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12.10 넉두리..
  2. 2008.05.20 우주변화의 원리 감상-6(반론)
  3. 2008.04.08 1.3. 도(道)



제목: 넉두리.. 글쓴이: 바람처럼 날짜: 2007.05.04. 13:55:03

황극경세서...

이해는 하고 싶지만... 너무 내용이 어렵네요...

...글로써 이해해야 할게 아니라..명상이라는 것과 병행해야 참이해가 될것 같은데...




제목: 誠意正心 글쓴이: 안초 날짜: 2007.05.04. 15:54:14

스포츠, 예술인 등등 모든 분야에 노력만으로 되지 않고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천재(소질)와 수재(성적)가 구분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성인은 또 다릅니다.

황하 강이 맑아져야 성인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타고 날 뿐 아니라 천지변화의 시기까지 포함되는 겁니다. 즉 聖人이란 천지가 개벽할 때 하늘에서 미리 들(耳)은 물(壬)의 흐름을 알려(口) 주는 사람(人)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사람이 따로 있고(聖人), 그것을 전할 사람이 있고(道士), 그것을 행동(居士)하고 처세할(處士)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고전에 등장하는 좀 유명한 학자는 보통 賢者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하늘의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아니 타고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도사 찾아 3만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을 매스컴에서 결정합니다. 과연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최고 고수일까요.^^ 이런 분들은 단지 그쪽에 인연이 있는 분들 아닐까요.

우리 공부가 명상과 병행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하늘에서 나온 소리이기 때문에 그곳에 코드를 맞추는 겁니다. 결국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알려주는 겁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誠意正心하여 때가 된다면 하늘이 알려주지 않겠습니까. 盡人事待天命이지요.

施敎(시교)

일부는 '정역 15일언 九九吟'에서, "我摩道正理玄玄眞經 只在此宮中 誠意正心 終始无怠 丁寧我化化翁 必親施敎 是非是好吾好"(아마도 정리현현진경이 오직 이 궁속에 있을 것이니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 바르게 하여 끝이나 처음이나 게으름 없이 하면 정녕코 우리 화화옹께서 반드시 친히 가르쳐 주실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정성을 다 하면 친히 가르쳐 줄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는 누구도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저도 넋두리를 썼군요.

2007.5.4. 안초




제목: re: 감사합니다. 글쓴이: 바람처럼 날짜: 2007.05.04. 17:04:40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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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변화의 원리 감상-6(반론)

아래 글은 구름 이경숙님의 글입니다.
안초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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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우주변화의 원리" 감상-6

  책이라는 것의 가치는 무엇일까? 정보와 즐거움과 가치관의 세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은 독자에게 정보(지식)를 주거나,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단 그 정보와 지식이 바람직한 가치관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서적이나 철학서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쓰여진다. 어떤 사람들은 괴롭지만 직업상 읽어야 하고, 어떤 이는 그런 지식의 습득에서 쾌감을 얻기 때문에 읽기도 한다.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종의 과학서적이다. 더 세분하면 과학적 철학서이다. 저자가 설명하려고 하는 대상이 분명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양오행“에 대하여 설명하려는 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으로 말미암아 ”음양오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 독자들이 나와야만이 이 책은 그 가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음양오행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나는 본다. 있다고? 누고? 한번 손들고 나와 봐. 한번 데리고 와바. 얼굴 함 보게.

  왜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이 책이 나온지 어언 40년이 되어가고, 음양오행의 교과서로 불릴만큼 독보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는 데 비해서 이 책을 이론적 토대로 한 후속 연구의 성과물이 한국의 동양학계에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었다는 사람은 많은데, 읽고 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더 진일보한 이론과 원리를 밝힌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거나 이 책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음양오행론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한동석의 제자라 자부하는 이가 누가 있나? 한동석파라는 동양학의 학파가 존재하나?

  책이 누리는 권위와 명성에 비해서 그에 걸맞게 따라주어야 할 실질적인 학문적 성과와 후속작업이 전무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은 단 한 넘도 읽고 이해한 넘이 없다는 소리다.

  너무나도 난해하고 어려운 탓에 그저 신성불가침한 바이블로 모셔진 책이다. 누가 이 책을 이용하나? 강단에서? 천만에... 일부 자생종교단체들이 자기네 이론서로 써먹고 있다. 그것도 내용이나 이해를 하고 써먹냐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다. 그네들이 종교이론으로 팔아먹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일단 이 책은 정보(지식)의 제공이나 전달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학서로서의 기능을 조금도 갖지 못한 책이다. 달리 말하면 책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무가치한 책이라는 것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또다른 측면에서도 이 책은 사회일반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게 되면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둘 중 하나이다. “띠바,  디기 어렵네, 나 같은 돌빡은 동양학 못 하겠군. 내 주제파악을 못하고 책을 잘못 산거야. 아이고 돈 아까비.” 이게 다수이고, 또 다른 주요한 반응은 “동양학은 역시 씨나락이야, 서양철학이나 과학에 비하면 얼라들 작난질 같애. 유치찬란, 구상유취, 졸렬무비, 아무런 가치 없는 말장난일 뿐인데 공연히 또 사고 말았군. 동양학 하는 넘들은 미친 넘들이야.” 이게 둘이다. 즐거움은 커녕 스트레스와 짜증만 안겨준다.

내 말이 틀리나? “우주변화의 원리”가 동양학계에, 일반학계에, 사회전반에 순기능적으로 기여한 바가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누가 알면 말씀 좀 해 주시지.

  아무래도 이 글의 논점을 좀 더 명확히 맑히는 것이 필요할 듯해서 좀 더 부연을 해 드렸다. 다음 회부터 본격적으로 원문의 감상을 계속해 보자.

  구름~~

http://blog.naver.com/gktkrk?Redirect=Log&logNo=50007195131

네, 중도님!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윗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 몇까지를 써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음양오행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나는 본다. 있다고? 누고? 한번 손들고 나와 봐. 한번 데리고 와바. 얼굴 함 보게.”

나는 동양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임이 안 갔기 때문입니다. 뭔가 논리가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 잘 따져보면 중요한 핵심이 모순되어 있고, 그것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헛공부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양학을 공부하시는 분 중에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이 상당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은 학문을 傳하는 것이 아니라 말(言)을 옮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양학을 알고 傳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 옮(遷)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통하지 못한 사람(非人)은 학문을 傳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非人不傳(비인부전)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전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기인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비인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설한다.

그런데 말(言)을 옮기고 옮기다 보면 종국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혀 엉뚱한 말을 옮기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율곡선생은 화담선생을 말(言)을 옮(遷)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평했던 것입니다.

진리와 언문
율곡은 '율곡전서'에서 선조에게, "세상의 이른바 학자라는 사람들이 단지 성현의 학설을 의지하여 모방만 하고 말을 하나 마음속으로는 얻은 바가 없는데, 경덕(화담)은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나아가 스스로 얻은 妙가 있으니 결코 문자와 언어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진리와 언문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평생 남의 말만 옮기면서 헛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위 진리와 언문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주신 분이 바로 한동석선생입니다. 만약 한동석선생님의 우주변화의 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대부분의 사람처럼 말(言)을 옮기고 있거나 아니면 내 스스로  동양학을 포기했을 겁니다.

“왜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이 책이 나온지 어언 40년이 되어가고, 음양오행의 교과서로 불릴만큼 독보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는 데 비해서 이 책을 이론적 토대로 한 후속 연구의 성과물이 한국의 동양학계에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우주변화의 원리와의 만남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만 해도 동양학을 꽤나 공부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저 역시 남들처럼 도저히 한 장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하던 책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글의 주제부터가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질이 없으므로 동양학을 포기하겠다는 도박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비장한 각오일 뿐 위 책은 쉽게 나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공부하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어차피 모를 것이라면 알려고 하지 말고 글자만이라도 읽어서 책장이나 끝까지 넘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해하는 것보다 글자만이라도 끝까지 한번 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것은 우주변화의 원리 뿐 아니라 원전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믿고 한번만 해보시면 우주변화의 원리는 분명 심오한 동양학의 세계로 안내 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우주변화의 원리 뿐 아니라 원전도 읽게 되신 분이 꽤 있습니다.

위와 같이 시작한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은 나를 송두리 채 잡았고, 나는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모릅니다. 거의 암기할 정도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책이 점점 헐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새 책을 하나 더 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산 책도 얼마나 읽었는지 어느새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읽게 되는가 하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우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또 읽어도 또 새로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해서 행림과 대원의 우주변화의 원리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위 공부하는 과정에서 선생이 제시하신 운기, 주역, 정역 등의 원전도 위 방법으로 읽었으며, 결국은 약간의 깨달음을 정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졸저 ‘中의原理’입니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는 10년의 청춘을 흘려보내야 했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래도 나는 행운아이기 때문에 선생을 만나 동양학의 門을 두드릴 수 있었고, 또 그 아류라고 할 수 있는 ‘中의原理’까지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한의학회에서 강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평소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으면서 계획했던 선생의 묘소도 후학들을 데리고 참배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학은 말(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40년이 아니라 400년이 걸려도 위 門에 접근하는 사람조차 만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후속 연구의 성과물이 쉽게 나올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성인은 누에 옷을 입고 있다고 한 것처럼 때가 되어야 옷을 벗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런 분에게 동양학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윗글을 쓰신 분은 말(言)로 하시는 분인지 아닌지 스스로 생각 좀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양학 공부가 끝났을지는 몰라도, 공부하는 자세는 지금부터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데 하늘에서 뭘 알려 줄 것 같지 않군요.

2006.9.12. 안초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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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도(道)

道路(도로)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하’에서,"一陰一陽之謂道 道無聲無形不可得而見者也 故假道路之道而爲名 人之有行必由乎道 一陰一陽天地之道也 物由是而生由是而成者也"(한번은 음하고 한번은 양하는 것을 道라고 한다. 도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서 얻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道路의 道로 가정하여 이름이 되었는데 사람이 반드시 길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음과 한번은 양하는 것이 천지의 道이다. 物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라고 설명한다.

- 도(道) -

未見聞(미견문)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氣穴論편에서,"帝捧手逡巡而却曰 夫子之開余道也 目未見其處 耳未聞其數 而目以明 耳以聰矣"(황제가 두 손을 받들어 물러나 말한다. 선생이 나에게 道를 열어 주었다. 눈은 그 곳을 보지 못하고 귀는 그 數를 듣지 못하지만, 눈으로서 밝히고 귀로서 총명해 진다)라고 道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다.

浮雲道(부운도)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6미지대론'에서,"嗚呼遠哉 天之道也 如迎浮雲 若視深淵 尙可測 迎浮雲 莫知其極"(오호 멀구나 하늘의 道란 것은 마치 뜬 구름을 맞이하듯 하구나. 만약 깊은 연못을 살핀다면 깊은 연못은 오히려 측정할 수 있어 살필 수 있으나, 뜬 구름은 그 極을 알 지 못한다)라고 道는 뜬 구름과 같다.

道奧(도오)

노자는 '노자 제62장'에서,"道者萬物之奧"(道란 만물의 奧이다)라고 깊숙한 속 즉 奧를 설명한다.

天下母(천하모)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道라고 말한다)라고 천하의 어미가 道라고 정의한다.

道無形(도무형)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내편’에서,"夫道也者道也 道無形行之則見于事矣 如道路之道坦 然使千億萬年行之 人知其歸者也"(무릇 道라는 것은 길이다. 道는 무형으로 행하지만 사건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도로의 도는 평탄해서 천 억 만년을 행하여도 사람들이 그 돌아갈 곳을 알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道學(도학)

최한기는 ‘추측록 추측제강’에서,"兩漢以降 學術多端 究其行道者 謂之道學 明心者 謂之心學 窮理者 謂之理學 遂成門戶 各守其傳 殆非所以一道德而公天下也 "(前漢ㆍ後漢 이래로 학술이 여러 가지 단초여서, 道를 행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을 道學이라 하고, 마음을 밝히는 것을 心學이라 하고, 理를 궁구하는 것을 理學이라 하여, 드디어는 문호가 이루어서 각각 그 전하는 것만을 지키니, 이는 하나의 도덕으로서 천하에 공변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道學(도학)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宗敎精神과 道' 에서, "道라는 것은 우주운행의 법칙적 길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 법칙이란 것은 天地 日月의 운행법칙이며 木火金水와 율려의 법칙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칙이 운행하는 길에서 일어나는 오묘불칙한 변화는 만물의 생장성숙의 과정과 인사의 길흉화복의 과정에서 출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道學이라고 하며, 그 변화자체를 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道는 지고지명한 정신이 아니면 감히 접근 할 수 없는 경지이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宗敎 즉 최고정점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도학을 설명합니다.

- 선악(善惡) -

善惡(선악)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氣交變大論'에서,"帝曰 其善惡何謂也 岐伯曰 有喜 有怒 有憂 有喪 有澤 有燥 此象之常也 必謹察之"(황제는 묻는다. 그 선악은 무엇을 말하나요. 기백은 답한다. 기쁨이 있고, 노여움이 있고, 근심이 있고, 죽음이 잇고, 윤택함이 있고, 마른 것이 있으니 이것이 상으로 항상됨이 있습니다. 필히 삼가 살펴야 합니다)라고 선악을 설명한다.

性善(성선)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계승하는 것은 善이며, 이루는 것은 性이다)라고 性善을 구분한다.

善性(선성)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人間의 生活과 變化'에서, "주역 계사에서는 繼之者善이요 成之者性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을 해석하면 계지자선이란 말은 人性이 발한 바탕, 즉 사람의 본질은 선하다는 뜻이다. 繼라는 것은 무형에서 유형으로 계승해 준다는 뜻이니 무형에서 유형으로 계승해 준다는 것은 精神과 生命이다. 그런즉 이것은 바로 本質(정신과 생명)이 善하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성지자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함으로써 物로 形成되면 거기서 비로소 性이 생긴다는 말이다. 成이란 뜻은 사물의 완성을 말하는 것인바 精神인 陽은 자체 소멸을 방지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形의 포위를 받을 때에 비로소 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天地生物之心이 成物之心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成物之心 즉 無形之心이 有形之心으로 전환된 때가 바로 性인 것이다" 라고 善과 性을 설명합니다.

善惡(선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社會的 變化와 性의 善惡'에서, "人性은 그 본질은 본래 善하였지만 그것이 性으로 전환될 때에 벌써 <善 +惡>이라는 공식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人性 自體는 이러한 것이므로 그것이 만일 약간만 善한 쪽에 치우치게 되면 善行을 좋아하게 되고 반대로 약간만 惡 쪽에 치우치게 되면 惡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淨化와 교육의 필요성은 인류문화의 발전과 사회생활의 복잡화와 더불어 일대요구로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 성인(聖人) -

聖人(성인)

일부는 '정역 대역서'에서,"嗚呼聖哉 夫子之聖乎 知天之聖 聖也 樂天之聖 聖也 親天之聖 其惟夫子之聖乎"(오호 성스럽다. 공자의 성스러움이여! 하늘을 아는 성인도 성인이지만, 하늘을 즐기는 성인은 공자의 성스러움이다.)라고 성인을 설명한다.

褐玉(갈옥)

노자는 '노자 제70장에서,"是以聖人被褐壞玉"(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보옥을 품고 있다)라고 성인을 설명한다.

無名(무명)

소길은 '5행대의'에서,"聖人無名 能理萬物 還以萬物名 陽氣至神 故有隱顯"(성인은 이름이 없다가 만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만물로서 도리어 이름을 얻게 된다. 陽氣는 그윽이 신묘하므로 사라지고 나타남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聖人(성인)

율곡은 '역수책'에서,"蓋天地 乃以是數 示之人 聖人 必待文端然後 乃以是理 著於世 天下得不生聖人 亦不得不生文端也 此則自然之應 而天人交與之妙也"(대개 천지는 이로서 數로 사람에게 보여주며 성인은 반드시 문단을 기다린 이후에 이 理로서 세상에 드러난다. 하늘은 성인을 낳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文端을 낳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곧 자연의 응함이요, 하늘과 땅이 妙로 함께한다)라고 성인의 탄생을 설명한다.

聖賢(성현)

최한기는 ‘氣學’에서,"古聖賢經傳之語 豈敢只將我習染意思而取捨也 考準於耳目所驗之天人運化 合則感服修行 不合則存而俟後"(옛날 성현이 경으로 전하신 말씀을 어찌 감히 나의 습염된 의사로서 취하거나 버리겠는가? 나의 감각기관이 경험한 바의 天人運化를 상고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것과 부합되면 감복하여 수행하고, 부합되지 않으면 일단 보존한 채 뒷날을 기다릴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敎人知不知(교인지불지)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敎人而不知 則非但敎之者 知其不知 聽敎者 亦自知其不知矣 不知二字 誠易知矣 聽敎者 所謂知之 不無昏明淺深之分 敎之者 逐條諮問 則所知之大小長短 皮膚肢體 盡自其口吐實 又能言遮蔽難透之端 是可以設敎之機微也 磨以歲月 運化之敎 常有所證驗 師友之敎 從傍而提惺 前日不知 至於知之 今日知之 至於明日 又生不知之端 知不可以盡矣"(사람들을 가르쳐줄 때에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단지 가르치는 사람만 알아듣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사람 역시 알아듣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 不知는 두 글자는 진실로 알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이른바 알았다고 하는 것에도 昏明과 淺深의 구분이 없지 않으니, 가르쳐주는 사람이 조목조목 힐문(詰問)하면, 그가 알아들은 것의 대소장단과 겉핥기로 안 것인지 골자로 안 것인지의 여부를 모조리 자기의 입으로 實吐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막혀서 통괄하기 어려운 대목까지 말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 가르침의 機微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연마하여 運化의 가르침에는 항상 證驗하는 바가 있고 師友들의 교도(敎導)가 곁에서 경각(警覺)해 주면 전에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오늘 안 것이 내일에 가서 또한 모르는 단서가 생기게 되니, 앎이란 다할 날이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經典中心(경전중심)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正易의 皇極論'에서, "인간은 지구에서 살고, 지구는 태양계에 매였으니, 만물은 그 中心을 離脫하여 존재할 수 없는지라, 인간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고, 지구의 중심은 태양의 중심과, 태양의 중심은 은하계의 중심, 즉 北極星의 中心과 一致한다는 이론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상에 直立하면 자연히 지구와 태양과 天樞(北辰)를 一貫하는 一大 垂直線上에 서게 된다. 이 수직선을 우주의 經線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은 오직 직립하였으므로 이 경선을 타고 내려오는 우주의 소식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보겠다. 經線이란 上下를 貫通하는 宇宙의 消息線이기 때문이다. 모든 聖人의 글을 經書·經典·經文이라 함은 이 까닭이다. 이 소식 선은 또한 生命線이기도 하다. 地上에 사는 人間의 生命은 본래 이 生命線을 타고 宇宙의 中心으로부터 내려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작역의손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一乎一夫論'에서, "世上에서 흔히 8卦는 伏羲氏가 긋고, 周易은 文王 周公이 짓고, 10翼은 孔子가 하고, 正易은 一夫가 지었다고 믿지만, 事實은 그 분들은 다만 그때그때 作易의 손을 빌렸을 뿐이요 그 內容의 由來는 멀리 天地無窮化无翁에 淵源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良師(양사)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水火 一體論과 탈레스의 思想'에서, "여기에서 나도 말하리라. 땅 위에 있는 철학의 눈(眼)을 東으로 모으라. 그 다음에는 씹고, 또다시 씹으라. 그래도 안 되면 良師를 求하라. 時間과 良師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라고 양사를 구하라고 합니다.

 

 

- 공부(工夫) -

施敎(시교)

일부는 '정역 15일언 九九吟'에서,"我摩道正理玄玄眞經 只在此宮中 誠意正心 終始无怠 丁寧我化化翁 必親施敎 是非是好吾好"(아마도 정리현현진경이 오직 이 궁속에 있을 것이니 뜻을 참되게 하고 마음 바르게 하여 끝이나 처음이나 게으름 없이 하면 정녕코 우리 화화옹께서 반드시 친히 가르쳐 주실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정성을 다 하면 친히 가르쳐 줄 것이다.

誦彰(송창)

뇌공은 '황제내경 소문 著至敎論'에서,"誦而頗能解 解而未能別 別而未能明 明而未能彰"(암송해서 자못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로는 분별할 수 없고, 분별로는 밝힐 수 없고, 밝힘으로는 나타낼 수 없습니다)라고 득도의 시작과 끝을 얘기한다.

問之少(문지소)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제76편 示從容論'에서,"公何年之長而問之少 余眞問以自謬也"(그대 나이에 비해 질문의 수준이 적으니, 나의 참된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는 듯 하군요)라고 사고력의 적음을 질책한다.

至誠(지성)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하’에서,"先天學主乎誠 至誠可以通神明 不誠則不可以得道"(先天의 학문은 誠을 위주로 한다. 지극한 정성이면 가이 神明에 통하고 정성이 아니면 道를 깨칠 수 없다)라고 설명한다.

一時(일시)

율곡은 '성학집요'에서,"窮格踐履 雖是兩項工夫 要須一時進 故已上主論窮格 而亦兼踐履之意"(궁리 격물하고 실천 이행하는 것이 비록 두 가지의 공부이나 요컨대 반드시 一時에 같이 나아가야 하므로 이미 앞에서 궁리 격물을 주로 논하고 또한 실천 이행하는 뜻을 겸하였다)라고 궁리와 실천을 함께해야 한다.

三聽三見(삼청삼견)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上學以氣 中學以心聽 下學以耳聽 耳聽者學在皮膚 心聽者學在胸臆 氣聽者學在天下 見亦如是 氣見者學在咸觀萬象 心見者學在心理究索 目見者學在當前現色 學之等數雖如是 其實闕一不可 自初至終 常所兼濟也 至於半途廢者 未有成者 自有上中下所及之限"(상학은 氣로써 듣고, 중학은 心으로써 듣고, 하학은 귀로써 듣는다. 귀로 듣는 자는 피부에서 배우고, 마음으로 듣는 자는 흉중에서 배우고, 기로 듣는 자는 천하에서 배운다. 보는 것도 이와 같아서, 기로 보는 자는 萬象을 관찰하도록 열려서 배우고, 마음으로 보는 자는 心理를 탐구하여 배우고, 눈으로 보는 자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당해서 배운다. 배움의 等數가 비록 이렇기는 하나, 실은 이 세 가지에서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始終 이 셋을 겸해야 완전하다. 중간에서 포기하는 자는 성취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자연 상·중·하의 미치는 바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라고 설명한다.

初學(초학)

최한기는 ‘인정 교인문’에서,"究解文義 只要書上字義句讀之通 却自生意見 乃初學事也 若平日神氣存養 在事物運化之明白 臨文究解 依此考驗作之者 所得淺深優劣 可得而見 是乃擧事物運化而取捨之 非將無據我心而論評也"(글의 뜻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다만 책에 있는 字義와 句讀만 통하면서 즉각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이 바로 初學의 일이다. 만약 평소에 신기를 존양하고 사물의 운화를 명백히 하려 한다면, 글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임하여서 이것에 의하여 작자의 고험(考驗)으로 深淺 優劣을 얻게 된다. 이것은 바로 사물의 운화를 들어 取捨한 것이지, 근거 없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논평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山中(산중)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꿈(夢)을 타고 20年'에서, "嗚呼라, 松下問童子하니 言師採藥去라 내 스승은 진실로 藥 캐러갔는가? 只在 此山中이련마는 雲深不知處라. 이 산중에 있기는 있는데 구름이 깊어서 알 수 없는가? 이것이 내가 20年의 꿈속에서 부르고 불렀던 古人의 노래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에서 神秘의 고리를 잡을 수가 있었고 道通의 淵源을 찾을 수가 있었다" 라고 설명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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