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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9 소우주의 독립변수에 대한 우문
  2. 2008.12.16 소우주의 독립변수에 대한 우문
  3. 2008.04.08 필혹(必或/努力)


제목: 소우주의 독립변수에 대한 우문 글쓴이: 우공 날짜: 2007.11.15. 11:44:34

소우주로서 인간은 하늘의 명을 받고 태어난다고 합니다(인간의 입장에서는 생명, 하늘의 입장에서는 명령): 안초님 말씀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인간의 입장에서의 생명에 관해서 인데요. 부모로 부터 생물학적으로 물려받는 유전형질(성격,외모,체질...등등)과 하늘의 입장에서의 명령과의 상관관계에 관해서입니다. 소우주로서 인간이 하늘입장에서의 명령에 감응하는 살아간다고 하는 명제에는 동의 할 수 있는데, 인간입장에서의 생명체로서 각자 상이한 유전형질의 차이로 인하여 각각 대우주에의 감응의 정도가 달라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서 단순히 하늘의 명만을 본으로 하여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일방적인 대우주에의 감응이 아니고, 대우주와 소우주의 상호교호적인 쌍방향적 감응에 대한 생각입니다. 결국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우주의 명으로 감응해 가겠지요. 그래도 소우주의 독립변수적 요인이 공간의 변이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문입니다.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목: 必或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16. 05:09:25

그렇습니다.

대우주의 감응에 의해 존재하지만, 소우주 자체의 독립변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쌍생아 및 동일4주일 망정 다르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우주의 흐름을 이치라고 하고, 소우주의 모습을 현상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대우주의 동일한 명을 받을망정 소우주 각자는 분명 다릅니다. 그렇다고 대우주를 벗어나서 다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치로서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현상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인간의 독립변수라고 할 수 있는 努力이 개입하는 겁니다. 물론 대우주 명에 반한 努力은 의미가 없습니다.

학문적으로 정리하면, 대우주에서 소우주의 관계를 或의 관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우주에서 대우주의 관계를 必의 관계라고 합니다. 수학적으로 충분조건(或)과 필요조건(必)을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이것이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입니다.

或(혹)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刺法論篇에서,"黃帝問曰 十二臟之相使 神失位 使神彩之不圓 恐邪干犯 治之可刺 願聞其要 "(황제가 묻는다. 12臟이 서로 사용되는데, 신이 자리를 잃어 신을 사용함이 채색되어 둥글지 못하는데, 공포스러운 사기가 범하지 못하도록 자침을 다스리는 요지를 들을 수 없겠는가.)

기백은. “岐伯稽首再拜曰 或乎哉 問至理 道眞宗 此非聖帝 焉究斯源 是謂氣神合道 契符上天”(기백이 머리를 조아려 답한다. 或이여, 이치에 이르는 질문으로 진정한 宗의 도입니다. 이것은 聖帝가 아니라면 누가 사학의 근원을 연구하겠습니까. 氣와 神이 道와 합하여 위의 하늘에 부합된 것을 말합니다.)라고 혹의 도를 설명한다.

2007.11.16. 안초




제목: re: 必或 글쓴이: 우공 날짜: 2007.11.16. 11:44:23

답변감사합니다.

현상의 예측에 영향을 미치는소우주의 독립변수적 요인에 대한 연구도 체계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그 것이 가능하다면 미래예측이 좀더 세분화 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우주의 이치로서 "중도의 길"은 갈 수(can) 있는 길인지, 아님 그져 존재(be)하는 이념형으로서의 길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re: re: 必或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16. 13:11:02

당연히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런데 소우주에 끈이 있다면 아무래도 대우주 진입은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우주 인연을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신부, 스님, 도인 등 속세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소우주를 포기한다고 꼭 대우주에 진입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 조건을 만드는 것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대우주 진입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마치 낙타가 바늘에 들어가는 것 만큼... 그래도 그 길이 자기 길이라면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윗 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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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우주의 독립변수에 대한 우문 글쓴이: 우공 날짜: 2007.11.15. 11:44:34

소우주로서 인간은 하늘의 명을 받고 태어난다고 합니다(인간의 입장에서는 생명, 하늘의 입장에서는 명령): 안초님 말씀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인간의 입장에서의 생명에 관해서 인데요. 부모로 부터 생물학적으로 물려받는 유전형질(성격,외모,체질...등등)과 하늘의 입장에서의 명령과의 상관관계에 관해서입니다. 소우주로서 인간이 하늘입장에서의 명령에 감응하는 살아간다고 하는 명제에는 동의 할 수 있는데, 인간입장에서의 생명체로서 각자 상이한 유전형질의 차이로 인하여 각각 대우주에의 감응의 정도가 달라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서 단순히 하늘의 명만을 본으로 하여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일방적인 대우주에의 감응이 아니고, 대우주와 소우주의 상호교호적인 쌍방향적 감응에 대한 생각입니다. 결국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우주의 명으로 감응해 가겠지요. 그래도 소우주의 독립변수적 요인이 공간의 변이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문입니다.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목: 必或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16. 05:09:25

그렇습니다.

대우주의 감응에 의해 존재하지만, 소우주 자체의 독립변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쌍생아 및 동일4주일 망정 다르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우주의 흐름을 이치라고 하고, 소우주의 모습을 현상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대우주의 동일한 명을 받을망정 소우주 각자는 분명 다릅니다. 그렇다고 대우주를 벗어나서 다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치로서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현상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인간의 독립변수라고 할 수 있는 努力이 개입하는 겁니다. 물론 대우주 명에 반한 努力은 의미가 없습니다.

학문적으로 정리하면, 대우주에서 소우주의 관계를 或의 관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우주에서 대우주의 관계를 必의 관계라고 합니다. 수학적으로 충분조건(或)과 필요조건(必)을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이것이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입니다.

或(혹)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刺法論篇에서,"黃帝問曰 十二臟之相使 神失位 使神彩之不圓 恐邪干犯 治之可刺 願聞其要 "(황제가 묻는다. 12臟이 서로 사용되는데, 신이 자리를 잃어 신을 사용함이 채색되어 둥글지 못하는데, 공포스러운 사기가 범하지 못하도록 자침을 다스리는 요지를 들을 수 없겠는가.)

기백은. “岐伯稽首再拜曰 或乎哉 問至理 道眞宗 此非聖帝 焉究斯源 是謂氣神合道 契符上天”(기백이 머리를 조아려 답한다. 或이여, 이치에 이르는 질문으로 진정한 宗의 도입니다. 이것은 聖帝가 아니라면 누가 사학의 근원을 연구하겠습니까. 氣와 神이 道와 합하여 위의 하늘에 부합된 것을 말합니다.)라고 혹의 도를 설명한다.

2007.11.16. 안초




제목: re: 必或 글쓴이: 우공 날짜: 2007.11.16. 11:44:23

답변감사합니다.

현상의 예측에 영향을 미치는소우주의 독립변수적 요인에 대한 연구도 체계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그 것이 가능하다면 미래예측이 좀더 세분화 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우주의 이치로서 "중도의 길"은 갈 수(can) 있는 길인지, 아님 그져 존재(be)하는 이념형으로서의 길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re: re: 必或 글쓴이: 안초 날짜: 2007.11.16. 13:11:02

당연히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런데 소우주에 끈이 있다면 아무래도 대우주 진입은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우주 인연을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신부, 스님, 도인 등 속세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소우주를 포기한다고 꼭 대우주에 진입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 조건을 만드는 것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대우주 진입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마치 낙타가 바늘에 들어가는 것 만큼... 그래도 그 길이 자기 길이라면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윗 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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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혹(必或/努力) -

化時必(화시필)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五常政大論'에서,"帝曰 其久病者 有氣從不康 病去而瘠 奈何"(황제는 묻는다. 그 오래된 병에서 기가 종해서 건강하지 않고 병이 제거되었는데 마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기백은,"岐伯曰 昭乎哉 聖人之問也 化不可代 時不可違 夫經絡以通 血氣以從 復其不足 與衆齊同 養之和之 靜以待時 謹守其氣 無使傾移 其形廼彰 生氣以長 命曰聖王 故『大要』曰 “無代化 無違時 必養必和 待其來復 此之謂也"(기백을 답한다. 소명한 성인의 물으심이여. 化는 대신할 수 없고, 時는 위배할 수 없습니다. 무릇 경락이 통하고 혈기가 종하고 부족을 회복하여 대중과 더불어 동일하게 구제하려면 보양하고 중화해서, 고요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삼가 그 기를 지켜서 경이가 사용되지 않고 그 형이 창궐하고 생기가 길어지니 성왕이라고 명합니다. 그러므로 대요가 말하기를 化는 대신함이 없고 時는 위배될 수 없으니 필히 양육하고 필이 중화하여, 그 회복이 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無必(무필)

황제는 '황제내경 운기 지진요대론'에서,"帝曰 勝復之動 時有常乎 氣有必乎"(황제가 말한다. 승복의 움직임에는 시간이 항상 있는데, 氣도 반드시 있는가요)

기백은,"岐伯曰 時有常位 而氣無必也"(기백은 말한다. 시간은 항상 位에 있지만 氣는 반드시는 아닙니다)라고 시간과 기의 움직임을 설명한다.

無恒(무항)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六元正紀大論'에서,"謹候其時 病可與期 失時反歲 五氣不行 生化收藏 政無恒也"(삼가 그 때를 후로 해서 병은 시기와 함께 하지만, 때를 잃고 세와 반하고 5기가 행하지 못하고 생화수장하면 政은 항상 됨이 없습니다)라고 설명한다.

或(혹)

황제와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刺法論篇'에서,"黃帝問曰 十二臟之相使 神失位 使神彩之不圓 恐邪干犯 治之可刺 願聞其要 "(황제가 묻는다. 12臟이 서로 사용되는데, 신이 자리를 잃어 신을 사용함이 채색되어 둥글지 못하는데, 공포스러운 사기가 범하지 못하도록 자침을 다스리는 요지를 들을 수 없겠는가.)

기백은."岐伯稽首再拜曰 或乎哉 問至理 道眞宗 此非聖帝 焉究斯源 是謂氣神合道 契符上天"(기백이 머리를 조아려 답한다. 或이여, 이치에 이르는 질문으로 진정한 宗의 道입니다. 이것은 聖帝가 아니라면 누가 사학의 근원을 연구하겠습니까. 氣와 神이 道와 합하여 위의 하늘에 부합된 것을 말합니다)라고 혹의 도를 설명한다.

或災德(혹재덕)

기백은 '황제내경 운기 기교변대론'에서,"以道留久 逆守而小 是謂省下 道而去 去而速來 曲而過之 是謂省遺過也 久留而環 惑離 惑附 是謂議災與其德也"(도로써 머무름이 오래되면 역으로 지키니 소우주는 아래를 살핀다고 합니다. 도로써 지나가고, 지나가면 빨리 돌아옵니다. 굽은 것은 과오가 되니, 이를 남겨진 과오를 살핀다고 합니다. 오래 머물며 순환하면서 혹 떨어지고 혹 붙기도 하는데 이를 일러 덕과 함께 재를 의논한다고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或躍(혹약)

문왕은 ‘주역 건괘 九四’에서,"或躍在淵 无咎"(깊은 심연에서 혹시 도약해도 허물이 없다)라고 혹시 도약할 지 안 할 지 모른다.

待時(대시)

공자는 '주역 계사하전 제5장'에서,"君子 臟器於身 待時而動 何不利之有 動而不括 是以出而有獲 語成器而動者也"(군자가 器를 몸에 감추고 때를 기다려 행동하니 어찌 이롭지 않겠는가. 행동에 막힘이 없으니 나아가 획득하고 器를 이루어 행동함을 말한다)라고 군자는 時(시간)를 기다려, 器(공간)를 감추어 행동한다고 한다. 노력이란 감추고, 기다리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居動(거동)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제2장'에서,"是故 君子 居則觀其象而玩其辭 動則觀其變而玩其占 是以自天祐之 吉无不利"(그러므로 군자가 居함은 그 象을 관찰하여 그 말을 완미하고, 動함은 그 變을 관찰하여 그 점을 완미하니, 스스로 하늘이 도와서 길하고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스스로 하늘을 돕는(自天祐之) 군자의 노력(居動)을 말하고 있다.

知己(지기)

소강절은 ‘황극경세서 관물내편’에서,"夫人不能自富 必待天與其富然後能富 人不能自貴 必待天與其貴然後能貴 若然 則富貴在天也 不在人也 有求而得之者 有求而不得者矣 是繫乎天者也 功德在人也 不在天也 可脩而得之 不脩則不得 是非繫乎天也 繫乎人者也 夫人之能求而得富貴者 求其可得者也 非其可得者 非所以能求之也 昧者不知 求其得之 則謂其己之能得也 故矜之 求而失之 則謂其人之不與也 故怨之 如知其己之所以能得 人之所以能與 則天下安有不知量之人邪"(무릇 사람은 스스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반드시 하늘이 재물을 내려 주는 것을 기다린 뒤에야 부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귀하게 되지 못한다. 반드시 하늘이 그 귀함을 내려 주는 것을 기다린 뒤에야 귀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즉 부귀는 천지에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 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얽매인 것이다. 공덕은 사람에게 있지 하늘에 있지 않다. 닦을 수 있으면 얻고 닦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이것은 하늘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사람에 얽매인 것이다. 무릇 사람이 구하여서 부귀를 얻는 것은 얻을 수 있는 것은 구하고 얻을 수 없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여, 구하여 얻으면 자기가 얻은 것이라고 말하므로 자긍심이 생기며, 구하여 얻지 못하면 남이 주지 않았으므로 원망이 생긴다. 만일 자기를 알아 얻을 수 있음과 남이 줄 수 있음을 안다면 천하에 어찌 남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설명한다.

樂譜樂功(악보악공)

최한기는 ‘신기통 체통’에서,"夫欲通達於氣之理者 不通於算數之學 其類無相之乎 氣必有理 理必有象 象必有數 從數而通象 從象而通理 從理而通氣 有交發互將之益 徒習算學 而不知神氣之通 其類樂工之學譜乎"(대저 氣의 이치를 통달하고자 하는 사람이 산수의 학문에 통하지 못하는 것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소경과 같다고나 할까. 기에는 반드시 이치가 있고 이치에는 반드시 象이 있고 상에는 반드시 數가 있어, 수를 따라 상을 통하고 상을 따라 이치를 통하고 이치를 따라 기를 통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차하여 發하고 상호 도우려는 이익이 있는 것인데, 한갓 산학을 익히기만 하고 신기를 통할 줄 알지 못하는 것은 樂工이 악보만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라고 설명한다.

氣質推測(기질추측)

최한기는 ‘추측록 추기측리’에서,"氣質之理 流行之理也 推測之理 自得之理也 未有習之初 只此流行之理 旣有習之後 乃有推測之理 若謂推測之理出於流行之理 則可 若謂推測之理卽是流行之理 則不可 旣無分於推測流行 則推測之或誤者 必歸諸天理 天理之純澹者 難得其涵養"(氣質의 理는 流行의 理요, 추측의 이는 스스로 얻은 理이다. 習이 있기 이전 처음에는 이 유행의 이만이 있고, 習이 있은 뒤에야 추측의 이가 있다. 그러므로 만약 추측의 이가 유행의 이에서 나왔다 하면 되지만, 추측의 이가 바로 유행의 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추측과 유행의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추측에서 혹 틀리는 것을 天理로 돌리게 되어, 순수한 천리를 함양하여 얻기 어렵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시간적 계승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宇宙論 批判'에서, "吾人은 인간을 小天地라고 하는 古哲들의 立論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며 따라서 因果關係를 우주의 動靜法則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因果란 것은 動靜·變化·陰陽등과 동일한 내용의 개념이면서 다만 관점을 달리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인과율이란 것은 時間的 繼承의 一般的 必然性인 것이다. 繼라는 것은 生하는 方向으로 이어 주는 것이요, 承이란 것은 成하는 方向으로 이어주는 것이며 一般이란 것은 統一하는 象을 말하는 것이고 必然이란 것은 規則的으로 그렇게 되고야 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주사위

덴게 시로는 ‘초능력과 기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에서, "아인슈타인뿐 아니고 그때까지의 모든 과학자는 이 ‘라플라스의 결정론’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현재의 상태를 아는 것도 미래의 상태를 아는 것도 불가능하고 인간관계는 한결같이 확률통계에 따를 뿐이고 우주는 우연히 지배되어 있다는 논리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참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보어 등과 논쟁을 계속하였는데 그 기분은 그의 유명한 대사에 집약되어 있다. -신은 주사위를 가지고 놀지 않습니다(아인슈타인)"라고 결정론과 확률론이 대립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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