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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0 시간, 공간, 그리고 시공...
  2. 2008.09.03 양자론과 체용론


제목: 시간, 공간, 그리고 시공... 글쓴이: 철천지무식 날짜: 2006.07.27. 03:02:38

역학에서 말하는 시간, 공간, 그리고 시공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알듯말듯..잡히지 않네요.

이러한 각각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목: 시간, 공간, 시공 글쓴이: 안초 날짜: 2006.07.27. 07:10:15

시간, 공간, 시공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과 동양학이 접목된다면 분명 이것이 그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 공간

브라이언 그린은 '우주의 구조, 진리로 가는 길'에서 “사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의문은 인간 사고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현대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간과 공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지난 300년간 물리학의 발달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난제로 군림해 왔으며, 지금은 이 우주의 구조를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밝혀줄 후보로 각광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과학과 동양학에서 시간, 공간, 시공이 다를 수 없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우주가 다를 수 없고, 또 옛날과 지금의 우주가 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서양에서 말하는 시간, 공간, 시공은 동일해야 하며 실제로 그렇습니다. 단지 동양에서 위 시간과 공간을 별개 아닌 하나로 보아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말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합성된 단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事物은 사건(시간)과 물건(공간)의 합성어입니다.

宇宙(우주)

유안은 '회남자'에서, "天地四方 曰宇, 古往今來 曰宙"(하늘, 땅, 4방을 宇라고 하며, 과거가 가고 현재가 오는 것을 宙라고 한다)라고 宇(공간)와 宙(시간)를 정의한다.

얘기가 길어졌네요.

일단은 쉽게 정의하고 시작합시다. 안보이는 것은 시간이고, 보이는 것은 공간입니다.^^

실제로 동양학에서는 시력을 기준으로 안보이는 것(隱), 보이는 것(顯)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서양 역시 내가 아는 것이 내가 보이는 것입니다.(I see) 그 뿐 아니라 학문적 입장에서도 위 은현은 체용개념의 하나이며, 양자론에서도 결국 안보이는 것(파동/시간), 보이는 것(입자/공간)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시공은 무엇인가. 공간은 표면이며, 시공은 불연속의 알맹이입니다. 과학에서 위 브라이언 그린은 우주구조에서 식빵처럼 잘라놓은 것을 시공이라고 하며, 공간은 그 표면인데 풍성처럼 안이 비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동양학에서는 위 시간을 道(갑자)라고 하며, 공간을 易(괘효)라고 하며, 시공을 神(상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의학 역시 인체를 시간의 경락, 공간의 장부, 시공의 공혈(神)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왜 調氣治神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잡힐 듯, 안 잡힐 듯하다가 때(時)가 되어야 비로소 잡히는 것(깨달음)이 동양학을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당연이 많은 고민 없이는 얻을 수 없습니다.

2006.7.27. 안초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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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론과 체용론 글쓴이: 안초 날짜: 2004.08.13. 17:20:37

안녕하십니까.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 합일하여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사건,사물)을 시간(사건)기준으로 볼 수 있고, 공간(물건)기준으로 각각 별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나의 사물이지만 전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는 관찰자 임의대로 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면 될 뿐이지 결코 논란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양자론에 의하여 증명되어진 개념입니다.

과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에너지를 입자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인슈타인은 파동이라고 멋지게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의 사물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과학으로 과학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닐보어는 아인슈타인과 편지의 문답논쟁으로 10년이라는 세월동안 하나의 사물을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해 냅니다.(이것이 EPR 패러독스이며, 이것은 문답논쟁 게시판이 생성된 취지이기도 함) 그리고 닐보어는 위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받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의 사고방식(고전물리학)을 완전히 뒤집는 개념으로 새로운 과학 즉 현대물리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입니다. 참고로 하나의 사물은 파동(시간)으로 보이기도 하고, 입자(공간)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론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물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는 닐보어는 노벨물리학상 수여식장에서 태극이 그려진 옷을 입습니다. 즉 그가 위와 같이 증명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동양학이 있었다는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딜레마에 빠진 과학의 괘도 수정이며, 또한 동양학과 현대과학의 만남에 대한 반증입니다.(어제 한의사 선생님들과 술자리에서 동양학의 우수성에 대하여 얘기하다가 나온 얘기이군요.^^ 참고로 본 문답논쟁 게시판의 우수성에 대한 화두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위 양자론을 입증시킨 동양학이 바로 체용입니다. 체용은 일종의 관점학입니다. 즉 하나의 사물(체용)을 사건(용)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 사물(체)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동양학의 원리이론입니다. 따라서 그 기준은 체로 하든지 용으로 하던지, 이것은 관찰자가 임의대로 선정하는 것이므로 결코 위 기준자체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기준이 설정된 이후 완전히 다르게 표현되는 논리에 대한 논란만 있을 뿐입니다.

현룡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일부는 정역에서 무극을 체로 보고 태극을 용으로 보았는데 반하여, 한동석은 무극을 용으로 보고, 태극을 체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사물에서 어떤 것을 체로 보든지 그것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즉 관찰자입장에서 임의대로 선정된 관점 기준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그렇게 이해하면 될 뿐입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을 날카로운 관점으로 지적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8.13.
안초




☞ 현룡3663 님께서 남기신 글

> 一이 無十이면 無體요 十이 無一이면 無用이니

>

>한동석曰 손이 축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이 바로 태극의 상이기는 하지만

>만일에 十指를 편 象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일태극의 體가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우주가 기를 분산하지 않았더라면 통일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논한 것이요,반대로 십지를 펴면 십무극의 상이 되지만 만일에 축합한 주먹의

>상인 일태극이 없다면 십무극의 작용이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논한 것이다

>

>여기서 동석은 일태극의 체라고하여 일태극이 체라고 말하고 ,

> 십무극의 작용에서 십무극은 용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상기 정역의 구절을

>저는 일은 십이 없으면 체가 없어지고, 십은 일이 없으면 용이 없어진다로 해석하여

>

>십무극이 體(本體)이고, 일태극이 用(作用)으로 생각되니 어찌된 조화입니까?

>공자曰 계사하전 1장에 天下之動은 貞夫一者也

>천하의 움직임은 무릇 항상 일인것이다 ---> 일태극 動 ---> 작用

>정역에 十退一進 ---> 일태극 進 ---> 用

>

>여러분의 의견을 구합니다

>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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