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초'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3.03 고전
  2. 2009.01.16 일부의 정역
  3. 2008.06.15 장요문-포여명
  4. 2008.05.20 우주변화의 원리 감상-6(반론)
  5. 2008.03.26 적천수에 대한 생각

고전

하나의 동양학 2009. 3. 3. 06:52


제목: 고전 글쓴이: 아킬 날짜: 2008.01.14. 20:28:09

안초님의 가장 주된 기본 입장은

이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전을 깊게 접하지 못한 초보이지만 일전에 말씀드린대로

고전이라는 맥과 이치 본연의 맥에 잇어서 다소 차이가 잇는줄 압니다.

예를들어 녹겁용살과 양인용살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녹겁의 경우는 식상제살을 논하는데 양인용살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이치의 입장에서 고전이

결코 진리 전체를 차지할수는 없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고전 자체에서 이미 권위화된 잡설의 일점 탁기를 읽지 않을수 없으니

위 권위의 옥석을 구분함 또한

유일하게 이치의 칼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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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부의 정역 글쓴이: do do 날짜: 2007.10.07. 01:28:28

동양학에 관해 이제 관심을 갖게 돼 공부시작하는 초심자입니다.

우주변화 원리는 물론 기초에 관해서도 무지한 부분이 넘 많습니다.

우주변화 원리 이해 하려면 아직 먼 길이지만 그런날 있을거라 믿습니다^^

위 책 서두의 그림을 보면 일부께서 정역에 정축설이 있는데..

안초 선생님께선 어떤 의견을 보이시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수고 하세요




제목: 萬古解氷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0.07. 07:48:36

먼저 동양학에 관심을 갖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지축이 바로 서는 의견을 묻는 글로 이해하였습니다.

현재 지축이 바로 서고 있습니다. 단지 이것을 과학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분명 이것을 설명하는 과학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위 지축이 바로 서는 대표적 현상이 만년빙하의 해빙입니다. 아래 글은 81년쯤에 이정호선생님과 조재련선생의 예언서 쓰여져 있는 글입니다. 정역에서는 빙하가 녹기 훨씬 이전에 이미 빙하가 녹는다는 것을 알 고 있었습니다. 대단하지요.

龍華歲月(용화세월/만년빙)

이정호는 '정역과 일부, 十五一言에 대하여, 1976.1.23.'에서, "만일에 때가 이르면, 정역8괘도가 보여주는 中位正易이 실현되면, 그러면 문제는 매우 달라지리라고 생각된다.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雷風中位와 日月成道로 因한 黃道와 赤道의 一致를 볼 수 있다면, 이로 인하여 極寒極署의 冬至夏至가 없어지고, 때문에 북극의 만년빙이 녹아 흐른다면, 그래서 一年 360日은「三十六宮都是春」과 같은 기후로 변한다면... 그렇다면 이것이 人心에 미치는 영향과 오장육부의 和氣가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健全한 精神과 더욱 원만한 행동을 추구 실현하려 할 것이니, 이른 바 人人君子요 個個賢人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正易에 「誰遺龍華歲月今고」라고 한것은 이런 세월의 到來를 반기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와 같이 至善君子가 輩出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인류사 있은 以來 처음으로 이루는 山澤通氣의 결과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조재련선생의 만고해빙 호여춘(萬古解氷 好與春)

http://jeejee.info/category/天上祿華%20法乘禪(下達)?page=12

다시 말씀드려서 빙하가 녹는 이유는 지축의 변화로 인해 태양 빛의 각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몇 만년동안 빛이 비추지 못하던 곳에 비로소 빛이 비추기 시작하기 때문에 얼음이 쪼개지는 겁니다. 지금 아무 생각 없는 과학자들은 열로 인해 녹는다고 하고 매스컴이 부화뇌동하지만 녹는 것이 아니라 쪼개지고 있습니다. 만약 열로 빙하가 녹는다면 아이스크림 녹듯이 겉부터 녹아내리지, 빙하가 속에서 부터 쪼개질 수 없습니다. 지금 빙하가 겉부터 녹는 건지 안에서부터 쪼개지는 것인지는 TV화면을 보시면 알 것입니다.

그리고 위 빛은 당연히 기존의 열도 달라지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쳐 기후, 쓰나미, 태풍, 생명체 등등 지구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제 시작이며 우리는 이런 큰 변화의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위 변화의 정도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 보지 못한 것으로 상상을 초월하지만 이미 그 내용은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미래의 변화를 알려주는 학문이 정역입니다. 그렇다고 꼭 먼 미래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격고 있는 변화가 바로 그 시작입니다.

2007.10.7 안초




제목: 답변감사합니다..내용무 글쓴이: dodo 날짜: 2007.10.07. 19: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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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문-포여명


요즈음은 완전풀이 적천수가 포여명이 쓴 글이 아니라, 투파의 장요문이 쓴 책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렇게 바로 잡히게 된 이면에는 숨은 공로(?)가 있습니다. 바로 안초(이승수) 선생님이 밝혀 주신 겁니다.

안초 선생님께서 위 책은 포여명이 쓴 책이 아니라는 것을 역학동의 방계모임이 이었던 하역회에서 제일 먼저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포여명이 쓴 책이려니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관심을 가진 박영창님이 원본을 확인하면서 포여명이 아니라 장요문이라는 사실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수님은 이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위 사실은 예전부터 제가 보고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사실을 밝히는 겁니다. 하이텔 역학동 명리마당에 그 당시 토론하던 글을 올리니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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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두설에 관한 생각
박영창 () 00/08/16 02:17 | 조회수 298

- 중략 -

아, 그리고 하역회에서 이승수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완전풀이 적천수가 포여명의 저작이 아닌 것 같다고 했네요, 완전풀이 적천수의 내용을 앞서가는 중국 명운학이 비판했다는 거죠. 두 책 중에서 포여명의 저술일 가능성은 자미두수를 논한 앞서가는 명운학이 많아 보이네요.

포여명이 원래 자미두수를 하거든요. 20년 전에 학범선생님이 적천수를 번역했는데, 그 분이 투파 이론서를 번역해서 낸 적이 있거든요. 포여명이 20년전에 적천수 해설서를 썼을 리가 없겠고... 포여명은 원래 명리가가 아니고 자미두수를 합니다. 이수님이 그를 만나보았을때 포여명이 사주를 보지 않고 상과 자미를 보아서 실망했다고요? 아무래도 포여명이 완전풀이 적천수의 저자가 아닐 것 같은데요... 완전풀이 적천수의 원저자가 누군지 찾고 있는 중입니다. 십간론은 사주추명십간비해인데, 중국인이 쓴 고서인데, 저자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투파 이론이나 포여명의 적천수에 이상한 부분은 앞으로도 비판을 할 생각인데, 양해를 바랍니다.

정보/포여명 적천수가 아니고 장요문 적천수
박영창 () 00/08/31 17:07 | 조회수 209

완전풀이 적천수와 완전풀이 십간론은 포여명의 저술이 아니고, 장요문의 저술이더군요. 제가 책장을 뒤져서 원본을 찾아냈거든요. 이제부터는 포여명의 적천수라고 부르지 말고, 장요문의 적천수 혹은 투파의 적천수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책] 장요문...
안초 () 00/09/02 01:00 | 조회수 345

포여명은 서낙오 학풍입니다.
완전풀이 적천수는 투파 학풍입니다.
그러니 완전풀이 적천수를 포여명이 쓸 수는 없습니다.
낙천님이 원문까지 확인하셨다니...

저 역시 이제 장요문의 저작으로 믿겠습니다. 그래서 포여명은 이 책을 대만에서 내지는 못하고, 한국에서 자기 이름으로 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역인을 우롱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만, 완전풀이 적천수는 한번쯤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낙오는 자평진전을 평주했지만, 그 시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차리리 평주를 하지 말든지... 그러나 심효첨과 위 완전풀이 적천수의 시각은 유사하니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즉 적천수를 심효첨의 시각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수님의 시각과 유사합니다.

택지향 묘지혈...
잘 연구해 보세요. 여기에 모든 열쇠가 있습니다.
왜 일간위주이어야 하는지...
왜 월령에서 용신을 취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중화는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5201] 이승수님
이지승 (이수) 00/09/02 12:03 | 조회수 370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심효첨'은 제가 좀 더 시간을 두고 글을 올릴 재료로 삼고 있었는 데 김을 빼셨군요. 정작 저는 자평진전을 꼭 써머리로 올리고 싶었습니다. 타이밍을 놓친 것 같군요.^^

제가 굳이 포여명의 완전풀이 적천수를 각색하면서 서낙오를 연계 고리로 끌어들인 연유까지 다 꿰뚫고 계시니 이제 당분간 입을 다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평진전평주를 한 단계 아래로 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透派, 장요문의 저작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효첨의 논리는 임상에서 일치했습니다. 아주 확연하고 명쾌한 것이었죠. 저는 막연히 이것이 鮑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실상 그러리라 봅니다.

宅之向, 墓之穴論 - 저는 이것을 그냥 宅向/墓向으로 간략히 개념을 정립하였습니다 - 이것이 현대 명학 지식체계의 가장 참신한 논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관법은 고전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 생명력이 사라졌거나 번거로운 논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묘지향으로 강약을 조율하는 방법은 어느 교재에서도 구체적인 사례나 정의를 지 못했습니다 - 그러니 제 글(BACK TO THE BASIC 2)은 최소한 표절은 아닙니다^^-

다만 임철초가 이 점을 간파하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항시 설명이 번잡해요. 그로 인해 명조를 해석하는 원칙상의 불분명한 점이 있어보입니다. 제가 적천수천미를 벗삼을 당시에는 짜증이 많이 났죠. 이처럼 첫단추를 산뜻하게 채우지 못한 접근을 후대에서 텍스트로 삼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 중략-

* 아! 그리구 '포여명' 한번 데려와야겠습니다. 좀 진위도 밝히고 그래야지.. 일본에 거주하신다는 애기는 들었는데..당사자가 돌아가신 분도 아닌데 연내에 한번 주선해봐야겠군요. 근데 왜 표절을 했을까.. 갸우뚱..

승수님의 글이 아주 좋네요.
박영창 () 00/09/03 07:58 | 조회수 225

이승수님께서 역학의 원리 연구에 몰두하시느라고 두문불출하시더니, 많은 성과가 있으셨군요. 저는 왜 역술이 술일 뿐 학이 아니고 원리의 근원에 대한 탐구가 없는지 유감이었는데, 학과 술의 차이에 대한 승수님의 의견을 보고 참으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역술도 역학이 되어야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승수님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 중략 -

2005년 8월 3일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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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변화의 원리 감상-6(반론)

아래 글은 구름 이경숙님의 글입니다.
안초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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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우주변화의 원리" 감상-6

  책이라는 것의 가치는 무엇일까? 정보와 즐거움과 가치관의 세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은 독자에게 정보(지식)를 주거나,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단 그 정보와 지식이 바람직한 가치관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서적이나 철학서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쓰여진다. 어떤 사람들은 괴롭지만 직업상 읽어야 하고, 어떤 이는 그런 지식의 습득에서 쾌감을 얻기 때문에 읽기도 한다.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종의 과학서적이다. 더 세분하면 과학적 철학서이다. 저자가 설명하려고 하는 대상이 분명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양오행“에 대하여 설명하려는 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으로 말미암아 ”음양오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 독자들이 나와야만이 이 책은 그 가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음양오행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나는 본다. 있다고? 누고? 한번 손들고 나와 봐. 한번 데리고 와바. 얼굴 함 보게.

  왜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이 책이 나온지 어언 40년이 되어가고, 음양오행의 교과서로 불릴만큼 독보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는 데 비해서 이 책을 이론적 토대로 한 후속 연구의 성과물이 한국의 동양학계에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었다는 사람은 많은데, 읽고 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더 진일보한 이론과 원리를 밝힌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거나 이 책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음양오행론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한동석의 제자라 자부하는 이가 누가 있나? 한동석파라는 동양학의 학파가 존재하나?

  책이 누리는 권위와 명성에 비해서 그에 걸맞게 따라주어야 할 실질적인 학문적 성과와 후속작업이 전무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은 단 한 넘도 읽고 이해한 넘이 없다는 소리다.

  너무나도 난해하고 어려운 탓에 그저 신성불가침한 바이블로 모셔진 책이다. 누가 이 책을 이용하나? 강단에서? 천만에... 일부 자생종교단체들이 자기네 이론서로 써먹고 있다. 그것도 내용이나 이해를 하고 써먹냐 하면 전혀 아니올시다다. 그네들이 종교이론으로 팔아먹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일단 이 책은 정보(지식)의 제공이나 전달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학서로서의 기능을 조금도 갖지 못한 책이다. 달리 말하면 책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무가치한 책이라는 것이다. 즐거움을 준다는 또다른 측면에서도 이 책은 사회일반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게 되면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둘 중 하나이다. “띠바,  디기 어렵네, 나 같은 돌빡은 동양학 못 하겠군. 내 주제파악을 못하고 책을 잘못 산거야. 아이고 돈 아까비.” 이게 다수이고, 또 다른 주요한 반응은 “동양학은 역시 씨나락이야, 서양철학이나 과학에 비하면 얼라들 작난질 같애. 유치찬란, 구상유취, 졸렬무비, 아무런 가치 없는 말장난일 뿐인데 공연히 또 사고 말았군. 동양학 하는 넘들은 미친 넘들이야.” 이게 둘이다. 즐거움은 커녕 스트레스와 짜증만 안겨준다.

내 말이 틀리나? “우주변화의 원리”가 동양학계에, 일반학계에, 사회전반에 순기능적으로 기여한 바가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누가 알면 말씀 좀 해 주시지.

  아무래도 이 글의 논점을 좀 더 명확히 맑히는 것이 필요할 듯해서 좀 더 부연을 해 드렸다. 다음 회부터 본격적으로 원문의 감상을 계속해 보자.

  구름~~

http://blog.naver.com/gktkrk?Redirect=Log&logNo=50007195131

네, 중도님!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윗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 몇까지를 써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음양오행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나는 본다. 있다고? 누고? 한번 손들고 나와 봐. 한번 데리고 와바. 얼굴 함 보게.”

나는 동양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임이 안 갔기 때문입니다. 뭔가 논리가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 잘 따져보면 중요한 핵심이 모순되어 있고, 그것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헛공부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양학을 공부하시는 분 중에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이 상당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은 학문을 傳하는 것이 아니라 말(言)을 옮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양학을 알고 傳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 옮(遷)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통하지 못한 사람(非人)은 학문을 傳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非人不傳(비인부전)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전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기인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비인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설한다.

그런데 말(言)을 옮기고 옮기다 보면 종국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혀 엉뚱한 말을 옮기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율곡선생은 화담선생을 말(言)을 옮(遷)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평했던 것입니다.

진리와 언문
율곡은 '율곡전서'에서 선조에게, "세상의 이른바 학자라는 사람들이 단지 성현의 학설을 의지하여 모방만 하고 말을 하나 마음속으로는 얻은 바가 없는데, 경덕(화담)은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나아가 스스로 얻은 妙가 있으니 결코 문자와 언어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진리와 언문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평생 남의 말만 옮기면서 헛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위 진리와 언문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주신 분이 바로 한동석선생입니다. 만약 한동석선생님의 우주변화의 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대부분의 사람처럼 말(言)을 옮기고 있거나 아니면 내 스스로  동양학을 포기했을 겁니다.

“왜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이 책이 나온지 어언 40년이 되어가고, 음양오행의 교과서로 불릴만큼 독보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는 데 비해서 이 책을 이론적 토대로 한 후속 연구의 성과물이 한국의 동양학계에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우주변화의 원리와의 만남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만 해도 동양학을 꽤나 공부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저 역시 남들처럼 도저히 한 장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하던 책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글의 주제부터가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질이 없으므로 동양학을 포기하겠다는 도박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비장한 각오일 뿐 위 책은 쉽게 나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공부하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어차피 모를 것이라면 알려고 하지 말고 글자만이라도 읽어서 책장이나 끝까지 넘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해하는 것보다 글자만이라도 끝까지 한번 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것은 우주변화의 원리 뿐 아니라 원전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믿고 한번만 해보시면 우주변화의 원리는 분명 심오한 동양학의 세계로 안내 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해서 우주변화의 원리 뿐 아니라 원전도 읽게 되신 분이 꽤 있습니다.

위와 같이 시작한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은 나를 송두리 채 잡았고, 나는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모릅니다. 거의 암기할 정도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책이 점점 헐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새 책을 하나 더 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산 책도 얼마나 읽었는지 어느새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읽게 되는가 하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우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또 읽어도 또 새로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해서 행림과 대원의 우주변화의 원리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위 공부하는 과정에서 선생이 제시하신 운기, 주역, 정역 등의 원전도 위 방법으로 읽었으며, 결국은 약간의 깨달음을 정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졸저 ‘中의原理’입니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는 10년의 청춘을 흘려보내야 했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래도 나는 행운아이기 때문에 선생을 만나 동양학의 門을 두드릴 수 있었고, 또 그 아류라고 할 수 있는 ‘中의原理’까지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한의학회에서 강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평소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으면서 계획했던 선생의 묘소도 후학들을 데리고 참배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학은 말(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40년이 아니라 400년이 걸려도 위 門에 접근하는 사람조차 만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후속 연구의 성과물이 쉽게 나올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성인은 누에 옷을 입고 있다고 한 것처럼 때가 되어야 옷을 벗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런 분에게 동양학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윗글을 쓰신 분은 말(言)로 하시는 분인지 아닌지 스스로 생각 좀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양학 공부가 끝났을지는 몰라도, 공부하는 자세는 지금부터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데 하늘에서 뭘 알려 줄 것 같지 않군요.

2006.9.12. 안초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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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수에 대한 생각

글쓴이: 잠용 날짜: 2008.01.14. 10:57:41 조회: 184

명리계에서는 철초님의 적천수 천미와 조화원약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안초님은 독보적으로 적천수의 철초님과 낙오님의 이론이 틀렸다고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홀로 외로운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길은 학문의 동반자가 있어서 발전을 할 수 있고 독려도 하는 좋은 점도 있지만 자칫 안주 안일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홀로 가는 길은 위험 부담이 너무도 크지만 자신을 항상 독려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간다는 말처럼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고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운이지요. 운이 나쁘면 나쁜 만큼 나쁜 선택을 하고 운이 좋으면 좋은 만큼 좋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천수와 조화원약에서 이치를 배우고 터득한 분들은 안초님보다는 더 잘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더 잘 나갈 것입니다.

안초님은 적천수의 첫 머리글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이 백여년도 더 전에 출판된 중국어인 한문으로 출판 된 서적을 읽고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면 그간 그 책을 읽은 중국과 한국의 독자들은 다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철초님은 유학의 기본을 배웠고 역에 대한 여러 서적을 탐독을 하여 적천수천미를 집필을 했습니다. 김상섭님이 해설한 예문서원발행의 역학계몽을 어렵게 구했습니다. 그 책에 역의 전 계보가 적혀있습니다. 지금의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이지만 철초님 당시에는 수 많은 역학책들을 구해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안초는 10여년간 굶어가면서 공부를 했다고 은근히 자랑은 했는데 김상섭님의 책에는 안초가 공부한 책보다도 더 많은 책들을 참고를 하여 저술을 했고 서가의 책이나 서점의 인문학 코너의 서적을 보면 참고한 서적이 보통 몇십권은 됩니다. 그러한 학문의 세계를 모르는 안초이니 나는 공부를 엄청나게 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지요.

철초나 락오는 한문을 평생을 사용하면서 사신 분입니다. 그에 비해 안초는 하루에 몇시간을 공부를 하고 그 몇시간중 얼마를 한문 서적을 봅니까? 나머지 시간은 한글을 사용하면서 보내지요. 한학의 기본과 역학의 기본이 있으면서도 평생을 한문 속에 사시는 분이 모르고 넘어간 것을 안초는 터득을 했다는 말인데 저는 그러한 일을 학문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는 생각입니다.

안초는 황제내경을 공부를 했고 이제는 중의 원리(우주변화의 원리)를 강의하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적천수의 한 구절을 읽고 큰 깨우침을 받았으면 다른 후학들도 열심히 읽고 깨우쳐야 되므로 버려야 책은 아니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책이 됩니다. 안초님이 본 것은 적천수의 원문이지 철초님이 해설을 한 글은 아닙니다. 그러면 적천수천미에서 철초님이 풀이한 부분은 빼고 보면 된다는 것이 됩니다. 그럼 난강망도 같은 의미로 읽어야 하는 책이 됩니다. 임상과 신살을 뺀 나머지 어떤 이론이 문제가 되는지 밝혀주실 수 있는지?

안초님은 철초님과 락오님의 임상과 신살만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 말은 적천수천미에 나와 있는 512개의 명조의 간지 사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럼 철초님이 활동할 당시에는 간지 사용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되면서 자연 조화원약(난강망, 궁통보감)도 문제는 없는 것이 됩니다. (서락오는 1886년 4월 6일출생 1948년 사망) 철초 1773년 4월 18일생) 아 적천수와 조화원약의 간지 사용에 문제가 있다는 글은 없지 않소.

그럼 간지 사용의 문제는 언제 생겼습니까?

졸라 궁금한데 답을 해주실 줄로 믿고 다음으로 갑니다.

적천수의 첫 문장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欲識三元萬物宗 先親帝載與神功

: 3원 만물의 끝을 알고자 하면, 먼저 황제내경의 내용과 신의 공과 친해져야 한다(안초)

2) 欲識三元萬法宗 先觀帝載與神功

삼원은 만법의 근원이니 이를 알고자 할진댄 먼저 帝載와 神功을 보아야 하느니라(통원)

국내의 10여종 이상의 적천수 번역본이 택하고 있는 문장은 2)번입니다. 안초님이 택한 문장은 파우리민과 이수의 책입니다. 여기서도 대중이 가는 길을 외면하고 고독한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왜 고독한 길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글을 못 읽었습니다. (어디 있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안초님은 책의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소위 액키스 핵심 야마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적천수의 첫 문장이 이렇게 서로 다르면 좀 거시기 해지는데

만물과 만법 선친과 선관의 차이에 대한 풀이를 해주고 다시 1)번 문장과 2)번 문장에 대한 풀이를 한 다음 많은 책에서는 2)번 문장을 택했지만 이러 이러한 이유로 택하지 않고 1)번을 택했노라 할 때 안초의 이론이 완벽해지며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신살 간지 용신 등 많은 부분에서 기존 명리와는 다릅니다. 그럼 말로만 나의 이론만이 명리의 정도이고 다른 명리는 틀렸다 하지 말고 철초님의 명조와 한동석님의 명조를 안초의 모든 이론을 대입하여 풀이를 한 다음 철초님의 경우는 적천수에 있는 철조 자신의 풀이와 대비를 하여 제시하면 바로 안초의 이론에 수긍을 할 터인데 왜 그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 개인 사정으로 다른 이름 글을 올립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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