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4.08 중의원리 본언-원리 필요성, 전천과 허행
  2. 2008.04.08 진가(眞假)


- 本 言 -

1. 原理의 必要性(眞假)

찬란한 동양문화와 지금의 서양문화가 역전된 것은 불과300년 전입니다.

Mathematical Principle of National philosophy(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 위 Newton의 저서가 바로 동양과 서양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위 저서에 의해 동서양이 역전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眞假의 판단입니다. 진가의 판단 없이 위 동양학의 붐은 결국 허상에 불과할 것이고, 원리 없이 진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위 저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Newton은 추상적인 서양철학을 數로 입증함으로서 과학을 탄생시켰으며, 이것이 오늘날 무소불위의 과학을 이루어낸 원동력입니다. 그렇다면 동양학 역시 數로서 진가를 판단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양학은 無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0은 아무리 곱해도 0인 만큼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즉 동양의 철학적 원리와 서양의 과학적 이론은 다릅니다. 동양의 철학적 진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면 더 이상 진리가 아닙니다.

철학적 진리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宇宙의 變化와 그의 要因'에서,“철학적 진리는 과학적 진리와는 다르다. 즉, 어떠한 전제에서만 진리이고(과학적 진리) 그 전제가 달라지면 진리도 空殼이 되고 마는 그러한 진리를 철학의 眞理로 한다면 그 哲學의 生命은 벌써 멍들기 시작한 생명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동양학의 진가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原理로서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동양학의 근본이치를 해치고 후학을 희롱하는 자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不容(불용)

주자,채원정은 '역학계몽'에서,"雖其見於摹畵者 若先後而出於人爲 然其已定之形 已成之勢 則固已具於渾然之中 而不容毫髮思慮作爲 於其間也"(비록 본뜬 그림이 나타난 것이 마치 선후 있어서 인위적으로 나타난 것 같으나, 정해진 形이나 이루어진 勢가 혼연한 가운데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그 사이에 조금도 인위적인 생각과 작위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인위적인 것은 不容한다.

2. 傳遷과 虛行

지금의 많은 이론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학은 본래 하늘에서 내려온 經典을 근본으로 이루어 진 학문입니다. 경전은 당연히 저자입장에서 읽어야 그 奧義를 알 수 있습니다. 주석은 그 시대의 사상이 반영된 독자의 글로 경전과는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양학자는 저자입장보다는 독자입장의 주석을 읽습니다. 한마디로 잘못된 것입니다.

失旨(실지)

최한기는 ‘氣學’에서,"惟恨倡之者 微發其端 傳之者 各將己意 增衍附翼 至失本旨"(오직 한탄스러운 것은 어떤 學을 처음 창도한 자가 그 단서를 약간만 드러내면 그것을 전하는 자가 각기 자신의 뜻을 보태고 늘여서 마침내 근본 취지를 잃어버리고 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하늘의 道를 傳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이론을 옮기(遷)고 있습니다.

道遷(도천)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易之爲書也 不可遠爲道也 屢遷變動不居 周流六虛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易의 글됨이 멀어질 수 없고, 道됨이 여러 번 遷하여서, 변동하여 거처하지 않고, 6虛가 두루 흘러서 상하에 항상 됨이 없고 강유가 서로 바뀌므로, 典要가 없이 오직 變하였다)라고 道가 遷해 典要가 없다.

通하지 못한 非人은 오히려 不傳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어버린다는 非人不傳의 가르침에 힘입어 저의 짧은 깨달음을 傳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非人不傳(비인부전)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傳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其人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非人은 오히려 天寶(진리)를 泄(와전)한다.

非人의 道는 결국 虛行(헛공부)하게 됩니다.

非人虛行(허행)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初率其辭 而揆其方 旣有典常 苟非其人 道不虛行 "(처음에 그 辭를 따라서 그 方을 헤아려 보면, 이미 전요와 상도가 있다. 진실로 非人의 道는 虛行한다)라고 非人의 道는 헛되이 행해진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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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가(眞假) -

非人不傳(비인부전)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其人不敎 是謂失道 傳非其人 慢泄天寶"(其人은 가르치지 않으면 道를 잃는다고 한다. 非人은 전하여도 오만해져서 하늘의 보물을 누설한다)라고 기인은 道를 가르쳐야 하지만, 비인은 道를 傳해도 오히려 설한다.

道遷(도천)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易之爲書也 不可遠爲道也 屢遷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以典要 唯變所適"(易의 글됨이 道에서 멀어질 수 없다. 여러 번 遷하여서 변동하고 거처하지 않아, 6허가 주류하여 상하에 항상 됨이 없고 강유가 서로 바뀌어, 전요가 불가하여서 오직 變하였다)라고 道가 遷해 전요가 없다.

虛行(허행)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初率其辭而揆其方 旣有典常 苟非其人 道不虛行"(처음에 그 辭를 따라서 그 方을 헤아려 보면, 이미 전요와 상도가 있다. 진실로 非人의 道는 虛行한다)라고 非人의 道는 헛되이 행해진다.

妄作(망작)

기백은 '황제내경 소문 徵四失論'에서,"受師不卒 妄作雜術 謬言爲道 更名自功"(스승의 지도를 받음에 卒지 말아야 한다. 잡술을 妄作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말을 道로 삼아 다시 스스로 功이라 이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잡술을 妄作하지 말아야 한다.

有我(유아)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외편·상’에서,"物理之學或有所不通 不可以强通 强通則有我 有我則失理而入於術矣"(物理의 학문은 혹시나 통하지 않는 곳이 있게 마련인데, 강제로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강제로 통하게 하면 자아만 있게 되는데, 자아만 있게 되면 이치는 잃고 術에 빠진다)라고 설명한다.

妄知言(망지언)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내편’에서,"凡言知者 謂其心得而知之也 言言者 謂其口得而言之也 旣心尙不得而知之 口又惡得而言之乎 以心不可得知而知之 是謂妄知也 以口不可得言而言之 是謂妄言也 吾又安能從妄人而行妄知妄言者乎"(무릇 知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으로 얻어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言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입으로 얻어서 말하는 것이다. 이미 마음이 얻지 못하였는데 안다고 하고 또 입이 잘못된 것을 얻어서 말하게 된다. 이로써 마음이 아는 것을 얻을 수 없는데 안다고 하는 것을 妄知라고 하고, 또 입이 말을 얻을 수 없는데 말하는 것을 妄言이라고 한다. 내가 어찌 妄人을 좇아 妄知妄言을 행하겠는가)라고 설명한다.

不容(불용)

주자,채원정은 '역학계몽'에서,"雖其見於摹畵者 若先後而出於人爲 然其已定之形 已成之勢 則固已具於渾然之中 而不容毫髮思慮作爲 於其間也"(비록 본뜬 그림이 나타난 것이 마치 선후 있어서 인위적으로 나타난 것 같으나, 정해진 形이나 이루어진 勢가 혼연한 가운데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그 사이에 조금도 인위적인 생각과 작위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인위적인 것은 不容한다.

 

 

註脚(주각)

화담은 '귀신사생론'에서,"某欲加敷衍淺見 令後學沿流以探其源 吾精力盡時著書 有志未就 良亦一恨 然不足恨也 註脚更添註脚 奈後學苦其繁複 亦莫之致思何"(나는 淺見을 敷衍하여 후학들에게 연유에 따라 그 근원을 공부하게 하였다. 나의 精力을 다 들인 때에 著書를 하려했으나 뜻만 있고 아직 성취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스럽지만 한스러운 것도 못 된다. 註解위에 또 註解를 첨가하여 고치면 후학들이 그 번잡함을 고통스러워 할 것이고, 또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면 어찌하랴?)라고 근원의 중요성과 주해의 번잡함을 지적한다.

假實(가실)

율곡은 '성학집요'에서,"一心不實 萬事皆假 何往而可行 一心敬實 萬事皆實 何爲而不成"(한마음이 진실 되지 못하면 만사가 다 거짓되니 어디에 가서 行할 수 있으며, 한마음이 만일 진실하다면 만사가 다 진실하니 무엇을 한들 이루지 못하겠는가)라고 假와 實을 설명한다.

失旨(실지)

최한기는 ‘氣學’에서,"惟恨倡之者 微發其端 傳之者 各將己意 增衍附翼 至失本旨"(오직 한탄스러운 것은 어떤 學을 처음 창도한 자가 그 단서를 약간만 드러내면 그것을 전하는 자가 각기 자신의 뜻을 보태고 늘여서 마침내 근본 취지를 잃어버리고 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한다.

學本(학본)

최한기는 ‘氣學’에서,"學而不本氣化 必自生支節 自作艱難 各成意見 思慮遮迷 猶易警發 意識襯貼 卒難除却"(배우되 氣化에 근본을 두지 않으면, 반드시 저절로 가지와 마디가 생기고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져서, 각각 의견을 갖게 된다. 사려가 가리우고 혼미한 것은 오히려 쉽게 경계하여 깨우칠 수 있으나, 의식이 집착되어 있는 것은 끝내 제거해 버리기 어렵다)라고 설명한다.

述而不作(술이부작)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寅申相火의 實現'에서, "대성 공부자도 술이부작이라고 하였거늘 필자가 어찌 이와 같은 과감한 모험을 할 수 있으리오"라고 공자도 易을 서술(述)하였지, 만들지(作) 않았는데, 어찌 필부가 易을 만드는 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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