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9.25 사주학을 보는 정약용님의 관점
  2. 2008.06.24 정약용 갑을론2
  3. 2008.06.24 정약용 갑을론1



제목: 사주학을 보는 정약용님의 관점 글쓴이: 청학 날짜: 2005.04.01. 20:54:23

학식이 고매하신 정약용님의 사주학에 대한 관점 이라고 합니다.

아래의 여러 관점들에 대하여 안초선생님께서 학문적으로 반론을 하여 주시면
어떨까요? 사주학을 잡술로 매도 하고 계시니 원 참.........

워낙 유명한 분 이시라서......

四柱는 학문이 아니라 잡술이다.

옛날에 대요(大橈)가 갑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대요가 이름을

붙이기 이전에 천지가 개벽하기 까지는 몇천억년이나 되며

몇천억날 인지를 알지 못하고 또 이름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대요가 이름을 짓기 시작한 그해 정월 초하룻날을

갑자일(甲子日)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이것으로써 만고에 바꿀수 없는 정수(定數)라 함은

이치에 그렇지 않을듯하다.

지금 한나라 무제 이후에 사람이 붙여 놓은 명칭으로써 천지의

법칙을 안다면,또 이 법칙으로써 달을 기록하고 시를 기록한

다음 사주(四柱)라 하여 사람의 귀천이 하나같이 사주의 예에

정해져 있다고 하니 가령 그 말이 참으로 근거한데가 있다고 하여도

그 이용하는것이 그 법과 서로 어긋나게 되니,이것은 꿈에서

또 꿈을 꾸는것과 같은것이다.

한각이 어긋나면 시가 바뀔수가 있고 한 시가 벌써 차가 나면

연월이 함께 바뀌어질수가 있다.

왜냐면 섣달 그믐날밤 끝 시각에 차가 나면

연월이 함께 바뀌지 않겠는가?

이로 미루어 소위 갑자년이란것이 먼지방 여러고을 에서는

계해년도 되고 또는 을측년도 되는것을 알수가 있다.

또한 오로지 한양 한곳을 두고

동방은 목덕의 줄기라 하고 서방은

금덕의 가지라 하는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것이다.

땅의 형체는 둥글고 막힘이 없거늘

어찌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겠는가?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써 천지의 바른위치를 정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일 따름이다.

황제헌원씨 제곡고신씨 이래로 여러차례 역법이 변경 되었으니,

한무제는 태초력을 위문제는 황초력을 송나라 하승천은 원가력을

당나라 일행은 대현력을 지었으며 이것들은 그중 큼직한 것들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데 무릇 전대(前代)사서에 정월이라 한것이

혹 9월도 되고 혹8월이 되며 일식이 초하루에 있지 않은것을

그 1일이라 한 것이 혹2일이며 10일이라 한것이 9일일지 모른다.

갑자,을축으로써 연대를 기록하는법은 전한시대에 시작 되었다.

그보다 예전사람은 갑을로써 해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즉 지금말하는 공자와 항우등의 사주는 후세사람이 장력(만세력)

으로써 추정한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위 장력이란 것도 두예가 상서와 사관벼슬에 있을때

건도력에다 태시력을 참고하여 만든것이다.

지금의 대통력과 시헌력으로써 춘추시대 까지 소급하면

그 년월갑을의 차가 이루 헤아릴수 없을것이며 지금 두예가

측정한 것과는 모두 합치 되지 않는다.

소위 갑자라는것이 을축이 아닌줄은 누가 어찌 알겠는가?

곽박이 진나라때의 역서를 사용하여 길흉을 정해 놓았는데,

이 방법을 지금의 역서에 그냥 이용해도 합치하는것이 있을까?

원천강과 이순풍은 당나라때 역서를 사용하여 길흉을 정해 놓았는데,

이 방법으로써 지금 역서에 이용해도 합치하는것이 있을까?

그 말의 속임수와 망령됨이 이에서 더욱 분명해졌으니

아아,어찌 세상의 군자들은 3번 생각하지 않는가?

온갖 잡술로써 살고 죽은 기회를 분변하고,길하고 흉한 조짐을 정하며

적당한것과 꺼리는것을 분간한다함은 천대(千代)를 의혹하게

하고 억조창생을 속이는일이다.

-여유당전서 甲乙論-



제목: re: 다산선생이 오늘날 태어나셨다면^^ 글쓴이: 장창환 날짜: 2005.04.01. 21:25:46

긴 설명이야 안초님이 하실테고~

아마도 다산 선생이 오늘날에 태어나셨다면 절기력의 광팬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갑을론이라는 글에서 역학자들은 모두 절기력의 원리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셨을 겁니다.^^



제목: 이치와 현상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4.02. 01:05:24

좋은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 정약용선생님의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위 말씀은 꼭 4주에만 국한되지 않고 동양학 전반에 해당됩니다. 단지 4주를 대표적으로 두들긴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4주가 유행했었던 모양입니다.

주역은 동양학을 이끌어 온 최고의 학문이고, 또 조선의 통치이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나라 이래로 劃을 爻로 알고 잘못 전해져 왔습니다.

爻變今絶
다산은 `주역4전 효변표직설`에서, "自漢以來 爻變之說絶 無師承 此易之所以晦□也  衍之推移也 說卦之物象也 互體之博取也 此三者九家諸易皆能言之至 於爻變之義 自漢至今絶無影響 此易之所以不可讀也"(漢이래로 효 변의 설이 끊어져 스승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易이 어두워진 이유이다. 벽연의 추이, 설괘의 물상, 호체의 박취 위 셋은 9가제가의 역에서 모두 말했던 바이다. 효 변의 義는 漢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러 끊어져 모습과 소리가 없다. 이것이 易을 읽기가 불가능한 이유이다)라고 漢나라 이래로 효 변의 義가 끊어졌다.

당대 최고의 학문인 주역이 이러한데, 다른 학문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당연히 4주도 끊어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不知
육오산인은 `삼명통회`에서, "自大升之時 上距子平已三百餘年 其法不知經幾變矣 或謂大升得子平之眞傳 觀繼善等篇 不外明通賦 但更易其詞 而元理消息一賦 則大升之獨得也 今人推命之術 又元人復推子平大升二家之法 而演繹爲之者 顧今之談命者 動靜子平 而莫知其原"(대승의 시대부터 위로 자평은 이미 삼백여년의 거리가 있으므로, 그 법은 經의 幾가 변해 알지 못한다. 혹은 明通賦 외부가 아니라 繼善篇등을 보는 것은 대승이 자평이 진짜 전함을 얻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단 다시 그 말씀을 바꾸어 元理와 消息一賦는 대승이 홀로 얻으니 지금 사람을 추명 하는 術이다. 또 사람을 元으로 推하는 자평과 대승 二家의 法으로 연역이 된 것과 지금 命을 담론하는 動靜 子平으로 그 原을 알지 못한다)라고 자평과 대승은 3백년의 거리로 그 原을 알지 못한다.

정약용선생님은 한나라 무제 이후 기록하여 온 장력(만세력)의 불합리성을 강조하여 주셨듯이, 지금의 만세력은 한마디로 가짜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나이만 해도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태어난 시간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물며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일반 서민은 태어난 시간뿐 아니라 태어난 날짜도 잘 모릅니다. 달력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 부모세대는 아직도 달의 움직임인 초하루 초이틀로 날짜를 셉니다. 다시 말해서 4주를 모르는데 무엇을 가지고 임상을 보았겠습니다.

그런데 작금에는 4주를 통계학이라고 가르치는 유명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 학문의 수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것을 가지고 요점정리하고 짜깁기하고 책을 내며 또 배우면서 잘 맞춘다는 분들이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고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니까 이 학문은 얼마나 잘 맞추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깨닫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옛 얘기를 조금만 하겠습니다.

저는 한때 4주를 정말 열심히 공부 했었습니다. 그 결과 만세력, 4주이론 등 가짜를 공부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보면 위에서 정약용선생님이 지적해 주신대로 가짜를 공부하여 결국 虛行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이 노래지지요.

虛行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8장`에서, "初率其辭 而揆其方 旣有典常 苛非人道不行"(처음에 그 辭를 따라서 그 方을 헤아려 보면, 이미 전요와 상도가 있다. 진실로 非人의 道는 虛行한다)라고 非人의 道는 헛되이 행해진다.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4주는 공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주변화원리를 공부하려고 했지만,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었습니다. 나 같은 돌머리로 어떻게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공부하는 사람은 지지닷컴이라는 디딤돌도 있지만, 저는 정말 아무도 없는 백지에서 오로지 원전만 의지한 채 홀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결국 나는 청춘과 동양학의 원리를 건 도박을 선택하였습니다. 부정에 부정... 부정을 계속하다보면 결국 부정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고로 나는 존재하게 되지요.(데카르트) 여기서 연역법이 출발합니다. 정말 자존심 구기면서 원리 하나를 위해 더럽게 살아온 청춘이지만, 깨달음의 기쁨이 나를 계속 이 길을 가도록 하였습니다. 어느새 흰머리가 나고 청춘도 흘렀으며, 초등학생이던 아들도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내가 한 것은 오로지 ‘中의原理’ 하나뿐...

저는 한나라 이후 원전을 공부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道가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http://jeejee.com/AsaBoard/asaboard_show.php?bn=guide&fmlid=1&pkid=1&startTextId=80&buffer=17&categoryValue=0&thisPage=5&jk=1&mode=search&srchValue=&searchTemp=&term= 참조

그리고 위 중의원리 눈으로 4주를 다시 보기 시작했으며, 한의학도 자연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원리로 바라보는 만큼 위 두 이론은 일치합니다. 물론 위 이론은 기존이론과는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원리이론이므로 임상과도 전혀 관계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365만세력이 아닌 360절기력에 적용하여 위 임상이론과 일치여부를 검토했습니다. 그것도 용태, 음식, 발병, 전이 등 형이상학으로 형이하학에만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원리와 임상이 전혀 무관하게 출발하였지만 둘은 잘 일치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스스로도 놀라는 대만족 이었습니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듯이, 우주는 이치(無/理)와 현상(有/氣)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은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이해하셔도 됩니다. 위 이치의 세계는 쉽고 단순하며 보이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데 반하여, 위 현상의 세계는 어렵고 복잡하며 보이며 변해갑니다. 즉 우리 인간은 현상의 세계만 보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이것 구분 못하면 정말 기초를 모르는 것이니까 이것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정약용선생님은 위에서 변하지 않는 이치의 세계가 아니라, 변해가는 현상의 세계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당연히 옳으신 말씀이고 저 역시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젊은 시절을 원리공부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의 명에 의해 대요씨가 만든 60갑자는 현상적으로 볼 때는 366일, 365 1/4일 그리고 365.2425로 다르게 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치적으로 볼 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똑같습니다.

정약용선생님이 지적해 주셨듯이 주역이 劃을 爻로 잘못 알고 전해 왔던 것처럼, 60갑자 적용 역시 잘 못 전해 온 것뿐이지, 성인이 만든 60갑자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아닐 겁니다. 또한 괘효에는 존재하는 운명이 60갑자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이유도 없으며, 정약용선생님도 이런 형평성에 어긋난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지금 우주에 부합하는 원리의 힘으로 가짜를 찾아 동양학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글쎄요... 때가 오는 모양입니다.^^

2005.4.2.

안초



제목: re: 이치와 현상 글쓴이: 청학 날짜: 2005.04.02. 11:13:51

언제나 샤려깊고 명쾌한 답변 감사 합니다.
즐거운 주말 맞이 하세요



제목: 정약용의 만세력과 4주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4.02. 12:31:28

추가로 몇 마디만 쓰겠습니다.

다산선생님은 한나라 이래로 주역에서 爻의 오류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익장을 발휘하여 4차원관점의 周易四箋을 저술하시면서 그 오류를 잡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하신 갑을론에서는 한나라 이래로 만세력과 사주의 오류를 지적하셨습니다. 즉 다선선생님도 만세력과 4주에 정통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周易四箋처럼 만세력과 4주의 오류를 잡아주시지 못하셨습니다. 따라서 혹시 더 오래 사셨다면 괘효 뿐 아니라 4주도 한나라 이래로 다시 정리해 주셨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안타깝지요.

위 갑을론을 보면 다산선생의 언변은 상당한 독설을 품고 계십니다. 그만큼 학문의 시류에 속았음을 분개하시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난 글을 보면 상당한 독설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잘못된 시류에 속은 저 자신에 대한 분개이며 저항입니다. 반면에 후학의 인생을 담보로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유명한 자들을 보면 정말 똥칠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있으되 살아 있는 것이 아니며, 때가 되면 청산되는 것이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일 뿐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동양학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내는 일입니다. 정말 인간의 한계를 요구하는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보다는 짜깁기와 비빔밥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虛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결국 다산선생의 말씀대로 천대(千代)를 의혹하게 하고 억조창생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만큼 4주뿐 아니라 지금의 동양학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 중에서, 혹시 정약용선생의 위 여유당전서 갑을론의 원전을 가지고 계신 분께서는 이곳에 원문을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번역과 원문은 다르므로, 서로 학문을 공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2005.5.2.
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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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론(甲乙論)2 다산시문집 제11권

我顯宗十二年辛亥秋七月。觀象監啓曰王世子誕日。實爲辛丑八月十五日。而因丁未年改用大統曆法。以閏七月誤作閏十月。故誕辰八月。誤稱九月。自昨年庚戌。還用時憲曆。始正其謬。請自今世子誕辰。以八月改之。上命禮官就議大臣如其言。出國朝寶鑑。余惟軒嚳以來。曆法屢變。自漢以上勿論。

漢武帝作太初曆。洛下閎等作。魏文帝作黃初曆。晉虞喜立歲差法。宋何承天作元嘉曆。唐一行作大衍曆。玄宗時宋吳昭素作乾元曆。太宗時元郭守敬作授時曆。世祖時此其大者也。又所謂四分曆蔡邕作太和曆曹魏初景初曆魏明帝泰始曆晉武帝天和曆周武帝時甄鸞作。皇極曆隋文帝時劉焯作。至德曆唐肅宗五紀曆唐代宗時郭獻之等作。欽天曆五代時王朴作。應天曆宋太祖時王處訥作。知微曆金時趙知 微作。之類。又不可勝數。由是觀之。凡前史之稱正月者。或是二月。其稱九月者。或是八月。若其置閏之差。或在歲末。則其稱二年者。或是三年。其稱八年者。或是七年。又或日食不在朔者。其稱一日者或是二日。其稱十日者或是九日。乃推數算命之家。集古帝王聖賢卿相之等四柱。甲乙以驗其吉凶。而峻秩多文之人。方且欣然。以爲其理有然。豈不疎哉。甲乙紀年之法。始於西京。古人不以是紀年。不以是紀月。不以是紀時。則今所行孔子項羽之四柱。皆後人以長曆推定者也。然所謂春秋長曆。杜預謂尙書及史官。以乾度曆參校泰始曆而爲之者。所謂乾度曆者。術客李修卜所爲也。今以大統時憲之曆。溯至春秋之時。則其年月甲乙之差。又不可勝數。與今杜預之所推定。悉不相合。其所謂甲子。吾惡知其非乙丑耶。其所謂丁丑。吾惡知其非丙子耶。郭璞者。諸術之祖也。郭璞用晉曆。以定其吉凶。以此法而冒之於今曆。其有合耶。袁天綱,李淳風用唐曆。以定其吉凶。以此法而冒之於今曆。其有合耶。其言之罔誕虛妄。於是乎著明矣。世之君子。盍亦三思。丁丑五月初二日作。

우리 현종(顯宗) 12년(1671) 신해년(辛亥年)이다. 가을 7월에 관상감(觀象監)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왕세자(王世子)의 탄신일은 실지로 신축년(현종 2, 1661) 8월 15일인데 정미년(현종 8, 1667)에 다시 대통력법(大統曆法)을 씀에 따라 윤7월을 잘못 윤10월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탄신이 8월인 것을 잘못 9월로 일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작년 경술년(현종 11, 1670)부터 도로 시헌력(時憲曆)을 쓰게 되었으므로 비로소 그릇된 것을 시정하였사오니, 이제부터 세자의 탄신일을 8월로 고치소서"

상이 예관(禮官)에게 명하여 대신들에게 가서 의논하도록 한 결과 관상감에서 아뢴 대로 하기로 하였다. 이상은 《국조보감(國朝寶鑑)》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헌원씨(軒轅氏)와 제곡씨(帝嚳氏) 이래로 역법(曆法)이 여러 번 변경되었으니, 한(漢) 나라 이전은 논할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한 무제(漢武帝)는 태초력(太初曆) 낙하굉(洛下閎) 등이 지었다. 을 지었고, 위 문제(魏文帝)는 황초력(黃初曆)을 지었고, 진(晉) 나라 우희(虞喜)는 세차법(歲差法)을 만들었고, 송(宋) 나라 하승천(何承天)은 원가력(元嘉曆)을 만들었고, 당(唐) 나라 일행(一行)은 대연력(大衍曆)을 만들었고, 현종(顯宗) 때이다. 송(宋) 나라 오소소(吳昭素)는 건원력(乾元曆)을 만들었고, 태종(太宗) 때이다. 원(元) 나라 곽수경(郭守敬)은 수시력(授時曆)을 만들었다. 세조(世祖) 때이다. 이것이 역법 가운데 큰 것이다.

또 이른바 사분력(四分曆) 채옹(蔡邕)이 지었다. ㆍ태화력(太和曆) 조위(曹魏)의 초기에 지었다. ㆍ경초력(景初曆) 위 명제(魏明帝) 때 지었다. ㆍ태시력(泰始曆) 진 무제(晉武帝) 때 지었다. ㆍ천화력(天和曆) 주 무제(周武帝) 때 견난(甄鸞)이 지었다. ㆍ황극력(皇極曆) 수 문제(隋文帝) 때 유작(劉焯)이 지었다. ㆍ지덕력(至德曆) 당 숙종(唐肅宗) 때 지었다. ㆍ오기력(五紀曆) 당 대종(唐代宗) 때 곽헌지(郭獻之)가 지었다. ㆍ흠천력(欽天曆) 오대(五代) 때 왕박(王朴)이 지었다. ㆍ응천력(應天曆) 송 태조(宋太祖) 때 왕처눌(王處訥)이 지었다. ㆍ지미력(知微曆) 금(金) 나라 때 조지미(趙知微)가 지었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를 통하여 살펴보건대, 전대(前代) 사서(史書)에서 정월이라 일컬은 것이 2월이 될 수도 있고, 9월이라 일컬은 것이 8월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시차(時差)에 의한 윤달[閏月]이 혹 12월에 든 경우에는 2년이라 일컬은 것이 3년이 될 수도 있고 8년이라 일컬은 것이 7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혹 일식(日蝕)이 초하루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1일이라 일컬은 것이 2일이 될 수도 있고 10일이라 일컬은 것이 9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운명(運命)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옛날 제왕(帝王)ㆍ성현(聖賢)ㆍ경상(卿相) 등의 사주(四柱)의 갑자ㆍ을축을 모아서 길흉(吉凶)을 증명하고 있고, 품계가 높고 학식이 많은 사람들도 흔연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이치가 있다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엉성한 수작인가.

갑자ㆍ을축으로 연대를 기록하는 법은 전한(前漢) 때 처음 생긴 것으로, 옛사람들은 해를 기록하고 달을 기록하고 날짜를 기록하는 데 있어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유행(流行)하고 있는 공자(孔子)와 항우(項羽)의 사주(四柱)는 모두 후세 사람들이 만세력(萬歲曆)으로 미루어 헤아려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춘추장력(春秋長曆)은 두예(杜預)의 말에 의하면 상서(尙書)와 사관(史官)이 건도력(乾度曆)을 가지고 태시력(太始曆)과 참고 비교하여 만든 것이라 하였다. 이른바 건도력이란 것은 술객(術客) 이수복(李修卜)이 만든 것이다. 이제 대통력과 시헌력에 의해 춘추 시대의 연월을 소급하여 계산해 본다면 어긋나는 갑자ㆍ을축의 차이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두예가 추정(推定)한 것과도 모두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니 갑자라고 일컬은 것이 실은 을축일 수도 있는 것이고 정축(丁丑)이라고 일컬은 것이 병자(丙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은 각종 술법의 비조(鼻祖)이다. 곽박은 진력(晉曆)을 가지고 길흉을 추정하였는데, 이 법을 지금의 역법(曆法)에 맞추어 쓴다면 그것이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원천강(袁天綱)과 이순풍(李淳風)은 당력(唐曆)을 가지고 길흉을 추정하였는데, 이 법을 지금의 역법에 맞추어 쓴다면 그것이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그 말의 허망과 괴탄이 여기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세상의 군자(君子)들이여, 세 번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으려는가.

정축년(1817) 5월 2일 짓다.

[주D-001]대통력법(大統曆法) : 명 태조(明太祖) 홍무(洪武) 17년에 누각박사(漏刻博士) 원통(元統)이 만든 역법(曆法)이다.

[주D-002]시헌력(時憲曆) : 명 의종(明毅宗) 때 독일 선교사 탕약망(湯若望 : 아담 샤알)이 만든 역법(曆法). 태음력(太陰曆)의 구법(舊法)에 태양력(太陽曆)의 원리를 부합시켜 24절기(節期)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히 계산하여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인조(仁祖) 22년 김육(金堉)이 가져와 10년 간 연구한 끝에 효종(孝宗) 4년부터 시행하였다.

[주D-003]만세력(萬歲曆) : 앞으로 다가올 1 백 년 동안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과 절후를 추산하여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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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론(甲乙論)1 다산시문집 제11권

甲乙之類十。子丑之類十二。古人所以紀日也。後世方技雜術讖緯怪力之說。若太乙九宮奇門六壬遁甲之法。與夫風水擇日雜筮雜占推數算命星曜斗數之等。其所以辨生殺之機。定吉凶之兆。察其衝犯。別其宜忌。以之惑千世而誣兆民者。壹以是甲乙子丑爲之宗幹。而繁條疊葉。得以依附。曰木曰火曰靑曰赤曰龍曰雀曰鼠曰牛。皆因是而萃焉。余嘗論甲乙子丑。有不宜然者三。有不必然者三。何以言之。

古稱大撓作甲子。卽大撓以前。上距天地開闢之初。不知幾千百年幾億萬日。悉皆無名。大撓以始作之年月正元日。命之曰甲子已矣。不必是日稟東方木氣。唯大撓以其意命之已矣。以是而爲萬古不易之定。則於理不宜然也。然且大撓以之紀日而已。以之紀年者。自漢武帝太初元年始也。旣以甲子紀年。於是追尊古年。以堯元年爲甲辰。以舜元年爲丙戌。卽太初以前。上距天地開闢之初。幾千百年。悉皆無名。其歲德年神方位之吉凶。雖堯舜禹湯。亦莫之知矣。是故堯舜禹湯。於祭祀朝聘巡狩征伐之時。皆不問宜忌。冥行徑 情。然以戰則克。以祭則受福。以與諸侯會同則萬方雍協。今取武帝以後人立之名。以爲天地之定。則又以是法紀月紀時。列之爲四柱。以爲人之壽夭貴賤。一定於四柱之成例。於理不宜然也。年日者所以爲今古也。方位者所以別圍合也。其理旣殊。其名宜別。今以年日之名。冒之於方位。曰子曰午曰壬曰丙。又何故也。子丑之類。析之爲四。可以四焉。故盡用之以配四方。甲乙之類。析之爲四。贏其二焉。故摘其贏以配中央。其亦不公甚矣。且方位何常之有。東家之西。爲西家之東。南宮之北。爲北宮之南。靑龍朱雀之等。將安所宅。今乃執移步換面之方位。以爲天地之定。則於理不宜然也。假使其言眞有所據。又其所用。與其法相舛。此夢之中又夢也。日出入時刻。隨地不同。延日之於漢陽。漢陽之於義州。差者數刻。延日義州之人。方以日出爲某刻。而其實漢陽之某刻。非延日義州之某刻。何則東曆主漢陽也。一刻旣差。時能易矣。一時旣差。日與年月。俱可易矣。何則除日之夜而差其末刻。歲其不易乎。由是觀之。卽所謂甲子。於遠方諸郡。或 爲癸亥。或爲乙丑。又可知也。專據漢陽一邑。命是日曰東方木德之幹。北方水德之枝。於理不必然也。又凡四方之中。可定者北而已。東西隨地易位。日本未必爲靑龍之地。大秦未必爲白虎之鄕。地體正圓。海路無閼。日本之人。乘風掛席。東而又東。必泊於大秦之西岸。大秦之人。乘風掛席。西而又西。必泊於日本之東岸。今乃以我坐之地。遂定天地之正位。不亦武乎。南方之所以配于火者。以南方熱也。以余觀之。南而又南。至於南極之下。則草木之朝生夕死。海水之半年氷合。將與北極之下同矣。烏睹所謂朱雀之銜火乎。今乃以我坐之地。遂定天地之恒氣。不亦陋乎。於理不必然也。仁義禮智。人性之所同。故論性者言仁義禮智。則周流萬國。無不合也。水火燥濕。物理之所同。故論理者言水火燥濕。則周流萬國。無不合也。獨所謂甲子乙丑者。唯與禹貢九州書同文者。方以是紀日。方以是紀年。稍遠者不知甲乙爲何文。子丑爲何名。況於其枝葉乎。木火靑赤。苟爲天地之公理。奚獨於禹貢九州。天啓其衷。使之趨避哉。於理不必然也。余觀 全羅之俗。偏信讖緯雜術。凡民之薄有聰明者。皆業爲葬巫。文學之士稍有聲譽者。又或沈溺於太乙奇門之書。余爲是悲。略言其所以勿信之意如是。

갑을(甲乙)은 10까지 나가고 자축(子丑)은 12까지 나간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날짜를 기록하던 방법이다.

후세(後世)의 방기(方技)ㆍ잡술(雜術)ㆍ참위(讖緯)ㆍ괴력(怪力)에 대한 설(說), 태을(太乙)ㆍ구궁(九宮)ㆍ기문(奇門)ㆍ육임(六壬)ㆍ둔갑(遁甲)에 대한 법(法), 풍수(風水)ㆍ택일(擇日)ㆍ잡서(雜筮)ㆍ잡점(雜占)ㆍ추수(推數)ㆍ산명(筭命)ㆍ성요(星曜)ㆍ두수(斗數) 등등 생살(生殺)의 기미를 분별하고 길흉(吉凶)의 조짐을 결정하여 충범(衝犯)을 살피고 의기(宜忌 좋은 것과 나쁜 것)를 구별함으로써 천세토록 억조창생을 미혹(迷惑)시켜 오면서, 한결같이 갑을(甲乙)과 자축(子丑)을 종간(宗幹)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여기에다 가지와 잎새를 덧붙여 수천 갈래로 뻗어나갔는데, 목(木)이니 화(火)니 청(靑)이니 적(赤)이니 용(龍)이니 작(雀)이니 서(鼠)니 우(牛)니 하는 것이 모두 이에 의해 생겨진 것들이다.

내가 논하건대, 갑을과 자축에는 당연히[宜]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고 반드시[必]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예부터 대요(大撓)가 갑자법(甲子法)을 만들었다고 일컬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대요 이전에서 천지가 개벽(開闢)한 처음까지 몇 천백 년에 몇 억만 날이 되는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텐데도 모두 날짜나 해[年]에 대한 명칭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다가 대요가 비로소 그 해의 정월(正月) 원일(元日)에다 갑자(甲子)라는 명칭을 붙었을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이날에 동방(東方)의 목기(木氣)를 받은 것이 아니라 대요가 자기 나름대로 명칭을 붙였을 뿐이다. 그런 것인데 이를 만고에 바꿀 수 없는 정칙(定則)으로 삼고 있으니, 이치에 있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요는 갑자로 날짜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해를 기록한 것은 한 무제(漢武帝) 태초(太初) 원년(元年)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미 해를 갑자로 기록하였으므로 먼 옛날까지 소급해 올라가서 요(堯) 임금의 원년을 갑진(甲辰)이라 하고 순(舜) 임금의 원년을 병술(丙戌)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태초(太初) 이전에서 위로 천지가 개벽한 때까지 수없이 많은 세월이 있었는데도 모두 날짜에 명칭이 없었다. 따라서 세덕(歲德)ㆍ연신(年神)ㆍ방위(方位)의 길흉에 대하여는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도 전혀 몰랐다.

이런 때문에 요ㆍ순ㆍ우ㆍ탕은 제사(祭祀)ㆍ조빙(朝聘)ㆍ순수(巡狩)ㆍ정벌(征伐) 등의 일을 할 적에 모두 의기(宜忌)를 따지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시행하였다. 그런데도 싸우면 이겼고 제사지내면 복을 받았고 제후(諸侯)가 회동(會同)하여 만방(萬方)이 모두 화목하게 붙좇았다. 이제 한 무제 이후 사람이 만든 명칭을 가지고 천지의 정칙(定則)으로 삼고, 이 법으로 월(月)과 시(時)를 기록하여 배열해 놓고는 사주(四柱)라 하는가 하면, 사람의 수요(壽夭)와 귀천(貴賤)이 한결같이 사주의 성례(成例)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니, 이치에 있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연월(年月)은 세월을 기록하는 방법이고 방위는 둘레를 구별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그 이치가 다르니, 그 명칭도 의당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연월에 붙은 명칭을 방위에다 뒤집어 씌워 자방(子方)이니 오방(午方)이니 임방(壬方)이니 병방(丙方)이니 하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자축(子丑)의 순서는 12까지 나가기 때문에 넷씩으로 나눌 수가 있다. 넷씩 나눌 수가 있기 때문에 모두 사방에 분배시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갑을(甲乙)의 순서는 10까지 나가기 때문에 넷으로 나누면 둘이 남게 된다. 그래서 남는 둘을 가져다가 중앙(中央)에 분배시켰으니, 매우 공평하지 못한 노릇이다. 그리고 방위라는 것은 늘 일정한 것이 아니다. 동쪽 집의 서쪽은 서쪽 집에서 보면 동쪽이 되고 남쪽 집의 북쪽은 북쪽 집에서 보면 남쪽이 되니, 청룡(靑龍)과 주작(朱雀)이 어디에다 자리를 정할 수 있겠는가. 이제 걸음을 옮기는 데 따라 방면(方面)이 바뀌는 방위를 고집하여 천지의 정칙(定則)으로 삼고 있으니, 이치에 있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그 말이 참으로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쓰이는 것이 그 법과 서로 어긋나고 있으니, 이야말로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형국이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각(時刻)은 지역에 따라 같지 않다. 연일(延日)과 한양(漢陽)을 비교해 보고 한양과 의주(義州)를 비교해 보면 해가 뜨고 지는 시각의 차이가 수각(數刻)이 된다. 연일과 의주 사람들은 바야흐로 해가 떠오르는 시각이 아무 시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한양의 해뜨는 시각과 연일이나 의주의 해뜨는 시각은 다른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역법(歷法)은 한양을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각(刻)이 틀리면 시각이 바뀔 수 있고 1시각이 틀리면 일(日)ㆍ월(月)ㆍ연(年)이 모두 바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섣달 그믐날 밤의 끝 시각이 틀리면 연(年)이 바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펴보건대, 이른바 갑자년(甲子年)이란 것이 아주 먼 지방의 고을에서는 계해년(癸亥年)이 될 수도 있고 을축년(乙丑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오로지 한양 한 고을만을 근거로 하여 동방(東方)은 목덕(木德)의 줄기이고 북방(北方)은 수덕(水德)의 가지라고 명명하고 있으니, 이치에 있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사방 가운데서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은 북쪽뿐이다. 동쪽과 서쪽은 위치에 따라 방위가 바뀌기 때문에 일본(日本)을 반드시 청룡(靑龍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대진(大秦 동로마제국)을 반드시 백호(白虎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땅의 형체는 둥글고 해로(海路)는 막힌 데가 없으므로 일본 사람이 바람을 이용하여 돛을 높이 달고 동쪽으로 자꾸만 항해(航海)해 가면 틀림없이 대진의 서쪽 해안에 정박하게 될 것이고, 대진 사람이 바람을 이용하여 서쪽으로 자꾸만 항해하여 가면 일본의 동쪽 해안에 정박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곳만을 기준으로 하여 드디어 천지의 정위(正位)를 결정하였으니, 역시 억지가 아닐 수 있겠는가. 남방(南方)을 화(火)에다 분배시킨 이유는 남방이 뜨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남쪽으로 자꾸만 내려가 남극(南極)에 도착하게 되면,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죽는 풀과 바닷물이 반년 동안 얼어붙어 있어 북극(北極)과 같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른바 불을 입에 문 주작(朱雀)을 어떻게 볼 수가 있겠는가. 이렇건만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기후만을 기준으로 하여 드디어 천지의 일정한 기후로 결정하였으니, 역시 고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이치에 있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는 다 같이 타고난 인성(人性)이기 때문에 인성을 논하는 자들은 인ㆍ의ㆍ예ㆍ지는 세계 어느 나라든지 다 같다고 말한다. 수(水)ㆍ습(濕)과 화(火)ㆍ조(燥)는 필연적으로 작용하는 물리(物理)이기 때문에 물리를 논하는 자들은, 수ㆍ습과 화ㆍ조는 세계 어느 나라든지 다 같다고 말한다. 유독 이른바 갑자ㆍ을축은 우공(禹貢)에 기재된 구주(九州)와 같은 문화권 속에 있는 자들만이 이것으로 날짜를 기록하고 이것으로 해[年]를 기록할 뿐, 조금 먼 곳에 있는 자들은 갑을이 무슨 글자인지 자축이 무슨 명칭인지 전혀 모른다. 더구나 갑을과 자축에서 생겨난 지엽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목(木)ㆍ화(火)ㆍ청(靑)ㆍ적(赤)이 진실로 온 천하의 공리(公理)라면, 우공에 기재된 구주의 문화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하늘이 그 마음속에 든 것을 알려주어 길흉을 가리게 했을 리가 있겠는가. 이는 이치에 있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전라도(全羅道)의 풍속은 참위(讖緯)와 잡술(雜術)을 지나치게 믿고 있다. 그래서 일반 백성 가운데 조금만 총명한 사람이면 모두 지사(地師) 노릇을 하고, 문학하는 선비 가운데 조금만 명성을 얻은 사람이면 태을(太乙)이나 기문(奇門)에 대한 책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내가 이 점을 딱하게 생각하여 그것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하다는 것을 대략 언급하는 바이다.

[주D-001]대요(大撓) : 황제(黃帝)의 신하로서 처음 갑자(甲子)를 만들었다고 한다.《事物紀原 正朔曆數部 甲子》

[주D-002]우공(禹貢)에……구주(九州) : 우공은 《서경(書經)》의 편명(篇名)으로 지리(地理)에 관한 내용인데 구주가 이 안에 기록되어 있다. 구주는 기주(冀州)·연주(兗州)·청주(靑州)·서주(徐州)·예주(豫州)·형주(荊州)·양주(揚州)·옹주(雍州)·양주(梁州)인데, 곧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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