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03 하나란!
  2. 2008.12.01 하나란!
  3. 2008.05.08 중화(中和)-道名(도명), 노자 도덕경

하나란!

하나의 동양학 2009. 1. 3. 18:37


제목: 하나란! 글쓴이: 보은고광근 날짜: 2006.12.30. 14:10:24

得一

노자는 '노자 제39장'에서,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하늘은 1을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1을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1을 얻어서 영험하게 되고, 계곡은 1을 얻어서 차고, 만물은 1을 얻어서 생겨나고, 후황은 1을 얻어서 천하의 중심이 되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得一을 설명한다.

**********************************************************************

하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나란 최초의 하나이거나 모든 것을 구비한 후에 하나처럼 된 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천이 하나를 얻어서 맑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천이 하나를 얻었다는 것은 맑음도 탁함도 벗어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천은 맑음을 얻음으로서 하나를 얻게 된다는 혹은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만물은 태어남으로서 처음의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제후나 왕은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이 하나를 얻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제목: re: 하나란! 글쓴이: 안초 날짜: 2006.12.30. 17:29:01

좋은 화두 감사합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하는 화두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최첨단 학문인 카오스 이론은 만물을 하나로 집약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카오스 이론

전수준은 '신과학에서 동양학으로'에서, "우리가 접하는 외부 사물은 매우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인다. 이것을 하나하나 개별 요소로 분석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찾아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카오스 이론이다."라고 최첨단과학인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도 인간의 심리는 집합적 무의식에 의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집합적 무의식

덴게 시로는 ‘超能力과 氣의 수수께끼에 도전 한다 제6장 심층 심리학으로부터의 접근’에서 “‘당신’도 ‘나’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 그것이 ‘무의식’인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이 하여 융의 ‘집합적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이라는 사상이 확립되어 갔다.”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동양학도 결국은 하나를 추구합니다.

만사만물은 아무리 넓고 복잡해도 하나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一名(일명)

왕필은 '논어 리인장'에서, "夫事有歸 理有會 故得其歸 事雖殷大 可以一名擧 總其會 理雖博 可以至約窮也"(무릇 만사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듯 이치도 모이게 되어 있다. 고로 돌아가는 바를 알기만 하면 규모가 아무리 큰 것이라도 하나의 명칭으로 집약할 수 있다. 모이는 것을 종합하면 아무리 넓은 이치라 해도 간략한 방법을 궁리할 수 있다)라고 복잡한 만유라도 하나로 집약하면 아무리 넓어도 간략해 진다.

즉 아는 자는 하나로 말하지만 모르는 자는 끝이 없습니다.

一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六元正紀大論’ “知其要者, 一言而終; 不知其要, 流散無窮”(요지를 알면 하나의 말로 끝내지만, 요지를 모르면 흐르고 흩어져 끝이 없습니다)라고 요지를 하나로 말해야 한다.

2006.12.30. 안초




제목: re: re: 하나란! 글쓴이: 고광근 날짜: 2006.12.30. 18:35:52

노자는 '노자 제39장'에서,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하늘은 1을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1을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1을 얻어서 영험하게 되고, 계곡은 1을 얻어서 차고, 만물은 1을 얻어서 생겨나고, 후황은 1을 얻어서 천하의 중심이 되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得一을 설명한다.

위의 도덕경은 노자가 쓴 것이 아니고 노자 사후에 노자를 이해한 어떤 자가

쓴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십여년 전에 발견된 초간노자가 본래 도덕경이고 현재 널리 알려진 "도 가도

비상도"라고 하는 내용의 도덕경은 후대의 인물이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지만 아래의 글을 살펴보자면,

天得一以淸,

본래의 하늘 혹은 처음의 하늘을 의미하는 하나는 맑아짐으로 얻어진다.

地得一以寧,

땅은 편안해짐으로서 본래의 땅 혹은 처음의 땅의 상태를 얻는다.

神得一以靈,

신의 의미는 다양하게 변하여 왔는데, 최근에는 개별의식체를 대게 말하지만

크게는 정기신의 신으로서 우주에 의식이 나타나게 한 것을 총칭한다.

그리고 영은 정기신의 기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의식체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기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개별의식체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정기신의 신은, 정기신의 기를 얻음으로서 정기신이 나오기 전의

하나의 상태를 얻게 된다.

谷得一以盈,

곡은 음양중 혹은 정기신을 하나로 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곡신은 그것의

의식체를 말하는 것이니 우주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곡은 하나로 보면 우주의식이고 부분으로 보면 부분의식인데, 사람도 곡의

부분을 가지고 있는 부분의식이다.

그러니 곡은 채워져서 큰 하나의 상태가 됨으로서 최초의 하나와 같은 모습을

얻게 되는 것이다.

萬物得一以生,

만물은 생겨남으로서 처음의 하나를 얻은 것이 된다.

侯王得一以爲天下貞,

왕은 지금의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고 이당시에는 천지인을 하나로 한 자로서

성인 혹은 각자와 같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런 자가 세상을 조화롭게 통치하는 것은 세상이 다 원하는 것이다.

후는 왕이 다스리는 주변국가를 즉 제후국을 말한다.

그러니 제후나 왕은 천하를 바르게 함으로서 왕의 참됨을 얻은 것이 된다.

其致之.

지금까지 말한 이것들이 그것을(之) 이룸이다.

즉 도에 맞는 행위를 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하나란!

하나의 동양학 2008. 12. 1. 19:49



제목: 하나란! 글쓴이: 보은고광근 날짜: 2006.12.30. 14:10:24

得一

노자는 '노자 제39장'에서,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하늘은 1을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1을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1을 얻어서 영험하게 되고, 계곡은 1을 얻어서 차고, 만물은 1을 얻어서 생겨나고, 후황은 1을 얻어서 천하의 중심이 되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得一을 설명한다.

**********************************************************************

하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나란 최초의 하나이거나 모든 것을 구비한 후에 하나처럼 된 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천이 하나를 얻어서 맑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천이 하나를 얻었다는 것은 맑음도 탁함도 벗어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천은 맑음을 얻음으로서 하나를 얻게 된다는 혹은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만물은 태어남으로서 처음의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제후나 왕은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이 하나를 얻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제목: re: 하나란! 글쓴이: 안초 날짜: 2006.12.30. 17:29:01

좋은 화두 감사합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하는 화두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최첨단 학문인 카오스 이론은 만물을 하나로 집약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카오스 이론

전수준은 '신과학에서 동양학으로'에서, "우리가 접하는 외부 사물은 매우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인다. 이것을 하나하나 개별 요소로 분석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찾아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카오스 이론이다."라고 최첨단과학인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도 인간의 심리는 집합적 무의식에 의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집합적 무의식

덴게 시로는 ‘超能力과 氣의 수수께끼에 도전 한다 제6장 심층 심리학으로부터의 접근’에서 “‘당신’도 ‘나’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 그것이 ‘무의식’인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이 하여 융의 ‘집합적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이라는 사상이 확립되어 갔다.”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동양학도 결국은 하나를 추구합니다.

만사만물은 아무리 넓고 복잡해도 하나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一名(일명)

왕필은 '논어 리인장'에서, "夫事有歸 理有會 故得其歸 事雖殷大 可以一名擧 總其會 理雖博 可以至約窮也"(무릇 만사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듯 이치도 모이게 되어 있다. 고로 돌아가는 바를 알기만 하면 규모가 아무리 큰 것이라도 하나의 명칭으로 집약할 수 있다. 모이는 것을 종합하면 아무리 넓은 이치라 해도 간략한 방법을 궁리할 수 있다)라고 복잡한 만유라도 하나로 집약하면 아무리 넓어도 간략해 진다.

즉 아는 자는 하나로 말하지만 모르는 자는 끝이 없습니다.

一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六元正紀大論’ “知其要者, 一言而終; 不知其要, 流散無窮”(요지를 알면 하나의 말로 끝내지만, 요지를 모르면 흐르고 흩어져 끝이 없습니다)라고 요지를 하나로 말해야 한다.

2006.12.30. 안초



제목: re: re: 하나란! 글쓴이: 고광근 날짜: 2006.12.30. 18:35:52

노자는 '노자 제39장'에서,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하늘은 1을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1을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1을 얻어서 영험하게 되고, 계곡은 1을 얻어서 차고, 만물은 1을 얻어서 생겨나고, 후황은 1을 얻어서 천하의 중심이 되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得一을 설명한다.

위의 도덕경은 노자가 쓴 것이 아니고 노자 사후에 노자를 이해한 어떤 자가

쓴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십여년 전에 발견된 초간노자가 본래 도덕경이고 현재 널리 알려진 "도 가도

비상도"라고 하는 내용의 도덕경은 후대의 인물이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지만 아래의 글을 살펴보자면,


天得一以淸,

본래의 하늘 혹은 처음의 하늘을 의미하는 하나는 맑아짐으로 얻어진다.

地得一以寧,

땅은 편안해짐으로서 본래의 땅 혹은 처음의 땅의 상태를 얻는다.


神得一以靈,

신의 의미는 다양하게 변하여 왔는데, 최근에는 개별의식체를 대게 말하지만

크게는 정기신의 신으로서 우주에 의식이 나타나게 한 것을 총칭한다.

그리고 영은 정기신의 기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의식체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기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개별의식체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정기신의 신은, 정기신의 기를 얻음으로서 정기신이 나오기 전의

하나의 상태를 얻게 된다.


谷得一以盈,

곡은 음양중 혹은 정기신을 하나로 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곡신은 그것의

의식체를 말하는 것이니 우주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곡은 하나로 보면 우주의식이고 부분으로 보면 부분의식인데, 사람도 곡의

부분을 가지고 있는 부분의식이다.

그러니 곡은 채워져서 큰 하나의 상태가 됨으로서 최초의 하나와 같은 모습을

얻게 되는 것이다.


萬物得一以生,

만물은 생겨남으로서 처음의 하나를 얻은 것이 된다.


侯王得一以爲天下貞,

왕은 지금의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고 이당시에는 천지인을 하나로 한 자로서

성인 혹은 각자와 같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런 자가 세상을 조화롭게 통치하는 것은 세상이 다 원하는 것이다.

후는 왕이 다스리는 주변국가를 즉 제후국을 말한다.

그러니 제후나 왕은 천하를 바르게 함으로서 왕의 참됨을 얻은 것이 된다.


其致之.

지금까지 말한 이것들이 그것을(之) 이룸이다.

즉 도에 맞는 행위를 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제목: 도덕경 54장. 글쓴이: 고광근 날짜: 2007.01.18. 21:50:21

노자는 '노자 제54장'에서,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몸으로써 몸을 보고, 집으로써 집을 보고, 마을로써 마을을

보고, 나라로써 나라를 보고, 천하로서 천하를 본다)라고 物로서 物을 관찰

한다.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세상에서 세움을 선하게 한 자는 뽑히지 아니하고

품은 것이 선한 자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제를 바르게 하는 자손은 귾어짐없이 이어진다.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몸에서 (생각만이 아닌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닦으니 그 덕이 참됨에 이르고

가정의 범위에서 그것을 닦으니 그 덕이 남음이 있음에 이르고

마을의 범위에서 그것을 닦으니 그덕이 크게 됨에 이르고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나라의 범위에서 그것을 닦으니 그 덕이 풍요롭게 됨에 이르고

천하의 범위에서 그 덖을 닥으니 그 덕은 보배로움에 이른다.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그러므로 몸에 관한 것으로서 몸을 관하고(몸에 대하여 닦아서 몸에 대해

알게 되어서 몸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바르고)

가정에 관한 것으로서 가정을 관하고(가정에 대하여 닦으니 가정사에 밝고)

마을에 대한 것으로서 마을을 관하고(마을에 대하여 닦으니 마을을 운영하는

것에 밝고)

나라에 관한 것으로서 나라를 관하고(나라에 대한 큰 뜻으로 닦으니 나라를

이끄는 일에 밝고)

천하에 관한 것으로서 천하를 관하고(천하를 꿈꿀만큼 된 자가 천하에 대해서

닦아서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에 밝음)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

천하가 그러함을 아는 나는 어떻할까, 당연히 기금껏 말한 바와 같다.

* 그 옛날 도를 아는 자들끼리 접하지 못했던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불교나 유교에 도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은 바로 천하를 관한 노자가 지금의 때를 준비한 것이다.

도덕이 땅에 떨어진 지금 도덕을 귀하게 여기고 지킨 자가 귀하다 할 것이다.

도덕이 아니고서 무엇으로 세상이 바로설 수가 있겠는가!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화(中和)-道名(도명), 노자 도덕경

예전에 TV 요리시간에 요리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알카리에 산성을 섞으면 서로 중화(中和)가 되어 더욱 맛이 좋아집니다."
네! 이것이 중화(中和)입니다. 이것 이해 안 되시는 분 있나요?

그런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것으로 노자 도덕경 반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道)와 명(名)도 설명합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역도(易道)는 쉽고 단순(易簡)합니다. 단지 그것을 깨닫기 어려울 뿐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 알카리와 산성을 서로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알카리나 산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중화(中和)가 덜 된 것입니다. 즉 중화가 되기 위해서는 알칼리와 산성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맛이 나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상반된 알칼리와 산성은 서로 마주치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이 바로 중(中)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화(和)입니다. 따라서 중화(中和)는 상반된 氣가 서로 和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해 안 되시는 분 있나요?^^

中和(중화)
자사는 ‘예기 중용편’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이것을 일월, 남녀 등 상반된 우주, 자연에 비유하여 도(道)로 설명하면...
위 중(中)이 바로 도(道)이고, 위 화(和)가 바로 명(名)입니다.

도(道)는 상반된 기운이 마주쳐 자신을 잃어버린 중(中)의 상태이므로 당연히 맛이 없고(無味), 보이지도  않으며(無視), 들리지도 않으며(無聽), 사용도 할 수 없습니다.(無用)

 無感
노자는 '도덕경 제35장'에서,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道를 입으로 표현하면, 담담하여 맛이  없고,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써도 다하지 못한다)라고 道는 無感하다고 한다.

그런데 위 中에서 자신을  잃는 이유는 상반된  기운이 서로 부딪쳐(沖), 서로 미세하게(精)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잃은 위 미세한 정(精)은 이제 더 이상 상반되지 않으므로 合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화(和)입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이 창조되는데 이것이 바로 상(象)입니다.

象先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粉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道는 沖해서 用하니 혹 不盈한 듯해서 淵함이 만물의 宗이다. 날타로움은 꺽이고, 엄킴은 풀고, 빛은 和하고,  티끌이 함께 하여 가득함이  存하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지만 象의 帝보다는 먼저 있다)라고 道는 沖해서 象보다 먼저 存한다.

中精
노자는 '노자 제103장'에서,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그윽하고 깊숙함이여, 그 中에 精이 들어 있다. 그 精은 매우 참되며 그 가운데 信이 있으니, 옛부터 지금까지 그 名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로써 만물의 시작을 연다. 내가 어떻게 만물의 시작을 알겠는가. 이것으로써 안다)라고 中精을 설명한다.

그런데 도(道)는 자신을 잃어버린 정(精)이므로, 모두 똑같아 서로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중(中)은 일월에 따라 움직(周行)이게 되므로, 각자 명(名)을 稱할 수 없지만, 글자로는 모두 도(道)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周行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이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말하면 道라고 한다)라고 道를 정의한다.

그러니까 위 중(中)의 周行은 우주만물에 움직이는 냇물의 길(道)과 같습니다.

川谷
노자는 '도덕경 제32장'에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비유컨데 道가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골짜기 냇물이 강이나 바다에 흐르는 것과 같다)라고 골짜기 냇물이 강이나 바다에 흐르는 것과 같다.  

결국 위 도(道)의 중(中)은 항상(常) 서로 마주치는(沖) 지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이 화(和)입니다. 즉 위 중(中)에 常이 없다면, 그것은 마주치는 지점이 없기 때문에 화(和)가 아니며, 그것은 중(中)이 될 수도 없기 때문에 도(道)도 아닙니다. 따라서 위 중(中)의 常을 안다면, 우주만물의 도(道)를 밝힐(明) 수 있게 됩니다.

和常明
노자는 '도덕경 제55장'에서, "知和曰常 知常曰明"(和를 아는 것이 常이며, 常을 아는 것이 明이다)라고 和, 常, 明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쯤되면, 노자 도덕경에서 첫화두를 본원과 본체에 두지 않고, 도(道)와 명(名)에서 시작한 이유를 명백히 알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즉 우주만물의 중(中)에는 자신을 잃어버린 정(精)이 주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道)입니다. 그리고 위 중(中)에서 항상(常) 沖하여 和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전혀 새로운 象을 창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  象은 자신을 잃어버린 도(道)와 달리 각각 구분 지어야 하므로 명(名)을 稱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道)에서 生한 명(名)이 반드시 있어야 우주를 구분 설명할 수 있게 되므로, 서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후에 비로소 본원과 본체는 명(名)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됩니다.

노자 도덕경은 상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이 도(道)이며, 하편이 덕(德)입니다. 우주원리로 말씀드리면 상편은 天의 도(道)를 설명하고, 하편은 地의 德을 설명합니다. 天의 도(道)는 스스로(自)하는 것이며, 地의 德는 그렇게(然)  따라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道)만 정확히 깨닫는다면, 德은 그렇게 따라서 깨달을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노자는 위 중화(中和) 개념만 알면,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반대로 중(中)과 화(和)를 모르고 노자의 도덕경을 논 할 수 없습니다.

2001-10-10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