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1.09 중의원리
  2. 2008.10.03 역법(曆法)
  3. 2008.10.02 서경의 `기삼백`이란 구절?
  4. 2008.06.25 최한기 력(曆)


제목: 중의원리 글쓴이: 박경호 날짜: 2007.03.30. 13:17:21

안녕하세요 안초님

오래간만에 중의원리 인터넷판을 보니 예전에 교재와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있는데

이에대해 질문드립니다.

첫째, 목차를 바꾼 이유가 궁금하고요

둘째, 중의 원리의 연구가 현재진행형이라면 문제되는 논점에 대해 알고싶군요.

세째, 역이 역법에서 유래하고 역법은 천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는 데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제왕들이 농사의 시기를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역법을 연구한 걸로 압니다.

그럼 고대에는 나안으로 하늘을 관찰했을텐데 현대천문학에서 밝혀진 것과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데 이점에 대한 안초님의 견해가 궁금하군요.

박현선생님은 천문도에는 앙천천문도, 부찰천문도, 중조천문도의 셋으로 나누고

이를 삼재에 배합합니다.

따라서 동양학을 깊이 공부하는 데 천문연구가 기본이라 생각되는 데

중의 원리에서는 깊이있게 다루지 않는 것 같읍니다.




제목: re: 중의원리 글쓴이: 안초 날짜: 2007.03.30. 23:14:51

중의원리는 우주원리에 입각하여 동양학을 하나로 묶고자하는 책입니다.

1. 중의원리는 좀 더 우주원리에 다가서기 위해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차가 바뀌는 것인데, 이젠 점점 우주원리에 수렴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중의원리 전체 구조는 북두7성의 이치에서 비롯되었는데 이것은 운기와 주역과도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2. 이제 큰 논점은 거의 없고, 그림, 도표 그리고 보완할 몇까지 책정도의 미흡한 부분만 남았습니다.

3. 천문은 동양학의 출발점이자 근거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위 천문을 현상(별자리)부터 접근하는데 이것은 일단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서양천문학이고, 동양천문학은 변하지 않는 이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 이치는 쉽고 단순하며 우리 동양학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즉 천문이 복잡할 이유가 없습니다. 중의원리 역시 위 천문을 2자연법칙에 할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단지 자료가 좀 부족한 듯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현상만 찾아서 그렇고, 우리에게 필요한 큰 줄기의 이치는 거의 실려 있습니다.

중의원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3.30. 안초




제목: 중의원리 글쓴이: 박경호 날짜: 2007.03.31. 10:45:57

안초님 답변감사드립니다.

양자역학이 발달하여 현재 정보통신사회가 도래했듯이 중의원리를

바탕으로 모든 응용동양학이 쉽게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기을임 삼식이 춘추전국시대부터 응용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서나온 천반이나 지반에서 입증되었읍니다.

그러나 기본적의문은 여전히 남읍니다.

예를 들어 갑을목에 갑이 왜 갑기토의 토로 변하는냐 같은 것입니다.

풍수에서도 정오행이니 무슨오행이니 종류가 많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 책에는 이에대해 설명하지 않읍니다.

이런고로 중의원리에 대한 기대가 큼니다.

모쪼록 외우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바랍니다.

최근 중국에서 나온 양경반이란 분이 저술한 "역수총화"가

삼식을 되살리려는 취지로 나온 괞찮은 책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술객들도 이에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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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에 대내마(大奈麻) 덕복(德福)이 당 나라에 들어가서 역법을 배워 와서, 처음으로 그 법을 써서 역서를 만들었다. 《문헌비고》

○ 고려(高麗) 때에는 별로 역서를 두지 않고 당 나라 《선명력(宣明曆)》을 그대로 본받아 사용하였는데, 장경(長慶) 임인년으로부터 그 후 태조(太祖)가 개국할 때까지 자못 1백 년이 지나자 그 역서가 이미 틀려졌다. 그 전에 틀려진 것은 당 나라에서는 이미 역서를 고쳐, 이로부터 역서를 모두 22차례 고쳤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그냥 사용하다가, 충선왕 때에 이르러 원 나라 《수시력(授時曆)》으로 고쳐 사용하였으나 개방(開方)의 수학(數學) 방법은 전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교식 일절(交食一節)은 오히려 선명력의 옛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휴식 가시(虧食加時)는 천문(天文)에 합하지 아니하였다. 일관(日官)이 제멋대로 앞뒤를 억지로 맞추었으나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 고려 말까지 능히 고치지 못하였다. 정인지의 《고려사》

○ 세종 계□에 예문 제학(藝文提學) 정인지 등에 명하여 《칠정산 내외편(七政算內外編)》을 지었다. 처음에 고려 최성지(崔誠之)가 충선왕을 따라 원 나라에 들어가서 《수시력법(授時曆法)》을 얻어 돌아와서 추보(推步)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일월 교식(日月交食)하는 것과 오성(五星)이 행하는 도수는 오히려 곽수경(郭守敬)의 산술(算術)을 알지 못하였다. 우리나라가 개국하여서도 역법은 《수시력》을 그대로 썼다.《수시력》에 일월 교식과 오성의 입성(立成)이 빠졌으므로 임금이 정인지ㆍ정초(鄭招)ㆍ정흠지(鄭欽之) 등에게 명하여 추보(推步)하도록 하니, 명 나라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취하여 조금 첨삭해서 합하여 《내편(內篇)》을 만들고, 또 《회회역법(回回曆法)》을 얻어 이순지(李純之)ㆍ김담(金淡) 등에게 명하여 상고하고 바로잡게 하여 《외편(外篇)》을 만들었다.

○ 인조(仁祖) 갑신년에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김육(金堉)이 상소하기를, “황제(黃帝) 때 이래로 옛 역법 육가(六家)의 뒤에 한 나라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낙하굉(洛下閎)이 《태초력(太初曆)》을 만들었는데, 동한 말까지에 무릇 세 번 역서를 고치고, 위 나라로부터 수 나라에 이르는 동안에 13번 고치고, 당 나라 역서는 8번 고치며, 오대(五代)의 여러 나라에는 팔가(八家)의 역서가 있었고, 남송과 북송 때에는 역서를 11번 고쳤습니다.이렇게 다만 역서가 오래되어 차이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보는 것이 각각 정밀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여 역서를 이와 같이 자주 고쳤습니다. 원 나라 초에 이르러 곽수경ㆍ허형(許衡) 등이 역법에 밝아서 입차(立差)를 매우 정밀하게 하여 영(盈)하고 축(縮)하며 더디고 빠르며 더하고 감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지원(至元) 18년 신사년을 역원(曆元)으로 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무릇 3백 65년이 되도록 일식ㆍ월식이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후세에서 교묘한 역서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천문(天文)의 운행이 쉬지 않으므로 조그만 차이가 날로 쌓여 많아져서 저녁과 새벽의 중성(中星)의 위차(位次)가 조금씩 틀려지고, 주천(周天) 도수가 이미 꽉 찼으니 마땅히 변할 것입니다.서양(西洋) 역서가 마침 이때에 나왔으니 이야말로 역서를 고칠 기회이나 다만 한흥일(韓興一)이 가져 온 책에 이론만 있고 입성(立成)이 없습니다. 대개 이 글을 지을 만한 사람이라야 능히 이 글을 알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비록 10년을 연구하여도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에서 병자ㆍ정축년 사이로부터 이미 역서법을 고쳤으니, 곧 내년의 신력(新曆)에는 반드시 우리나라 역서와는 틀린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신력 중에 만약 묘하게 합치되는 곳이 있거든 마땅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하소서. 이번 사신 중에 일관 한두 사람을 동행시켜 흠천감(欽天監)에 탐문하여 역법을 추고하고, 의심나고 어려운 점을 알아 오면 추측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문헌비고》

○ 효종(孝宗) 계사년에 처음으로 시헌력법(時憲曆法)을 행하였다.

○ 만력(萬曆) 때에 서양 사람 리마두(利瑪竇)가 중국에 들어왔는데, 천문력법(天文曆法)에 있어서 산법(算法)과 혼천의(渾天儀)를 운용하는 것이 옛날보다 매우 뛰어났다. 숭정(崇禎) 때에 예부 상서(禮部尙書) 서광계(徐光啓)와 우참정(右參政) 이천경(李天經)이 서양의 방법에 의거하여 《일월오성력지(日月五星曆指)》 및 《혼천의설(渾天儀說)》을 바치었으니, 이것이 《시헌력(時憲曆)》의 기본이 되었다.

○ 서양 사람 탕약망(湯若望)이 시헌력을 만들었다. 숭정 초년에 비로소 그 법을 사용하여 중국에서 시행하였으며, 청 나라에서도 그대로 계승하여 썼는데 그 법이 매우 정묘하였다. 김육이 관상감 제조로 있을 때에 그 법을 배워 익히기를 아뢰어 청하였다. 병술년에 사신이 되어 연경에 들어갈 때에 역관(曆官) 두 사람을 거느리고 가서 탕약망에게 배우려 하였다.그러나 경비가 삼엄하여 출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책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김상범(金尙範) 등을 시켜 힘을 다해서 정밀히 연구하여 대략 그 개요를 알았다. 신묘년 겨울에 또 김상범을 보내어 많은 뇌물을 주고 흠천감에서 배워 와서 계사년으로부터 처음으로 그 법을 사용하여 역서를 행하였다. 그러나 오성산법(五星算法)은 아직 알아 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을미년에 또 김상범을 보냈으나 불행하게도 도중에서 죽었으므로 그 법을 마침내 다 전하지 못하였다. 《잠곡집(潛谷集)》

○ 숙종(肅宗) 무자년에 관상감 추산관(推算官) 허원(許遠)이 연경에 들어가서 시헌법(時憲法) 칠정표(七政表)를 흠천감에서 사가지고 돌아와서 그대로 추보하여 비로소 시헌력 오성법을 사용하였다.

○ 영종(英宗) 원년에 ‘신수시헌칠정법(新修時憲七政法)’으로 고쳐 사용하였다.

○ 서광계가 지은 《숭정력지(崇禎曆指)》에 숭정 원년 무진 천정동지(天正冬至)를 역원(曆元)으로 삼았더니, 우리나라 숙종조에 이르러 쌓인 위차(位差)가 점점 많아졌다. 매각성(梅瑴成)이 《숭정력지》를 미루어 넓혀 숭정 후 57년 갑자년 천정 동지를 역원으로 삼으니 곧 우리나라 숙종 10년 갑자이다. 칠정(七政)도 모두 여기에서부터 계산을 시작하였다.영종 을사년부터 처음으로 그 법에 의하여 일월과 오성의 교식(交食)을 추보하였다. 요즈음 서양사람 갈서니(噶西尼)가 또 말하기를, “태양과 지구가 반경(半徑)의 차이가 있다.” 하고, 각성(瑴成)은 3분이라고 정하였다. 그러나 지금 추측으로는 겨우 10초(秒)의 청기(淸氣)ㆍ몽기(蒙氣)의 차이가 있다. 각성은 지평상(地平上)이 34분이 되고, 높이가 45도이니 다만 5초가 있다고 정하였다.그러나 지금 추측에는 지평상이 겨우 32분이며, 높이가 45도요, 오히려 59초가 있다. 일월ㆍ오성의 천(天)에 관한 것을 각성이 ‘평원(平圓)’이라고 정하였으나, 지금 추측에는 타원이 되어 두 끝의 직경이 길고 두 허리의 직경이 짧다고 하였다. 이 세 가지의 경도ㆍ위도가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드디어 숭정 후 96년 계묘를 역원으로 삼아서 일전(日躔)ㆍ월리(月離)의 교식을 고쳤다. 영종 갑자년부터 전리 교식(躔離交食)은 갈서니의 법을 따라 하고, 오성은 매각성의 법을 썼다. 《문헌비고》

○ 《금헌휘언(今獻彙言)》에, “동지 후의 나머지 날수로 명년 윤달을 정한다.” 하였는데, 가령 하루가 남으면 내년 1월에 윤달이 있고 이틀이 남으면 2월에 윤달이 있으며, 만약 나머지가 13일이 되면 명년에는 윤달이 없다 한다. 융경(隆慶) 5년 신미 선조 4년 에 동지 후의 나머지 날수가 4일인데 6년 임신에 일관이 2월을 윤달로 하였더니, 학관(學官) 어숙권(魚叔權)이 일찍이 《휘언》을 보았으므로 윤달을 잘못 만들었다고 고집을 세워서 영관상감사(領觀象監事)를 시켜, “다시 추산(推算)하라.” 하였다.그러나 일관이 오히려 자기 소견대로 고집하여 잘못되지 않았다고 힘써 변명하였는데, 그 뒤에 《대통력(大統曆)》을 보니 과연 그해 윤달이 2월에 있었으므로 일관이 죄책을 면하였다. 일관 남응년(南應年)이 말하기를, “《작력식언(作曆式言)》에 동지 후의 나머지 날수로 윤달을 정하면 이 법이 혹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었으므로 그달 안에 중기(中氣)가 없는 달을 윤달로 하는 것이 바로 역수(曆數)에 합당하다.”고 말하였으니,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월정만록(月汀漫錄)》

○ 현종(顯宗) 기유년 강희(康熙) 8년 에 예부(禮部)에서 흠천감에 통첩하기를, “이미 반포한 역일(曆日)을 다시 계산해 보니 윤달이 8년 12월에 들 것이 아니라 9년 정월에 들 것이다. 법에 의하여 본월(本月)의 일월ㆍ오성을 추산하라.” 하였다.

○ 보(補): 고(故) 정승 최석정(崔錫鼎)이 성력(星曆)을 알았으므로 일찍이 관상감 교수(敎授)를 겸한 일이 있었다. 《일득록(日得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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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경의 `기삼백`이란 구절? 글쓴이: 심우인 날짜: 2005.04.29. 14:37:11

서경의 내용중에 역법에 관련된 `기삼백` 이란구절이 있다고 하는데

관련된 구절이 무엇인지 알고 싶읍니다



제목: 朞三百六十有六日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5.01. 15:42:53

안녕하십니까.

아마도 이것을 말하고 계신듯합니다.

“열 네살 때의 일이다.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서경(書經) 첫머리에 나오는 ‘기삼백육십유육일’(朞三百六十有六日)로 시작되는 구절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해 서당의 선생님은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자 서경덕은 보름동안 골똘히 사색한 끝에 1년의 길이가 365와 4분의 1일이고, 윤년이 됐을 때 ‘1년은 366일’이라는 원리를 스스로 터득했다고 한다. 또한 열여덟 살 때는 대학(大學)의 ‘사물을 탐구해서 앎에 이른다’는 대목에서 깨우침을 얻고, 이후에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벽에다 써 붙여 놓고 밤낮으로 그것을 보면서 원리를 깨닫게 될 때까지 궁리했다고 한다.”

朞(기)는 1개월 혹은 1년으로 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위 朞(기)는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위 朞(기)에 대하여 일부선생은 정역에서, “帝堯之朞는 三百有六旬有六日이니라. 帝舜之朞는 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이니라. 一夫之朞는 三百七十五度니 十五를 尊空하면 正吾夫子之朞이 當朞三百六十日이니라.”라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흐르면서 위 朞는 달랐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공전속도는 조금씩 늦어진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朞는 서양 중세의 그레고리오 교황 때 만들어진 朞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만세력이란 껍질만 60갑자로 그 로직은 동양학과는 전혀 관련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2005.5.1.

안초



제목: re: 朞三百六十有六日 글쓴이: 심우인 날짜: 2005.05.01. 18:20:29

답변 감사합니다

저는 어떻게 일년이 366일이되고 365.25일이 되는지

서경덕 선생께서 구체적으로 1년의 이치를 풀이한 내용을 알고 싶읍니다



제목: re: re: 朞三百六十有六日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5.02. 03:46:17

"저는 어떻게 일년이 366일이되고 365.25일이 되는지

서경덕 선생께서 구체적으로 1년의 이치를 풀이한 내용을 알고 싶읍니다."

지금와서 화담선생이 풀이한 이치를 알기는 어렵겠지요. 또 제 생각은 있지만 그것이 화담선생 생각과 일치하는 지도 알 수 없구요. 무슨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스스로 이런 화두를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일 겁니다.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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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陽運轉。則勢將以地靜立算。地球運轉。則勢將以太陽靜立算。此所以歷法有二也。幷取二說。究其所異。不過動靜相換。而七曜周旋。相掩遲疾。彼此無異。與其膠守一偏。寧取兩說。以爲參驗周通。畧具於儀象理數星氣運化。是乃歷代以來。漸致詳密之歷理歷法也。於此有方向。則充滿氣化。可以見得。古今知覺。推測沿革。虛妄之方術附會。怪誕之神異說話。擧何而明其不然。將何以闡發實象。不知此者。平生疑惑。轉深於不當疑。幷與易知者而疑之。知此者。分晢疑信。可除之疑。了然闢罷。有推之疑。留待究明。無階梯不可究之疑。存而勿論。以知較不 知。雖在微細事。昏明懸殊。況於萬物萬事之大本達道方向有無乎。擧大本而論及微細。則微細不差。罔昧大本而只論微細。率多錯誤。且夫天地之本來形質。迭推運化。實無古今之異。人之遞轉測驗。有古今之異。虛實之分。至有災祥天文。禍福地理。渾濁人之心志。壞亂世之風俗。是乃無病中生此大病。蓋由於天地運化之不明也。此非一二年得其端倪。須待數十年積累硏究。諸曜行道。成形于神氣中。而內外神氣。相應符合。止斯足矣。何必埋沒於分抄加減。時刻遲速也。

역(曆)

태양이 돈다고 하면 그 형세가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하고 계산하여야 하며, 지구가 돈다고 하면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하고 계산을 해야 하니, 이것이 두 가지 역법(曆法)이 생기게 된 까닭이다. 이 두 가지 역설을 모아 그 차이를 탐구(探究)하여 보면 움직이고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 서로 바뀐 데 지나지 아니하니, 일월(日月)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일곱 별이 주선하면서 서로 가리고 움직이는 것은 피차 다른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중에 한쪽만을 주장하여 지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두 가지 학설을 취해 서로 참고하여 두루 통하는 것이 낫다. 이것은 《의상리수(儀象理數)》와 《성기운화(星氣運化)》에 대강 갖추어 놓았으니, 이것이 곧 역대(歷代) 이래로 점점 상세하고 치밀하게 이루어 놓은 역리(曆理)요 역법(曆法)이다.

여기에서 방향(方向)이 있으면 충만한 대기운화(大氣運化)를 알 수 있고 고금지각(古今知覺)의 연혁을 추측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허망한 방술부회(方術附會)와 괴탄한 신이설화(神異說話)도 이것이 아니면 무엇으로 그렇지 않음을 밝히며 무엇으로 실상(實象)을 밝힐 수 있겠는가.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의혹이 점차로 깊어가 의심하지 않을 것도 의심하게 되고, 쉽게 알 수 있는 것까지도 함께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의심할 것인지 믿을 것인지를 명백히 구분하여, 제거할 수 있는 의심은 깨끗이 버리고 추측할 수 있는 의혹은 구명(究明)되기를 기다리며, 방법이 없어서 구명할 수 없는 의혹은 버려두고 논하지 않는다.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비교하여 보면 비록 미세한 일에 있어서도 혼암(昏暗)과 명석(明晳)이 현격하게 다르니, 더구나 만물만사(萬物萬事)의 대본달도(大本達道)에 있어서 방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대본을 들어 미세한 것을 논급(論及)하면 미세한 것도 틀리지 않지만 대본에는 어두우면서 미세한 것만을 논한다면 거의 틀리게 된다.

또 천지(天地)의 본래 형질(形質)과 서로 미루면서 바꾸어가는 운화(運化)는 실로 고금의 다름이 없는 것이나 사람이 서로 전해가며 추측 경험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고 허실(虛實)이 구분된다. 그래서 심지어는 재상(災祥)을 따지는 천문(天文)과 화복(禍福)을 따지는 지리(地理)까지 생겨 사람의 심지(心志)를 혼탁하게 하고, 세상의 풍속을 괴란(壞亂)시키니, 이것이 곧 병이 없는 가운데 큰 병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천지운화가 밝지 못한 데에서 연유(緣由)되는 것이다.

이것은 1~2년 사이에 그 실마리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십 년의 연구를 쌓아야 되는 것인데, 여러 별들의 행도(行道)가 내 신기(神氣) 속에 뚜렷이 형체를 이루고 내외의 신기가 상응(相應)하여 부합(符合)하게 되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꼭 그 분초(分抄)의 가감(加減)이나 시각의 지속(遲速)에 치우칠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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