣感而應 鬼福及人 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 木華於春 粟芽於室 毫釐之差 禍福千里"(경에 이르기를 氣感에 應하면 鬼福이 사람에게 미친다고 하였다. 이는 서쪽에 있는 銅山이 붕괴하면, 동쪽에 있는 신령한 鐘이 응하여 울리는 것과 같다. 나무는 봄에 꽃이 피고, 오곡은 실내에서 싹이 튼다. 털끝만 한 차이로도 화복은 천리로 벌어진다)라고 설명한다.

形氣(형기)

청오자는 ‘靑烏經’에서, "陰陽符合 天地交通 內氣萌生 外氣成形 內外相乘 風水自成 察以眼界 會以性情 若能悟此 天下橫行"(음양이 부합하여, 천지가 서로 통하면, 내기는 생명을 싹트게 하고, 외기는 형상을 이룬다. 내기와 외기가 서로 타서 어우러지면, 풍수는 스스로 이루어진다. 눈으로 자세히 찰하고, 성정을 모아서, 만약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천하를 가로질러 행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氣形(5기형)

소길은 '5행대의'에서,"凡含生蠢動 有知之數 莫不籍五氣而成性 資陰陽以立形"(무릇 살아 꿈틀거리는 것들은 數를 알 수 있으니, 5氣로 性을 이루고 음양으로 形을 세우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5氣의 性과 음양의 形을 설명한다.

形氣依附(형기의부)

화담은 '원이기'에서,"邵所謂天依形 地附氣 自相依附者 依附之機 其妙矣乎 風族 飛族之羽 載形階此理也"(소옹이 말한 것과 같이 하늘은 形에 依하고 땅은 氣에 附하니, 스스로 서로가 依附하고 있는 것이다. 依附의 機야 말로 오묘하지 아니한가. 바람의 무리나 나는 무리들의 깃이 形을 싣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러한 이치이다)라고 형기의부를 설명한다.

지배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序論과 寅申相火의 成立'에서, "인간의 능력이란 것은 다만 수동적이며 묘사적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우주가 자기의 운행법칙을 象으로써 드리워 줄 때에 한하여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오호라! 천도도 이러하거늘 천지에서 정신과 육체를 받았고, 또한 그 氣運에서 호흡하고 살아가는 인간이 어찌 천운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인가?"라고 인간은 우주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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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用神)설정이유?-감응(感應)

우주만물은 獨自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응(感應)하며 존재합니다.

이것은 모든 학문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반물리학는 진동에너지...
카오스이론의 同期化(synchronization)...
생물학의 리듬현상(rhythmentrainment)...
수학의 공명수....
철학에서는 사회적 동물...
역학에서는 形氣相感....
인간은 하늘과 감응(感應)하며 살아갑니다.

天氣地形
구유구는 '황제내경 소문 천원기대론' 에서, "故在天爲氣 在地成形 形氣相感 而化生萬物矣"(그러므로 하늘에서 氣가 되고 땅에서 形이 이루어져, 형기가 相感함으로 만물을 化生합니다)라고 하늘의 氣, 땅의 形을 설명한다.

이것을 하늘과 인간은 체용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神)은 위 감응(感應)을 통하여 미래를 밝혀(明)주게 됩니다. 체용관계에 의해 감응(感應)하는 위 신(神)을 용신(用神)이라고 합니다.

感而遂通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0장'에서, "易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此"(易은 생각함이 없으며, 하는 것도 없다. 고요함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으로 천하의 연고에 通해 이루니, 천하의 지극한 神이 아니면, 누가 이것과 더불어 할 수 있는가)라고 神으로 感而遂通한다.

그래서 우리는 위 신(神)을 용(用)함으로서 미래를 알 수 있게 되며, 이것이 신(神)을 용(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위 용신(用神)에 의해 주역, 6효, 태을, 기문, 6임, 자평명리, 자미두수 등 술수학의 초기조건이 정해집니다. 대만 사람들에 의해 억부와 혼돈하는데, 체용과 억부는 엄연히 다릅니다. 희신의 억부개념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200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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