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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8 중의원리 서문-하나를 알면
  2. 2008.04.08 중의원리 서문-서언


하나를 알면...

동양학은 하나를 알면 열을 알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의학은 보지 않고도, 하나를 알아 열을 推病하여 치료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고천문에서는 북두7성의 뒷면에 북두9성이 있다고 합니다. 위 진리가 오늘날에 이르러 현대천문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옛 선현들은 위 진리를 눈으로 보고 알았겠습니까. 하나로 인해 열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술수학 역시 년월일시 하나만으로 열을 추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동양학은 하나를 알면 열이 헷갈리도록 되어 있습니다.(의문이 아닌 비논리 때문) 각자마다 이론이 구구하여,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 동양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眞假를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 학설은 후학에게 또 다른 판단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위 판단력은 또 다른 학설을 만들어 내어 결과적으로 혼탁한 동양학을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동양학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결코 학문의 발전이 아니라, 학문의 퇴보입니다.

위 학문을 하나로 모을 수는 없을 까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변화원리입니다. 이것은 동양학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논리입니다. 동양학은 우주변화원리에 의해 추론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천문학, 한의학, 술수학 등... 보지 않고서도 하나에서 열을 추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위 우주변화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관심은 있어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동양학자가 우주변화원리에 부합한 판단을 해 나갈 때, 이에 반한 학설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주변화원리에 입각한 하나의 힘이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中의原理’는 탄생되었습니다. 진리탐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위 탐구에 대한 시작의 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천학비재한 제가 작은 씨라도 뿌리기 위해, 이렇게 용기를 내게 된 것입니다. 많은 질책을 바랍니다.

2000년 1월 3일 안중에서...

하이텔에 ‘中의原理’를 게시하며

편안한 돌! 안초올림~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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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文

- 緖 言 -

세계 인류 문명을 역사로 살펴볼 때, 그 중심은 西進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세계의 많은 석학들 역시 21세기 동양의 발전과 한국의 역할에 대해 일찌감치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의 우주원리로 살펴보아도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의 흐름을 살펴보아도 양자론, 카오스이론, 프랙탈이론, 초끈이론 등 첨단과학은 분석과 미시의 정통적 과학에서 통합과 적분의 수정된 과학으로 나아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즉 통합적인 동양학적 사고로 과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 내부의 동양학을 살펴볼 때, 1980년대 이래로 한의학, 선도, 술수 등 사회적인 붐을 일으키며 여러 분야와 접목되고 있습니다. 적성과 4주, 건강과 수련, 성형과 관상, 음식과 궁합, 건설과 풍수, 주식과 술수, 그리고 질병, 산부인과, 상술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전 방위적으로 동양학과 접목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의학에는 한국 최고의 두뇌가 유입되고 있으며, 이 분들은 위 동양학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선말 일부 역시 정역에서 후천시대는 원리와 인체를 밝히는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后人誰(후인수)

일부는 '정역'에서,"讀書學易先天事 窮理脩身后人誰"(책을 읽고, 역을 배우는 것은 선천의 事요, 이치를 궁리하고 몸을 닦는 것은 후천 人이다. 그 누구인가)라고 후천 사람을 기다린다.

대우주의 연역적 학문

필자의 작은 눈으로 볼 때, 시기(天)와 인재(人)는 이제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지만 그 바탕이 될 학문(地) 만큼은 아직도 서양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의학은 과학화, 현대화, 양한방 협진, 그리고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를 잃었다면 위 새로운 변화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또한 술수학은 미신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상업화되어 가고 있지만, 과연 소중한 인생을 재미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동양학이 귀납적 학문입니까? 연역적 학문입니까?

동양에서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대우주의 규칙에 감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서양의 종교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미개한 동양 사상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 대우주에 대하여 얼마나 연구하고 있습니까.

동양학은 음양과 3극5행의 원리에서 출발하는 연역적 학문입니다. 그래서 연역적 방법에 의해 맥박의 조짐으로 인체를 진단하고, 생년월일의 초기조건으로 인사를 추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동양학은 위 연역적 원리를 잃어버리고, 임상의 경험을 취합하여 결론을 내리는 귀납적 통계학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치학이 아닌 암기학 되어 있습니다. 즉 용어의 모습만 동양학이지 그 실제의 논리는 서양학입니다. 동양학이 천지일월의 대우주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 빈 껍질에 불과합니다. 만약에 동양학이 위 서양학처럼 귀납적인 통계학이라면, 굳이 인간을 소우주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없으며, 음양과 3극5행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匪天地日月(비천지일월)

일부는 '정역'에서,"天地匪日月空殼 日月匪至人虛影"(天地에 日月이 없으면 빈 껍질이요, 일월에 至人이 없으면 헛된 그림자다.)라고 설명한다.

작금의 동양학은 임상중심의 귀납적 학문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맹인이 코끼리의 모습을 각자 상상하여 주장하듯이, 여기저기서 위 대우주의 연역적 원리와는 관계없이 각자의 임상 경험으로 雜術을 妄作하여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분의 선생에게 배운 제자들도 각자 임상 적용이 다를 뿐 아니라, 위 제자들 또한 妄作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妄作(망작)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徵四失論'에서,"受師不卒 妄作雜術 謬言爲道 更名自功"(스승의 지도를 받음에 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잡술을 妄作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말을 道로 삼아 다시 스스로 功이라 이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잡술을 妄作하지 말아야 한다.

작금의 동양학은 서양학도 동양학도 아닌 혼탁한 흉물로 섞여 있습니다. 이미 원리뿐 아니라 원전과도 별개가 되었으며, 자신의 입신을 위해 그 근본조차 떳떳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原理不在’ ‘根據滅失’ 즉 ‘基礎不足’입니다. 그런데 위 妄作은 한의학과 술수학 등 모든 동양학에 공통될 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 지역적으로도 공통된 과제입니다. 누구 개인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입니다.

따라서 위 연역적 原理를 먼저 회복하는 국가가 새로이 도래할 동양학을 리드하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렇다고 위 宇宙原理를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으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부터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동양학 현실입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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