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8.10.28 운이 무엇인지요
  2. 2008.08.15 [문답] 帝載與神功(제재여신공)
  3. 2008.05.16 신(神)과 상(常)-신명
  4. 2008.04.24 시공합일의 우주
  5. 2008.04.14 변화의 신
  6. 2008.04.08 4.2. 명(明)
  7. 2008.04.08 4. 신명변화(神明變化/交)


제목: 운이 무엇인지요 글쓴이: 운명 날짜: 2006.04.27. 01:21:31

운이 무엇인지요. 정말 존재할까요.

그럼 사람 사는 재미가 없지 않아요.

노력이 너무 무의미할 것 같아요.

질문이 넘 어려운 것 같으니 답변 주시지 않아도 괞찮아요.




제목: 1D의 運 글쓴이: 안초 날짜: 2006.04.27. 07:32:21

우리가 인식하고 사는 세상은 3D입니다.

모든 것을 눈으로만 인식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보이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I see... 이것은 영어에서 극명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볼 수 없어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1D, 2D의 세상이 존재할까요. 존재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1D, 2D의 세상이 존재합니다. 위 1D의 세상을 그린 도구가 甲子이며, 2D의 도구가 卦爻이며, 3D의 도구가 象數입니다.

그런데 運이라는 것은 위 1D甲子에서도 소우주의 흐름을 말합니다. 한자를 파자해 보아도 소우주+차(車)+흐름을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위 소우주 흐름에는 향이 정해집니다. 즉 북경에서 나비가 펄럭이면 뉴욕에서 태풍이 분다는 카오스의 나비효과처럼 향이 정해집니다. 위 향이 정해지는 초기조건 즉 빅뱅을 하고 태어난 생년월일을 초기조건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위 초기조건이 인생의 모든 것일 수 없습니다. 즉 1D의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나머지 충분조건에 의한 3D의 필충조건은 나의 노력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위 3D가 1D를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이란 위 1D를 무시한 노력이란 존재할 수 없고, 위 1D의 흐름에 따르는 노력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즉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합니다. 이것이 우리 동양사상이며,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위 1D의 運에는 반드시 질병, 운명, 궁합이 있게 마련이고, 위 1D에서 2D, 3D를 확인하는 것을 지지닷컴에서는 문진확인이라고 합니다.

이해되시겠는지요.^^

2006.4.27. 안초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帝載與神功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2. 00:03:07

이 글은 입문논문 육산님의 덧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굉장한 사이트라는 생각입니다.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궁금한 거 하나 여쭙니다. 적천수(경도가 편집한 것으로 생각)에서 帝載 라는 글자를 썼는데, 왜 이게 황제(헌원)를 의미한다고 단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문헌상의 근거가 있는지요? 제 생각에는 帝와 神은 대구로서 帝가 神보다 앞에 나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제는 천지인 만물을 주관하는 상제를 말하고 신은 신명체(정기신에서의 신이 아님)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제목: re: 帝載與神功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2. 00:07:17

안녕하십니까.육산님!
먼저 적천수가 나온 시대적 배경을 살펴봅니다.
흔히들 적천수는 유백온의 저서라는 말이 있는데, 유백온 저서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백온은 명나라를 건립한 국사로서 많은 분야의 책들이 전해오는데 적천수와 같이 함축하여 쓰는 문장이 아니라 일반 문체입니다. 따라서 확실하지 않지만 경도로 보고 시기는 송나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帝載與神功은 첫 화두로서 얼마든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帝載
경도는 적천수에서,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라고 4주의 근원을 첫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동양학에서 첫 화두보다 중요한 문장은 없습니다. 위 문장은 적천수를 시작하는 첫 화두로서 적천수를 펼쳐 나갈 向을 담고 있습니다. 동양학 고전의 첫 문장은 절대로 평이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제목만큼이나 전체를 함축하는 의미있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즉 제목과 첫 문장만 잘 이해하면 그 책은 반 이상 이해하는 것입니다.

1. 帝載에 대하여...
帝를 풀 수 있는 열쇠는 載(실을재,운반할재)에 있다고 봅니다. 載는 실려 있는 내용을 중시하는 말로 보통 아래와 같은 문장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履載中
기백은 `황제내경 음양이합론`에서, "天履地載 萬物方生 未出地者 命曰陰處 名曰陰中之陰 則出地者 命曰陰中之陽"(하늘은 덮고 땅은 실으니 만물이 바야흐로 생겨납니다. 아직 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이름하여 음처라고 하고 陰中之陰라고 이름하니, 곧 땅에서 나온 것을 이름하여 陰中之陽이라고 이름합니다)라고 履載中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하였다.

載水
이순지는 `천문류초`에서, "天大地小 表裡有水 天地各乘氣而立 載水而行"(하늘은 크고 땅은 작으며, 거죽과 속에 물이 있다. 하늘과 땅이 각기 氣를 타고 立해 있으면서, 물을 싣고 行한다)라고 천지는 氣立하여 載水하여 움직인다.

즉 帝에 실려 운반되어온(載) 내용을 중시하는 말입니다.
운기학은 송나라때 부활하여 상당히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창궐하는 유행병(흑사병 등)에 대처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적천수 곳곳에 등장하는 운기학 용어들과 후반에 질병학 등이 실려 있습니다.

帝를 상제라는 의미로 쓰였다면 굳이 載(실을재,운반할재)를 쓰는 것보다는 말씀(辭) 같은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종교적 의미라면 당연히 뒷부분도 위 상제적 표현을 서술하는 내용이 등장해야 하는데 적천수가 이런 흐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帝에 실려(載)있는 내용 즉 황제내경 운기학에 실려 있는 내용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그 근원을 밝히는 동시에 적천수에 펼쳐질 向을 설정했다고 생각합니다.

2. 神功에 대하여...
神功은 神明의 구체적 표현으로, 술수학은 神이 밝혀 주는 神明학입니다. 그래서 어떤 술수학이든지 그 첫 설정은 神을 설정하고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리적 표현으로 소우주를 밝히는데는 당연힌 神을 설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종합적인 구조로 살펴보면...
‘3원 만물을 알고자 한다면’하고 시작한 화두는 그 답을 帝載與神功와 친해져야 한다고 정의함으로 적천수의 전체의 向을 설정한 것입니다. 즉 황제에 실려(載)있는 내용과 神이 밝히는 功과 친해져야 만물을 알 수 있다고 정의함으로서 적천수를 풀어나갈 向을 설정한 첫 화두입니다.

좋은 의문에 감사드립니다.

2004.2.11.
안초~



제목: re: re: 帝載與神功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2. 19:41:44

답변 감사드립니다.

적천수를 경도가 쓴 것으로들 이해하는데 저는 그냥 주관적 판단에 경도 자신이 쓴 것은 맞는데 독창적인 작품이라기 보다 그 당시에 퍼져있던 명리적인 사유들을 적천수란 이름아래 편집한 것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문헌적 근거에 입각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요. 어째든 경도의 저작물(편집)이 적천수인데 유백온은 적천수 원문에다가 주를 달았고 그러면서 책 제목은 그냥 그대로 적천수가 되다보니 유백온이 적천수의 저작인 것같이 이해되기도 하는 것같습니다. 저는 문헌학적으로 뭐가 정확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좌우간 저는 적천수란 책에 실린 글이 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잘 모르나 인간 운명의 이치를 간결하게 적어가면서 순서를 가장 크고 근원적인 만물의 으뜸에서 출발하면서 기술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몇개의 주석을 보았는데 유백온의 것이고 그 다음으로 임철초가 천미라 이름붙이고 또 한편으로 서낙오가 보주라 하고 징의라고 하는 것도 있고 해서 그렇게 책들을 대략 보았는데(구체적 내용들은 잘 모르고 자세히 보지도 않았음. 그냥 건성으로 띄엄띄엄 보다가 말았음), 적천수 첫구절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서로 생각이 다르고 하길래 뭐 이런게 다 있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고전에 대한 해석이야 주관적으로 자유롭게 할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문학적인 수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이치를 규명하는 진술이라면 해석상의 차이가 용납되기 어려울 수도 있겠기에 첫단추부터 이렇게 다르게 시작해서는 명리학이 실증학문이 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연장에서 저는 천지인을 얘기하고 만물의 으뜸을 처음에 언급하는 이 적천수 글이 곧바로 신을 언급함은 당연하고 신보다 더 앞서서 중요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여 제를 상제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상제가 우주를 건사하고 자기 품에 담고 지탱하며 끌고간다는 의미의 글자가 바로 載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신은 당연히 우주(천지인 만물)을 운용하는데 사역하는 존재로서 그 공력을 논할수 있을 것이고요. 지금 생각하기에 이런 것들이 종교적인 것같아도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인식체계상 상제를 말하고 신들을 말하고 그러면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냥 제 생각일 뿐이죠.

그리고 帝載가 아니라 帝辭가 어울렸을 것이라는 말은 기독교적인 발상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라는 식이니 말입니다. 중국(당-명-송)에서는 사람들이 그런 식의 사유를 하지 않았을 것같아 보입니다. 그 당시는 종교적인 것이나 운명적인 것이나 세계관의 근원은 다 상제니 신이니 이런데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적천수가 요즘 우리가 말하는 종교적인 책이 라고 하더라도

帝辭 라는 표현은 안 썼을 것같아 보입니다. 帝載가 아주 적절한 표현 같아 보입니다. 그것이 종교적 진술이든 운명적 진술이든 말입니다.

적천수란 책이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책이라면 상당히 포괄적일 것이므로 병과 관련된 의학적 측면도 암시하고 다루겠지만 이것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을 것같아 보입니다. 적천수가 황제내경을 암시하는 글자로부터 서두를 장식한다고 받아들이기가 잘 안되서 그냥 몇자 두서없이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저는 적천수란 책이 인간의 운명은 근원이 우주(천지인 만물)의 이치에 있고 이는 상제와 신명의 세계에서 연유한다는 고도로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수준의 기술에서 시작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연후에 천도 지도 인도 즉, 道를 언급해 가는 것도 순서상 말이 될 것같고요.

제 생각이 유백온과 임철초의 주석에서의 생각과는 또 다르고 그냥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렇게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산 드림.



제목: 황제(내경)와 요제(서경)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3. 01:13:30

육산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는 임철저, 서낙오 등의 주석은 읽어 본지도 오래되었고 또 저 역시 건성으로 읽어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모르며 또 관심도 없습니다. 사실 帝載與神功는 이미 오래 전에 많은 논쟁을 거쳤어야 할 문구입니다. 육산님의 관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토를 달아 보겠습니다.

먼저 帝辭를 기독교 발상이라고 하신 것은 무엇인가 착각하신 듯합니다. 辭는 엄연히 주역 계사전(辭)을 염두하고 쓴 글이었고, 실제로 고전에서 말씀을 높여서 부르는 실제 존재하는 용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載는 그렇다고 치고,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서 帝가 절대자를 의미하는 帝였다면 무엇인가 모시어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굳이 親(가까이할 친)이라는 용어를 볼 때는 위 존중의 의미를 반영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좀 사실적인 얘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고전을 읽으면서 帝라는 호칭은 두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가 황제내경의 황제이고, 또 하나가 서경의 요제(요순)입니다. 아마도 송나라 시절 역시 帝라고 칭할 수 있는 분은 위 두 분밖에 없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죄송합니다만 상제라는 말은 근래에 들어와 만들어진 용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참고로 한의학과 운명학을 구분하시는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구분이 없었습니다. 한의학 공부하는 사람이 운명학을 공부했고, 또 안 할 사람은 안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만은 한의학과 운명학이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면서 굳이 한의학과 운명학을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황제내경 운기학에 들어가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대교육을 배운 사람은 알든 모르든 뉴으톤 아인슈타인 학문을 공부했듯이 당시에는 누구든지 이런 기초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라면...

2004.2.12.
편안한 돌! 안초~



제목: re: 황제(내경)와 요제(서경)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3. 19:05:20

辭를 계사전을 염두에 두고 쓰신 단어였다니! 굉장하십니다.
저는 그냥 辭를 말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帝辭라면 하나님 말씀 이런 것일테니 하고 생각하다보니 이런 표현은 기독교적 표현 아닌가 그리 생각한거죠. 제 학식이 짧아서 한자 단어 해석에 얇음이 있었나 봅니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상제님 말씀과 신들의 功을 먼저 알아야 한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황제내경과 신명들의 功과 먼저 친해야 한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황제내경과 신명들의 功을 먼저 알아야한다.
천지인 만물(우주)의 으뜸(근원)을 알려하면 상제가 우주를 주재하고 신명들이 우주운행에 사역하여 기여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버린 것같지만, 저는 이중에서 제일 아래 것이 어쩐지 좋아보였습니다.

다른 한문고전(문학이나 역사서 등등)들은 제가 읽은게 거의 없고 또 기억도 못하기에 상제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디에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어슴프레 기억에 서유기란 책에 상제라는 말이 나오는 것같습니다. 서유기는 당나라 때 얘기를 하는 것같은데 언제 쓰여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얼추 당-명-송 시대는 아닐런지? 혹시 청나라, 아니면 근대의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帝라는 표현은 중극역사에서 삼황오제 라는 표현이 있고 제후니 천자니 또 제후국이니 그런 말이 있는 것같은데 그게 예전부터 나오는 단어인지 근대에 만들어진 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유대땅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예수 사후 몇 백년도 안된 물건)에 보면 뚜렷하게 帝라는 글자가 누가 썼는지 낙서처럼 옆 귀퉁이에 적혀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帝라는 말은 아주 오래전에 쓰였던가 봅니다. 중국에서 쓰이던 글자가 유대땅에 까지 전파되었고 그 시대가 지금부터 1500년-은 더 되었을 시기이니 말입니다.

親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한다로 해석하면 황제내경이란 책과 가까워지라는 것은 말이 되는데 神功을 해석하는데는 영 아귀가 안맞아 보입니다. 신명의 공력과 가까워져야 한다? 여기서 친은 그냥 이해하라 또는 알아라 정도로 해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고전에서 단어를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식이 짧기때문에 확신있게 말을 못하겠습니다.

帝가 만약 상제를 의미한다면 뭔가 떠받드는 언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은 좀 수긍이 잘 안됩니다. 그냥 親이라는 말을 해도 되는게 아닐까요? 그냥 이해해라.. 알아라 정도의 의미가 아닐런지요?

만일 帝가 황제내경을 의미한다면 그 다음에 오는 神攻도 뭔가 현실의 실체적인 물건이거나 최소한 내경이란 책과 대구가 될만한 그 무엇이이야 중국사람들 글쓰기 어법에 부응하는 것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명 얘기가 다음에 나와버리니 영 이상합니다.

저는 의학과 운명학을 다른 범주의 것으로 본다는 말을 한게 아니라 운명학의 범주속에 의학도 포함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주를 놓고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적천수라는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질병과 치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라는 말이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에서의 길흉화복의 이치를 음양론에 입각해서 기술하는데 그 가운데 의학이니 질병이니 하는 것도 다룬다는 것입니다. 안 그랬다면 그냥 의학서의 일종으로 시종 질병의 발생원리를 얘기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것을 기술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그런 책은 아니 것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그러니 책의 向을 정하는데 처음부터 거대 담론으로서 우주-천지인 만물- 인간의 운명의 본질과 이치를 말하는 차원의 단어 선정에 황제내경 얘기하고 그다음에 신명 얘기한다고 이해하려니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여쭤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쓰여진 글들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홀로 굉장한 일을 하고 계신 것같아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게 제 바램입니다.

육산 드림.



제목: 학문의 연원(운기학)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4. 00:36:09

육산님!
지지닷컴의 학문적 수준을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건전한 논쟁을 좋아합니다. 건전한 논쟁이라 함은 이유 있는 근거를 동반한 논리적 주장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논리가 안 되니까 감정에 사로잡혀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육두문자로 인신공격을 하는 자 들을 아주 혐오합니다. 물론 이런 부류의 비겁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사실 적천수 처음부터 황제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좀 엉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해자평에도 처음에 帝 및 黃帝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배경을 살펴볼 때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참고로 삼명통회에서는 연해자평을 경전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위 황제가 등장하는 이유는 이 학문의 연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학문의 족보를 밝히고 있는 것이니 당연히 처음에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60갑자는 황제의 명에 의해 대요씨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자평학은 60갑자의 학문인만큼 당연히 황제학(운기학)이 근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6충, 6합, 3회합 등은 자평학이 아니라 운기학입니다.

따라서 황제내경에 실려(載) 있는 진리와 親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다음은 神功으로, 神明과 神功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神明은 신이 밝히는 것으로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神功은 신이 만든 것으로 형이하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親神功은 神이 만든 것 즉 형이하학적인 것과 親해져야 한다는 것이니까 분명 논리가 성립될 것입니다.

육산님께서 지적해 주신대로 한문의 댓구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한문에는 문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만큼 기본 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구법(균형)만큼은 정확히 지킵니다.

그렇다면 親帝載與神功의 댓구를 살펴보겠습니다.
帝를 황제로 보았을 때 황제내경에 실려 있는 진리와 신이 만들어낸 공은 형이하학적인 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帝를 상제로 보았을 때 상제가 하신 말씀과 신이 만들어낸 공은 분명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댓구로 불균형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이야 독자가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것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이 문장이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즉 親帝載與神功의 문장은 이 학문의 연원을 밝혀 주는 문장입니다. 실제로 만세력은 물론이요, 천간, 지지, 6합, 3회, 천간합 등등 아주 기본적인 개념과 용어들은 모두 위 황제의 운기학에서 출발하였으니 운기학 용어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은 이것을 모를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문의 중심이 없으니 제 멋대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학문의 연원을 밝혀 그 중심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이 학문은 원리가 밝혀지고 중지를 모을 수 있게 되어 발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므로 긴 시간 할애해서 건전한 논쟁에 응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해야 할 논쟁임에 틀림없는데...
육산님 덕분에 훌륭한 논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2.14.
편안한 돌! 안초~



제목: re: 학문의 연원(운기학)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4. 02:44:55

그동안 잘 몰랐거나 최소한 생각을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 것같아 기쁩니다. 그리고 감사도 드리고요. 합충원리가 황제내경에 근원한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지적 지평이 넓어지는 순간이니까요.

자평학의 연원이 운기학이고 운기학은 황제헌원학이라고 보시고 황제학은 내경이란 책으로 대표되느니 만큼 의학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같습니다.

이것을 부정할래야 부정하기 힘들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알고 명리학을 공부한다면 아주 좋은 명리학 공부의 시작일 것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는 명리 서적들이 그런 것을 적어 놓지를 않아서 자평학의 연원까지 탐구하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같습니다.

다만, 자평학의 연원과 관련하여 약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어 제 생각의 일단을 적어보겠습니다. 적천수에서는 9장 간지 총론에 陰陽順逆之說 洛書流行之用 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중국 하나라 우왕의 낙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낙서를 말하는 것은 이미 하도도 말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이것은 태호 복희씨 시대로 까지 올라갈 것같습니다. 황제 헌원이 오제 중의 하나이지만 태호 복희는 삼황 중의 하나로 시대적으로 황제헌원에 비해 엄청나게 이전이 됩니다. 굳이 자평학의 연원을 밝히려 했다면 복희씨 시대까지 안가란 법이 없었을 것인데 왜 삼황오제 중에서 오제 중의 하나인 황제헌원에서 멈췄을지 의아합니다.

자평학이란 것이 연원적으로 어디까지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당나라 시대 이후의 것이라고 보면(최소한 삼명학 이후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주를 주로 놓고 사주를 해석하기 시작한 것을 자평학이라 한다고 치고) 그 이전 시대의 지적 산물들과 사유의 조각들에서 영향받고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서 된 것이라고 볼수 있을 것인바. 운기학적 생각들 뿐만 아니라 음양론적 생각, 유교적 생각, 도교적 생각, 불교적 생각들이 다 섞여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실제 예를 들어 보면 7장 [천간]에서 丁火에 대한 기술을 하면서 乙의 관계를 孝라는 말로 하고 있고 壬과의 관계는 忠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유교적 사유체계를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비단 자평학이 운기학적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명리를 알려면 운기학도 알아야겠지만 유교적 도덕론도 알아야 된다는 증거같습니다. 물론 도교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천수의 저자를 생각할 때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책만큼은 최소한 경도가 그 시대의 사유들의 편린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적천수는 天道라는 제목을 붙이고 시작합니다. 첫장이 하늘이치를 말하는 부분입니다. 고도로 형이상학적 내용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帝載와 神功을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帝도 하늘나라 실체이고 神도 하늘나라 실체로 보아야 될 것같습니다. 하늘(天)의 이치(道)는 (上)帝와 神에서 출발하고 帝가 載하고 神이 功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적천수를 시작하는 것이 뭔가 그럴듯한 전개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왜 天道라고 하고 시작하는지와도 일맥상통할 것같고요.

제가 神을 굳이 神明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귀신(ghost)의 어두운 이미지와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神明은 하늘(天)에 있는 존재(실체)이고 그냥 神을 말하는데 밝은 빛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우주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것의 이면에서 실체로서 존재하며 사역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神들을 조종하고 우주를 이치(음양, 오행, 60갑자등의 원리)로써 주재 운용하는데 쓰는 존재가 상제인데 그냥 帝라고 표현한 것(표현의 대구적 묘미를 살리기 위해)으로 저는 보았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런 상상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력은 일부러 애를 써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적천수 첫구절을 읽을 때 곧바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생과 다르기에 스스로도 조금은 이상했지만 말입니다.

논쟁은 아니고 그냥 토론해 보았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리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데는 자꾸 대화를 해봐야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인지 얘기를 여기까지 끌고 온것 같습니다.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육산 드림.



제목: 하나의 원리(向)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5. 00:27:09

육산님!
계속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합충은 천문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별자리에는 합충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제시대에 기백에 의해서 5운이 천문의 28수 원리에서 비롯되었듯이, 아마도 합충 역시 위 천문의 합충원리에서 비롯되어 갑자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 합충과 3회합은 황제의 운기학인 만큼, 한의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경락의 원리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한의학과 자평학은 각자 원리에만 충실할 수 있다면 황제내경의 운기학이 현존하는 한 하나의 원리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한의학회 강의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많은 한의사 분들 역시 많은 관심을 표방하고 있습니다.(실제 지지닷컴은 많은 한의사 분들이 보고 있고, 또 회원가입이 되어 있음) 그런데 명리학 일부에서는 위 합충과 3회합이 허황되니 부정해야 한다는 학문의 퇴보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모양이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쩝!

그러나 육산님이 말씀하셨듯이 자평학은 위 황제의 운기학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복희(하도), 우왕(낙서), 서경(곡직,가색), 불교(체용) 등등 황제학 이외에 많은 神이 내려준 업적(功) 들에 의해 이루어진 학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帝載이외의 神功입니다. 따라서 帝載가 한의학과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는 길을 열어준 다면, 神功은 기타 동양학과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는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向이며, 동양학의 우월성입니다.

그래서 경도는 적천수 첫 화두에서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황제학에 실려 있는(載) 진리와 그 밖에 神이 내려준 업적(功)을 가까이(親)해야 한다고 적천수의 向을 제시한 것입니다.

帝載
경도는 적천수에서,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라고 4주의 근원을 첫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육산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대중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장 역시 허황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2.16.
편안한 돌! 안초~



제목: re: 하나의 원리(向) 글쓴이: 육산 날짜: 2004.02.16. 00:51:24

좋은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거 큰 일 났습니다. 자평명리 하나 공부하려는데 그것도 직업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적 취미삼아 관련 책들 좀 보고 그러려는데 엄청나게 범위가 넓어져야만 하겠기에 말입니다.

神功과 친해져야 三元의 宗을 알수 있다라는 말인데 신공(신의 업적물)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 말이죠.

경도라는 사람은 참 이해하기 힙든 사람같습니다.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니 말입니다. 언제 그 많은 신공들과 친해져야 할지 난감합니다.

동양학(동양적 사유법, 동양적 인식론의 기저)은 만가지 중에서 하나를 잡는 것(귀납적 접근, 경험론, 통계학, 서양식 과학적 인식론)이 아니라 하나를 잡아 만가지로 적용하는 것(연역적 접근, 선험론, 직관론, 깨우침)인데, 그래서 직관 내지는 心覺으로 이치를 터득하는 것인데 삼원의 근원을 識하는 것을 하나를 잡아 만가지를 적용한다는 생각을 밑에 깔고 나오는 글을 쓰지 않고 수많은 것들과 친해지면 만물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는 아주 서양식의 경험론적인 접근법을 깔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명리를 깨우치려면 명리학 고전을 정독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여러 부류의 동양학 서적들을 폭넓게 보고 익혀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하니 갈 길이 창창하게 느껴져 한숨이 나옵니다.

육산 드림.



제목: 연역적 사고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2.17. 00:42:38

안녕하십니까.
육산님의 글을 보면, 다 알고 계시면서 돌려 말하시는 기분이 듭니다.

“동양학(동양적 사유법, 동양적 인식론의 기저)은 만가지 중에서 하나를 잡는 것(귀납적 접근, 경험론, 통계학, 서양식 과학적 인식론)이 아니라 하나를 잡아 만가지로 적용하는 것(연역적 접근, 선험론, 직관론, 깨우침)인데, 그래서 직관 내지는 心覺으로 이치를 터득하는 것”

네, 아주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위 하나를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바로 神이 알려주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 神功아닙니까. 그러니까 경도는 연역적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귀납적으로 얘기했다면 神功보다는 人功이라고 썼을 것입니다.

사실 육산님이 말씀하신대로 적용은 그렇다고 치고, 연역적인 하나의 진리를 추출해 내는 것만도 평생이 걸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영어공부는 그까짓 20여년 세월동안 가진 노력을 다해도 외국사람 앞에서 말조차 못 꺼내는 사람이 부지기수 인데, 사람의 운명에 대한 공부가 어찌 수개월에 끝낼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취미로 시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취미는 역시 취미일 뿐입니다. 취미삼아 공부해서 자신의 운명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해 낼 수만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취미삼아 공부하신 실력이 프로보다 훨씬 나아보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2.17.
편안한 돌! 안초~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신(神)과 상(常)-신명


4. 신명(神明)

가. 명(明)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가까운 곳이 있으면 먼 곳이 있습니다. 여기에 數가 있어 極에 이르니 道가 되어 만물을 밝히게 됩니다.


황제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善言始者 必會於終 善言近者 必知其遠 是則至數極而道不惑 所謂明矣"(처음을  이어서 말하면 반드시 끝에서 모이고, 가까움을 이어서 말하면 반드시 먼 곳까지 알게 된다. 즉 數가 이르러 極이 되니 道에 의혹이 없다. 이것을 明이라 한다)라고 明을 정명한다.

우주의 축은 神(시공합일)이니, 보이는 象이며, 明은 안 보이는 數입니다. 따라서 神明은 신(神)으로 밝히는 數입니다.

神明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에서, "是以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故  是興神物 以前民用 聖人 以此齊戒 以神明其德夫"(이로써 하늘의 道를 밝히고, 백성의 연고를 살펴서, 이에 神物이 흥하여 백성 앞에 쓰니, 성인이 이것으로써 재계해서그 德을 神으로 밝힌다)라고 신명을 설명한다.

精으로 無極을 궁구하고, 氣로 萬物을 나타내고, 神으로 變化의 理를 밝힙(明)니다.

精氣神
황제는 '황제내경 기교변대론'에서, "所謂精光之論 大聖之業 宣明大道 通于無窮 究于無極也 余聞之 善言天者 必應于人 善言古者 必驗于今  善言氣者 必彰于物 善言應者 同天地之化 善言化言變者 通神明之理 非夫子孰能言至道歟"(이른바 精으로 빛나는 論은 大성인의 업적이요, 큰 道를 펴서 밝히는 것이요, 무궁함에 通하여 無極을 궁구하는  것이다. 내가 들으니, 하늘을 잘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에게 감응하고, 옛 것을 잘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금의 징험함이 있고, 氣를 잘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만물에 나타내고, 응함을 잘 하는 사람은 천지의 조화에 함께 한다. 化와 變을 잘 말하는 사람은 神을 通해  理를 밝힌다고 했으니 선생이 아니면  누가 지극한 道를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神明의 理로 변화를 道를 말한다.

나. 사(事)

神은 시간과 공간을 합일하는 우주의 축이므로 오는  것을 알게(知來) 합니다.

知來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에서, "是故 蓍之德圓而神 卦之德方以知 六爻之義易以貢 聖人以此 洗心退藏於密 吉凶與民同患 神以知來 知以藏往 其孰能與於此哉"(그러므로 蓍의 德은 둥글어 神이  되고, 卦의 德은 모가나서 지혜로우며, 6爻의 義는 바뀌어 이바지하니, 성인이 이것으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나 감추어 은밀하니, 길흉은 백성과 더불어 근심하고,  神으로서 오는 것을 알고 知로서 가는 것을 감추니,  그 누가 여기에 함께 하리오)라고 神으로 오는 것을 안다.

變하는 것을 通하게 하는 것은 신(神)입니다. 즉 신(神)이 하는 일이 事이며, 이것은 數가 極에 이르는 것으로 알게 됩니다.

變通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極數知來之謂占 通變之謂事"(數가 極에 이르니 오는 것을 아는 것을 占이라하고,  變으로 通하는 것을 事라고 한다)라고 數가 極에 이르니 變함을 神으로 通한다.

신(神)으로 象의 事를 살피니 공간(器)을 알게 되고...
신(神)으로 占의 事를 살피니 시간(來)을 알게 됩니다.

象占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12장'에서,  "是故 變化云爲 吉事有祥  象事知器 占事知來"(그러므로 변화하여 말하고 행함에 吉한 事에 상서러움이 있고, 象의 事로 器를 알며 占의 事로  오는 것을 안다)라고 象事로 器(공간)을 알고,  占事로 來(시간)을 안다고 했다.

2001-12-05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TAG , , , , , 신명


시공합일의 우주

우주는 뭉치(化)고 흩어(變)짐으로서, 變化하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우주는 하나가 둘의 관점(體用)으로 나뉘어져, 하나는 뭉쳐서 보이(顯)고, 또 다른 하나는 흩어져 안보이(隱)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이것을 현대용어로 표현하면, 우주는 뭉쳐서 보이는 空間과 흩어져 안보이는 時間이 서로 호환(易)하여 變化하는 時空合一(道)의 존재입니다.

1. 宇宙와 自然(시공)

가. 時空合一
고전물리학은 공간과 시간을 별개로 생각했지만, 현대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존재(時空合一)로서 인식하게 됩니다.

시공간 연속체
방건웅은 `신과학이 세상을 바꾼다`에서, "소립자의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에서는 시간을 확실히 하면 그 시각에 대상이 어디 있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게 되고, 반대로 위치를 확실히 하면 그 대상이 그 위치에 있었던 시각이 분명해 지지 않는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고전역학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양자역학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시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시공간 연속체라는 개념이다."라고 우주는 시공합일의 존재이다.

宇宙는 시공합일의 존재로서, 宇가 공간이며, 宙가 시간입니다.

宇宙
우주는 `회남자`에서, "天地四方 曰宇, 古往今來 曰宙"(하늘, 땅, 4방을 宇라고 하며, 과거가 가고 현재가 오는 것을 宙라고 한다)라고 천지4시(공간)와 고금왕래(시간)의 合一이 우주라고 정의합니다.

1900년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연구하던 중, 에너지의 발산이 불연속적인 다발임을 관찰하고 이것을 양자(量子)라고 칭하였습니다. 과학은 위 연구로 자연의 기본 변화는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폭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우주는 불연속적인 `∽`의 태극모양으로 호환(易)하는 하나(道)의 존재이므로, 보였다(顯) 안보이(隱)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顯)은 仁이며, 안보이는 것(藏)은 用으로, 만물은 소리내어(鼓) 폭발하며 變化합니다. 여기에 성인의 가르침이 있으니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顯藏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顯諸仁 藏諸用 鼓萬物而 不與聖人同憂 盛德大業至矣哉"(나타나는 것이 仁이며 숨은 것을 用하여 만물이 고동하니, 성인과 함께하여 근심하지 않으며, 풍성한 덕과 큰 업이 지극하다)라고 顯藏으로 설명한다.

참고로 위 時空合一은 과학의 접목을 위해, 안초가 隱顯을 현대개념으로 바꾸어 칭한 용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21세기 동서양 학문이 공통으로 나아가야 할 向으로, 宇宙原理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나. 觀察
지금의 과학은 시공분리에서 시공합일의 학문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위 두 학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관찰자의 관점입니다.

관찰자의 개입
전수준은 `신과학에서 동양학으로`에서, "양자역학의 가장 큰 특징은, 관찰자가 없으면 대상이 의미 없는 것이 되며 대상이 없으면 관찰자 또한 의미 없게 된다는 것이다. 관찰자와 대상은 상호 작용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 주는 것이다. 관찰자는 대상의 사건에 개입하기 때문에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대상을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상 속에서 볼 수 있다. 관찰자는 대상을 거울 삼아 자신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모습이 실험대상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관점의 관찰자가 내가 아니라, 우주 자체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전되고 있는 것입니다.

以觀
노자는 `노자 제54장`에서,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몸으로써 몸을 보고, 집으로써 집을 보고, 마을로써 마을을 보고, 나라로써 나라를 보고, 천하로서 천하를 본다)라고 物로서 物을 관찰함을 설명한다.

따라서 하나의 우주에 다양한 관찰자 시점이 있기에 다양한 역술이 존재합니다.

一生
만민영은 `삼명통회`에서, "古今高人達士 稽考天數 推察陰陽 以太乙數而推天運吉凶 以六壬而推人事吉凶 以奇門而推地方吉凶 以年月日時而推人一生吉凶"(고금의 높은 達士들은 하늘의 數를 계고하고 음양을 추찰하였는데, 태을수는 天運의 길흉을 추찰하고, 기문은 地方의 길흉을 추찰하고, 연월일시는 一生의 길흉을 추찰한다)라고 하나의 우주에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역술이 존재한다.

체용은 하나의 근원을 시간과 공간의 두 관점으로 구분하는 용어입니다.  즉 안보이(隱)는 시간과 보이(顯)는 공간의 관점을 체용이라고 합니다.

一源
정이는 `역전서`에서, "至微者理也 至著著象也 體用一源 顯微無間"(지극히 은미한 것은 理이며 지극히 드러난 것은 象이다. 體와 用은 근원이 하나이며 드러남과 은미함에 간격이 없다)라고 체용은 하나이므로, 그 간격이 없다.

결국 體用은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됩니다.

隱顯
삼산진은 `중용주석`에서, "體之隱, 初不離於用之顯也"(體의 은미함은 처음에는 用의 보임과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隱顯은 하나에서 비롯된다.

體用은 하나의 事物에 두가지 體와 用 두가지 관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위 두가지 관점은 각각 다양(變)하게 通하므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비유로 설명하면...
얼굴을 體라고 표현할 때, 화난 모습, 웃는 모습, 우는 모습, 슬픈 모습, 생각하는 모습은 각각 다르게 보이는데 이것이 用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象(얼굴)입니다. 담배를 필 때 火를 用하는데, 성냥(木), 부싯돌(金), 석유라이터(水), 가스라이터(火)를 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은 별개가 아닌 담배피우는 하나의 事(행위)입니다.

참고로 과학은 우주와 자연을 數의 논리로 입증하여 실험으로 검증하여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유가와는 數의 논리없이 體用의 개념으로만 중간자를 밝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체용은 과학에서도 공인 받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大宇宙(시간)

가. 易道
易은 보이는 공간의 象이며, 道는 안보이는 시간의 理이며, 神은 시공이 합일한 존재입니다.

易道神
율곡은 `역수책`에서, "萬物一五行也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亦强名耳 其體則爲之易 其理則謂之道 其用則爲之神"(만물은 하나의 5행이요, 5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 역시 강하게 이름하였을 따름이니, 그 體를 일러 易이라고 하며 그 理를 일러 道라고 하며 그 用을 일러 神이라고 한다)라고 易道神을 정의한다.

易은 生하여 보이는 象이며, 道는 위 易이 行하는 中이 存하는 안보이는 數입니다.

生存門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生生之謂易"(낳고 낳는 것이 易)이고,  또한 `제7장`에서, "天地設位 而易行乎 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천지에 位가 있어 易이 그 中에서 行하니 成性이 존재하여 存하는 것이 道義의 문이다)라고 道는 中에 存하는 것이며, 易은 그 中에서 生하여 行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이는 易의 象이 먼저 생겼지만, 안 보이는 道의 數가 천하의 母가 됩니다.

象先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解其粉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道는 沖해서 用하니 혹 不盈한 듯해서 淵함이 만물의 宗이다. 날카로움은 꺽이고, 엄킴은 풀고, 빛은 和하고, 티끌이 함께 하여 가득함이 存하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지만 象의 帝가 먼저 있다)라고 道는 沖해서 用하니 象이 먼저 있다.

周行
노자는 `도덕경 제4장`에서,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物이 혼성되어 천지보다 먼저 生하였으니, 적막하고 쓸쓸하여 독립되어 고쳐지지 않고, 周行하여 위태하지 않으니, 가이 천하의 母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名을 알지 못하지만 글자로 말하면 道라고 한다)라고 천하의 어미가 道라고 정의한다.

나. 理氣
理氣의 原理에는 시공관점의 음양(神), 공간관점의 3극(理), 시간관점의 5행(氣)이 있습니다.

시간관점에서...
5行의 氣는 보이는 공간의 至로 뭉치고, 안보이는 시간의 分으로 흩어져 行하는 正의 紀입니다.

正紀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지진요대론`에서, "氣至之謂至 氣分之謂分 至則氣同 分則氣異 所謂天地之正紀"(氣가 이르는 것을 至, 氣가 나누어지는 것을 分이라고 합니다. 至는 기가 같은 것이고 分은 기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천지의 正紀라 합니다)라고 氣가 分至하는 것을 正紀라고 한다.

氣가 공간의 至로 뭉치니 冬至와 夏至이고, 氣가 시간의 分으로 흩어지니 春分과 秋分입니다.

2分2至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지진요대론`에서, "氣至之謂至 氣分之謂分 至則氣同 分則氣異"(기가 이르는 것을 至라하고 기가 나누어지는 것을 分이라 한다. 至는 기가 같고 分은 기가 다르다)라고 氣가 같고 다름으로 2분2지를 설명한다.

5행은 위 2分2至를 4時의 氣가 상하(공간)로 좌우(시간)으로 뭉치고 흩어지며, 또한 그 中으로 行하는 5마디입니다.

上下左右行
기백은 `황제내경 6원정기대론`에서, "春氣西行 夏氣北行 秋氣東行 冬氣南行 故春氣始于下 秋氣始于上 夏氣始于中 冬氣始于標 春氣始于左 秋氣始于右 冬氣始于後 夏氣始于前 此四時正化之常 故至高之地 冬氣常在 至下之地 春氣常在 必勤察之"(春氣는 西行하고 夏氣는 北行하고 秋氣는 東行하고 冬氣는 南行합니다. 그러므로 春氣는 아래에서 시작하고 秋氣는 위에서 시작하고 夏氣는 가운데서 시작하고 冬氣는 표에서 시작한다. 春氣는 왼편에서 시작하고 秋氣는 오른편에서 시작하고 冬氣는 뒤에서 시작하고 夏氣는 앞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4時가 正으로 化하는 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땅에는 冬氣가 항상 있고 가장 낮은 땅에는 春氣가 항상 있으니 반드시 삼가 살펴야 합니다)라고 4時는 상하(공간)와 좌우(시간)으로 行한다.

공간관점에서...
陰陽의 神은 공간의 천지상하와 시간의 일월좌우로 구분됩니다.

天地日月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음양이합논`에서, "天爲陽 地爲陰 日爲陽 月爲陰 大小月三百六十日成一歲 人亦應之"(하늘은 양이 되고 땅은 음이 되고 해는 양이 되고 달은 음이된다. 크고 작은 달에 360일이 1년을 이룬다. 사람 또한 이에 응한다)라고 天地日月의 陰陽를 설명한다.

결국 한번은 공간으로 陰하고, 한번은 시간으로 陽하여 호환(易)하는 것이 시공의 道입니다.

陰陽道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一陰一陽之謂道"(한번은 음하고, 한번은 양하는 것을 道라 한다)라고 음양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시공관점에서...
3極의 理는 뭉쳐서 보이는 象의 圖(하도)가 공간의 태극이고, 흩어져 안보이는 數의 書(낙서)가 무극이며, 그 회전체의 中이 바로 황극입니다.

先後極
일부는 `정역`에서, "天地之道旣濟未濟 龍圖未濟之象而倒生逆成 先天太極龜書旣濟之數而逆生倒成 后天无極 五居中位皇極"(천지의 道는 기제와 미제이다. 圖는 미제의 象이고 倒生逆成하니 선천 태극이다. 書는 기제의 數이고 逆生倒成하니 후천 무극이다. 5가 가운데 있으니 황극이다)라고 先後極을 설명한다.

3. 小宇宙(공간)

가. 神明
神은 공간과 시간의 체와 용이 通하여 하나가 되어 德을 밝히는(明) 시공합일의 존재입니다.

通神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6장에서, "陰陽合德 而剛柔有體 以體天地之撰以通神明之德"(음양이 합덕해서 강유의 體가 있다. 體로써 천지를 펼치고, 通함으로써 神은 덕을 밝힌다)라고 通함으로 神이 있다.

따라서 神은 時空合一의 존재이므로, 음양을 측정할 수 없지만 陽의 精이 神(精神)으로 通합니다.

陰陽不測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 "陰陽不測謂之神"(음양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을 神이라 한다)라고 神을 설명한다. 즉 음양의 中이다.

隱顯不測
소길은 `5행대의`에서, "諸神者 靈智無方 隱顯不測 孔子曰 陽之精氣爲神"(모든 神은 신령스러움과 지혜에 방소가 없고 숨고 보이는 것을 측정할 수 없다. 공자는 말하기를 陽의 精氣로 神이 된다고 하셨다)라고 神은 陽의 精으로 된 無方하고 不測한 시공합일이다.

易道는 神을 설정하여 그 事로서 德을 밝히는(明) 學文입니다.(神明) 특히 體用 관점의 神을 用神이라고 하는데, 위 用神은 기문, 6임, 6효, 자미, 명리 등 모든 역술에서 길흉을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즉 用神 없이는 관점을 설정할 수 없으므로 역술은 시작할 수 없습니다.

神明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에서, "是以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故 是興神物 以前民用 聖人 以此齊戒 以神明其德夫"(이로써 하늘의 道를 밝히고, 백성의 연고를 살펴서, 이에 神物이 흥하여 백성 앞에 쓰니, 성인이 이것으로써 재계해서 그 德을 神으로 밝힌다)라고 신명을 설명한다.

시공합일의 神은 보이는 象이며, 明은 안보이는 數입니다. 따라서 神明이란 神이 밝히는 數라고 할 수 있습니다.

明數
황제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善言始者 必會於終 善言近者 必知其遠 是則至數極而道不惑 所謂明矣"(처음을 잘 말하면 반드시 끝에서 모이고, 가까움을 잘 말하면 반드시 먼 곳까지 알게 된다. 즉 數가 極에 이르러서 道에 의혹이 없는 것을 明이라 한다)라고 明을 정명한다.

나. 도구
우주를 관찰하는 易道의 도구는 시공관점의 象數(易道), 시간관점의 干支(道), 공간관점의 卦爻(易) 세가지가 있습니다.

象數는 시공관점으로...
보이는 것이 象이며, 안보이는 것이 數입니다. 그런데 神은 하나지만 通하는 것은 다양하여 고정되어(變) 있지 않습니다.(위 體用 참조)

象義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에서, "一闔一閉謂之變 往來不宮謂之通 見乃謂之象"(한번 열고 닫히는 것을 일러 變이라 하고, 왕래하여 고정되지 않는 것을 通이라 하니, 보이는 것을 象이고 한다)라고 見한 것이 바로 象이다.

시간과 공간은 별개일 수 없듯이, 반드시 數(시간)로 推하고, 象(공간)으로 辭합니다.

象數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5운행대론`에서, "夫陰陽者 數之可十 推之可百 數之可千 推之可萬 天地陰陽者 不可以數推 以象之謂也" (대저 음양이란 것은 數로는 10이며 推해서 百이 되고, 數해서 千이되고, 推해서 萬이 됩니다. 천지의 음양은 數로써만 推할 수 없고 象으로써 말합니다)라고 음양은 數로 推하고 象으로 말합니다.

象事物數
소길은 `5행대의`에서, "因夫象數 故識五行之始末 藉斯龜筮 乃辨陰陽之吉凶 是以事假象知 物從數立"(상수로 인해서 5행의 시종을 알게되고, 거북점과 시초점으로 해서 음양의 길흉을 판별한다. 그러므로 事는 象을 빌려서 알게 되고, 物은 數를 쫒아서 세운다)라고 象으로 事(시간)를 알고, 數로 物(공간)을 알게 된다.

따라서 象은 數에 從합니다. 그러나 象이 먼저 생겼습니다.(위 易道 참조)

從立
유목은 `역수구은도`에서, "天地之數旣說 則象從而定也"(천지의 수가 이미 설정되면 천지의 상은 여기에 從해 정해진다)라고 數從象을 설명한다.

干支는 시간관점으로...
안보이는 것이 干(幹)이며 보이는 것이 支(枝)입니다. 그래서 甲子는 天에서 數로 象을 觀합니다.

干支
소길은 `5행대의`에서, "見者爲陽 故從干 未見者爲陰 故從支 所以用甲子相配 爲六旬支始"(보이는 것은 양이 되기 때문에 천간을 따르고 안보이는 것은 음이 되기 때문에 지지를 따른다. 그래서 갑과 자를 서로 배합시켜서 6순의 시작으로 삼았다)라고 見의 干과 未見의 支를 설명한다.

5動靜6會
구유구는 `황제내경 소문 천원기대론`에서, "所以欲知天地之陰陽者 應天之氣 動而不息 故五歲而右遷 應地之氣 靜而守位 故六期而環會" "(천지의 음양을 알고자 하는 까닭은 하늘의 기에 응하여 움직임에 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년 동안에 오른편으로 돌고, 땅은 기에 응하여 고요히 자리를 지킵니다. 그러므로 6년 동안에 한바퀴 돌아 만나게 됩니다. )라고 天地陰陽을 설명한다.

卦爻는 공간관점으로...
卦는 보이는 象이며, 爻는 안보이는 數입니다. 그래서 괘효는 地에서 象으로 數를 察합니다.

物卦動爻
`주역의 역서`에서, "易者 陰陽之道也 卦者 陰陽之物 爻者 陰陽之動也 卦雖不同 所同者奇偶 爻雖不同 所同者九六"(역이란 음양의 道요, 괘란 음양의 物이요, 효란 음양의 動이다. 괘가 비록 다르지만 같은 것은 奇偶이며, 효가 비록 다르지만 같은 것은 9,6이다)라고 괘효를 설명한다.

劃은 보이는 動의 象(공간)이며, 爻는 안보이는 變의 數(시간)인데, 지금은 이것이 不傳되어 劃을 爻로 오인하고 있습니다.

畵爻
다산은 `주역4전`에서, "爻者變也 不變非爻也 卦畵之一二三四謂之畵 其一二三四之變者謂之爻 爻者交也 謂陰陽交易也 今人認畵爲爻頭腦巳誤也"(爻는 變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다. 괘획의 1,2,3,4는 畵이라고 말하지만 그 1,2,3,4가 變하는 것을 爻라고 말한다. 효는 交로서, 음양교역함을 말한다. 지금 사람들은 획을 효고 알고 있으니, 핵심이 이미 잘못됐다)라고 획과 효를 비교 설명한다.

비록 부족하지만...
時空合一의 관점에서 隱顯의 진리로 易道를 한 줄로 꿰어 보았습니다.(一而貫之) 진리는 쉽고 단순(易簡)합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의 과정은 결코 쉽고 단순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 한계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위 시공합일의 근원이 되는 서적은...
시간관점으로 道의 干支가 內徑의 運氣7便이며, 공간관점으로 易의 卦爻가 周易이며, 시공관점으로 易道의 象數가 正易입니다.

2001년 11월 5일 편안한 돌, 안초올림~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변화(變化)의 신(神)?  

변화(變化)는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용어입니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중(中)의 개념이 신(神)입니다.

변화란 아주 흔히 사용되는 일반적 용어이지만, 위와 같은 일반용어의 개념을 정확히 아는 것이 우주변화원리에서는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예를 들면 운+동, 방+위, 정+치, 도+덕, 포+함, 평+화 등등... 아무것도 아닌 듯 한 위 용어가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우주의 근본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주변화원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변(變)과 화(化)는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변(變)은 분산되어 극(極)에 달하는 것이며, 화(化)는 합일되어 생(生)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주만물은 變(분산)했다가 다시 化(합일)해 가는 것입니다.

化變神聖
구유구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物生謂之化 物極謂之變陰陽不測謂之神 神用無方謂之聖"(물이 생함을 화라 하고, 물이 극함을 변이라 하고,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이라 하고, 신을 사용함에 방이 없음을 성이라 합니다)라고 화+변+신+성을 정명한다.

변화가 있는 곳에 항상 신(神)이 등장합니다.
주역 계사전 및 내경에서, '變化를 아는자, 神의 情狀을 안다'라고 變化와 神을 설파하고 있으며, 율곡은 '神의 妙用을 모르는 자와 더불어 易을 논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神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변(變)과 화(化)는 분산과 합일의 정반대 흐름을 말하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분산(變)과 합일(化)은 어느 시점에선가 정반대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위 정반대의 갈라지는 분기점, 즉 중(中)에서 펼쳐지는 향(向)이 바로 신(神)입니다.

따라서 주역 계사전과 내경에서, 신(神)은 음도 양도 아닌 중(中)이므로 음양을  측정할 수 없다(陰陽不測)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神)은 중(中)의 펼쳐지는 향(向)이므로 당연히 음양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變化)를 알기 위해서는 신(神)을 알아야 하며, 신(神)을 알게 되면 변화(變化)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神)은 위 우주변화에서는 절대적 위치에 있게 되며(우주관), 절대적 신(神)입장에서는 변화를 창조하는 개념이 되며(절대관), 창조입장에서는 조물주가 되며(창조관),  학문입장에서는 변화를 밝히는(明) 기준이 됩니다(학문관).

명(神明)이란 신(神)의 묘용(妙用)을 밝히는(明) 것입니다.

妙神
공자는 '주역 설괘전 제6장'에서, "神也者 妙萬物 而爲言者也"(신이란 만물을 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神妙를 설명한다. (神의  입장에서는 妙用이라고 하고, 體象의 입장에서는 用事라고 함)  역학은 위 신(神)을 기준으로 변화를 밝히기 시작하므로 비로소 역학은 응용 적용되어집니다.

따라서 신(神)의 묘용(妙用)은 역학을 응용하고 적용하는 첫 출발이 되므로,  율곡은 신(神)의 묘용(妙用)을 모르는 자와 더불어 역(易)을 논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妙用
율곡은 '역수책'에서, "一理渾成 二氣流行 天地之大 萬物之變 莫非理氣之妙用也 知此說者 可與論易也"(1理가 혼연히 이루어져 2氣가 유행한다. 천지의 커다람과 사물의 변화가 이기의 묘용이 아님이 없으니 이 說을 아는 者라야 더불어 易을 논할 수 있다)라고 묘용을 설명한다.

이것은 잃어버린 도(道)입니다.

2000-07-29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4.2. 명(明)

明(명)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천원기대론'에서,"善言始者 必會於終 善言近者 必知其遠 是則至數極而道不惑 所謂明矣"(처음을 잘 말하면 반드시 끝에 모이고, 가까움을 잘 말하면 반드시 먼 곳을 알게 된다. 數가 極에 이르러서 道에 의혹이 없는 것을 明이라 말한다)라고 明을 정명한다.

- 명(明) -

必明(필명)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오상정대론'에서,"故治病者 必明 天道地理 陰陽更勝 氣之先後 人之壽夭 生化之期 乃可以知人之形氣矣"(그러므로 치병자는 필히 천도지리, 음양갱승, 기의 선후, 사람의 수요, 생화의 시기를 밝힘으로 가의 사람의 형기를 알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天地神明(천지신명)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5운행대론'에서,"天地之動靜 神明爲之紀 陰陽之升降 寒暑彰其兆"(천지는 동정하고, 신명은 紀가 되고, 음양은 승강하고, 한서는 조짐을 나타낸다)라고 천지신명, 음양한서를 설명한다.

神明(신명)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1장'에서,"是以明於天之道 而察於民之故 是興神物 以前民用 聖人 以此齊戒 以神明其德夫"(이로써 하늘의 道를 밝히고, 백성의 연고를 살펴서, 이에 神과 物이 흥하여 백성 앞에 用하니, 성인이 이것을 재계하여 神으로써 그 德을 밝힌다)라고 신명을 설명한다.

幽明(유명)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지진요대론'에서,"兩陰交盡 故曰幽 兩陽合明 故曰明 幽明之配 寒暑之異也"(兩陰이 교류를 다하였으니 幽라고 하고, 兩陽이 명을 합하였으니 明이라고 합니다. 幽明이 짝함은 한서의 차이입니다)라고 유명을 설명한다.

明氣(명기)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6원정기대론'에서,"先立其年 以明其氣 金木水火土 運行之數 寒暑燥濕風火 臨御之化 則天道可見 民氣可調 陰陽卷舒 近而無惑"(먼저 그 年을 세워 氣를 밝힙니다. 금목수화토는 운행의 數입니다. 한서조습풍화는 임어의 化이니, 천도를 볼 수 있으며 백성의 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음양을 말고 펼 수 있으며 가까이 해서 의혹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氣行을 밝힌다.

觀明(관명)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2장'에서,"聖人說卦 觀象繫辭焉 而明吉凶"(성인은 卦를 말하고, 象을 보고 말을 붙여 길흉을 밝힌다)라고 성인은 觀하여 明한다.

明臨(명임)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又明於憂患與故 无有師保 如臨父母"(또한 근심과 연고를 밝히는 지라,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은 없으니 부모와 같이 임한다)라고 역은 밝혀서 임한다.

常明(상명)

노자는 '노자 제16장'에서,"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常을 아는 것을 明이라고 하는데, 常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게 흉한 일을 만든다)라고 常을 알아야 흉하지 않다.

極明慮(극명려)

왕필은 '노자지략'에서,"夫察見至微者 明之極也 深射隱伏者 慮之極也 能盡極明 匪唯聖乎 能盡極慮 匪唯智乎 校實定名 以觀絶聖 可無惑矣"(微에 이르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極의 明이다. 숨겨진 것을 알아맞힐 수 있는 것이 極의 慮이다. 極明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聖뿐이 아니겠는가. 極慮를 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智뿐이 아니겠는가. 實을 비교하여 名을 정하고, 絶對적인 聖을 관찰함으로 의혹이 없게 된다)라고 極明慮를 설명합니다.

明德(명덕)

최한기는 ‘氣學’에서,"在人身之氣 從耳目以修明 則精明生焉 大學之明德也"(사람 몸에 있는 氣를 귀로 듣고 눈으로 봄에 따라서 닦고 밝히면, 精實과 光明이 생긴다. 이것이 대학의 明德이다)라고 설명한다.

일월합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宗敎精神과 道'에서, "도와 종교는 동일원리의 體用적 표현인 것뿐인즉 모든 종교정신은 천변만화하는 도의 정신이며, 도의 정신은 律呂작용의 恒存性의 완성이며 항존성의 완성은 明, 즉 日月이 合明하는 변화의 귀결점이며 출발점인 바의 戌5點이며 空點이며 乾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道의 목적, 즉 종교의 목적은 우주와 인간의 변화를 연구함으로써 대자연의 신비의 문을 개방하여 보려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정신통일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人間과 聰明'에서, "정신의 통일이 요구되는 것은 정신을 완성시키기 위함이요, 따라서 인간정신의 완성을 욕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우주적인 明을 요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이 만일 우주와 같은 明을 가진다면 인간의 인식과 판단이 정확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정확하게 되면 우주의 비밀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정신통일을 설명합니다.

물상,괘상,수상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象의 槪念과 成立''에서, "數象과 卦象을 연구한 다음에는 物象을 연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數象과 卦象에서 그의 기본과 법칙을 연구하는 것은 物에서 象을 파악하려는 기초 공작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라야 物象을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수상, 형상, 물상으로 우주를 연구하게 된다고 했다"

물상

또한, "동식물이 모두 形으로서 體를 이루고 있는데 그 체는 형에 속하므로 十目所視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지만 象은 形 속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파악하기는 용이한 일이 아니다. 象이라는 것은 징조와 기미다...인체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관찰한다면 칠정육욕 때문에 변화하는 象은 물론 형체구조에서 나타나는 모든 象까지도 일일이 찾아냄으로써 그 象이 지닌 바의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괘상

또한, "宇宙間의 모든 象은 이와 같은 徵兆와 幾微에서 나타나므로 그 기미나 징조를 포착하는 방법, 즉 象을 제시한 것이 바로 卦다. 卦자에는 징조라는 뜻이 있다. 그런즉 卦 象이란 것은 모든 사물은 그것이 발생하거나 소멸하기 이전에 징조가 象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상

또한, "數는 계산을 위하여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고 數 자체가 진리이며 철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數가 나타내는 모든 象은 허상이 아니고 실상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은 그의 본질대로 象이 나타나고 象에는 반드시 그 象의 내용인 바의 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물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며 또한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 물론 이것을 탐색하는 현실적인 목표는 사물 자체의 象에서 직접으로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연구하기 위하여서 數象에서 찾는 방법부터 공부하여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총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人間과 聰明'에서, "인간정신이 이성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모든 情慾은 없어질 것이며 따라서 肉體내에서는 土化작용을 잘하게 될 것인즉 腎水는 순조롭게 上升할 것이고 心氣(火)는 不平 없이 統一될 것이므로 相火의 거울(鏡)은 聰을 明으로 전환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이 만일 情慾에 사로잡히게 되면 聰明작용은 消耗一路로 向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화가 나면 눈이 캄캄하고 기분만 나빠도 머리가 아픈 것은 바로 精神상태에 이상을 초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인즉 이것은 바로 이성의 안정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런즉 이성적 생활은 총명의 모체가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머릿속에 달(月)이 떠 있을 만큼 理性能力을 기르게 되면 感性的인 경험과 理性的인 統覺에 의하여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 4덕(四德) -

道德(도덕)

일부는 '정역 15일언'에서,"水土之成道天地 天地之合德日月"(수토가 成道한 것이 천지요, 천지가 合德한 것이 일월이다"라고 水天地日月과 道德을 설명한다.

德氣(덕기)

기백은 ‘황제내경 영추 本神論 제8편’ 에서,"天之在我者 德也 地之在我者 氣也 德流氣薄而生者也 故生之來謂之精 兩精相搏謂之神 隨神往來者 謂之魂 精而出入者 謂之魄 所以任物者 謂之心 心有所憶 謂之意 意之所存 謂之志 因志而存變 謂之思 因思而遠慕 謂之慮 因慮而處物 謂之智"(하늘이 나에 있으니 德이고 땅이 나에 있으니 氣이므로, 德은 흐르고 氣가 머물러 生합니다. 그러므로 生하여 오는 것을 精이라고 하고, 양정이 상박하니 神이라고 합니다. 神을 따라 왕래하니 魂이라고 하고, 精과 함께 출입하니 魄이라고 합니다. 이로서 만물에 임하니 心이라고 하고, 心이 깊이 생각하니 意라고 하고, 意가 존하는 것을 志라고 한다. 志로 인해서 변을 세우니 思라고 하고, 思로 인해 매우 그리워하니 慮라고 하고, 慮로 인해 物에 처하니 智라고 합니다)라고 德氣가 精神 魂魄 心意志思智慮를 생함을 정의한다.

德化(덕화)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帝曰 善 其德化政令之動靜損益皆何如 岐伯曰 夫德化政令災變 不能相加也 勝復盛衰 不能相多也 往來小大 不能相過也 用之升降 不能相無也 各從其動而復之耳"(황제는 말한다. 좋구나. 그 덕화정령의 동정 손익은 모두 어떠한가. 기백은 말한다. 무릇 덕화, 정령, 재변은 서로 추가할 수 없고, 승복, 성쇠도 서로 많을 수 없으며, 왕래, 소대도 서로 과할 수 없으며, 用의 승강이 없을 수 없으니, 각기 그 움직임에 從해서 다시 회복됩니다)라고 덕화정령의 동정손익을 말한다.

德化政令變災(덕화정령변재)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夫氣之動變 固不常在 而德化政令災變 不同其候也"(천지변동은 常에 고정된 것이 아니고 덕화정령이 재앙의 변을 가져오므로 그 候가 같지 않습니다)라고 덕화정령으로 候가 같지 않고,

또한"東方生風 風生木 其德敷和 其化生榮 其政舒啓 其令風 其變振發 其災散落"(동방은 풍을 낳고 풍은 木을 낳습니다. 德은 和를 들어내고 化는 번성함을 낳으며 政은 펼쳐 열며 그 令은 풍입니다. 그 變은 떨쳐 나타나며 災은 흩어져 떨어집니다)라고 동방을 설명하며,

또한"南方生熱 熱生火 其德彰顯 其化蕃茂 其政明曜 其令熱 其變燔焫"(남방은 열을 낳고 열은 火를 낳습니다. 德은 밝게 빛나고 化는 무성하며 政은 도약을 밝히고 令은 열입니다. 그 變은 태워서 굽습니다)라고 남방을 설명하며,

또한"中央生濕 濕生土 其德蒸 其化豊備 其政安靜 其令濕 其變驟注 其災霖潰"(중앙은 습을 낳고 습은 土를 낳습니다. 德은 무더워 찌며 化는 풍부하게 갖추고 政은 편안하며 令은 습입니다. 그 變은 자주 물을 흘러내리며 그 재앙은 장마로 무너지게 됩니다)라고 중앙을 설명하며,

또한"西方生燥 燥生金 其德淸潔 其化緊斂 其政勁切 其令燥 其變肅殺 其災蒼隕"(서방은 조를 낳고 조는 金을 낳습니다. 德은 맑고 깨끗하며 化는 줄여서 거두며 政은 날카로워 끓으며 令은 조합니다. 그 變은 숙살시키는 것이며 재앙은 푸른 채 시들어 버립니다)라고 서방을 설명하며,

또한, "北方生寒 寒生水 其德凄滄 其化淸謐 其政凝肅 其令寒 其變洌凓 其災雹霜雪"(북방은 한을 낳고 한은 水를 낳습니다. 德은 차갑고 추우며 化는 맑고 고요하며 政은 엉켜서 숙살시키며 令은 寒입니다. 그 變은 차가우며 그 재앙은 얼음, 우박, 서리, 눈입니다)라고 북방을 설명하며,

또한"是以察其動也 有德有化 有政有令 有變有災 而物由之 而人應之也"(이것으로 그 움직임을 살펴보면 덕화, 정령, 변재가 있어서 만물이 거기에 연유되고 사람은 거기에 응합니다)라고 德化, 政令, 變災를 각 방위로 설명합니다.

道四(도사)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10장'에서,"易有聖人之道四焉 以言者尙其辭 以動者尙其變 以制器者尙其象 以卜筮者尙其占"(역에 성인의 道가 넷이 있으니, 역으로써 말함은 그 辭를 숭상하고, 움직임은 그 變을 숭상하고, 기구를 만듦은 그 象을 숭상하고, 卜筮함은 그 占을 숭상한다)라고 辭變象占의 4언을 설명한다.

四德(사덕)

공자는 ‘주역 괘사 문언전’에서,"君子行 此四德者 故曰 乾元亨利貞"(군자가 행하니 이것이 4덕이다. 그러므로 건 원형이정이라고 말한다)라고 4덕을 원형이정이라고 설명한다.

德行(덕행)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4장‘에서,"其德行何也 陽一君而二民 君子之道也 陰二君而一民 小人之道也"(그 덕행은 어떠한가. 양은 1군자에 2백성이므로 군자의 도다. 음은 2군자에 1백성이니 소인의 도다)라고 덕행을 설명한다.

神德(신덕)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9장'에서,"顯道神德行 是故 可與酬酌 可與祐神矣"(도, 신, 덕, 행이 나타나므로 더불어 수작할 수 있고, 더불어 신이 도울 수 있다)라고 신덕이 나타남으로 더불어 한다.

道從(도종)

노자는 '노자 제21장'에서,"孔德之容 惟道是從"(큰 덕의 모습은 오직 道만 따른다)라고 덕은 도를 좇음을 설명한다.

玄德(현덕)

노자는 '노자 제10장'에서,"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낳지만 소유하지 않고, 작위 하지만 의지하지 않고, 자라지만 주재하지 않는 것을 일러 현덕이라고 한다)라고 玄德을 설명한다.

生畜形成(생축형성)

노자는 '노자 제51장'에서,"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도는 낳고, 덕은 기르고, 물은 형을 나타내고, 세는 이룬다)라고 生畜形成을 설명한다.

德得(덕득)

소길은 '5행대의'에서,"德者得也 有益於物各隨所欲 無悔吝 故謂之爲德也"(덕은 얻었다는 뜻이다. 만물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유익하게 하여서, 뉘우침과 인색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德이라고 말한다)라고 덕을 설명한다.

陰陽合德(음양합덕)

소길은 '5행대의'에서,"孔子曰 乾陽也 坤陰也 陰陽合德 五行之本 受生於天 則受成於地 稟氣於陽 定形於陰 體無偏立 故各有合 總而言之 干爲陽屬天 支爲陰屬地"(공자가 말씀하시길, 乾은 양이고 坤은 음이니 음과 양이 덕을 합한다. 5행의 본은 하늘의 생함을 받고 땅의 이룸을 받는 것으로, 양에게서는 기운을 품 받고 음에게서는 形을 정하여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는 한쪽으로 치우쳐 설 수 없으니, 각기 합쳐지는 바가 있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천간은 양이 되고 하늘에 속하며, 지지는 음이 되고 땅에 속한다)라고 음양합덕을 설명한다.

四德(사덕)

소길은 '5행대의'에서,"德有四德 三者從支干論之 一者從月氣論之 支干三種者 一曰干德 二曰支德 三曰支干合德"(덕은 4가지 덕이 있다. 3가지는 지지와 천간에 종한 것이고, 1가지는 月氣에 종하는 것을 논한 것이다. 천간과 지지에 따른 3종에서 첫째는 천간의 덕이고, 둘째는 지지의 덕이며, 세 번째는 지간의 덕이 합한 것이다)라고 四德을 설명한다.

生成四(생성사)

최한기는 ‘신기통 체통’에서,"人身神氣生成之由有四 其一天也 其二土宜也 其三父母精血也 其四聞見習染也 上三條 旣有所稟 不可追改 下一條 實爲變通之功夫"(사람의 몸에 신기를 생성하는 요소는 네 가지이니, 첫째는 하늘이요, 둘째는 토질이요, 셋째는 부모의 정혈이요, 넷째는 듣고 보아서 習染하는 것이다. 위의 세 조목은 이미 품수한 바가 있는 것이므로 소급하여 고칠 수 없으나, 아래의 한 조목은 실로 변통하는 공부가 된다)라고 설명한다.

坤德(곤덕)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六氣論'에서, "동양철학은 지구의 引力을 坤의 象에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坤(☷)은 그 象이 3陰의 列立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나 中이 虛하기 때문에 만물(5行氣)을 전부 포용할 수 있는 德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坤은 분열의 極에서 이루어진 統一의 始初이기 때문에 여기서 5行質인 大氣를 전부 集合하려면 반드시 모순이 생기는 것이나 이것을 능히 조화시켜서 통일할 수 있는 것은 지구(坤)가 포함하고 있고 또 磁場은 土性으로서 이것을 포위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坤德을 설명합니다.

4수소량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宇宙精神과 律呂'에서, "핵반응에 참가했던 네 개의 수소원자가 핵반응을 일으킨 후에 그의 중량을 조사해 보면 에너지를 방출하기 이전의 질량과 비교해서 그 중량은 극소의 차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런즉 그 소량의 차가 바로 에너지인 것이다"라고 수소량의 차가 에너지라고 합니다.

- 4상인(四象人) -

陰陽臟腑(음양장부)

황제는 '황제내경 영추 本臟論 제47편'에서."岐伯對曰 窘乎哉問也 五臟者 所以參天地 副 陰陽 而連四時 化五節者也 五臟者 固有小大高下堅脆端正偏傾者 六腑亦有小大長短厚薄結直緩急 凡此二十五者 各不同 或善或惡 或吉或凶 請言其方"(기백이 대답하였다. 물으심이 깊으십니다. 5장은 3천지가 소이로 음양에 부응하여 4시에 연하여 5절로 화합니다. 5장은 고정되어 小大, 高下, 堅脆, 端正, 偏傾이 있습니다. 6부 역시 小大, 長短, 厚薄, 結直, 緩急이 있습니다. 무릇 25는 각기 달라 선악이 있기도 하고, 길흉이 있기 합니다. 그 方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5장과 6부를 설명한다.

五人(5인)

황제와 소사는 ‘황제내경 영추 통천편’에서,"黃帝曰 願略聞其意 有賢人聖人 必能略而衡之乎 少師曰 蓋有太陰之人 少陰之人 太陽之人 少陽之人 陰陽和平之人 凡五人者 其態不同 其筋骨氣血各不等"(黃帝가 말하기를 賢人과 聖人은 반드시 평형을 유지하는지 그 의미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오? 少師가 말하기를 무릇 太陰人, 少陰人, 太陽人, 少陽人, 陰陽和平人이 있습니다. 무릇 이들 다섯 유형의 사람들은 그 형태가 같지 않아, 筋骨・氣血이 각기 다릅니다)라고 사람을 5인으로 분류합니다.

四臟人(4장인)

동무는 ‘동의수세보원’에서,"人稟臟理 有四不同 肺大而肝小者 名曰太陽人 肝大而肺小者 名曰太陰人 脾大而腎小者 名曰少陽人 腎大而脾小者 名曰少陰人"(인품의 장의 이치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같지 않으니,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자를 태양인이라 하고,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자를 태음인이라 하고, 비가 크고 신이 작은 자를 소양인이라 하고, 신이 크고 비가 작은 자를 소음인이라 한다)라고 四臟人을 설명한다.

사상론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人間精神의 特徵과 壽夭'에서, "날 때부터 四性(木火金水)의 어느 一方에 치우친 유전적인 인간은 탄생하여서 자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本質(善)은 차차 변화하면서 惡한 性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를 내경에서는 25人論으로 세분하였지만 東武는 四象論으로 간소화시켰던 것이다.

四象이라고 하는 것은 특징적인 인간, 즉 四型으로 편경(偏傾)된 작용을 함으로써 항상 土化작용의 조절을 위배하려고 하는 人間性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무는 인간의 5行 主體가 폐기(肺氣)쪽에 기울어진 사람을 太陽人이라고 하고 간기(肝氣)쪽에 기울어진 것을 太陰人, 비기(脾氣)쪽에 기울어진 것을 少陽人, 신기(腎氣)쪽에 기울어진 사람을 少陰人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四行(四臟) 기운이 어느 일방에 치우치고 있기 때문에 土性인 心이 이것을 조절할 수 없게 됨으로써 心(精神)이 할 수 없이 四臟의 不正性에 끌려 버리고 마는 것이므로 동무는 이와 같이 인간의 體質을 구별하였던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4. 신명변화(神明變化)

化變神明(화변신명)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所謂精光之論 大聖之業 宣明大道 通於無窮 究於無極也 余聞之 善言天者 必應於人 善言古者 必驗於今 善言氣者 必彰於物 善言應者 同天地之化 善言化言變者 通神明之理 非夫子孰能言至道歟"(이른바 精光의 論은 大성인의 업적이요, 大道를 밝히어 펴는 것이요, 무궁에 通하여 무극을 궁구하는 것이다. 내가 들으니, 하늘을 잘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에게 감응하고, 옛 것을 잘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금의 징험함이 있고, 氣를 잘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만물에 밝게 나타내고, 응함을 잘 말하는 사람은 천지의 조화에 함께 하며, 化를 잘 말하고 變을 잘 말하는 사람은 神明의 이치에 通한다고 했으니 선생이 아니면 누가 지극한 道를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변화는 신명의 이치에 통한다.

- 교(交) -

小大(소대)

기백은 '황제내경 영추 本臟論 제47편'에서."窘乎哉問也 五臟者 所以參天地 副陰陽 而連四時 化五節者也 者 固有小大高下堅脆端正偏傾者 六腑亦有小大長短厚薄結直緩急 凡此二十五者 各不同 或善或惡 或吉或凶 請言其方"(물음이 깊으십니다. 5장은 3천지의 소이로 음양이 돕고 4시로 연계되어 5절로 化합니다. 5장에는 오로지 小大, 高下, 堅脆, 端正, 偏傾이 있으며, 6부 역시 小大, 長短, 厚薄, 結直, 緩急이 있습니다. 무릇 이 25가지는 각각 달라서 선하거나 악하거나 길하거나 흉하니 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5장6부에는 음양이 있다.

先後(선후)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6원정기대론'에서,"運太過則其至先 運不及則其至後 此候之常也"(운이 태과한 것이 先이고, 운이 불급하는 것이 後입니다. 이 候를 常이라고 합니다)라고 運의 先後를 설명합니다.

遠物近身(원물근신)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 2장’에서,"近取諸身 遠取諸物"(가까이 신체에서 취하고, 멀리 물체에서 취하였다)라고 우주관점을 설명한다.

大小遠近(대소원근)

최한기는 ‘추측록 추측제강’에서,"見有大小遠近 而準的有大小遠近 準的有大小遠近 而事業有大小遠近 然未有見近而成遠者 亦未有不見小而成大者"(소견에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것이 있어서 準的이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것이 있고, 준적에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것이 있어서 사업에 크고 작고 멀고 가까운 것이 있다. 그러나 가까운 것만을 보고서 먼 것을 이루는 사람이 없고, 작은 것을 보지 않고서 큰 것을 이루는 사람도 없다)라고 설명한다.

互大互小(호대호소)

한장경은 ‘역학원리총론 음양과 생명에서’ "만물의 생생작용은 大小長短등의 차등이 없으면 조직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그 體는 각기 獨自한 형태를 가지고 스스로 차등이 있는 것이요, 그 운행은 편승편패가 있으면 교호작용이 行하지 못하여 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그 작용은 互大互小하여 차등하면서 평등한 운동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역의 호대호소를 설명합니다.

交(政/權衡)

右(동남)

左(북서)

化(태과)

變(불급)

4時(선기)

3才(옥형)

氣口(大,遠)

人迎(小,近)

똑같은 장소

마이클 슈나이더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5.펜타드'에서, "나선형은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맥동하면서도 변화의 전 과정을 통해 그 성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우리 내면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우리 인식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기상내부에 있는 고요한 눈 또는 고요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전에 있던 것과 똑 같은 장소에 이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좀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즉 나선의 좀 더 높은 곳에 이른다"라고 설명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