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전'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9.17 와전된 용신개념
  2. 2008.07.06 부전의 역도-不傳의 易道
  3. 2008.06.11 와전된 용신개념-문답
  4. 2008.05.20 비인부전
  5. 2008.03.28 月令의 택지향(宅之向)


제목: 펌글. 용신과 희신론.......질문. 글쓴이: 청학 날짜: 2005.03.16. 20:02:12

안초선생님의 자평원리를 보면서 자평진전의 용신(월령용사지신)에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학인 입니다.

아래의 박영창님의 글을 보면 자평진전의 월령용사지신은 고서에 비추어보면 합당하지 않은(원래의 의미는 월령분일용사 )관점이라 되있읍니다.

박영창님 역시 정직하신 학자이신지라 이 분의 관점을 쉽게 무시 할 수는없을것 같읍니다.

안초선생님께서는 고서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계신데요.......

자평진전의 관점이 고서에 부합하지 않는지요.
그리고 아래 글의 용신에 대한 관점은 안초선생님의 관점과는 무엇이 다른지요.

궁금해서 질문올립니다.

....................................................................................

박영창님의 용신과 희신론

희신이 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일설에는 용신을 생하는 것이라고 하고,

일설에는 꼭 生하지 않더라도 용신을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하고, 또 일설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용신을 희신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용신은 뭘까?

웃기게도 용신에 대한 정의마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용신에 대한 정의가 없는 마당에, 희신의 정의가 일치할 수 없다.

用神.

쓸 용, 귀신 신.

간단히 해석하면 쓰는 신이라는 것이다. 명리학에서 신이란 오행이라는 뜻이 가장 강하다. 진짜 귀신을 뜻함이 아니다. 신처럼 조화를 부리기에 그런 글자를 붙인 듯하다.

용신이란 다시 말해서 <쓰는 오행>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최초의 사주학 책인 <연해자평>에서는 <유용지신(有用之神)>, 곧 쓸모가 있는 신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일설에는 용신은 <월령용사지신>의 준말이라고 한다. 오준민은 월령용사지신을 <월령分日용사>라고 정확하게 정의한 바가 있다.

월령에서 절입 후 며칠간은 월지 지장간 가운데 어떤 것이 사령하느냐를 구별하는 이론인 것이다. 여기서 용사하는 것은 당연히 인원이다. 인원용사인 것이다.

당연히 천간도 아니고 지지도 아닌 인원이다.

그런데...

그 사령하는 인원을 용신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이 정해진 후에 희기를 가리는 작업이 남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학설을 과장해서 강조한 사람이 일본인 아부태산이다.

용신(격국과 유사)이 있은 후에 희기(희용신과 기신)를 가리는 방식은 자평진전에서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았고, 아부태산이 확립한 것인데, 아부태산은 자평진전 추종자이므로 순용 역용을 강조한다.

서락오가 명리서를, 명리 용어를 왜곡시킨 것보다 아부태산이 왜곡시킨 잘못이 훨씬 크다.

용신을 월령용사지신으로 정의하고, 그 후에 희기를 가리면서, 기존의 유용지신이라는 용신 개념을 삭제한 것인데, 자평진전을 너무 지나치게 추종하다가 그리 된 것이다.

자평진전과 아부태산의 용신 정의는 명리서 고서들의 전통에서 보면 이단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월령분일용사지신과 투간은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사항이다.

인원 사령과 인원의 투간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혼동하면 안된다.

월령용사지장간이 투간할 수도 있고, 투간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고, 투간이 없어도 사령지신은 있다. 언제나...

그리고 분일용사의 날짜 수 역시 고서마다 다르다.

서락오는 그래서 인원용사의 다과라는 항목에서 비교를 한 바 있었는데...

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용신이 월령용사라는 학설은 용신론에서는 소수설이다.(고서에서 볼 때)

2. 월령용사하는 인원을 용신이라고 정의한다고 해도, 그것은 천간에 투간했느냐, 아니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3. 용신의 고서의 정의는 다수가 <유용지신>이라는 의미이다.(연해자평, 적천수천미, 명리약언, 명리정종, 삼명통회, 기타 고서들에서)

4. 아부태산식의(자평진전식의) 용신 개념과 희기신 개념은 서락오식으로 바꾸어야 고서의 전통에 더 적합하게 되고, 더 옳은 정의가 된다. 현대인의 용신 정의가 고서에서도 다수설이다.

5. 서락오의 실수는 자평진전을 고서의 전통에 입각한 다수설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다가 심효첨의 본래의 뜻을 변질시킨 잘못은 있으나, 명리학의 용어를 잘못 이해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통변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 아닐까?

이상으로 제 소견을 말씀드렸습니다.

박영창 드림.

* 어젯밤에 박영창님 홈에서 열나게 뒤져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아서.. 어제 올리지 못하고.. 오늘 카페에 나와서 컴에 저장해 놓은 것을 찾으니.. 금방 눈에 들어오니..무지 반갑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못 찾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제목: 와전된 용신개념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3.16. 21:43:40

청학님!
좋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박영창님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분을 앞에 놓고 평하라면 좀 어렵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박영창님은 자평진전평주를 번역하신 분이고 이 책으로 출세(?) 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번역한 책을 이단이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분 논리대로면 이단 책을 번역하여 출세하신 분입니다. 좀 그렇지요.^^

원리 얘기해야 알아듣지도 못하고 인정도 안 할 테니까, 굳이 원리를 용신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고, 고전의 근거만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용신이란 다시 말해서 <쓰는 오행>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최초의 사주학 책인 <연해자평>에서는 <유용지신(有用之神)>, 곧 쓸모가 있는 신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3. 용신의 고서의 정의는 다수가 <유용지신>이라는 의미이다.(연해자평, 적천수천미, 명리약언, 명리정종, 삼명통회, 기타 고서들에서)”

위 내용을 요약하면 용신은 월령과 관계없는 神이며, 다른 고서 역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번역한 자평진전은 이단이라는 모순을 펼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래 말들은 월령과 관계없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고전에 정통했다는 분인데 정말 고전을 읽기는 읽은건지...

分至用神

서대승은 ‘연해자평’에서, “一年之內 細分五行 配合氣候於十二月之中 各主往相以定用神 其中五行 又分陰陽爲兩股 於一年之中 各主生旺之氣 如冬至一陽 則有木先生旺之理 夏至一陰生 則有金生水用之理 其理尤明 學者不可不知矣”(1년을 5행으로 세분하여 12월의 中으로 기후에 배합한다. 각 主는 用神을 정함으로서 서로 가고 그 中은 5行이다. 또한 1년의 中에서 음양의 양다리로 나누면 각 主는 生旺의 氣가 된다. 예컨데 동지는 1陽으로 먼저 木으로 生旺의 이치가 된다. 하지는 1陰을 生하는데 金生水를 用하는 이치이다. 이 이치는 매우 명백하여 학자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용신(用神)은 분지(分至)의 5행으로 정하는데, 이 이치는 명백하여 학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向神
경도는 `적천수`에서, “月令提綱之府 譬之宅也 人元用事之神 宅之定向也”(월령제강의 府는 宅과 같고, 인원용사의 神은 宅의 向을 정한다)라고 신(神)을 향(向)이라고 설명한다.

神氣象
안동주는 ‘옥정옥결’에서, “用神一字 貴氣重來 象欲晶明 氣傷懶散”(용신 1자는 귀한 氣가 무겁게 와서 象을 투명하게 밝히려고 하고, 氣는 나태하게 흩어진 것을 상하게 한다)라고 용신에 대한 기상(氣象)을 설명한다.

月令用神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輕淸者 爲十干 主祿 謂之天元 重濁者 爲十二支 主身 謂之地元 天地各正其位 成才於兩間者 乃所謂人也 故支中所臟者 主命 謂之人元 名爲司事之神 以命術言之 爲月令用神 經云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是也”(輕淸은 10간이 되어 祿이 주가 되니 天元이라 한다. 重濁은 12지가 되어 身이 주가 되니 地元이라 한다. 천지는 그 位가 바르니 才를 이루어 양 사이를 人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중에 臟은 命이 主가 되니 人元이라 하고 司事의 神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명술로서 말하기를 月令用神이 된다. 經에서 말하기를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일주는 건왕 함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월령용신(月令用神)을 설명한다.

先用後衡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凡看命者 先觀用神之何屬 然後或順或逆 以年月日時遂干遂支 參配而權衡之 則富貴貧賤自有一定之理也 不向月令求用神 而妄取用神者 執假失眞也”(무릇 간명자는 먼저 用神이 어디 속하는지 살핀 후에 順하는지 逆하는지 살핀다. 연월일시의 간지를 배합하여 權衡하면 부귀빈천의 일정한 이치가 스스로 드러난다. 月令의 向이 아닌 곳에서 용신을 구하여 망령되게 용신을 취하면 거짓에 빠져 진실을 잃게 된다)라고 먼저 용신을 세우고, 다음 평형을 저울질(權衡)하는데, 용신을 망령되게 취하면 안 된다.

用神格局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八字用神 專求月令 以日干配月令地支 而生剋不同 格局分焉”(팔자의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서 구한다. 일간을 월령지지에 배당하면 生剋이 다르므로 격국이 구분된다.)라고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서 구하고, 격국은 일간을 월령에 배당하여 구분한다.

다시 정리하면...
원리를 모르는 임철조, 서낙오 등이 희신을 용신이라고 와전시켰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래 후학들 역시 희신을 용신이라고 와전하면서 고착화(?)된 것입니다. 당연히 바로 잡혀야 합니다. 한마디로 위 임철조, 서낙오는 체용을 억부로 혼돈하고 있는 겁니다.

체용개념, 억부개념, 제강개념, 다른 학문의 용신개념 등 일치되는 원리와 논리를 찾아보면 답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위 용어에 대한 개념과 원리를 생각해 보면 지금 희신이 와전되어 용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용신을 계속 희신이라고 고집하시는 분께...
아래 글을 희신개념의 용신으로 설명해 보라고 하십시오. 당근 월령용신으로는 설명이 됩니다.

用神多者
경도는 ‘적천수’에서, “用神多者 性情不常”(용신이 많은 자는 성정이 일정치 않다)라고 용신이 많은 자를 설명한다.

用神不可損傷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經云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是也(經에서 말하기를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일주는 건왕 함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용신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여기서 經이란 연해자평을 말하며 연해자평 역시 위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하면 인용까지 하면서 위 개념을 강조하였겠습니다. 따라서 명의 상명통회는 송의 연해자평의 정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희신개념으로는 설명이 안되며, 월령용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용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봅니다.

다시한번 정리하면 송의 연해자평, 적천수 그리고 명의 삼명통회까지는 동일한 월령용신 개념이 전해졌습니다.(위 근거를 다시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런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청나라때부터 용신개념이 와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바로 잡고자 나온 책이 바로 청의 자평진전입니다. 그러나 결국 임철조,서낙오 등의 세력에 의해 용신개념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위 정통의 고전과 다른 희신개념의 와전된 용신개념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명리학의 가장 핵심인 용신개념이 와전되었다는 것은 다른 이론 역시 위 와전된 용신개념에 꿰어 맞쳐 있다는 얘기로, 결국 와전된 껍데기만 전해졌다고 할 수 있으니 참고할 가치 조차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주에 부합하는 원리입니다. 원리로는 매우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또 동영상으로 설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진정한 이치로서 인정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세력으로 인정하려는 세태이다 보니....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는 잃을 망정 진리가 사라지겠습니까.^^

2005.3.16.
안초

두서 없는 글이 었습니다.



제목: re: 와전된 용신개념 글쓴이: 청학 날짜: 2005.03.17. 10:16:04

귀한 답변 감사 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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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를 드립니다.

미래는 新知識을 요구하는 사회입니다. 즉 미래는 지식경쟁력에 의해 富(에너지)를 창출하는 사회입니다. 지금~ 컴퓨터, 인터넷 등은 미래의 身體을 만들고 있고, 위 신지식은 신체의 精神을 이 만들고 있습니다. 易道는 우주정신인 만큼, 컴퓨터의 우주정신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1. 眞理의 不傳
학문에 진정한 이치(眞理)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易道는 하늘의 계시에 의해 聖人이 가르쳐(敎) 준 眞理입니다. 眞理는 쉽고 단순(易簡)합니다. 과학은 큰 대상을 단순화하는 정도에 따라 훌륭한 학문으로 평가합니다. 위 관점에서 볼 때, 음양과 3극5행이라는 진리만큼 큰 대상을 단순화 한 이론은 없습니다. 그런데 위 진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쉽게 傳해지지 않습니다.

가. 非人不傳
道를 깨달은 其人은 가르치지(敎) 않으면 道를 잃어(失道) 버립니다.
道는 깨달음을 받을 준비가 된 其人에게만 傳해집니다.

非人不傳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其人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非人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天寶(진리)를 泄(와전)한다.

道는 준비되지 않은 傲慢한 非人에게는 결코 傳해지지 않습니다.
眞理는 非人에 의하여 누설(泄)되어 道가 와전됩니다.
따라서 非人이면 당연히 不傳됩니다.

나. 虛行
易의 道는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 왔지만, 대부분은 위 非人으로 헛된 공부(虛行)를 하게 됩니다. 그만큼 진리의 접근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虛行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初率其辭 而揆其方 旣有典常 苛非人道不行"(처음에 그 辭를 따라서 그 方을 헤아려 보면, 이미 전요와 상도가 있다. 진실로 非人의 道는 虛行한다)라고 非人의 道는 헛되이 행해진다.

지금 헛된공부(虛行)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부분에 이르러 참 많은 좌절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易道原理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虛行에 빠져 헤메기 때문입니다. 眞理! 난~ 지금도 떨고 있니?

다. 不傳의 실례
易道의 歷史는 不傳의 歷史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가고, 와전된 것을 다시 회복하고, 미흡한 것을 보충하며 傳해 왔습니다.

내경에서, 化는 뭉치(生)는 것이고, 變은 분산(極)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化變神聖
구유구는 `황제내경 천원기대론`에서, "物生謂之化 物極謂之變 陰陽不測謂之神 神用無方謂之聖"(物이 生함을 化라 하고, 物이 極함을 變이라 한다.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神이라 하고, 신을 사용함에 방위가 없음을 聖이라 합니다)라고 化變神聖을 정명한다.

작금의 내경, 주역의 번역본을 살펴볼 때, 變과 化를 구분하여 번역된 책은 없습니다. 變도 변화이고, 化도 변화로 똑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마치 원저자가 변화라는 한단어를 이랬다 저랬다고 쓴 것처럼 읽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은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길은 5행대의에서, 斯道가 떨어짐을 한탄하고, 근본을 세우기 위해, 저술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棄之
소길은 `5행대의`에서, "昔中原喪亂晉氏南遷 根本之書不足 枝葉之學斯盛 虛談巧筆競功於一時 碩學經邦 棄之於萬古...庶幾使斯道不墜知其始焉"(옛날에 중원에 난리가 나서 진나라가 남쪽으로 옮겨가니, 근본서적이 부족하고 지엽적인 학문만 성하게 되었다. 헛된 말과 교묘한 글씨만 한 때의 功을 다투었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석학은 萬古에 버려지게 되었다...아마도 斯道가 끊어지지 않고 다시 시작됨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斯道를 다시 이었다고 한다.

주자는 역학계몽에서 주역이 卜筮라고 정의하면서 不傳된 근세의 작괘법을 다시 주역 계사전의 舊法으로 환원시킵니다.

不傳
주자는 `朱文公文集 60卷 答劉君房第二書`에서, "此書本爲卜筮而作 其言皆依象數以斷吉凶 今其法已不傳... 故其書爲難讀 此本義啓蒙所以作也"(주역은 본래 복서를 위해서 지어졌다. 그 말은 모두 상수에 의해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법이 이미 不傳되었다... 그러므로 주역은 읽기 어려운 책이 되었다. 이것이 본의와 계몽을 짓게 된 까닭이다)라고 작괘가 不傳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주역4전에서 漢나라 이래로 끊어져 왔던 劃과 爻의 義를 비로소 되살립니다.

爻變今絶
다산은 `주역4전 효변표직설`에서, "自漢以來 爻變之說絶 無師承 此易之所以晦□也  衍之推移也 說卦之物象也 互體之博取也 此三者九家諸易皆能言之至 於爻變之義 自漢至今絶無影響 此易之所以不可讀也"(漢이래로 효변의 설이 끊어져 스승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易이 어두어진 이유이다. 벽연의 추이, 설괘의 물상, 호체의 박취 위 셋은 9가제가의 역에서 모두 말했던 바이다. 효변의 義는 漢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러 끈어져 모습과 소리가 없다. 이것이 易을 읽기가 불가능한 이유이다)라고 漢나라 이래로 효변의 義가 끊어졌다.

위 사례는 역학의 不傳만을 아는데로 정리한 것이며, 역술의 不傳은 숙제로 남겨 두었습니다. 당대 중심학문이 위와같이 不傳되는데, 하물며 陰으로 傳해온 응용학이 얼마나 진리에 부합하여 傳해져 올 수 있겠는가? 또 작금에는 雜術의 妄作이 盛해 학문이 갈기갈기 흩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얼마나 진리가 殘存해 있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자평학의 不傳을 소개합니다.
不知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自大升之時 上距子平已三百餘年 其法不知經幾變矣 或謂大升得子平之眞傳 觀繼善等篇 不外明通賦 但更易其詞 而元理消息一賦 則大升之獨得也 今人推命之術 又元人復推子平大升二家之法 而演繹爲之者 顧今之談命者 動靜子平 而莫知其原"(대승의 시대부터 위로 자평은 이미 삼백여년의 거리가 있으므로, 그 법은 經의 幾가 변해 알지 못한다. 혹은 明通賦 외부가 아니라 繼善篇등을 보는 것은 대승이 자평이 진짜 전함을 얻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단 다시 그 말씀을 바꾸어 元理와 消息一賦는 대승이 홀로 얻으니 지금 사람을 추명하는 術이다. 또 사람을 元으로 推하는 자평과 대승 二家의 法으로 연역이 된 것과 지금 命을 담론하는 動靜 子平으로 그 原을 알지 못한다)라고 자평과 대승은 3백년의 거리가 있다.


2. 易道의 回歸
文明도 우주인 만큼 일정한 週期로 盛衰합니다.
문명이 盛하면 학문이 모이고(化), 문명이 衰하면 학문이 흩어(變)집니다.

가. 道의 盛衰
周이전에 문명이 衰하였다가 先秦(분서갱유 이전)시대에 盛하였고, 이것은 다시 漢나라 이후 衰하다가 宋에 이르러 잠시 회복하더니, 지금은 極衰한 時期에 이르고 있습니다.

復興
주자는 `주역본의 계사하전 제7장`에서, "夏商之末 易道中微 文王拘於유里 而繫彖辭 易道復興"(하,상나라 말기에 역도의 중이 쇠미해 지더니 문왕이 유리옥에 구속되어 계사,단사를 붙이니, 역도가 다시 興해졌다)라고 역도의 부흥을 설명한다.

주나라와 춘추전국 한나라까지 문명이 盛하여 道가 平하고 傾하였으므로, 典要가 모여졌습니다.

易興道大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11장`에서,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周之盛德邪 當文王與紂之事邪 是故其辭危 危者使平 易者使傾 其道甚大 百物不廢 懼以終始 其要无咎 此之謂易之道也"(역의 興함은 은나라의 말세와 주나라의 덕이 盛할 때에 해당한다. 그 辭가 危하여지므로, 危을 平하게 하고 易을 傾하게 하니, 그 道가 심히 커서, 백가지 物이 없어지지 않고, 懼로서 終始하니, 그 중요함이 허물이 없다. 이것을 易의 道라 한다)라고 平傾으로 道가 커진다.

지금은 마치 하, 상나라와 말기와 같이 道가 遷해서, 전요와 법칙이 흩어져 있습니다.

道遷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易之爲書也不可遠 爲道也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 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易의 글됨이 멀어질 수 없고, 道됨이 여러번 遷하여서, 변동하여 거처하지 않고, 6虛가 두루 흘러서 상하에 항상 됨이 없고 강유가 서로 바뀌므로, 典要가 없이 오직 變하였다)라고 道가 遷해 典要가 없다.

위 盛衰週期는 3,000년으로 衰한 易道가 다시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3천년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오호라! 문왕 이후 3천년의 공업이 艮方 一隅에서 이루어 질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복희도 3천년에 문왕도가 나왔고 문왕도 3천년에 정역도가 나옴으로 인하여 天垂象 物受形하는 우주의 원리는 변화의 모습을 노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황제 이후 5千載의 수수께끼였던 내경은 드디어 비밀의 장막을 거두게 되고 5운과 6기의 법칙은 드디어 상과 수를 개발하는 역군으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3천년의 성쇠를 설명합니다.

나. 復元의 端兆
문명도 우주인 만큼 極에 이르면 반드시 反합니다.(極則必反)
極衰한 근대의 易道는 19세기 조선에 이르러 極則必反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실학에서는 先秦시대의 진리를 復元하는 과정에서, 원리에 의해 神機의 易道가 우후죽순 계발되어었습니다. 이것은 神의 섭리로서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端兆(조짐의 단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역학뿐 아니라 易術도 先秦의 진리를 복원해야 할 차례입니다.

단조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19세기 후반기는 한울이 동무와 일부 같은 대철을 동방일우에 파견한 端兆의 세기라고 할 것이다."라고 조선의 단조를 설명합니다.

화담 서경덕(1489-1546)은 분리되어 전해오던 易과 道를 이전대로 다시 통합하고, 잃었던 數를 易에 접목하는 동시에, 知止(艮)사상을 펼침으로 위 端兆의 기틀을 제공 합니다.

東方學
화담은 `귀신사생론`에서, "此론雖辭拙 然見到千聖不盡傳之地頭 爾勿令中失 可傳之後學 遍諸華夷遠邇 知東方有學者出焉"(이 이론이 비록 말은 무디지만 성현들이 완전하게 傳하지 못한 경지를 보기에 이르렀으니 허엽은 중도에 이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학자들에게 傳해서 두루 모든 중국인과 변방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동방에도 학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하여라)라고 동방(艮)에 학문이 나왔다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한나라 이래로 잃어버린 爻變의 義를 되살려, 주역을 4차원의 우주로 설명하면서, 改過遷善의 사상을 설파합니다.

四法
다산 정약용은 `주역4전 1권`에서, "易有四法 一曰推移 二曰物象 三曰互體 四曰爻變"(易에는 4가지 법이 있는데 첫째가 추이, 둘째가 물상, 셋째가 호체, 넷째가 효변이라고 말한다)라고 4차원의 주역을 설파한다.

혜강 최한기(1803-1877)는 내경의 변화적 관점을 운화적 관점으로 전환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氣를 형이상학에서 형이하학 관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배척하던 서양과학을 포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從運
혜강은 `氣學`에서, "凡言改易曰變化 革物曰化 能生非類曰化 化之義 從其運轉 而隨時有化 非一時化之 而止之也"(무릇 고쳐서 바뀌는 것을 變化라고 한다. 物을 革하는 것을 化라고 하며, 다른 類를 생할 수 있는 것을 化라고 한다. 化의 뜻은 그 運하여 轉하는 것을 從하는 것이지, 일시에 化하여 멈추는 것이 아니다)라고 化는 運에 從하는 것이다.

일부 김항(1826-1898)은 易道의 근원인 갑자의 내경(道/시간), 괘효의 주역(易/공간)을 통합관점에서 상수의 정역(易道/시공)을 作易함으로서, 마지막 성인에 등극합니다.

1聖人
일부는 `정역`에서, "嗚呼 今日今日 六十三 七十二 八十一 一乎一夫"(아아 오늘인가 오늘인가 63, 72, 81은 일부에서 하나되네)라고 今日 一夫에서 하나된다.

위 實學은 하나하나가 수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큰 학문들입니다.
위 큰 학문들이 19세기말 조선에서 불과 1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배출되었다는 것은 21세기 새로운 문명을 향한 神의 端兆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무 이제마(1833-1900)는 내경의 內에서 外로 관점을 전환하고, 또 장중경의 병증에서 인물관점으로 전환하는 4상의학을 계발합니다.

四象人
동무는 `동의수세보원`에서, "余 生於醫藥經驗五六千載後 因前人之述 偶得四象人臟腑性理 著得一書 名曰 壽世保元 原書中 張仲景所論 太陽病 少陽病 陽明病 太陰病 少陰病 厥陰病 以病證名目而 論之 余所論 太陽人 少陽人 太陰人 少陰人 以人物名目而論之也"(나는 의약경험이 5,6천년 쌓인후에 태어나, 앞 사람들의 저술 덕분에 우연히 4상인 장부의 성리를 알게 되어 한 권의 책을 쓰고 수세보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책 속에서 태양병, 소양병, 양명병, 태음병, 소음병, 궐음병으로 장중경이 논한 것은 병증으로 이름을 달아 논한 것이고, 태양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내가 논한 것은 인
물로 이름을 달아 논한 것이다)라고 4상의학을 소개한다.


3. 新知識을 向하여
컴퓨터는 사이버라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컴퓨터의 정신이 될 재료가 바로 신지식입니다. 우리는 위 新知識을 창출하기 위해서, 우주원리로 무장하고, 先秦의 진리를 복원하고, 단조의 실학을 활용하여, 디지털의 道(알고리즘)를 생산해야 합니다.

가. 妄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易道는 우리같은 범부가 만들어 내는 학문이 아닙니다. 神의 계시에 의해 聖人이 敎해주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傳해 받아서 활용할 뿐입니다. 그런데 傳해 받는 것도, 활용하는 것도 솔직히 우리에게는 벅찹니다. 그러나 위 미흡한 사람 중에는 妄作(가짜)임데도 불구하고 得勢하여 功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에 의해 道가 끈어지고 不傳되는 것입니다.

妄作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徵四失論`에서, "受師不卒 妄作雜術 謬言爲道 更名自功"(스승의 지도를 받음에 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망녕되이 잡술을 作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말을 道로 삼아 다시 스스로 功이라 이름하지 말라)라고 때가 되면 깨닫게 되니, 잡술을 作하지 말고, 가짜를 홍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書는 본래 진리를 傳하는 수단이지, 자신을 홍보하는 수단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서적은 진리전달 보다는 홍보책자가 많습니다. 거짓된 홍보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거짓 자체가 毒으로 변하여 必히 생명을 단축시킬 것입니다.(大過)

述而不作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대성 공부자도 述而不作이라고 하였거늘 필자가 어찌 이와 같은 과감한 모험을 할 수 있으리오."라고 공자도 易을 서술(述)하였지, 만들지(作) 않았는데, 어찌 필부가 역을 作하는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나. 正名(이정표)
易道의 復元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도 正名!`... `둘도 正名!`... `셋도 正名!`...입니다. 正名이 바로 우주원리를 찾아가는 `이정표`이기 때문입니다.

易道에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名입니다. 名은 하나 하나에 분명한 우주설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위 名을 바르게(正)만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주원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첫머리`에서,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道라고 할 수 있는 道는 항상 道가 아니며, 名이라고 할 수 있는 名은 항상 名이 아니다)라고 道와 名은 불가분 관계가 있음을 설정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 이정표가 혼란스러워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정표부터 정돈을 시작해야 합니다. 교통정리 없이 우주원리는 근처에도 갈 수 없습니다.

必也正名(반드시 정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공자는 춘추말의 부패와 타락이 전혀 정명되지 못한데 있다고 보았던 고로 제자가 선생이 만일 위국의 재상이 된다고 하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必也正名이라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때와 같은 난세에 정명부터 하겠다는 말을 들은 제자는 아연질색 하였지만 공자의 뜻을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라고 공자의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名衰世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6장`에서, "其稱名也 雜而不越於稽其類 其衰世之意邪"(이름을 칭함은 그 류를 살펴서 넘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쇠한 세상을 뜻한다)라고 명칭은 쇠한 세상을 의미한다.

다. 디지털의 道
術은 學없이 발전할 수 없으며, 術이 없다면 學은 의미가 없습니다. 과학도 기술을 발전시켰기에 지금의 과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초과학이 발전한 나라가 곧 과학기술도 발전한 선진국입니다. 易道 역시 원리의 발전없이 응용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시 시대에 맞춰 디지털화야 할 것입니다.

先秦시대는 대나무에 易道가 쓰여졌으므로 竹簡의 道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미래는 컴퓨터정신으로 알고리즘의 프로그램을 생산해야 할 것이므로 디지털의 道라고 부릅니다.(안초칭함) 참고로 易道는 象數를 근본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므로, 알고리즘화 할 수 없다면 근본이 잘못된 것이며, 1의 오차는 결국 誤答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통변은 그 다음입니다.

과거는 우주를 연구하고 그것을 易道로 가르치며 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궁극적인 원리(窮理)로서 진정한 이치(眞理)를 밝(明)히고, 이것을 다시 디지털의 道로 化함으로서 修身齊家(정신)의 신지식을 창출할 것입니다.

后人誰
일부는 `정역`에서, "讀書學易先天事 窮理修身后人誰"(책을 읽고, 역을 배우는 것은 선천의 事이요, 窮理하고 修身하는 것은 후천 人이다. 그 누구인가)라고 후천 사람을 기다린다.

宇宙原理의 발전없이는...

한국 易道의 미래는 없으며...
학문이 先秦처럼 모여 盛할 수도 없으며...
21세기 端兆의 勞苦를 이어갈 수도 없으며...
컴퓨터와 접목이 불가능하여 신지식도 없으며...
중국, 대만,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易道는 지키고 있고, 또 傳할 其人을 기다립니다.
守傳
일부는 `정역`에서, "无人則守有人傳"(사람 없으면 홀로 지키고, 사람 있으면 전하리라)라고 진리를 전하고 지킨다.

非人이 아닌 其人을 기다리며...
2001년 10월 9일
편안한 돌, 안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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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전된 용신개념-문답


펌글. 용신과 희신론.......질문. 글쓴이: ** 날짜: 2005.03.16. 20:02:12

안초선생님의 자평원리를 보면서 자평진전의 용신(월령용사지신)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학인 입니다.

아래의 ***님의 글을 보면 자평진전의 월령용사지신은 고서에 비추어보면 합당하지 않은(원래의 의미는 월령분일용사 )관점이라 되있읍니다. ***님 역시 정직하신 학자이신지라 이 분의 관점을 쉽게 무시 할 수는 없을것 같읍니다.

안초선생님께서는 고서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계신데요....... 자평진전의 관점이 고서에 부합하지 않는지요. 그리고 아래 글의 용신에 대한 관점은 안초선생님의 관점과는 무엇이 다른지요. 궁금해서 질문올립니다.

....................................................................................

***님의 용신과 희신론

희신이 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일설에는 용신을 생하는 것이라고 하고, 일설에는 꼭 生하지 않더라도 용신을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하고, 또 일설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용신을 희신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용신은 뭘까? 웃기게도 용신에 대한 정의마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용신에 대한 정의가 없는 마당에, 희신의 정의가 일치할 수 없다.

用神. 쓸 용, 귀신 신.

간단히 해석하면 쓰는 신이라는 것이다. 명리학에서 신이란 오행이라는 뜻이 가장 강하다. 진짜 귀신을 뜻함이 아니다. 신처럼 조화를 부리기에 그런 글자를 붙인 듯하다.

용신이란 다시 말해서 <쓰는 오행>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최초의 사주학 책인 <연해자평>에서는 <유용지신(有用之神)>, 곧 쓸모가 있는 신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일설에는 용신은 <월령용사지신>의 준말이라고 한다. 오준민은 월령용사지신을 <월령分日용사>라고 정확하게 정의한 바가 있다.

월령에서 절입 후 며칠간은 월지 지장간 가운데 어떤 것이 사령하느냐를 구별하는 이론인 것이다. 여기서 용사하는 것은 당연히 인원이다. 인원용사인 것이다. 당연히 천간도 아니고 지지도 아닌 인원이다.

그런데... 그 사령하는 인원을 용신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이 정해진 후에 희기를 가리는 작업이 남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학설을 과장해서 강조한 사람이 일본인 아부태산이다. 용신(격국과 유사)이 있은 후에 희기(희용신과 기신)를 가리는 방식은 자평진전에서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았고, 아부태산이 확립한 것인데, 아부태산은 자평진전 추종자이므로 순용 역용을 강조한다.

서락오가 명리서를, 명리 용어를 왜곡시킨 것보다 아부태산이 왜곡시킨 잘못이 훨씬 크다. 용신을 월령용사지신으로 정의하고, 그 후에 희기를 가리면서, 기존의 유용지신이라는 용신 개념을 삭제한 것인데, 자평진전을 너무 지나치게 추종하다가 그리 된 것이다.

자평진전과 아부태산의 용신 정의는 명리서 고서들의 전통에서 보면 이단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월령분일용사지신과 투간은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사항이다. 인원 사령과 인원의 투간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혼동하면 안된다.

월령용사지장간이 투간할 수도 있고, 투간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고, 투간이 없어도 사령지신은 있다. 언제나... 그리고 분일용사의 날짜 수 역시 고서마다 다르다. 서락오는 그래서 인원용사의 다과라는 항목에서 비교를 한 바 있었는데...

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용신이 월령용사라는 학설은 용신론에서는 소수설이다.(고서에서 볼 때)

2. 월령용사하는 인원을 용신이라고 정의한다고 해도, 그것은 천간에 투간했느냐, 아니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3. 용신의 고서의 정의는 다수가 <유용지신>이라는 의미이다.(연해자평, 적천수천미, 명리약언, 명리정종, 삼명통회, 기타 고서들에서)

4. 아부태산식의(자평진전식의) 용신 개념과 희기신 개념은 서락오식으로 바꾸어야 고서의 전통에 더 적합하게 되고, 더 옳은 정의가 된다. 현대인의 용신 정의가 고서에서도 다수설이다.

5. 서락오의 실수는 자평진전을 고서의 전통에 입각한 다수설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다가 심효첨의 본래의 뜻을 변질시킨 잘못은 있으나, 명리학의 용어를 잘못 이해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통변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 아닐까?

이상으로 제 소견을 말씀드렸습니다.
*** 드림.

* 어젯밤에 ***님 홈에서 열나게 뒤져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아서.. 어제 올리지 못하고.. 오늘 카페에 나와서 컴에 저장해 놓은 것을 찾으니.. 금방 눈에 들어오니..무지 반갑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못 찾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지워버린 것은 아닌지


와전된 용신개념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3.16. 21:43:40

**님! 좋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님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분을 앞에 놓고 평하라면 좀 어렵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님은 자평진전평주를 번역하신 분이고 이 책으로 출세(?) 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번역한 책을 이단이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이 분 논리대로면 이단 책을 번역하여 출세하신 분입니다. 좀 그렇지요.^^

원리 얘기해야 알아듣지도 못하고 인정도 안 할 테니까, 굳이 원리를 용신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고, 고전의 근거만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용신이란 다시 말해서 <쓰는 오행>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최초의 사주학 책인 <연해자평>에서는 <유용지신(有用之神)>, 곧 쓸모가 있는 신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3. 용신의 고서의 정의는 다수가 <유용지신>이라는 의미이다.(연해자평, 적천수천미, 명리약언, 명리정종, 삼명통회, 기타 고서들에서)”

위 내용을 요약하면 용신은 월령과 관계없는 神이며, 다른 고서 역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번역한 자평진전은 이단이라는 모순을 펼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래 말들은 월령과 관계없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고전에 정통했다는 분인데 정말 고전을 읽기는 읽은건지...

分至用神
서대승은 ‘연해자평’에서, “一年之內 細分五行 配合氣候於十二月之中 各主往相以定用神 其中五行 又分陰陽爲兩股 於一年之中 各主生旺之氣 如冬至一陽 則有木先生旺之理 夏至一陰生 則有金生水用之理 其理尤明 學者不可不知矣”(1년을 5행으로 세분하여 12월의 中으로 기후에 배합한다. 각 主는 用神을 정함으로서 서로 가고 그 中은 5行이다. 또한 1년의 中에서 음양의 양다리로 나누면 각 主는 生旺의 氣가 된다. 예컨데 동지는 1陽으로 먼저 木으로 生旺의 이치가 된다. 하지는 1陰을 生하는데 金生水를 用하는 이치이다. 이 이치는 매우 명백하여 학자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용신(用神)은 분지(分至)의 5행으로 정하는데, 이 이치는 명백하여 학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向神
경도는 `적천수`에서, “月令提綱之府 譬之宅也 人元用事之神 宅之定向也”(월령제강의 府는 宅과 같고, 인원용사의 神은 宅의 向을 정한다)라고 신(神)을 향(向)이라고 설명한다.

神氣象
안동주는 ‘옥정옥결’에서, “用神一字 貴氣重來 象欲晶明 氣傷懶散”(용신 1자는 귀한 氣가 무겁게 와서 象을 투명하게 밝히려고 하고, 氣는 나태하게 흩어진 것을 상하게 한다)라고 용신에 대한 기상(氣象)을 설명한다.

月令用神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輕淸者 爲十干 主祿 謂之天元 重濁者 爲十二支 主身 謂之地元 天地各正其位 成才於兩間者 乃所謂人也 故支中所臟者 主命 謂之人元 名爲司事之神 以命術言之 爲月令用神 經云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是也”(輕淸은 10간이 되어 祿이 주가 되니 天元이라 한다. 重濁은 12지가 되어 身이 주가 되니 地元이라 한다. 천지는 그 位가 바르니 才를 이루어 양 사이를 人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중에 臟은 命이 主가 되니 人元이라 하고 司事의 神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명술로서 말하기를 月令用神이 된다. 經에서 말하기를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일주는 건왕 함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월령용신(月令用神)을 설명한다.

先用後衡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凡看命者 先觀用神之何屬 然後或順或逆 以年月日時遂干遂支 參配而權衡之 則富貴貧賤自有一定之理也 不向月令求用神 而妄取用神者 執假失眞也”(무릇 간명자는 먼저 用神이 어디 속하는지 살핀 후에 順하는지 逆하는지 살핀다. 연월일시의 간지를 배합하여 權衡하면 부귀빈천의 일정한 이치가 스스로 드러난다. 月令의 向이 아닌 곳에서 용신을 구하여 망령되게 용신을 취하면 거짓에 빠져 진실을 잃게 된다)라고 먼저 용신을 세우고, 다음 평형을 저울질(權衡)하는데, 용신을 망령되게 취하면 안 된다.

用神格局
심효첨은 ‘자평진전’에서, “八字用神 專求月令 以日干配月令地支 而生剋不同 格局分焉”(팔자의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서 구한다. 일간을 월령지지에 배당하면 生剋이 다르므로 격국이 구분된다.)라고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서 구하고, 격국은 일간을 월령에 배당하여 구분한다.

다시 정리하면...

원리를 모르는 임철조, 서낙오 등이 희신을 용신이라고 와전시켰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래 후학들 역시 희신을 용신이라고 와전하면서 고착화(?)된 것입니다. 당연히 바로 잡혀야 합니다. 한마디로 위 임철조, 서낙오는 체용을 억부로 혼돈하고 있는 겁니다.

체용개념, 억부개념, 제강개념, 다른 학문의 용신개념 등 일치되는 원리와 논리를 찾아보면 답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위 용어에 대한 개념과 원리를 생각해 보면 지금 희신이 와전되어 용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용신을 계속 희신이라고 고집하시는 분께...
아래 글을 희신개념의 용신으로 설명해 보라고 하십시오. 당근 월령용신으로는 설명이 됩니다.

用神多者
경도는 ‘적천수’에서, “用神多者 性情不常”(용신이 많은 자는 성정이 일정치 않다)라고 용신이 많은 자를 설명한다.

用神不可損傷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經云 用神不可損傷 日主最宜健旺是也(經에서 말하기를 용신은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일주는 건왕 함이 최고로 마땅하다)라고 용신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여기서 經이란 연해자평을 말하며 연해자평 역시 위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하면 인용까지 하면서 위 개념을 강조하였겠습니다. 따라서 명의 상명통회는 송의 연해자평의 정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희신개념으로는 설명이 안되며, 월령용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용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봅니다.

다시한번 정리하면 송의 연해자평, 적천수 그리고 명의 삼명통회까지는 동일한 월령용신 개념이 전해졌습니다.(위 근거를 다시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런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청나라때부터 용신개념이 와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바로 잡고자 나온 책이 바로 청의 자평진전입니다. 그러나 결국 임철저,서낙오 등의 세력에 의해 용신개념은 바로 잡히지 못하고 위 정통의 고전과 다른 희신개념의 와전된 용신개념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명리학의 가장 핵심인 용신개념이 와전되었다는 것은 다른 이론 역시 위 와전된 용신개념에 꿰어 맞쳐 있다는 얘기로, 결국 와전된 껍데기만 전해졌다고 할 수 있으니 참고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주에 부합하는 원리입니다. 원리로는 매우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또 동영상으로 설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진정한 이치로서 인정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세력으로 인정하려는 세태이다 보니....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는 잃을 망정 진리가 사라지겠습니까.^^

2005.3.16. 안초

두서 없는 글이 었습니다.

re: 와전된 용신개념 글쓴이: ** 날짜: 2005.03.17. 10:16:04

귀한 답변 감사 합니다.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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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부전(非人不傳)

비인부전(非人不傳), 秘傳, 天機漏泄...
동양학에는 곧 잘 인용되는 유명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의 해석이 구구합니다.

비인부전(非人不傳)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기교변대론`에서, "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말한다. 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道는 가르쳐야 하지만, 非人에게는 傳하여도 오히려 道를 泄(와전)한다.

위 문구를 근거로 바로 잡아봅니다.

"其人不敎 是謂失道"(사람이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알고 있는 道를 가르치지 않으면, 당연히 망각하여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즉 道는 가르쳐야 한다.

"傳非其人 慢泄天寶"(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 하늘과 통한 사람이 아니면 易이 傳해져도 오히려 오만해집니다. 또 그렇게 되면 道를 스스로 作하여 와전되니 泄하게 됩니다. 즉 非人에게 傳해지면, 그 道는 와전되어 泄하게 된다.

그러니까 위 문구로 볼 때...
易에서 秘傳이니 天機漏泄이니 하는 것은 역시 오만해져 와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이런 용어들이 易에 근거가 있는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非人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非人이란 하늘과 통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즉 非人에게는 아무리 傳하고 싶어도 결코 전달되지 않습니다. 또한 위 非人은 결국 그 道를 마음대로 作하여 와전함으로써 道를 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非人이면 당연히 不傳됩니다.

作하지 말고, 求하는 人이 됩시다.

2000-09-29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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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令의 택지향(宅之向)


月令에서 택지향(宅之向)의 의미? 이선종 05/06/27 13:12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한 감을 잡지 못해 헤맸습니다. 현재 아는 대로 말씀을 올려 봅니다. 月令을 家宅에 비유하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가택이 어디로 향하느냐! 이것을 門으로 표현하여 천간에 투출한 지장간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寅월에 암장(戊丙甲-門)된 것 중에서 천간에만 투출이 되면 門은 일단 왕성하다고 본다. 즉 천간에만 있으면 門은 왕성하다.

첫째, 戊 의 투간(門-왕성)으로 문은 왕성하지만 지지는 월령(戊-여기)에 여기로 암장되어 있어서 지지-쇠약으로 본다. 결국 사령신으로는 미흡함.

둘째, 丙의 투간(門-왕성)으로 문이 왕성한데, 지지는 월령(丙-중기)이 初春의 언 나무뿌리를 따뜻하게 하여 돕고 木이 왕성하게 되니 지지도 왕성하다고 한다. 결국 사령신으로 적합.

셋째, 水木의 투간이면 門(壬이나 乙)은 왕성하다고 하나 지지(水는 없고, 寅-어리다.)는 쇠약하다고 한다. 결국 사령신으로 미흡하다.

넷째, 甲이 투간되었다면 門과 지지(寅)가 모두다 왕성하다고 하여 사령신으로 적합하다.

저는 투파론자가 주장하는 천간의 중요성을 똑 같이 인정합니다. 다만 지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천간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아서 지지에 있는 것만도 못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지에만 있는 神은 천간으로 투출되지 못하면 생동감 있게 작용을 못하므로 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요컨대, 일주-體만 알고 용신을 운용하는 것보다 월령에서 格을 찾고, 그것이 體가 되는데, 이것은 체상(體狀)의 준말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월령에서 투간된 것 중에서 가장 튼튼한 것을 사령神인 동시에 용신으로 구하면 이상적이다.

만약 월령이 재성이나 관성, 식상성이 사령하고 신약사주이면 인성이나 비겁 중에서 용신을 구하면 되며, 신강사주는 사령신 중에서 강한 것을 용신으로 하면 된다.

오늘은 이상 줄입니다.

이선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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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안초 05/06/27 17:19

북경의 나비가 펄럭이면 뉴욕에서 폭풍이 분다는 나비효과는 현재 최고 물리학인 카오스이론의 별칭입니다. 생명의 초기조건인 4주가 운명의 向이 된다는 논리는 나비효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비효과는 명리학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과학적 근거입니다.

카오스이론에서 모든 사물은 초기조건에 의존(向)해 펼쳐진다고 합니다. 생년월일시 역시 월령에서 초기조건의 向이 되어 神으로 펼쳐(申)집니다.

向神
경도는 '적천수'에서, “月令提綱之府 譬之宅也 人元用事之神 宅之定向也”(월령제강의 府는 宅과 같고, 인원용사의 神은 宅의 向을 정한다)라고 신(神)을 향(向)이라고 설명한다.

神申(신신)
소길은 ‘5행대의’에서, “一解云 神申也 萬物皆有質 *屈而不申 神是淸虛之氣 無所擁滯 故曰申也”(일해에서 말하기를 신은 펼치는 것으로, 만물은 모두 질이 있어 구부려 펼치지 못하고 속이지만. 신은 맑고 허한 기로서 끌어안아 머무름이 없으므로 펼침이라고 한다)라고 神은 펼침이라고 한다.

월령용신은 월령에서 向이 되어 神으로 펼쳐집니다. 이것은 카오스이론으로 입증되며 카오스이론을 인정하는 학자는 그 누구도 월령의 向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지 미신이라는 인식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찌 서양의 초기조건의 의존성(나비효과)은 첨단과학이며, 동양의 초기조건의 의존성(월령의 向)은 미신일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주해서를 보면 월령이 向이 되어 神으로 펼쳐진다는 의미로 쓰인 글은 없습니다. 즉 이미 핵심을 벋어난 주해이며, 학문을 와전시킨 역적입니다. 따라서 이런 주해자를 천재라고 부르며 형성된 현대명학은 이미 핵심을 벗어난 창작품에 불과합니다. 진리를 창작품으로 만든 역적을 비롯한 현대명학자는 반성해야 합니다.

2005.6.27.
안초

skintonic
나비효과의 초기조건이란 어떤 특정한 현상의 발생에 대한 초기의 동기 유발인자에 관한 이론이라고 보심이 더 정확한 이해라 생각이 됩니다. 2005/06/27 19:52

skintonic
안초님의 말씀중에 '생명의 초기조건인 4주가 운명의 向이 된다는 논리는 ..' 과 '생년월일시 역시 월령에서 초기조건의 向이 되어 神으로 펼쳐(申)집니다. ' 의 논리에서 생각해 보면... 2005/06/27 19:54

skintonic
제 생각은 기본적으로는 맞는 말이나 제가 제시한 나비효과에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이후의 어떤 특정한 사건에 관해 생각해 볼 때는 초기 조건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훨씬 다양해 질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요? 2005/06/27 19:56

이미경
이론을 현실로 현실화하신, 자부심이 꽤나 강한 자부심을 만든 듯 합니다. 왜 우주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시선으로만 보시는지 안타까움만 느끼는 제가 이상한 것일까요? 2005/06/28 00:29

이미경
사람에게 맞춰서 생성된 게 사주라 하지만 인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 싶은데요... 고참으로서 조금은 무게가 없지 않은가 싶고, 독선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2005/06/28 00:29

이미경
통신... 이렇게 말로서 상대를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위대한 인간이라 느낍니다. 월령이 왜 필요하고 일지가 왜 필요합니까... 그저 우리는 선각의 생각을 겨우 읽고 있는 한참 후배들인걸요.. 너무 왈가불가 안했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또 발전이 없나요? ^^;; 불만이 있으면... 에휴... 먼저 태어날껄... 싶네요 2005/06/28 00:37

안초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학문적 논리와 근거로 하세요. 이미경님이 저의 인간성을 평할 자리가 아닙니다. 2005/06/28 00:54

이미경
인간성을 논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 느낌을 얘기한 것입니다. 기분나쁘시다면 용서하십시요... 선배님. 삭제하시라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느낌도 적지 못한다면 어찌 여기가 우리들 마음의 장소이겠습니까... 가볍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늙는게 인간아닐까요... 2005/06/28 01:41

skintonic
이미경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떤 정의나 사건도 보는 이의 관접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식의 논리의 전개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깐요.. 2005/06/28 09:34

이선종
안초님, 저도 님의 생각에 공감하는 바 있으면서도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어요. 임철초 님이나 서락오님은 대학자이며, 그 정도의 주해서를 해 놓았기에 우리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후학들이 존경하는 분을 역적이란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2005/06/28 11:29

이선종
그 분들이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후학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책으로 내 주시면 됩니다. 여기에 그 분들을 비판해서 나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보십니까? "적천수"에는 명조가 없고 이론만 있는데, 임철초 선생이 이론과 실지 사례를 모은 것을 아시나요? 2005/06/28 11:34

안초
후학이 존경하는 건 업적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따라하는 것이며 이선종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상은 그 반대인 걸 밝히는 겁니다. 얼마나 시간이 있을지 모르지만... 모름지기 학자는 진리를 밝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것 옳고 저것 옳은 것이 아니라... 2005/06/28 12:20

안초
역적이 싫으면 논리와 근거로 반론을 피십시오. 모름지기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며, 진리는 결코 이것저것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임철조부터 시작된 임상은 업적이 아니라, 큰 죄입니다. 시간나는 대로 이것을 밝힐 것입니다. 2005/06/28 12:27

skintonic
여러군데서 모은 이론들을 가지고 비판하지 마시고 제대로 된 비판서라도 하나 내놓고 공개적으로 한번 비판을 해보시지요? 2005/06/28 12:28

skintonic
실제 임상에서 취한 명조를 가지고 조목조목 비판을 해보시고 안초님의 이론을 주장함이 옳지않겠습니까? 2005/06/28 12:29

skintonic
태생부터가 음양과 오행과 같이 형이상학적인데 근거를 둔 학문인 명리이론을 검증하는 작업은 실제 임상에서의 명조를 가지고 논할 때 진정한 그 가치를 인정받는게 아닐까요? 2005/06/28 12:32

이선종
명리학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잘못만 보일 것입니다. 어느 학문이나 찬반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긍정적으로 보고 선각자들이 부족한 면이 보이시거든 더 좋은 연구서를 내 주십시오. 여러분들. 2005/06/30 16:46

원종이
안초님,참으로 궁금증을 유발켜 하시는 분이군요,카오스라.......한의사 물리학교사,,,등을 많이 거론하시면서 역학인들을 매도함을 느낌은 저의 좁은 소견일까요? 2005/07/05 01:50

원종이
얼마나 대단한 이론을 정립하신지 모르지만 선학자들과 현 명학을 하시는 분들에 대하여 너무 하시는 것이 아니지요?이론을 제기 하시라 하여는데.....글쌔요 닫힌 마음으로 남의것을 받아들리수 있을는지..? 2005/07/05 01:54

장수
천상천하 유아독존 2005/07/06 21:38

이선종
현재 명리학의 기본서로서 임철초 선생의 '적천수천미'는 명리학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다 인정할 것입니다. 물론 내 맘에 딱 들 수는 없겠지만... 한의사들 앞에서 이것을 부정하면 그들이 명리를 미신이라 하지 않을지!! 심히 우려됩니다. 2005/07/11 10:37

이선종
'적천수'의 부족한 면을 '적천수천미'에서는 알기 쉽게 주해하고 그것을 입증하고자 일일이 사례를 든 명조라는 사실을 안 분이라면 임철초 선생을 욕하지는 않을 게요. '적천수천미'는 읽을 때마다 맛이 다르며, 그곳에서 진리가 발견됨을 왜 모르시요. 2005/07/11 10:44

능소화
제가 보기에 안초님은 명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에 입각하여 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2005/07/21 09:37

푸른하늘 : 카오스이론(나비효과)으로 보면 매 순간순간이 얼마나 중요하며. 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지.. 결국 매 순간 순간이 삶의 갈림길입니다. 바른 길로 향하여!! ^^

머무름을 알라!! 지지닷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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