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꿈
2011.02.25 22:38:09

非人漏說  其人傳 !! 역학의 언저리를 헤메인지 십여년이 흘렀습니다. 항상 원리의 정명성에 대한 의혹을 떨칠 수 없었으며 숫한 시행착오의 시련이 마치 이 영역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졌었습니다.   명상과 산야를 헤메며 자연의 섭리에 의지한  소식의 기대심 역시 미련한  성정으로 인해 스스로의 집착에 빨려 들어버렸던 시간이었습니다. 中 - 道 가 시절의 인연으로 神에 부합하여  人氣에 대한 당당한 정진의 뜻 하나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선생님의 獅子吼를 인연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저의 행운이 아니라 그 동안 소망했던 목마름이 感應을 이루어 지금 이 시간 形象으로 드리워진거라 생각합니다. 한없는 염치없음과 감사함을  부끄럽지않는 正進으로 報恩하겠습니다.  모든것을 다 주시는 말씀  其人傳 ..   대지에 씨앗은 뿌리되  장차 그 씨앗의 運命은  그대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 자문하여 봅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요.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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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2009.12.17 22:47:08

혼자 헤메다가 갑자기 눈 앞이 훤해지는 느낌입니다.

아주 좋은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책도 사서 보고있지요

 

단숨에 자연법칙까지 보았습니다.

 

아쉽다면 판서의 글씨가 조그마해서 잘 안보이고 중복되는 강의가 있군요

원래 옥의 티는 있어야하니까..............................

 

하여튼 훌륭한 강의입니다.  감사합니다.

 

日汀
2009.12.29 20:43:33

 

正名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되는이 강의는 신기하다. 그 동안 여러 역학 책을 보고 한자 실력이 모자라 남의 해석본을

읽었는데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하나 이 강의를 보고 다소나마 조금씩 역에 다가가고 있다.

중의원리 책을 구입해서 한번 읽었다. 강의도 괘효변동까지 보았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던 역학이

이 책과 강의를 보면서 실마리를 잡은 듯한 기분이 든다..........

아직 용어가 왜 사용되었는지, 그 용어의 진짜 뜻이 뭔지는 더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이 카페를 열고 강의하고 있는 분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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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욱
2009.09.15 20:45:36

 

⊙ 그(7주) 동안 강의하시느냐 수고 하셨습니다.
열차시간이 정해져있어 수고하셨다는 인사도 못 드린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선생님 글은 역학동(하이텔)의 원리마당에 올려진 초창기 글부터(현재의 중의원리 교재초기본이라 생각됨)접하였습니다. 내용도 모르는 여러책들을 여러 해 읽으면서 기초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왔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주를 구성하는 큰 틀(흐름)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시공, 시간,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글속에서 인용되었던 여러 책들을 접하였으며 고전의 중요성과 우주변화의 원리의 저자인 한동석 선생님과 주옥같은 저서인 우주변화의 원리를 읽는 행운도 누렸습니다.


⊙ 지방(대전 거주) 이라 서울에 계신 분들보다 시간, 비용(교통비등이 강의료보다 더 많이 나옴)모든 면에서 어려웠으나 금번 서울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이 학문을 접하면서 마음 한편에서 잃었던 허전함에서 벗어나 저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함이었으며 기초(정명)가 없으면 저 앞에 가로놓여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짧은 7주 동안의 강의에서 기초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였습니다.


⊙ 태고이래의 우주변화의 큰 틀을 전달해주시기 노력해주신 선생님의 열강에 비하여 저 자신의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의 강의가 바탕이 되어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하여 앞으로 한걸음 나갈 수 있도록 노력코자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의에 임해주신 선생님과 강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인도해주신) 모든 분들의 인연에 감사를 드립니다.


충남 대전시
이광욱
**시청 근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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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판별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6. 14:47:05

말씀 감사합니다.

우선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큰 맥락에서 이해가 갑니다.

세세한 부분은 잠시 미루고 다시 원리적인 부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핵심은 감응/중화 이 두가지가 잇는줄 압니다.

그런데 중화의 원리에 잇어서

그 핵심에 대해 망설여짐이 잇어 다시 여쭙겟습니다.

결국 4주로서의 중화는

희약신이 많고 강하며 기병신이 적고 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요?

3방회로 모두 희약신 局을 이루는 것은

중화의 세력이 더욱 힘을 합하고 강해서 좋은 것인줄 압니다.

중화를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가늠 하는데 잇어서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희약기병한이 잇을 것이고

각각 그 모습 또한 천태만상일테지만

결국 중화를 따짐에 잇어서

중화가 되엇다 안 되엇다

중화가 높다 낮다를 구분하는 것이

희약신의 세력에 대한 1D/2D/3D 각각의 차원적 관점인지요?




제목: re: 판별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7. 08:11:53

중화와 균형은 다릅니다.

용어를 확실히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고전과 앞뒤가 맞게 됩니다.

중화는 에너지이고, 균형은 그 기준입니다.

중화는 대우주에 逆하던지(정격), 從하면서(종격)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소우주의 일간을 기준으로 대우주의 용신과 상대적 권형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 판단하는 방법을 3D차원으로 나누어 판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희약신, 기병신으로 구분하는 겁니다.




제목: 네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7. 08:50:59

네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희약신이 많을수록

중화가 잘되어 잇다고 판단할 수 잇는 것인지요?

특히 1, 2차원 보다 3차원적인 중화로 희약신이 많고 강할때

그 중화가 잘되어 잇고 높다고 판단할 수 잇는 것인지요?

중화와 관련되서 몇가지 더 여쭙겟습니다.

격의 고저 라는 것과 중화는 어떤 관계가 잇는지요?

또 청탁의 개념과 중화는 어떤 관계가 잇는지요?

격의 고저 청탁 모두 중화에 포함되는 개념인지요?




제목: re: 네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8. 09:01:23

방법보다는 원리에서 전혀 감을 못 잡는 것 같습니다.

원리가 없으니 전혀 응용이 안 됩니다. 원리라는 것은 일단 중화, 권형, 격, 청탁 이런 개념들이겠지요. 원리를 알면 방법은 자연히 나오고 또 진가도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희약신이 많으면 당연히 중화가 잘 되는 것입니다.

3가지 함께 있을수록 강합니다. 단 1D없이 3D만 있는 경우 작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1D는 기준이고, 2D는 제어이고, 3D는 기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 위 용어는 아래 귀천을 근거로 안초가 설정한 용어입니다.

貴賤(귀천)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6미지대론'에서,"帝曰 其貴賤何如 岐伯曰 天符爲執法 歲位爲行令 太一天符爲貴人 帝曰 邪之中也 奈何 岐伯曰 中執法者 其病速而危 中行令者 其病徐而持 中貴人者 其病暴而死"(황제가 말한다. 그 귀천은 어떠한가. 기백이 말한다. 천부는 집법이고, 세립은 행령이고, 태일천부는 귀인입니다. 황제가 말한다. 中에서 邪는 어떠한가. 기백이 말한다. 중에서 집법은 그 병이 빠르고 위태합니다. 중에서 행령은 그 병이 늦고 지속됩니다. 중에서 귀인은 그 병이 폭발적이고 죽습니다)라고 귀천을 3가지로 판단합니다.

격은 6신 관계일 뿐 고저라는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하기야 어디서 격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청탁은 중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는 가 없는 가로 판단합니다. 청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제목: 격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8. 20:23:36

>희약신이 많으면 당연히 중화가 잘 되는 것입니다. 3가지 함께 있을수록 강합니다. 단 1D없이 3D만 있는 경우 작용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1D는 기준이고, 2D는 제어이고, 3D는 기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아직 중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결국 귀천은 중화의 상태로서

중화가 잘 되어 잇으면 貴고 그렇지 못하면 賤인 줄로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감응의 문제와 노력 등의 논점이 잇지만

우선은 중화에 대해서만 논하도록 하겟습니다.

그럼 결국 중화가 잘 되어 잇는가는 무엇으로서 판단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제가 좀 막연합니다.

그래서 위 논점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중화가 잘 되어 잇는지는

희약신이 얼마나 많고 또 강한지를 1D/2D/3D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여 총체적으로 판별하는 것인지요?

중화가 잘되어 잇다는 것은

결국 기병신이 얼마나 적고 약하며

희약신이 얼마나 많고 강한지를 따지는 것인지요?

그럼 결론적으로

희약신이 많고 강하면 귀한 것이고

기병신이 많고 강하면 천한 것이라 할 수 잇는지요?

>격은 6신 관계일 뿐 고저라는 개념과는 무관합니다. 격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못잡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하기야 어디서 격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겠는가.청탁은 중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는 가 없는 가로 판단합니다. 청할수록 집중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말씀 중에 격은 고저의 개념과 상관이 없다고 하셧는데

이부분에 대해서 제가 일전에 듣기로는

비격의 경우 剋을 통해 정격이 되면

그렇지 않은 종격보다 더 상격이라고 말씀하신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화 즉 희약신의 상태에 대한 판단 외에

격 자체가 택하는 중화의 방식(從/正)에 대한

고저판단이 따로 잇는줄 알앗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말씀 여쭙습니다.




제목: 중화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29. 12:15:58

참으로 답답합니다.

제일 처음 시작할 때 正名을 얘기하면서 시작했고, 또 중화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원전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간 중간에도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래서 학문이 와전되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깨달으려 하지 않고 자기 상상에 의해 만든다는 겁니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자기 소설입니다. 자기 소설을 쓰려면 뭐 하러 나한테 질문을 하고 배우려 합니까. 혼자 자기 소설을 쓰면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중화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복합할 수 없습니다. 단지 자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피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어렵게만 보이는 겁니다.

중화가 무엇인가 개념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찾지 않고 그 판단하는 방법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런 방법은 개념과는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중화가 뭡니까?

스스로 상상하는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동양학에서 정통으로 설정된 개념을 묻고 있는 겁니다. 당연지 원전에 반하면 안 되겠지요. 중화, 감응, 용신, 만세력 이런 개념부터 잘못되었다면, 다음은 얘기할 필요조차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설정부터 엉망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학문이 엉망이 된 겁니다.

2007.12.29. 안초

 

 

제목: 권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29. 18:31:56

말씀 감사합니다.

중화의 진의를 파악하도록 더 노력하겟습니다.

>中和(중화) 중용에서,"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至中和 天下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이 아직 發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하며, 發하여 모두 中에서 節한 것을 和라고 한다. 中은 천하의 큰 本이며, 和는 천하에 達하는 道이다. 中和에 이르러 천하의 位로 만물은 육성된다)라고 중화를 설명한다.

중화에 대해서 제가 안초님께 배운 바로는

우선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라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위 중용에서의 개념이 중화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제가 짐작하는 중화의 개념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기울기가 0인 저울처럼 平한 상태에서의

에너지/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도로만 짐작하고 잇습니다.

또한 위 중화는 대우주(本)의 용신과

소우주(主)의 일간이 기준이 되어 그 권형으로서 판별하며

이는 4주의 이치적 貴賤 판별의 관건이 되는 핵심개념이 되는줄 압니다.

결국 本主의 권형으로 기울기0의 平이 곧 중화이므로

어디까지나 本主의 상대적 강약, 경중을 비교함이 마땅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난해하다 생각되는 점이

만약 양일간이 통근하여 정격이라면 무조건 本오행을 기피하는데

만약 양일간이 통근하여 本과의 권형으로서 오히려 더 무겁고 강하다면

당연히 本오행의 힘을 실어줌이 중화의 방향이며 이에 합당한 오행이

희약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치 않게 본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아마 이것은 중화의 방식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해서인줄 압니다.

결국 위 중화의 방식은 本에 대한 逆從으로서 구분되며

이는 正從이라는 서로 다른 잣대로 양분되는 줄 압니다.

正格이라면 逆으로서 희약을 삼고 從格이라면 從으로서 희약을 삼는데

희약신이 물론 중화를 돕긴 하나

중화의 개념 그 자체가 아닌 이상

희약 = 중화? 라는 혼동은 확실히 없애도록 하겟습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중화는 本主의 세력/강약/경중이

얼마만큼 平에 이르럿느냐는 점에 그 초점이 맞춰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위 平에 대한 초점은 통근/사령간/십이운성의 원리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수치화 되어

本對主 로서 비교 측정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아무리 희약신이 많더라도

本主가 平으로 중화를 이루지 않으면

위 근본적인 귀천의 핵심에 어긋나지 않나 싶습니다.

희약신이지만 本主의 中和에 도움이 안되는 운이 온다면

특히나 개념에 더 혼돈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결국 中和는 體로서 이미 결정된 고정적 개념이며

운의 희기는 그 用으로 파악되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중화는 이미 體인 8字 원국 자체에서 결정되고

즉 근본적인 貴踐은 體인 4주 원국의 중화로서 결정되며

이것의 用으로서

이미 결정된 귀천에 대한 크고 작은 길흉의 현상적 흐름이

運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깊은 오의를 깨닫는데 부족하여 소설이 되엇다면 죄송합니다.

참된 이치의 한말씀 여쭙겟습니다.




제목: re: 권형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0. 05:46:47

"중화에 대해서 제가 안초님께 배운 바로는

우선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라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위 중용에서의 개념이 중화의 개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제가 짐작하는 중화의 개념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기울기가 0인 저울처럼 平한 상태에서의

에너지/생명력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도로만 짐작하고 잇습니다"

이 정도가 중화개념입니다. 또한부터 시작하는 다음 글은 중화개념이 아니라 그 방법입니다. 굳이 찾자면 주본, 역종, 권형, 귀천, 체용 등의 개념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이것을 다 중화라고 한다면 한의학, 성리학 등 다른 곳에서 부르는 중화와 달라질 뿐 아니라 고전과도 달라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동양학의 결론은 중화를 찾는 것이고, 감응을 쫒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중화자체는 아닌데, 아무것이나 얼버무려 중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주의 방향을 못 찾아가게 되는 겁니다.




제목: 그렇다면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0. 08:56:37

그렇다면 4주에서 중화가 잘 되엇는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는 것인지요?

일전에 제가 이해한 방식은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는지요?




제목: 正名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0. 11:54:00

균형을 판단하는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균형과 권형 그리고 중화는 다른 말입니다. 균형은 목표이며, 권형은 방법이, 중화는 결과입니다. 즉 균형이 안 맞아도 중화는 존재하며, 또한 중화를 보니까 아니라 권형(저울질)을 해보니 그 결과 중화가 어떻다 입니다.

이런 세세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미흡하기에 원리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며, 고전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주석을 달아 놓으니 자기 마음대로 소설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유명해 지면, 후학은 그것을 읽어서 또 다시 가르치니 고전 본래의 뜻과는 점점 무관해지는 겁니다.

오늘날에는 위 무관한 학문에 임상까지 곁들여 만들어진 자기 주장을 무슨 문파니 하면서 세를 불리는 겁니다. 물론 중국사람 행태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에서도 모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 진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양사와 양서의 만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진가아니라 유명 즉 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유명이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명은 절대 가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짜는 산속에 있고 가짜가 판치게 마련입니다. 제가 만나 본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첫 관문이 정명입니다.

아래 글들은 대체적으로 그 행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알고 쓴 것인지 흉내만 낸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화를 모르고 썼다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제목: 균형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0. 15:40:55

말씀 감사합니다.

>균형을 판단하는 겁니다. 엄밀히 따지면 균형과 권형 그리고 중화는 다른 말입니다. 균형은 목표이며, 권형은 방법이, 중화는 결과입니다. 즉 균형이 안 맞아도 중화는 존재하며, 또한 중화를 보니까 아니라 권형(저울질)을 해보니 그 결과 중화가 어떻다 입니다.

말씀하신 핵심은 主本의 권형이라는 방법으로서

중화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뜻인 줄 압니다.

저 역시 위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위 균형의 개념은 우선 낯설고 좀 어렵습니다.

특히 중화랑 균형은 같은 개념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짐작하기로는 主本의 균형 즉 平(완전)이 목표이며

위 平의 상태 즉 균형도를 권형이라는 저울질을 통해

판별한 결과가 중화라는 말씀이 아니신가 합니다.

즉 균형은 平으로서 이치적 원리적 관점이며

중화는 위 이치적 관점이 실제로 얻어낸

현상적 결과치/에너지/힘/생명력을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목표가 되는 균형은 즉 平/中의 개념이고

中和는 그 中/平/균형의 결과로서

생명력/힘/에너지 라는 말씀인줄 압니다.

제가 느끼기에 中/中和의 차이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소설을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오늘날에는 위 무관한 학문에 임상까지 곁들여 만들어진 자기 주장을 무슨 문파니 하면서 세를 불리는 겁니다. 물론 중국사람 행태입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에서도 모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양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 진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양사와 양서의 만남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진가아니라 유명 즉 세를 따라가게 됩니다. 즉 유명이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무명은 절대 가짜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짜는 산속에 있고 가짜가 판치게 마련입니다. 제가 만나 본 바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첫 관문이 정명입니다. 아래 글들은 대체적으로 그 행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알고 쓴 것인지 흉내만 낸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중화를 모르고 썼다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말씀하신 정명의 기본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등한 입장에서 자평학적 논의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안초님께 배우는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무엇을 알고 썻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안다고 착각되는 부분 속에서

겨우 말씀을 여쭐수는 잇겟지만

그렇다고 위 진리의 오의를 안다고 감히 생각되진 않습니다.

主本의 中/平/균형을 찾고 위 목표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정확히 권형하여 그 中和를 관찰함에 잇어서

本이 되는 대우주의 소식이 용신에 잇지 아니하고(가용신)

월령으로서만 存한다면

위 균형이라는 목표점을 우선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여쭙습니다.

월령이 本이 되어 主와 함께 中이라는 목표점이 생길 것 같고

위 목표점의 설정에 잇어서 象數적인 접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용신과 主의 中 역시 象數적으로

먼저 목표점을 잡는 것이 마땅한듯 생각이 되며

이 목표점에 일치하진 않아도 근접한 해당오행을

목표점으로 잡고 관찰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떤지 여쭙습니다.

실질적으로 중화라는 결과를 도출/관찰함에 잇어서

위 中의 목표가 어떤 에너지 상태를 갖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위 부족한 질문/생각에 한말씀 가르침을 청합니다.




제목: 치수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2.31. 08:49:20

상수적인 접근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나 숫자를 말한다고 보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갑자, 괘효, 1水,2火,3木.. 등이 바로 상수입니다. 상과 수가 함께 있는 것이지요. 참고로 소숫점으로 나가는 것은 상수가 아닙니다. 상수란 자연수입니다.

균형은 상대적 비교입니다. 절대적 비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서로의 강약만 알면 되는 것이지 온도계처럼 절대적 치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절대적 치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음양의 상대적 속성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혼돈을 한다고 보입니다. 물론 쉬운 것이 아닙니다. 원리는 쉽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럽니다. 마치 공기가 인간에게 정말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이런 개념이 잡히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제목: ... 글쓴이: 아킬 날짜: 2007.12.31. 14:40:48

>균형은 상대적 비교입니다. 절대적 비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서로의 강약만 알면 되는 것이지 온도계처럼 절대적 치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네. 균형/중화... 참 어렵네요.

균형이 절대적 비교가 아닌 상대적 비교라는 말씀은 잘 알겟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생각되는 바는 이렇습니다.

중화의 기본 개념 즉 중용적 의미와

中에서 和하는 에너지/생명력이라는 개념의 핵심은 이해하되

그것에 대한 실체적/구체적 파악이 막연한 실정입니다.

위에 대하여 主本 양측에 대한 권형을 통하여 파악된 결과가 중화이며

결국 主本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야 위 결과가 나올수 잇음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主本 양측이 서로 강약/경중에 잇어서 서로 대등하여

그 힘이 平을 이루어 결과적으로 그 결과가 가장 平에 가까울때

그러한 중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간단히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主本을 저울의 양끝에 매달아 놓고서

그 기울어짐이 전혀 없이 서로 대등한 상태를 이룰때가

중화가 높은 것/잘된 것이고 이 높고 낮은/잘되고 덜되고의 차이가

貴賤의 개념에 판단근거/전제적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主本의 통근/십이운성 등의 원리로서

主本의 상대적 강약을 따지는 것이 중화를 판단하는 핵심인지요?

그렇다면 희약기병한의 상태가

이미 主本의 통근/십이운성 등의 원리에 참여하기에

희약기병한이 主本의 권형과 무관하지 않게될듯 싶습니다.

결국 主가 本보다 약하다/강하다 정도의 결과가 나올텐데

이런 정도의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잇는 것인지 잘 모르겟습니다.

결국 중화는 그 방식에 따라

얼마나 더 많이 逆하고 잇느냐(다다익선)

얼마나 더 철저히 從하고 잇느냐(다다익선)를 보는게 정확하지 않는지요?

逆방식으로 3회합하는게 3방회 중화라 하셧으니(정격경우)

多逆/大逆/强逆 으로 多强익선으로 逆하면 그것이 中和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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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名

하나의 동양학 2008.11.05 21:01


제목: 正名 글쓴이: 박모 날짜: 2006.07.07. 04:24:58

정명... 정명 ... 정명 ...

사방팔방을 돌아봐도 뭐가 정명인지 ...

요즘은 피곤해서 일도 잘 안되고 있습니다 ... 간단한 산수도 힘이 드네요 ^^

어떻게하면 정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




제목: 中의原理 글쓴이: 안초 날짜: 2006.07.07. 08:08:01

지금의 동양학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한사람의 선생에게 배운 제자들도 각자 다릅니다. 지금은 그렇다 치고, 옛 사람이 책을 지을 때는 분명 그 윗 사람의 학문에 따라서 지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마치 전혀 다른 학문처럼 고전마다 다른 학파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의학, 술수학등 동양학 전반이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제각기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원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복원하는 가장 첫 단계가 바로 正名입니다. 용어와 컨셉을 통일시킴으로서 고전과 현대학을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취지에서 고전을 시간 공간 시공의 관점에 따라 시대 순으로 우주구조 틀에 모아놓은 책이 中의原理입니다. 그리고 위 용어 하나하나에서 찾은 정명에 입각하여 강의도 합니다.

원리를 생각하고 정명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제 강의가 시간단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쓰다보니 선전이 되어 버렸네요.

네, 산수가 힙듭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수가 0입니다. 무엇을 더해도 똑같고, 무엇을 곱해도 0입니다. 안보이는 수이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동양학이 서양학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위 0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눈으로만 본다면 동양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것이 바로 동양학의 매력이고 훌륭한 점입니다. 우리 인체도 안 보이는 경락을 기본으로 이루져 있습니다.

2006.7.7.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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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正名)과 원리(原理)

누차 강조해 왔지만, 동양학에서 '정명'이 바로 '원리'입니다.
동양학의 원리가 어렵다는 것은 위 정명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道는 무엇인가. 易은 무엇인가.

이것으로 시작해서...
우주에서 中, 體, 用, 綱, 紀, 通, 變이 무엇인가
자연에서 天, 地, 人, 日, 月이 무엇인가
이기에서 陰陽, 行, 極이 무엇인가

변화에서 化, 神, 精, 形, 物, 象이 무엇인가
운동에서 動, 數, 衍, 策, 律, 呂이 무엇인가
운기에서 氣, 運, 相火, 命, 曆, 甲子, 平이 무엇인가
변동에서 卦, 劃, 爻, 占, 納甲, 元亨利貞이 무엇인가.

위 용어들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원리 기초는 끝났습니다.
논쟁의 역사도 결국 위 개념들의 싸움입니다.

노자는 도덕경의 위 名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道名
노자는 '노자 제1장'에서,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道라고  할 수 있는 도는 항상 道가 아니고, 名이라고 할 수  있는 명은 항상 名은 아니다)라고 道(無)와 名(有)을 소개한다.

공자도 춘주전국시대같이 혼란한 시기에 가장 먼저 할 일을  '必也正名'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정명은 '학문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必也正名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공자는 춘추말의 부패와 타락이 전혀 정명되지 못한데 있다고 보았던 고로 제자가 선생이 만일 위국의 재상이 된다고 하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必也正名이라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때와 같은 난세에 정명부터 하겠다는 말을 들은 제자는 아연질색하였지만 공자의 뜻을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라고 공자의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 정명(正名)!
여기에 원리(原理)가 있습니다.

200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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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는?


전요와 법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5행의 희신은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마음대로입니다. 이것은 초보뿐 아니라, 권위자로 갈수록 더욱 심각합니다. 그렇다고 논쟁을 통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것도 곧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서로 지칭하는 용어 개념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명리학이란 원래 마음대로(주관적) 하는 학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니... 쩝!


전요와 법칙이 없어진 이유는?

학문 방법의 변화에 있습니다.

역학은 하나의 이치를 미루어(推) 만물을 설명합니다.(연역법)
과학은 여러 사실을 종합하여(集) 결론을 도출합니다.(귀납법)
그런데 20세기에 이르러, 과학의 영향으로 역술 방법이 귀납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임상을 集하여 도출된 결론으로 운명을 예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推命이 아니라 集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명리학은 통계학이라는(集) 주장이 있는 겁니다. 쩝! 명리학은 통계가 아닌 우주원리를 연역한(推) 학문입니다.


연역적 학문의 방법은?

우주원리(道)에서 求해야 합니다.

역학은 우주를 깨닫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한 求하는 깨달음보다 作하는 창조가 쉽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후학에게 가르칩니다. 이렇게 作은 또 다른 作을 낳게 되어, 전요와 법칙은 흩어지고, 우주의 道는 遷(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수의 학자가 易을 망치고, 또 소수의 학자가 易을 바로 세웁니다. 우주 진리는 만들(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求) 밝히는(明) 겁니다.


가장 급한 우주원리는?

용어부터 바로 잡혀야 합니다.(正名學)

역학은 名으로 우주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역학의 깨달음이란 名의 깨달음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命, 推, 運, 方, 平, 標, 本, 蘭, 形, 氣, 向, 穴, 格, 用, 神, 局, 事, 物, 殺 등등... 이것이 우주 입장에서 무엇을 지칭하는 용어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우리가 위 용어의 우주 개념을 정확히 인식할 때,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그 중심에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꼭 명리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잃어버린 대표적인 道는?

子平입니다.

길흉은 子水의 平을 기준으로 權衡(저울질)하여 판단합니다. 즉 平이면 길이고, 그렇지 않으면 흉입니다. 따라서 平을 기준으로 약하면 擧하고 강하면 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 현상과 과학으로도 입증되는 정말 대단한 道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잃어 버린 道입니다. 지금은 우주의 道(平)는 사라졌고, 인위적인 作(助)만이 주인 노릇을 합니다.

앞으로 올리고자 하는 글은?

우주원리와 명리원리를 부합시키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원리의 理와 名으로 명학원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곳을 찾아, 잃어 버린 道를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큰소리는 치고 있지만,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힘이 없어서리~) 따라서 단지 그 방향만을 잡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고, 나머지는 후학에게 그 몫을 돌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씨`만 뿌리겠다는 것입니다. 위 平의 `씨`가 진리이면 자라야 할 것이고, 가짜면 소멸해야 합니다. 이름에 從하지 말고, 진리에 從하십시오.

200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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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名) -

形氣正名(형기정명)

황제는 '황제내경 소문 6정장상논'에서,"氣合而形 因變以正名 天地之運 陰陽之化 其於萬物 孰少孰多"(氣가 합쳐서 形이되고, 變으로 인해서 正名된다. 천지의 運이 음양으로 化하는데 그 만물에 어찌 다소가 없겠는가)라고 形氣가 변해 正名된다.

當名(당명)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6장’에서,"夫易 彰往而察來 而微顯闡幽 開而當名 辨物正言 斷辭則備矣"(무릇 역은 가는 것을 밝히고 오는 것을 찰하며, 나타나는 것을 미세하게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드러내며, 열어서 名을 마땅히 하여, 물건을 분별하고 말을 바르게 하여, 말씀을 판단하니 갖추어져 있다)라고 名의 마땅함을 설명한다.

無有名(무유명)

노자는 '노자 제1장'에서,"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無라는 名은 천지 의 시작이고, 有라는 名은 만물의 어미이다)라고 無有의 名을 설명한다.

道名(도명)

노자는 '노자 제1장'에서,"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道는 道라고 할 수 있지만 항상 道가 아니며, 名은 名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항상 名이 아니다)라고 道와 名은 항상 순환한다.

名實(명실)

왕필은 '노자지략'에서,"夫不能辨名 則不可與言理 不能定名 則不可與論實也 凡名生於形 未有形生於名者也 故有此名必有此形 有此形必有其分 仁不得謂之聖 智不得謂之仁 則各有其實矣"(무릇 名을 분변할 줄 모르면 더불어 理를 말할 수 없고, 名을 정할 줄 모르면 함께 實을 논할 수 없다. 무릇 名이란 形에서 생겨나지만, 形은 名에서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名이 있으면 반드시 그 形이 있고, 어떤 形이 있으면 반드시 그 分이 있어서, 仁을 聖이라 할 수 없고, 智를 仁이라 할 수 없으니, 각각 그 實이 있는 것이다)라고 名實을 설명합니다.

 

 

名稱(명칭)

왕필은 '노자지략'에서,"名也者 定彼者也 稱也者 從謂者也 名生乎彼 稱出乎我"(名이라는 것은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고, 稱이라는 것은 대상을 좇아 부르는 것이다. 명은 대상에서 생겨나고, 칭은 나에서 나온다)라고 명칭을 정명합니다.

無名立稱(무명립칭)

소길은 '5행대의'에서,"夫萬物 自有體質 聖人象類 而制其名 故曰名以定體 無名乃天地之始 有名則萬物之母 以其因功涉用 故立稱謂"(무릇 만물은 각 체질이 있어, 성인이 象을 따서 이름을 제정했다. 고로 名으로 체질을 정했으니, 名이 없는 상태가 곧 천지의 시작이고 名은 만물의 부모니 공적과 작용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다)라고 만물의 부모는 이름이라고 했다.

名明(명명)

소길은 '5행대의'에서,"其未生 本無名字 五行爲萬物之先 形容資於造化 豈不先立其名 然後明其體用"(아직 태어나지 않을 때는 본래 이름의 글자가 없다. 5행이 만물에 선행하고, 조화에서 형체와 용모를 띠니, 어찌 먼저 그 名을 세운 연후에 그 체용을 밝히지 않겠는가)라고 名을 정한 후에 체용을 밝힌다.

名義(명의)

최한기는 ‘추측록 추측제강’에서,"推其名而測其義 則三者皆有所取 亦有所不取 夫人之自任重要致遠者 焉有所常學 焉有所不學"(그 名을 推하여 그 義를 測하면, 세 가지에 다 취할 것이 있고 취하지 않을 것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장원한 계책을 실현하려는 사람이라면, 어찌 항상 같은 것만 배우고, 또 어찌 배우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라고 설명한다.

正名學(정명학)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事物과 槪念'에서 "正名學이 한 개의 전문분야로서 출발하여야 할 것은 철학적으로 크게 기대되는 바다. 종래의 학자들은 철학의 신비적(운명학) 개척에만 주목하고 그 현묘경(우주학)에 이룰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 문제를 소홀히 다루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상 동양철학과 같은 玄妙之境을 파헤치려면 정명학의 연구는 바로 성패의 지침이 될 것이다."라고 정명학의 연구를 역설하고 있다.

必也正名(필야정명)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事物과 槪念'에서, "孔子는 春秋末의 부패와 타락이 전혀 正名되지 못한데 있다고 보았던 고로 제자가 선생이 만일 위국의 재상이 된다고 하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必也正名이라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때와 같은 난세에 正名부터 하겠다는 말을 들은 제자는 아연질색 하였지만 孔子의 뜻을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라고 공자의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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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운기자평-사주


[서언]

진정한 이치(진리)는 하나이며 용어 또한 하나(正名)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하나의 이치에 수많은 진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의 이치에 수많은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 잡소리일 것입니다.


[하나의 진리]

종교, 과학, 역학은 전혀 별개 분야입니다. 그러나 위 전혀 다른 분야에도 표현만 다를 뿐 하나의 이치로 통합니다. 위와 같이 하나의 이치로 통하는 이유는 관점만 다를 뿐 진리는 결국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위 글을 인정 못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명리학은 그렇지 못합니다.
위 종교, 과학, 역학과 같이 각각 별개의 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을, 기문, 6임, 6효, 자미와 같이 각각 별개의 술수학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고전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자평 명리학일 뿐입니다. 하나의 자평 명리학에 수많은 학문이 존재할 수 없으며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서...
임철초학파, 서락오학파, 명리정종(장남)학파, 유백온학파, 심효첨학파 등 별도의 학문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에는 자기 지명도를 내세워 무슨 학파, 무슨 학파라고 칭하며 학문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소로운 얘기입니다. 이것은 무슨 학파, 무슨 학파라고 학문을 찢어 놓는 것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밥그릇을 가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학자]

진정한 학자라면 하나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아 생을 다해야 합니다. 무슨 학파 무슨 학파라고 학문을 가르는 자들이 어찌 하나의 진리를 찾는 학자이겠습니까.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자평 명리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에 밀어 넣는 자들입니다. 정말 진리를 찾겠다는 학자의 작은 양심마저 꺾는 자들입니다. 위와 같이 밥그릇을 위해 학문을 갈라놓는다면 누가 진리를 찾아 나서겠습니까. 명리학은 결국 밥그릇 싸움만 하는 곳이 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진정한 학자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지, 결코 지명도를 빙자한 밥그릇 싸움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학자는 하나도 진리이고, 그 다음도 진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받쳐 진리를 지켜온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소중한 것이고, 진리를 찾는 학자는 존중되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귀곡자찬(이허중명서), 연해자평, 적천수, 삼명통회, 난강망, 자평진전은 하나의 흐름(원리)으로 이어져 있으며,(一而貫志)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 하나는 다시 다른 술수학과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철학, 의학 등 동양학 등과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위 이어져 있다는 핵심 증거가 바로 음양과 3극5행입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과학과 달리 위대합니다. 위 하나의 동양학이 다시 회복되어 과학과 접목될 때 그때 비로소 동양학은 부흥합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도 과학을 통합해보려고 말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습니다.(The theory of grand unification/대통합이론)


[결언]

자평 명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진리라는 깃발아래 모여져야 합니다.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진리와 무관한 행위입니다. 기준은 오직 진리 하나뿐입니다. 이젠 勢가 아닌 무엇이 진정한 이치(진리)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생각을 하기에는 작금의 학자들이 너무나 기초와 자질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너무나 배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너무나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먹고사는 수단으로만 이용합니다.

아~ 지금 이 시간에도 무슨 학파를 빙자해 쓰레기 학설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명리학은 난잡한 쓰레기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必也正名!'(반드시 名을 바로 하는 것) 공자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易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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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운기자평-사주


[서언]

진정한 이치(진리)는 하나이며 용어 또한 하나(正名)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하나의 이치에 수많은 진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의 이치에 수많은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 잡소리일 것입니다.


[하나의 진리]

종교, 과학, 역학은 전혀 별개 분야입니다. 그러나 위 전혀 다른 분야에도 표현만 다를 뿐 하나의 이치로 통합니다. 위와 같이 하나의 이치로 통하는 이유는 관점만 다를 뿐 진리는 결국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위 글을 인정 못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명리학은 그렇지 못합니다.
위 종교, 과학, 역학과 같이 각각 별개의 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을, 기문, 6임, 6효, 자미와 같이 각각 별개의 술수학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고전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자평 명리학일 뿐입니다. 하나의 자평 명리학에 수많은 학문이 존재할 수 없으며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서...
임철초학파, 서락오학파, 명리정종(장남)학파, 유백온학파, 심효첨학파 등 별도의 학문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에는 자기 지명도를 내세워 무슨 학파, 무슨 학파라고 칭하며 학문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소로운 얘기입니다. 이것은 무슨 학파, 무슨 학파라고 학문을 찢어 놓는 것은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밥그릇을 가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학자]

진정한 학자라면 하나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아 생을 다해야 합니다. 무슨 학파 무슨 학파라고 학문을 가르는 자들이 어찌 하나의 진리를 찾는 학자이겠습니까.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자평 명리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에 밀어 넣는 자들입니다. 정말 진리를 찾겠다는 학자의 작은 양심마저 꺾는 자들입니다. 위와 같이 밥그릇을 위해 학문을 갈라놓는다면 누가 진리를 찾아 나서겠습니까. 명리학은 결국 밥그릇 싸움만 하는 곳이 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진정한 학자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지, 결코 지명도를 빙자한 밥그릇 싸움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학자는 하나도 진리이고, 그 다음도 진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받쳐 진리를 지켜온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소중한 것이고, 진리를 찾는 학자는 존중되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귀곡자찬(이허중명서), 연해자평, 적천수, 삼명통회, 난강망, 자평진전은 하나의 흐름(원리)으로 이어져 있으며,(一而貫志)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 하나는 다시 다른 술수학과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철학, 의학 등 동양학 등과 하나로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위 이어져 있다는 핵심 증거가 바로 음양과 3극5행입니다. 그래서 동양학은 과학과 달리 위대합니다. 위 하나의 동양학이 다시 회복되어 과학과 접목될 때 그때 비로소 동양학은 부흥합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도 과학을 통합해보려고 말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습니다.(The theory of grand unification/대통합이론)


[결언]

자평 명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진리라는 깃발아래 모여져야 합니다.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진리와 무관한 행위입니다. 기준은 오직 진리 하나뿐입니다. 이젠 勢가 아닌 무엇이 진정한 이치(진리)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생각을 하기에는 작금의 학자들이 너무나 기초와 자질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너무나 배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너무나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먹고사는 수단으로만 이용합니다.

아~ 지금 이 시간에도 무슨 학파를 빙자해 쓰레기 학설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명리학은 난잡한 쓰레기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必也正名!'(반드시 名을 바로 하는 것) 공자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易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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